지난 8일 서울 녹번동의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난 ‘좀 놀아본 언니’ 대표 장재열(31)씨. 그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사했다가 돌연 사표를 쓰고 나왔다. 잘나가던 ‘엄친아’에서 청년들의 상담역을 자처하게 된 그는 “그저 소박한 동네 언니들로 동생들을 만나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국 사회에서 ‘가든’은 ‘갈빗집’을 뜻하고 ‘힐링’은 ‘상품화된 위로 서비스’를 의미한다. ‘오랜 기간 밀접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경험과 지혜를 나눠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멘토’는 우리 사회에서는 ‘성공적인 캐리어를 쌓은 롤모델’이란 의미로 통용된다. 거부가 된 벤처사업가, 명문대 교수, 자수성가한 인기 강사, 베스트셀러 작가… ‘최강 멘토 군단’은 어벤저스처럼 휘황하게 등장해서 족집게 과외처럼 모든 고민을 단방에 해결한다. 열정적인 멘토들이 ‘도전’과 ‘용기’와 ‘희망’의 은총을 꽃가루처럼 뿌려주고 고액의 강사료를 챙겨 총총히 사라지고 나면, 관객들은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겨들고 원래 있던 그들의 남루한 자리로 돌아간다. 남는 것은 서푼짜리 감동과 깊은 우울이다.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 대표 장재열(31)은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말벗해 주는 사람이다. 그는 멘토가 아니라 ‘좀 놀아본 언니’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2013년 11월 상담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2만7천여건의 고민을 들고 청년들이 그의 비영리 상담소를 찾았다. 그는 심리학이나 카운슬링 전공자가 아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사했다가 돌연 사표를 쓰고 나왔다. 잘나가던 ‘엄친아’는 어쩌다가 청년들의 상담역을 자처하게 되었을까? 왜 그렇게 많은 청년들이 ‘좀 놀아본 언니’ 장재열을 찾는 걸까? 장재열은 고민하는 청년들을 만나 무얼 하고 싶은 것일까? 지난 8일, 서울 녹번동의 서울혁신파크 로비에서 그를 만났다.
3년간 2만7천건, 돈벌이로 생각 안 해
청년단체나 사회적 기업이 입주해 있는 서울혁신파크에는 로비가 가득 찰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다. 숨 막히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에어컨 잘 돌아가고 마음 편히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흰 셔츠를 정갈하게 차려입은 젊은이가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사무실이 여기예요?
“아니에요. 하하하, 저흰 사무실 없고요. 저까지 9명인데 상근자도 없어요.”
-그럼 온라인으로만 활동하는 거예요?
“온라인으로 주로 하고, 매달 한 번씩 신청 받아서 여기서 오프라인으로 만나요.”
-그럼 생업은?
“다 각자 일해요. 저도 국방에프엠(FM)이나 불교티브이(BTN) 같은 방송에서 일하고요.”
-네이버 포스트에 기고하는 <좀 놀아본 언니들>의 구독자 수가 5만5천여명, 유튜브에 올리는 <언니티브이(TV)> 구독자가 1만1천명이 넘어요. 전체 방문자 수가 통계로 잡히나요?
“작년 연말까지 네이버 조회 수는 600만이 넘었어요. 유튜브 조회수는 200만 정도?”
-상담소 열고 3년 가까운 기간 동안 상담 건수가 2만7천건이라면서요? 어떻게 그렇게 해오셨어요?
“어떻게 했냐면… 그냥 ‘무식하게’ 해왔어요.(웃음) 매일 신청 사연을 읽고 답해요. 그래도 지금은 상승세가 완만한데. 2014년 말부터 지난해 여름까지는 하루에 100개씩 붙을 때도 있었어요. 갑자기 20대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면서 사연이 폭주했죠. 평일엔 한 20~30건, 주말엔 100건씩 들어와서 도시락 3개 사놓고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도 했어요. 가끔 후회도 했어요. ‘내가 어쩌자고 신청 사연 모두에 답해준다고 해가지고 이 고생인가!’ 투덜대면서.(웃음)”
-지난해 7월에 ‘좀 놀아본 언니들’을 비영리법인으로 등록했는데, 방문자가 그렇게 많으면 영리법인으로 갈 수도 있었던 거 아니에요?
