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 살베리 교수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교문화재단 제공
“전세계적인 교육개혁의 흐름이 학습의 결과나 개인의 성과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핀란드의 교육개혁 사례를 보면, 시스템적인 평등이 이뤄질 때 개인의 성과도 좋아집니다.”
핀란드의 저명한 교육행정가이자 교육학자인 파시 살베리(67·사진) 핀란드 헬싱키대 교수는 18일 “교육 불평등은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그 원인이 학생 개인의 수월성을 추구하는 교육제도에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살베리 교수는 핀란드 교육부에서 20년 이상 일한 교육관료 출신으로,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교육정책 고문을 지냈다. 핀란드는 수준별 반 편성이나 사립학교, 특목고 등의 수월성 교육 시스템 없이, 영재부터 학습부진아까지 모두 한 학교, 한 교실에서 가르치는 평등성을 추구하는 교육 시스템으로도 세계 최상위의 학업 성취도를 보여주는 교육 강국이다. 미국의 마이클 무어 감독이 미국이 지향해야 할 교육제도의 모델로 핀란드를 소개한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에도 출연했다. 이날 대교문화재단이 개최한 ‘2016 글로벌 교육포럼’ 기조연사로 나선 그를 서울 관악구 대교타워에서 만났다.
살베리 교수는 “핀란드 교육에 대한 신화와 오해들이 있다”며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에서 “핀란드에는 숙제가 없다”고 소개된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사실 핀란드 학생들도 숙제를 많이 한다”며 “숙제를 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숙제를 모두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개혁이 성공하려면 ‘평등’이라는 키워드를 놓쳐선 안 된다고 강조하며 반면교사로 스웨덴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가장 평등한 교육 시스템을 갖고 있던 스웨덴이 학생 개인의 성과를 강조하는 교육제도로 변화한 뒤 오히려 개인의 성과가 후퇴했다”고 말했다. 실제 스웨덴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피사) 성적은 수학(2000년 16위→2012년 38위)과 읽기(10위→36위) 영역 등에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1990년대부터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사립학교를 크게 늘린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된 ‘알파고 시대’에 대비하는 학교 교육에 대해 그는 “학교에서만큼은 학생들이 최대한 기술을 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며 “학생들의 정보 이해·처리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읽기 능력, 공감 능력을 더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살베리 교수는 “보통의 청소년이 하루에 휴대폰 등의 미디어를 사용하는 시간이 9시간에 이른다. 핀란드에서도 15살 남학생이 공원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청소년들의 뇌 구조가 변화해 정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능력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그는 제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다며 국가교육과정에 코딩교육이나 소프트웨어교육과 같은 디지털 관련 교과목을 도입해 모든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방식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살베리 교수는 “무슨 기술이 새로 나올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며 “학교는 아이들이 ‘잠시만요, 페북 좀 확인할게요’ 하지 않고 교사와 50분 동안 눈을 마주치고 대화할 수 있도록 인문교육과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살베리 교수는 “대다수 국가의 교육제도가 학생들이 잠재력과 꿈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실패하면서, 상당한 인력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며 천연자원의 고갈 위기만큼 심각한 것이 ‘인력 자원의 위기’(HR crisis)라고 지적했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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