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갤럭시 노트7’은 우연히 터진 게 아니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 화재사고는 배터리 때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적어도 미국 공항에서 불탄 이후 상황으로 보면 직접 원인은 배터리가 아닐 가능성이 짙어졌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사고 밑바탕에는 역시 ‘배터리 문제’가 깔려 있다. 게다가 그간 삼성전자의 전략과 기술적 한계가 함축돼 있다. 이런 역설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번 사태의 본질 파악을 그르치게 된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야심작 ‘갤럭시 노트7’은 뭐든 최고였다. 최고 해상도, 최대 배터리에 홍채인식까지 넣었다. 날개돋친 듯 팔렸다. 오는 2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등기이사 재등재라는 ‘미니 대관식’에 카페트를 갤럭시 노트7이 수놓고도 남을 성싶었다. 그러나 갤럭시 노트7은 터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꼴이다. 휴대폰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사건의 단초는 바로 배터리다.
이는 단지 삼성이 9월 2일 1차 조사 때 밝힌 삼성SDI 배터리 문제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삼성SDI는 ‘억울한 누명’을 썼을 수도 있다. 단언컨대 갤럭시 노트7 화재 결함은 ‘삼성전자’의 기술력에서 촉발됐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한 배터리 전문가는 “더 좁혀 얘기하자면 삼성 갤럭시 시리즈 스마트폰의 배터리 수명 약점이 근원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고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개발 이력을 통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몸체는 얇야지고 배터리는 커져 불안정
삼성전자는 갤럭시 노트5부터 큰 변화를 줬다. 기존 갤럭시S5까지 채택해온, 배터리를 교체해서 쓰는 착탈식 대신 애플 아이폰처럼 내장형(일체형) 배터리로 바꾼 것이다. 단점은 역시 배터리 수명이다. 내장형은 대기 중이나 쓸 때 배터리 소모를 최소화하는 기술이 요구된다. 여분 배터리로 바꿔 끼울 수 없어서다.
미국의 대표적 소비자 잡지인 ‘컨슈머리포트’는 2015년 5월 이렇게 평했다. “갤럭시S6는 놀랍게도 전작인 갤럭시S5만큼 점수는 얻지 못했다.” 주요 이유로 전작에 있던 착탈식 배터리 등을 없앤 것을 꼽았다. “아이폰스러움이 저평가의 원인”이라고도 했다. 갤럭시S6 이용자도 배터리가 약하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세간에 ‘이재용폰’으로 일컬어진 갤럭시S6는 판매 저조로 체면을 구겼다. 수장인 IM부문 무선사업부장까지 고동진 사장으로 바뀌었다.
갤럭시S5 배터리 용량은 2800mAh였으나 S6는 2550mAh로 줄었고 심지어 S4(2600mAh)보다 작았다. 다급한 삼성은 갤럭시S7에서 배터리 용량 늘리기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3000mAh까지 끌어올렸다. 여기에 S7에는 방수·방진 기능까지 강화했다. 이어 몸체가 더 큰 갤럭시 노트7에서 배터리는 3500mAh까지 커졌다. 몸체 두께는 더 얇아졌다. 커진 배터리가 더 좁은 공간에 숨도 못 쉴 만큼 꽉 들어찬 형국이다.
삼성전자가 애플 아이폰과 기술 경쟁을 높이고 후발 중국 화웨이 등을 견제하기 위해 차별화된 전략으로 사용시간을 늘리려고 큰 배터리를 억지로 집어넣은 격이다. 또 아이폰이 선보이지 못한 방수·방진 기능을 앞세우다 보니 내장형 배터리로 바꾸면서 무리수를 뒀다. “방수·방진 기능을 위해 발열을 밖으로 적절히 빼내지도 못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홍채인식 같은 고용량 애플리케이션까지 적용했다. 일각에서는 갤럭시S7에 비해서도 갤럭시 노트7은 내부 구동칩인 모바일 AP와 배터리 사이 간격이 더 가깝게 붙어 있어 화근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해 임계점을 넘은 결과가 화재·폭발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휴대폰부터 노트북, 전기자동차에까지 흔히 쓰이는 방식이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이용자는 간혹 뜨거워지는 경험들을 하는 수준 같지만 리튬이온 배터리는 상당히 불안정한 물질이다. 약 100도 정도 열만 가해져도 불꽃이 붙는다”고 말했다.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는 “양극에는 리튬코발트 산화물이 쓰이는데, 리튬이 빠져나가면 코발트가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건축물에 기둥(리튬)이 빠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충전과 방전의 원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 분리막이라는 게 있다. 양·음극 사이는 리튬이온과 전자가 옮겨다닌다. 충전 때는 양극에서 음극으로 리튬이온이 움직이고, 방전 때는 반대다. 분리막에는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어 이온, 전자가 이동케 한다. 도칠훈 한국전기연구원 전지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분리막 표면의 50%는 사실 구멍이 나 있다고 보면 된다”며 “더 작은 크기에 더 많은 전기량을 넣다 보니 분리막도 얇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극 두께가 200㎛ 경우 10여년 전에는 분리막이 20㎛ 이상이었으나 근래 10㎛에 이어 7㎛까지 작아졌다. 열이 나고 부풀어오를 때 분리막이 눌리면 위험하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특성상 충전하거나 사용(방전) 중 배터리가 부푸는 ‘스웰링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갤럭시S3 등도 2013년 이래 이런 현상이 나타났으나 당시는 착탈식이어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재필 교수는 “구형 니켈 카드뮴 건전지의 경우도 내부에 살짝 빈 공간을 두고 설계를 한다. 화학반응으로 팽창할 경우에 대비해 여유를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용 전력 효율성은 설계 능력의 차이?