“또래 동생들 고민 듣고 응답하는 일에 돈을 받는다는 생각 자체를 가져보지 않았어요. 제가 심리학이나 상담을 전공한 전문가도 아니고, 함께 일하는 다른 ‘언니들’도 마찬가지이니 애초부터 돈 버는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미디어 제휴나 광고 유치로 수익모델을 만들 수도 있잖아요?
“광고 제안은 꽤 왔지만 전부 거절했어요. ‘저 언니, 우리 얘기 들어준다 하더니 광고로 돈 버네’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싶진 않아요. 지금 유튜브 <언니티브이> 한 지가 10개월째인데, 1만명 넘으면서 첫 수익이 났어요. 딱 15만원! 하하하… 같이 진행하는 김수영 작가랑 제가 사비로 들인 돈은 200만원이 넘고요.”
-그럼 순전히 자원봉사 차원에서 자기 돈과 시간 들여가며 하는 일이란 말이에요?
“저희는 특별히 청렴을 추구하는 사람도, 강렬한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도 아니에요. ‘좀 놀아본 언니들’ 멤버 모두 그저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애들’인데요, 적어도 이 상담을 돈벌이 아이템으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죠. 우린 그냥 소박한 동네 언니들로 동생들을 만나고 싶은 거예요.”
2013년 11월 시작한 상담
지금까지 2만7천여건
카운슬링 전공자도 아니다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 안해
소박한 동네 언니일 뿐”
성 전환자, 미혼모, 자살 시도자
비슷해도 다 다른 고민들
유명인 돼야지 생각했던 때도
어느날 내 안의 오만 깨닫고
‘조언 주고받는 판’ 만들자 결심
상담을 해준다며 사회구조적 문제는 덮어둔 채, 처세술, 대인관계, 마인드컨트롤 같은 걸로 풀도록 조언하는 경우가 많지만, ‘좀 놀아본 언니들’은 달라 보였다. 장재열씨는 “아무도 우리를 청년활동가로 봐주지 않는다”면서도 “요즘 우리의 제일 큰 화두는 ‘그들의 일상적 고민을 어떻게 작은 행동으로라도 이어지게 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서울 녹번동 서울혁신파크 내 독특한 형태의 농구 골대 앞에서 웃고 있는 장재열씨.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허지웅, 곽정은, 그다음은 내 차례?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주로 20대인가요?
“아무래도 17~18살부터 38살 정도까지가 많지요. 압도적으로 연애 문제가 많지만 세대별로 보면 10대는 교우관계, 20대는 진로나 취업 문제, 30대는 직장생활 문제가 많아요.”
-상담 건수가 2만7천건이라고 해도 고민의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요? 취업이나 연애나 교우관계나… 비슷비슷한 고민에 답하기 지겨울 때 없었어요?
“저도 가끔 생각하는데 그게… 전혀 안 지겨워요! 사실 비슷해 보여도 다 달라요. 처음엔 저도 몇몇 스테레오타입을 알면 쉬워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성전환자, 미혼모, 성폭력 피해자, 습관적 자살 시도자도 있고, ‘텐프로’(고급 유흥업소) 여성들이나 아이돌 연습생도 있어요. 신분 노출 때문에 어디 가서 말할 수 없는 친구들. 회장님 아들도 있었고요, 강제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지만 성악가가 꿈인 친구였죠. 우리 사회 양극단의 친구들이 다 있고 세상 모든 종류의 아픔을 봐요. ‘회사 때려치우고 배낭여행 가도 될까요?’ 물으면 대부분의 청년 멘토들은 ‘가라!’고 해요. 근데 사람에 따라 다르지, 어떻게 모두가 엠비티아이(MBTI)의 스파크형(적극적, 도전적 심리유형)이길 바라냐고요? 저는 내담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몇 살인지, 경력단절 이슈가 큰 업종인지, 학자금 대출이 있는지, 여행 갈 때 엄마한테 200(만원) 주고 가야 하는지 받고 갈 수 있는 형편인지, 물어보거든요. 거기에 따라서 조언하는 방향이 달라져요.”
-가족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데 상대방에 대해 엄청나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상담하다가 스토커가 생긴 적은 없어요?
