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수수께끼투성이 된장잠자리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8. 24. 21:30

사회환경

수수께끼투성이 된장잠자리

등록 :2016-08-24 10:49수정 :2016-08-24 10:55

 

자연 관찰 일기
1000m 고도로 최대 1만8000㎞까지
세대 이어 대륙에서 대륙으로

쉭~쉭~, 순식간에 상하좌우로
관성법칙 무시하듯 자유자재

우리나라 전역 4월 하순께 나타나
10월까지 4세대 알 낳고 살지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니면 겨울 나는지 아무도 몰라
여름철 가장 흔한 잠자리는 이름마저 구수한 된장잠자리다. 머리가 크고 몸이 전체적으로 누런 된장 색이어서 얼른 눈에 띄지는 않지만 소박한 무늬와 질리지 않는 색깔을 지녔다.

된장잠자리는 어린 시절 잠자리채로 휘두르며 쫓는 목표 1순위였다. 무리를 지어 날아 손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동작이 빠르고 민첩해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주로 앉아 있는 고추좀잠자리 등 다른 잠자리와 달리 된장잠자리는 온종일 하늘을 열심히 날아다닌다. 어쩌다 나무나 풀에 앉더라도 아주 조심스럽고 꼬리는 아래로, 머리는 위로 향해 매달린 자세를 취하는 것도 독특하다.

날아다니는 된장잠자리를 7월3일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송촌리에서 촬영했다. 속도가 빠르고 방향 전환이 갑작스러워 비행 모습을 찍기는 쉽지 않았다. 마치 공중 부양을 하거나 글라이더를 날린 것처럼 매끄럽고 손쉽게 공중에 떠 있다. 그러다가 순간적인 역회전이나 갑자기 높게 솟구치는 등 관성의 법칙을 무시하는 듯한 다양한 비행술을 자유자재로 선보인다.

자세히 보니 4장의 날개를 제각각 조종해 이런 정교한 비행을 하고 있었다. 뒷날개의 밑부분이 다른 잠자리에 견줘 크게 확장된 모습도 특이하다. 가슴 속에 공기를 보관하는 기관이 넓은 것과 함께 이런 넓은 뒷날개 덕분에 된장잠자리는 지구 최고의 장거리 이동 곤충이 됐다.

된장잠자리는 수천㎞ 떨어진 대양을 건너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도에선 인도양을 건너 동아프리카에 건너갔다 돌아오는 최고 1만8000㎞에 이르는 대장정을 해마다 한다. 세대를 바꾸면서 여행을 완성하는 것이 그 비결이다. 태풍 등 열대기류의 변화를 감지한 수백만 마리의 된장잠자리는 1000m 이상의 고도에서 바람을 타고 바다를 건넌다. 중간에 공중 플랑크톤이나 소형 곤충을 포식한다. 그러다 섬에 빗물로 생긴 웅덩이가 보이면 내려가 번식한다. 알과 애벌레는 한두 달이면 성체가 돼 이동 대열에 합류한다.

열대지방이 주된 서식지인 된장잠자리가 어떻게 우리나라까지 오는지는 아직 미스터리다. 4월 하순께 처음 나타난 된장잠자리는 번식을 거듭해 8월께 많은 수가 우리나라 전역을 뒤덮는다. 10월까지 4세대가 알을 낳지만 이들이 겨울을 나는지 아니면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새로운 된장잠자리들이 기류를 타고 날아오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아시아, 아메리카, 인도의 된장잠자리는 대륙은 달라도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 3월2일치 과학저널 <플로스 원>에 실렸다. 대니얼 트로스트 미국 럿거스대 생물학자 등 국제연구진은 한국, 일본, 인도, 미국, 캐나다, 남아메리카 가이아나 등에서 채집한 된장잠자리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대양을 넘어 서로 교배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했다. 된장잠자리는 ‘지구 종’인 셈이다. 한여름 흔한 된장잠자리에는 엄청난 자연사의 비밀이 숨어 있다.

글·사진 윤순영/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