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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구 못 찾는 한국경제]안보는 야당 탓, 경제는 노동자 탓…“진짜 위기는 정부 불신”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0. 17. 23:06

[돌파구 못 찾는 한국경제]안보는 야당 탓, 경제는 노동자 탓…“진짜 위기는 정부 불신”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입력 : 2016.10.16 22:49:00 수정 : 2016.10.16 23:21:57

ㆍ박근혜 대통령 친·인척 기업 원샷법 1호 선정 ‘특혜’
ㆍ미르·K스포츠재단 등 권력 사유화에 갈수록 ‘불만’
ㆍ국가 ‘정책 투명도’도 필리핀·중국보다 뒤처진 43위

[돌파구 못 찾는 한국경제]안보는 야당 탓, 경제는 노동자 탓…“진짜 위기는 정부 불신”

“성과 ‘퇴출제’를 폐지하라.”

1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경의선 수색역 외벽에 철도노조가 걸어놓은 플래카드에 쓰여 있는 구호다. 정부가 쓴 ‘성과연봉제’를 노동자들은 ‘성과퇴출제’로 읽고 있다. 왜 이런 구호가 등장했을까. 철도노조 관계자는 “쉬운 해고 등을 추진해온 정부 정책으로 볼 때 성과연봉제는 노동자를 해고하는 수단으로 쓰일 것이 자명하다”며 “노동자를 위해 일한 적이 없는 정부를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노조 등은) 우리가 하는 것은 뭐든지 반대하니 답답하다”고 하지만 노조는 “언제나 대기업 편만 드는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맞선다.

한국 경제가 위기 국면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신뢰의 부재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으면 정책에 힘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은 경제가 한 단계 성숙하는 과정에서 필수요소로 통한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는 “사회적 자본이 잘 축적된 사회는 쉽게 정책결정 동의를 받거나 집행을 할 수 있다”며 “한국의 사회적 자본은 1980년대 이후 꾸준히 감소해왔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 하락의 직접 원인으로 권력과 정책의 ‘사유화’를 꼽는 의견이 많다.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경제수석 당시 박근혜 대통령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가 관여한 의혹이 이는 미르·K스포츠 재단의 기부금 모금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활성화’ 법이라는 명분으로 통과시킨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의 승인 1호 기업 3개 중 2개가 박 대통령의 친·인척 기업이다.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부하직원 취직을 위해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권력기관과 기득권에 약한 법 집행도 국민 불신을 자초했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공천개입 혐의를 받은 최경환 전 부총리와 윤상현 의원 등 ‘친박 실세’는 무죄를 받았다. 이재현 CJ 회장 등 대기업 총수는 8·15특사로 사면됐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핀란드의 경우 과속을 하면 재산에 비례해 벌금을 매기는 등 사회지도층과 고소득층에 더 큰 책임을 물린다”며 “지위고하를 막론한 엄정한 법 집행은 국민들이 공권력을 믿고 따르는 유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숫자로 나타난 정부 신뢰지수의 하락은 심각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경쟁력평가 세부순위를 보면 올해 한국의 정책투명도는 43위로 싱가포르(3위)는 물론 인도네시아(19위), 필리핀(39위), 중국(41위)보다도 못하다. 정부 정책의 적절성도 47위에 불과해 필리핀(33위), 몽골(44위)에도 뒤진다. 정부는 안보위기는 야당 때문이고, 경제위기는 노동자들의 파업 때문이라며 ‘남 탓’을 하고 있지만 정작 불신과 무능의 원천으로 지목받고 있는 것은 정부인 셈이다.

국민과의 소통과 동의 없는 정책 추진이 “국가가 나를 보호해준다”는 믿음을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많다. 원자력발전소 증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등에서 빚어진 주민과의 충돌은 국책사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낳게 했다.

정부 불신이 경제성장을 해치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믿음을 얻지 못한 정부는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고, 이 때문에 정책이 집행될 때쯤이면 타이밍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 의료법 개정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주요 경제활성화법이 수년째 국회에서 표류 중인 것은 정부의 대국민 설득이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기의 장기침체와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수출입국’이라는 전통적 성장 방식이 한계에 달한 지금이야말로 국민의 신뢰와 동의하에 구조조정과 경제혁신을 추진해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사회적 자본과 경제성장 간의 함수관계는 최근 경제학자들이 주목하는 주제다. OECD 자료를 보면 스위스(77%), 룩셈부르크(68%), 노르웨이(65%) 등의 정부 신뢰도는 OECD 평균(43%)보다 높다. 모두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달러가 넘는 나라들이다. 반면 유럽에서도 빈국으로 꼽히는 슬로베니아(19%), 포르투갈(23%), 폴란드(23%)는 정부 신뢰도가 낮다.

박진 교수는 “정부 신뢰 등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지 않고서는 다음 단계로의 성장이 힘들어진다”며 “권력기구 개혁과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엄정한 법 집행, 계층이동을 돕기 위한 소득격차 축소 등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경제도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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