“있어요. 우리 동네까지 찾아오고 해서 신고한 적도 있어요.”
-‘나 살기도 힘든데 이제 날 그만 찾아줘’ 하고 뿌리치고 싶지 않았어요?
“솔직히, 때려치우고 싶은 적 있었는데요. 힘들어서는 아니었고요, 내가 아이들을 돕는다는 데 취해서 ‘셀레브리티(유명 연예인)가 되어야지’ 했던 때가 있었어요. (피식 웃으며) 날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나도 허지웅, 곽정은 같은 논객, 셀레브리티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 사람들도 나이를 먹을 테고, 나는 어지간한 20대 고민 다 들어줄 수 있으니 ‘이젠 내 차례다’ 하고는…. 그럴 무렵인데 작년 3월에 어떤 분이 절 찾아온 거예요. 바로 이 장소에서 만났어요. 7살에 성폭행을 당해서 지금 27살인데 20년 동안 남자랑 절대 접촉을 안 했대요. 처음 절 보고 무척 놀라더라고요. 언니라고 해서 여자인 줄 알았나 봐요. 어쨌든 4시간 동안 얘길 나눴는데 마지막에 그러더라고요. ‘괜찮아요. 어차피 학교 선생님도, 정신과 선생님도 해결 못 했는데 언니가 어떻게 다 해결해 주겠어요? 제 인생이니 어차피 제가 해결해야겠죠’ 하고는 돌아서는데, 아,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는 기분이었어요. ‘누구든지 날 찾아와라. 내가 다 해결해 줄게!’ 하는 오만이 내게 있었던 거예요. 고민 상담해주고 ‘감사합니다. 제 인생에 도움이 됐어요’ 하는 댓글만 보면서 우쭐했는데, 댓글 남기지 않고 조용히 사라진 아이들의 마음을 제가 몰랐던 거예요. 그때 진짜 그만두고 싶었어요. 부끄럽고, 울고 싶고. 그래서 블로그에 올린 상담 글들 다 지우고 그만두려고 했어요.”
서울대-삼성 출신 엄친아, 완벽한 실패작
-그런데 어떻게 마음을 돌렸어요?
“‘그래, 다시 취업해서 직장으로 돌아갈란다’ 하고는 하나하나 올린 글들을 지우는데, 그때까지 못 봤던 걸 발견한 거예요.”
-뭐죠?
“제가 쓴 상담글에 ‘좋아요’가 150개 달리고 댓글들이 달렸는데, 대부분 칭송하는 글이죠. ‘언니, 너무 좋아요. 사이다 같아요.’ 근데, 댓글 중에 이런 글이 있었어요. ‘감히 제가 조언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감히 한 말씀 드리고 싶네요’ 고민 상담을 신청한 사람에게 쓴 글인데 그 댓글에 ‘좋아요’가 230개. 내 원글보다 많은 거예요. 그때 깨달았어요. 내가 상담에 엄청나게 재능이 있어서 인기 있었던 게 아니구나. 누구나 발심(發心)을 하면 할 수 있는 일인데 발심이 어려워 못했던 거구나. 이왕 이런 역할을 시작했으니, 젊은 친구들이 서로 조언을 주고받을 수 있는 판을 만들어 보자, 그래서 엔지오단체로 정식 등록을 하고 인원도 늘렸어요.”
유치원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디자이너, 회사원 등 새로 합류한 6명의 ‘언니들’은, 직업도 성향도 다양하다. 이들은 권위있는 전문가나 해결사가 아니라 모두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평범한 ‘동네 언니들’이다. 새 출발한 ‘언니들’의 홈페이지에서는 상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지만, 네이버포스트에 게재되는 사례에 대해선 장재열을 비롯한 여섯 언니들이 각자의 코멘트를 공개적으로 남긴다. 의견은 엇갈리기도 하고, 일치하기도 한다. 언니들의 코멘트 아래 맨 마지막 칸은, 독자의 댓글로 채우고 ‘이번 주의 독자언니’로 글쓴이를 소개한다. 장재열은 서로가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응답해주는 ‘언니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져야 한다고 믿는다.