분리막 자체에 문제가 있거나, 절연체가 잘못돼도 양·음극이 만나 화재가 난다. 도칠훈 박사는 “리튬이온이 움직이는 속도도 중요한데, 급속충전으로 빨리 움직이면 열이 더 많이 발생해서 뜨거워진다”며 “이 속도가 과도하면 분리막에 손상이 와서 합선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 안전한 대체물질로 배터리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선양국 교수는 “현재로서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만한 물질이 없다”고 밝혔다. 리튬 고갈론까지 나오지만 적어도 같은 양의 에너지를 얻을 만한 물질은 아직 없다. 선 교수는 “예컨대 니켈 카드뮴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10분의 1 적은 에너지를 낸다”고 설명했다. 한 국책연구원 박사는 “에너지 밀도가 높은 리튬이온 배터리 용량을 늘려 불안정 상태가 커졌는데, 이를 제어할 삼성의 기술은 따라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내 조사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올해 상반기 진행한 ‘이동통신 기획조사’를 보자. 휴대폰 배터리 사용시간에 대한 만족도 질문에 삼성 소비자의 31.7%는 불만족스러운 편이라고 했고, 12.5%는 매우 불만족이라고 답했다. 반면 애플 소비자는 불만족스러운 편이라는 답이 22.7%, 매우 불만족은 5.9%였다. 만족하는 편이라는 답은 삼성의 경우 19.7%, 애플은 31.9%를 차지했다.
영국의 정보기술(IT) 평가 전문잡지 ‘트러스티드 리뷰’가 올해 7월 전한 주요 7개 모델별 배터리 성능시험 결과는 상징적이다. 삼성전자 독일법인이 올린 유뷰트 영상을 보면 갤럭시S7은 동시에 주어진 작업 도중 10시간59분11초 만에 전원이 꺼져 최장시간을 기록했다고 나온다. 갤럭시S7 엣지도 10시간30분14초로 2위였다. 3위 아이폰6S는 8시간13분57초 만에 꺼졌다고 삼성 측은 보여줬다.
삼성의 실험을 전하면서 트러스티드 리뷰는 중요한 사실을 지적했다. 배터리 용량 문제다. 갤럭시S7은 3000mAh, 갤럭시S7 엣지는 3600mAh인 데 비해 아이폰6S는 1715mAh에 불과하다. 덧붙여 <주간경향>이 용량 기준으로 따져 보니, 갤럭시S7(3만9551초)은 배터리 1mAh당 13.18초가 지속된 셈이다. 아이폰6S는 17.28초로, 배터리 효율이 31% 높게 계산됐다. 매체는 “이는 놀랄 일이 아니다. 아이폰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최적화 덕분에 항상 배터리 크기에 비해 잘 작동해 왔다”고 밝혔다. 또 “아이폰이 해상도가 가장 낮은 화면을 가진 것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아이폰은 배터리나 화면 패널, 반도체 등 주요 부품은 삼성과 같거나 비슷한 걸 쓴다. 비결은 역시 소프트웨어 기술력이다. 최소 전력을 써서 작동케 하는 건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등 스마트폰 설계능력 차이로밖에 설명되기 어렵다.
