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AFP 연합뉴스
이런 연구 저런 발견
블랙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여 빛조차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블랙홀은 늘 ‘완벽히 검은 구멍’이었다. 이런 생각을 바꾼 건 40년 전 30대 청년이던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었다. 1970년대 호킹은 잘 어울리지 못하던 두 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함께 구사해 블랙홀에서도 미량의 에너지가 새어나온다는, 당시로선 대담한 ‘블랙홀 복사(radiation)’ 이론을 발표했다.
블랙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던져준 호킹의 이론 혁신은 학계와 대중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호킹 복사’ 현상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우주 저 먼 블랙홀의 가장자리에서 일어날 희미한 빛인 ‘호킹 복사’를 관측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호킹 이론은 혁신적이었지만 40여년 동안 입증하긴 어려웠다.
호킹의 이론이 마침내 실험실에서 입증될 수 있을까? 최근 제프 슈타인하우어라는 이스라엘 물리학자가 실험실에서 호킹의 블랙홀을 흉내낸 실험장치를 만들고 거기에서 호킹이 예측한 ‘블랙홀 복사’ 현상을 관측해냈다는 연구논문을 <네이처 피직스>에 발표했다. 많은 매체들이 큰 관심을 나타냈다. 힉스 이론이 그 입자의 발견으로 49년 만에 노벨상을 수상했듯이, 호킹 이론이 마침내 입증돼 노벨상을 받을 날이 올지 모른다는 기대마저 나왔다.
대체 어떤 실험이었을까? 슈타인하우어는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주 블랙홀 대신에 소리가 빠져나오지 못하는 극저온의 특별한 물질 상태(‘보즈-아인슈타인 상태’)에 있는 음향 블랙홀을 구현했다. 그는 아무런 잡음신호도 생길 수 없을 만한, 절대온도 0도(영하 273.15도)에 가까운 극저온 물질 상태를 만들었다. 또 소리의 전파 속도보다 더 빠르게 반대쪽으로 흐르는 매질의 운동을 구현했다. 비유하면, 폭포 쪽으로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가려는 배가 빠른 물살 탓에 폭포 쪽으로 밀려만 가는 상황을 모사한 것이다. 1981년 캐나다 물리학자가 제안한 구상이었는데, 이번에 음향 블랙홀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스라엘 물리학자는 호킹의 블랙홀 이론에서 예측되는 양자현상을 보여줄 만한 미세한 신호를 음향 블랙홀 장치에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기대와 흥분은 크지만 아직 ‘호킹 이론의 입증’을 선언하기에 갈 길은 멀다. 실험실의 음향 블랙홀과 호킹의 우주 블랙홀을 동일하게 여길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는 시선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박성찬 연세대 교수(물리학)는 “실험장치가 배경 잡음을 완벽히 없앨 수 있었는지 등을 더 따져봐야 한다”며 “모든 것이 확인되더라도 음향 블랙홀을 통해 우주 블랙홀을 말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검증할 수 없었던 호킹 이론에 접근하는 실험 자체가 흥미롭고, 또 앞으로 여러 후속 연구들이 나오리라 기대된다”고 말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