블로그 보고 다들 여자로 알아
“내 20대는 완벽한 실패작”
서울대서도 상대적 박탈감
대기업 입사해도 의미 없는 일
“죽을 것 같아” 29살에 사표
우울증 치료로 시작한 블로그
세상과 또래들 이해하게 돼
삶의 트랙 바꾸니 맞춤옷 입은듯
헬조선 젊은이들 응원할
더 많은 언니들이 필요하다
-왜 ‘좀 놀아본 오빠’가 아니고 ‘…언니’예요?(웃음)
“제가 원래 여성스러워서 어릴 때 왕따를 많이 당했어요. 애들한테 괴롭힘도 당하고 맞기도 많이 맞았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는데, 제 여성성 때문에 가까이하는 애들이 적었어요. 제가 기를 쓰고 서울대 가고 삼성 간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을 거예요. 여성들이 많은 미대를 지망한 것도 그런 영향이고요. 놀림당하는 게 싫어서.”
-그래서 아예 언니를 자처한 거예요?
“그건 아니고요, 처음에 제가 블로그에 쓴 글을 보면서 다들 저를 여자로 아는 거예요. ‘저는 24살인데 대학 나오고 퇴사하셨다니 저보다 언니이실 것 같아요’ 하면서 상담을 청하고.(웃음) 그래서 그냥 언니로 지내기로 했어요. 여기서는 저의 여성성이 격의 없이 대화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돼요.”
-근데, ‘언니’는 그렇다 치고 ‘좀 놀아본…’은 너무 작위적인 것 아니에요? 별로 안 놀아봤을 것 같은데.
“제가 생긴 게 젠틀해서 그래요.(웃음) 저는 20대에 할 수 있는 경험을 싹 다 해본 것 같아요. 학교 열심히 다니면서 과 학생회장도 하고, 서울대 총장실 점거도 하고, 연애도 굉장히 많이 하고 강남역 한복판에서 울고불고 이별도 해보고, 서울대생은 샌님이란 소리 듣기 싫어서 밤마다 신사동 클럽도 다녀보고.”
-놀 거 다 놀고 공부도 잘한 엄친아?
“근데 아니에요. 제가 29살이 돼서 제 20대를 돌아봤을 때, 나의 20대는 ‘너무 완벽한 실패작’이었어요. 표면적으로는 너무 성공, 나의 자아로서는 너무 실패! 그런데 20대 아이들이 내가 갔던 길을 따르려고 하는 게 보여요. 그걸 막기 위해서 앞으로도 몇 년간은 청년 문제에 집중하고 싶어요.”
인터뷰에 앞서 서울 녹번동 서울혁신파크를 둘러보고 있는 장재열씨와 이진순씨. 강재훈 선임기자
회사 엘리베이터 타고 오르다 자살충동
창원에서 나고 자란 장재열은 성취욕도, 열등감도, 경쟁심도 강한 아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했으나 서울대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삼수를 해서 2006년 미대에 입학했다. 서울대에 가면 묵은 체증이 풀리고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그 안에서도 상대적 박탈감이 심했다. 난다 긴다 하는 미대생 가운데 재능이 특출난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예고 출신도 아니고, 전업작가를 할 만큼 재력이 받쳐주지도 않았다. 여전히 ‘마이너리티’였다. 그래서일까, 어른들이 하던 말이 가슴에 박혔다. “네 주머니에 돈이 차면 된다. 남자의 인생은 그때부터다!”
-그래서 대기업에 지원한 거예요?
“취업 준비를 빨리 해서 고연봉자가 되어야겠다, 그런 목표로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때는 ‘스펙’이란 말도 생기기 전인데,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방송광고공사 교육생 수료증도 받고, 대학생 광고 아카데미도 가고, 대학생 홍보대사, 소비자 모니터요원, 취업정보카페 가서 공고 난 건 다 했어요.”
마침내 삼성 계열사인 제일모직에 수석으로 입사했다. 원래 희망했던 패션마케팅부서로 발령을 받진 못했지만 신입사원으로선 파격적으로 인사채용 담당자가 되었다.
-근데 그 일이 재미가 없었나요?
