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동교로의 현암사에서 창업자인 할아버지 조상원(왼쪽)씨와 2대 대표 아버지 조근태씨의 초상화와 나란히 앉은 조미현 대표.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올해로 창사(1945) 71년. 해방 이전 등장했던 출판사들이 거의 사라졌거나 유명무실해진 한국 출판 역사에서 현암사는 그 연륜만으로도 존재감을 지닌 장수 출판사다. 창립자 현암(玄岩) 조상원(1913~2000)의 호를 딴 이 오랜 출판사는 창립자가 직접 편집한 한국 최초의 법령집이자 책 제목을 새 표준어로 등재시킨 <법전> 덕을 크게 봤다. 초판부터 출판 즉시 동이나 웃돈을 얹어 거래될 만큼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는 책이다.
하지만 “지금 법전(<법전> 외에 <소법전> <변호사시험 법전> <법률용어사전> 등을 포함한 8종 이상 법률 관련 책의 총칭)의 매출 비중은 20~25% 정도밖에 안 된다”고 조미현(46) 대표는 말했다. 그는 현암의 손녀로, 부친인 2대 조근태 전 회장의 뒤를 이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내가 입사한 1998년 무렵부터 법전 비중이 떨어지기 시작해 매년 평균 10%씩 매출이 줄고 있다. 인터넷 이용이 본격화된 시기와 일치한다. 영어·국어 (종이)사전보다는 (감소 속도가) 좀 느리긴 하지만 법전도 결국 사전이다.”
조 대표는 “예전엔 매년 초 법전 개정판을 내면 1년을 거뜬히 살았지만, 지금 연간 매출(40억~45억원)의 20%는 어린이책(올해 ‘현암주니어’로 재편), 절반 이상은 단행본 차지”라고 했다. 지금까지 2500여종을 출간한 현암사의 요즘 연간 출간 종수는 60여종. 그중 20여종이 어린이책이고 나머지 대다수는 인문교양 분야 단행본이다.
현암사를 빛낸 단행본으로, 조 대표는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8),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 <김약국의 딸들>(1967), 안동림이 쓴 <이 한 장의 명반>, 전우익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등을 먼저 떠올렸다. 1984년, 현암사에서 전 10권을 완간한 황석영의 <장길산>은 350만부가 팔렸다. 한때 매년 2만부 이상 나갔지만 지금은 5천부도 채 되지 않는다는 법전들은 그래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 오강남의 <장자> <도덕경>을 비롯한 ‘현암 고전’들도 스테디셀러다.
1998년 영업부 말단직원으로 입사한 조 대표는 2002년 미국에서 출판학 석사과정을 밟고 2005년 귀국해 상무를 거친 뒤 2009년 대표가 됐다. 2011년엔 아현동 사무실을 정리하고 서교동에 4층 빌딩을 지어 옮겼다. 대표 취임 후에 낸 최완수의 <겸재 정선>(총 3권), 근 40년 만에 재간된 최완수 번역 <추사집>, 올해 작가 100주기에 맞춰 지난달까지 14권으로 완간한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이 그의 ‘출판전략’과 연관이 있을까.
“그동안 현암사란 이름의 무게에 눌린 감이 있다. 현암사 책은 어렵다는 얘기들을 들었다. 좀 더 젊은층에 다가갈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문화나 야생화·생태 분야 책들을 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면서 인문교양 쪽이 상대적으로 좀 약화됐다. 균형감각이 필요한 것 같다.” ‘인문교양을 기본으로 하되 너무 무겁지 않은 쪽으로.’ 여기에 문학이 추가된다.
“문학을 조금씩 늘려가려 했더니, 직원들이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권했다. 이미 너무 많이 나온 것이라 처음엔 반대했는데, 결과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번역도 좋았고, 표지 등 책 디자인이 호평을 받았다.” 후속작도 외국소설 쪽으로 잡고 있다. 현암주니어도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밀고 갈 생각이다.
‘3대째 가업’ 현암 조상원의 손녀
인문교양 바탕 어린이·문학 비중 늘려
어릴 적 독서훈련 강조 ‘종이책 전도사’
대표 생활 8년째, “막상 해보니 힘들다”고 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출판에 대한 생각도 잘 정리돼 있었다.
“종이책은 전자책이나 디지털 문서가 줄 수 없는 장점이 있다. 부피가 크다는 약점만 빼면 거의 모든 면에서 전자책보다 우월하다. 책을 만져보고 펼쳐서 목차 보고 후기까지 읽어가면서 손의 촉각과 시각으로 감지하는 그 특별한 느낌, 정서를 전자책으로는 얻을 수 없다. 저장능력도 안전성에서 디지털보다 낫다. 디지털화, 전자책은 종이책과 함께 가야 하고 또 갈 수밖에 없다.”
조 대표는 “주요국들이 출판 디지털화를 서두르지 않는 것이 우리보다 아이티(IT)를 몰라서겠느냐”며 “독서는 어릴 때 시작해 20~30년 꾸준히 축적돼야 결과가 나타나는데, 그러려면 종이책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자책도 종이책 읽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사서 읽는다. 아이폰 등을 만든 스티브 잡스도 굉장한 독서가였다.”
최근 도서관은 늘고 있지만, 접근성이나 보유 장서, 훈련된 사서 확보 등에서 내실이 없고 이를 위한 예산 증액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며 정부 정책도 지적했다. 도서정가제 신봉자인 그는 공급률 문제와 관련해, “정가의 10% 이상 책값을 깎아 판 적 없고, 서점에 보내는 도서 공급률도 온·오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자의적으로 낮춘 적이 없다”고 했다.
선대부터 회사의 경영 신조인 ‘신의·성실’의 위력을 대표가 된 뒤 절감했다는 조 대표는, 자신이 어려움에 처할 뻔했던 순간을 넘기게 해준 어느 거래처 대표의 말을 늘 기억한다. “현암사는 한 번도 거래처와의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거래처는 하청업체가 아니고 동업자요 동료다. 직원들은 제일 먼저 챙겨야 하는 존재다. 할아버지는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직원들 급여는 제때 줬다. 그들 때문에라도 현암사는 잘돼야 한다. 그리고 현암사 70년은 독자들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더불어 삶, 더불어 책”이 조 대표의 모토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봉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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