‘최대 지속시간, 최고 화면 픽셀….’ 하드웨어 사양(스펙)을 끌어올리는 식부터 접근하는 삼성의 태도는 ‘아이폰발 스마트폰 쓰나미’가 밀어닥친 2009년 가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많이 팔아서 최대 스마트폰 업체가 되기는 했으나 수익성에서는 애플에 아직도 크게 밀린다. 올해 2분기 애플의 모바일부문 마진율은 38%이다. 삼성은 17%다. 세계 스마트폰 영업이익의 75%는 애플이 차지하고 삼성은 31%를 가져갔다. 마케팅비 외에도 삼성은 부품에 비용을 더 지불해 왔다. IT업체 한 임원은 “삼성이 너무 급하게 배터리 용량을 늘려 왔다. 내장형으로 바꾸면서 무리수가 됐다. 애플, 소니 등이 배터리 용량 증대에 보수적인 이유는 안전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용 체제의 과제와 정부의 뒷북 대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삼성은 자사 기술력에 대한 근본 질문에 맞닥뜨렸다. 삼성에 부족한 건 단지 독자적 운영체제를 확립하지 못한 데만 있지 않다. 배터리 동작시간, 카메라 해상도 높이기는 단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최적화에 달렸다는 점은 누구보다 삼성이 잘 알 것이다. 구형 갤럭시폰의 경우 방전이 애플보다 잘 되거나, 충전 때도 시간이 더 걸린다는 지적이 있었다. 충전시간을 줄이려고 리튬이온 양, 속도를 늘리는 무리수를 뒀을 개연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배터리 문제일 수도 있으나 전류량을 조절하는 갤럭시 자체의 전자회로나 소프트웨어 결함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세간에서는 이번 사건을 놓고 “삼성전자의 총체적 문제가 드러난 위기상황”이라고들 한다. 다른 IT업체 관계자는 “배터리 같이 부분별로 조각 내서 보면 원인을 못 찾을 수 있다. 삼성 전체를 놓고 봐야 할 것”이라며 “정확한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게 진짜 위기”라고 지적했다. 고동진 무선사업부장은 11일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끝까지 밝혀내 품질에 대한 자존심과 신뢰를 되찾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태도를 놓고도 말들이 많다. 국가기술표준원이 갤럭시 노트7의 문제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안심하고 써도 될지 규명할 책임이 있는 기술표준원이 삼성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녔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월 26일 국정감사에서 “기술표준원은 삼성전자가 하는 대로 뒤쫓아가는 것일 뿐, 삼성 입맛에 다 맞춰서 기다렸다가 후속조치만 취한다”고 비판했다. 기술표준원 측은 “자발적 리콜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가 행정처분 형태로 하는 강제적 리콜보다는 기업이 스스로 주도하는 자발적 리콜이 바람직하다”고 해명했다.
<삼성전자 ‘오욕의 역사’ 재도약 발판 될까>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수원 ‘삼성디지털시티’에 가면 이례적인 곳이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의 자랑뿐만 아니라 오점으로 남은 제품들도 전시해 놓았다. 대표적인 게 1995년 불태운 무선전화기다. 이번에 세계적으로 체면을 구긴 갤럭시 노트7도 한 자리를 예약할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의 품질경영 초기에도 시련이 있었다. 1993년 6월 규격이 맞지 않아 세탁기 뚜껑이 잘 닫히지 않는데도 생산라인 직원들이 접촉면을 깎아내는 수작업을 했다. 이를 안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임원들을 불렀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한 ‘신경영 선언’이 나온 배경이다. 이듬해 삼성 애니콜 초기 무선전화기도 불량 투성이였다. 삼성은 1995년 1월 불량제품 15만대(약 500억원어치)를 수거해 구미사업장에 쌓아놓고 해머와 불도저로 망가뜨리고 화형식을 했다.
사실 삼성디지털시티에 전시됐어야 할 뼈아픈 사고가 하나 더 있다. 2009년 10월 10일 경기도 용인의 주택에서 지펠냉장고가 터졌다. 폭발 파편이 다용도실 유리문과 창문을 깨고 1층까지 떨어져 차량들이 파손됐다. 당시 주목받지 못한 채 “냉장고도 터지냐”는 정도의 특이한 사건으로 치부됐다. <경향신문>이 지펠냉장고 폭발사건이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벌어졌다는 점을 보도하면서 폭발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이 부각됐다. 마침 삼성전자 창립기념일(11월 1일)을 앞둔 때였다. 이 회장이 나서서 세계 21만대에 대한 대대적 리콜을 지시하며 수습에 나섰다. 가전업계 최대 리콜이다.
히터 연결단자의 누전으로 폭발성 높은 냉매에 불꽃이 튄 때문으로 결론내렸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외관이나 편리한 기능에 집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기본 기술을 게을리한 결과다. 이번 갤럭시 노트7 화재사건과 본질적으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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