“재미가 없었다기보다는 의미가 없었어요. 내가 엊그제까지 취업준비생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채용하는 사람 입장이 되니, 지원자들이 설설 기고… 뽕 맞은 것처럼 재미는 있죠. 근데 그 일이 전 싫었어요. 지원자 수가 늘도록 하는 게 채용담당자로선 잘하는 일이잖아요. 채용 인원이 늘지는 않은 상태에서 지원자 수가 는다는 건 탈락자 수가 그만큼 는다는 건데, 그런 일을 하는 게 굉장히 싫었죠.”
합격자 발표 다음날이면 전화통에 불이 났다. 엉엉 울면서 떨어진 이유라도 알려달라고 매달리는 지원자를 보면, 세상에 못할 짓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인재채용 설명회에 나가선 ‘우리나라 최고 패션인재가 되세요’ 하면서도, 속으론 ‘맹목적인 목표의 끝에 행복이 있진 않아요’란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급기야 우울증이 왔고 면접 대상자들 앞에서 눈물을 참기 어렵게 되더니, 하루 16시간씩 잠을 자거나 무단결근을 하는 날이 잦아졌다. 회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다 자살충동을 느끼고 나선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사표를 제출했다. 특별히 용감해서나, 진취적이어서가 아니라, 의미 없는 우등생 인생을 그대로 지속하다간 정말 죽을 것 같아서였다. 그의 나이 29살이었다.
-인사채용 쪽이 적성에 안 맞는다고 해서 직장생활 자체를 접을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요? 원래 꿈꿨던 패션마케팅 쪽으로 다른 회사를 알아보지 그랬어요?
“여기저기 지원했어요. 우울증 치료 받으면서. 근데 잘 안됐죠. 그러다가 블로그를 하게 됐어요.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 상단에 질문을 쓰고 하단에 답변을 써보라는 권고를 받았어요. 근데 종이에 연필로 쓰려니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아무도 안 볼거라 생각하고 개인블로그를 만들어서 혼자서 두 개의 아이디로 묻고 답하고 했지요. 그때까진 제가 컴맹이어서, 따로 홍보를 안 하면 블로그가 검색에 노출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혼자 하니까 조회수가 0 아니면 1이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이게 23, 78로 늘어나는 거예요.”
-누군가 들어와 보기 시작했군요.
“그런 거죠. ‘앗, 이게 뭐야?’ 싶어서 얼른 비공개 전환을 했죠. 근데 어느 날 낯선 사람한테 메일을 받았어요. ‘블로그 닫으셨나요? 이제 상담 안 하시나요? 저도 비슷한 경우인데, 제 것까지만 상담 받아주시면 안 돼요?’ 하고.”
-혼자서 두 개의 아이디로 자문자답하는 걸, 상담해 주는 걸로 오해하고?
“네. 그때 내가 올린 질문이 ‘왜 나는 죽도록 달렸는데 여기로 왔을까? 우울증의 나락으로?’였고 거기 스스로 단 댓글이 ‘너는 열심히 달려왔다. 근데 트랙을 모르고 갈지자로 뛰었으니 땀만 나지. 그래 갖고 너한테 무얼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하는 거였어요. 그런 걸 보신 거죠.”
하나둘 고민을 들고 방문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니, 그의 인생만 불운하고 억울한 것이 아니었다. ‘세상이 다 이랬구나, 우리 또래가 다 이랬구나’ 하는 깨달음이 정수리를 쳤다. 우울한 엄친아 장재열은 청년들의 온라인 상담사 ‘좀 놀아본 언니’가 되었다.
가장 소외된 청년들의 마지막 피난처
-그렇게 삶의 트랙을 바꾸셨군요. 지금은 어떤가요? 행복하세요?
“아니오, 저는 행복이란 말은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예전에는 자랑할 게 많아 행복했는데 지금은 특별히 자랑할 게 없어요. 제 방송 보는 사람 천 명에 한 명도 없고, 셀레브리티 논객이 돼서 여배우랑 열애설 한번 나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래 보지도 못하고… (웃음) 그런데, 엄청 자연스러워요. 옛날엔 사이즈 안 맞는 명품 옷을 입고 있었다면 지금은 동네 양장점에서 몸에 딱 맞는 맞춤옷을 입은 기분예요. 몸도 마음도 모든 게 자연스럽고 편해요.”
-상담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어떤 전문가 못지않은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데, 그간 경험적으로 터득한 ‘상담의 원칙’ 같은 게 있나요?
“하면서 원칙이 하나씩 생겼죠. 첫째는 아이들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답을 원해도 제가 그래요. ‘내가 답 주면 할 거야? 네가 결정해야지.’ 둘째, 중요한 사고의 지점을 보여준다. 셋째,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다는 점을 명심한다. 넷째, 월권하지 않는다. 나는 선생님도, 강연자도 아니고 그냥 언니다. 다섯째, 심리상담은 하지 않는다. 심리상담이 필요하면 병원으로 보낸다.”
-다른 건 알아듣겠는데, ‘둘째, 중요한 사고의 지점을 보여 준다’는 게 뭐예요?
“같은 고민처럼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민의 지점들이 다 달라요. 공무원 준비생들이 ‘저, 1점 차로 떨어졌는데 1년만 더 할까요 말까요?’ 이런 걸 물어요. 그럼 제가 그러죠. ‘그 1점 사이에 2천명 있다는 거 나도 다 안다’고. ‘너는 1점과 2천명이라는 두 가지 팩트를 다 가지고 있으면서 1점 차이만 얘기하니? 결정은 너한테 달렸고, 두 가지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둘 건지 네가 결정하라’고요. ‘1점 차로 떨어졌으니 1년만 더 할래요’ 하든가 ‘2000명 앞서갈 자신 없으니 그만둘래요’ 하든가….”
-사실 상담을 해준다면서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덮어둔 채, 처세술, 대인관계, 마인드컨트롤 같은 걸로 풀도록 조언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면에서 ‘좀 놀아본 언니들’은 달라 보여요. 자매간에 트러블이 잦은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좁은 방에서 같이 기거해야 하는 청년주거의 문제가 있다는 걸 지적한다든가 하는 점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비난도 많이 받았어요. ‘상담이란 게, 사회구조에 순응하게 하면서 고통을 무마하는 마취제 아니냐?’고요. 아무도 우리를 청년활동가로 봐주지 않아요. 파워블로거나 연예인 같은 존재로 보지. ‘너희들 그렇게 팬 많으면 세월호 집회에 3천명 데리고 와, 그렇게 못하니?’ 하면서요. 근데, 지금 취업 걱정, 연애 고민 하는 친구들한테 집회 가자고 하면 가겠어요? 먹고사는 데 급급해서 그 어떤 횡적인 유대도 가지기 어려운 아이들,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아이들이 그나마 제일 부담 없이 다가올 수 있는 곳, 돈도 시간도 없는데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피난처 같은 곳이 저희 상담소예요. 요즘 저희의 제일 큰 화두는 ‘그들의 일상적 고민을 어떻게 작은 행동으로라도 이어지게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는 최근 ‘청년들의 일상적 고민을 행동으로 풀어내는’ 본보기로, 청년활동가와 사회적 기업가 6개 팀을 선정해 ‘좀 놀아본 언니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청년대중과 활동가들 사이의 정서적 간극을 메우는 다리 구실을 하려는 것이었다.
이번 달엔 아주 작은 실천계획이라도 뭔가 해보겠다는 청년들을 공개모집해서 크라우드펀딩으로 모금한 돈을 활동지원금으로 전달하는 행사를 열었다. 열대어도감을 만들고 싶었지만 ‘돈 안 되는 짓’이란 타박에 엄두를 못 내던 청년 한 사람도 이 프로젝트로 격려금 50만원을 받았다. 돈도 돈이지만, ‘잘 되가요?’ ‘다 되면 꼭 보여줘요!’ 같은 동료 청년들의 댓글이 그를 용기 내게 할 것이다.
“요즘 청년들은 자기 브레이크가 강합니다. 얇은 빙판 위에서 삐끗했다간 곧바로 익사한다는 두려움에 발을 못 떼죠. 그런 아이들의 첫 발걸음이 그 인생에 얼마나 큰 변화를 몰고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제발 한 발만 떼어봐! 그렇게 응원하는 거죠.”
‘위험해, 멈춰 서!’ 하는 소리에 꼼짝달싹하지 못해온 헬조선의 젊은이들, 그들에게 ‘익사하지 않을 수 있는 안전판’을 제공하고 ‘용기있는 한걸음’을 응원할 더 많은 언니들이 필요하다.
녹취 김성희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