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교실…제 가슴도 무너져내렸습니다 | |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38
학교도 아이들도 달라져 있었습니다 툭하면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건넨 공책 한 권.
의병장 곽재우는 계략이 뛰어나고 지형지물을 이용해 지지 않는 싸움을 하는 장군이었습니다. 싸워 이긴 공으로 소소한 벼슬도 몇 번 하사받았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고 현풍 비슬산의 누옥으로 돌아갔습니다. 공을 이루면 몸을 물리는 것(功成而身退)이 천지의 도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마에 매었던 붉은 머리띠 풀어 내려놓고/ 홍의장군이란 이름도 함께 벗어놓고/ 내 안에서 자랄 수 있는 헛된 자만과/ 자칫 커질 수 있는 여러분의 기대도 내려놓고/ 후학을 기르는 일로 남은 생을 보내려 합니다/ 그게 제가 가야 할 길 아닌가 합니다/ 그게 제가 사는 길 아닌가 합니다”( 졸시 <홍의장군> 중에서) 곽재우 장군은 고향에 돌아가 후학을 가르치거나 거문고와 배 한 척에 의지하여 남은 생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조정 난신들 손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의병장이 되었습니다. 저도 조용히 시골로 가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 생각은 참 순진한 것이었습니다. 학교는 십 년 전의 그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곁에 돌아오는 데 십 년이 걸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인사말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곁으로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들 곁으로 돌아오기 위해 많이도 힘들었고, 많은 것을 잃었으며, 많은 것을 버려야 했습니다. 학생 여러분들을 위해, 여러분들과 함께, 여러분들 편에 서서 일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사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아이들은 십 년 전의 그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좋게 이야기하면 자유분방하고 개성이 강하며 자기표현에 서슴없는 아이들이고, 다른 측면에서 보면 산만하고 거칠고 충동적이며 어려워할 줄을 모르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수업 시간이고 저희끼리 모인 자리고 할 것 없이 예사로 욕설이 쏟아져 나오고 골마루나 교실 바닥에 침을 뱉어 댔습니다. 수업 중에 왔다 갔다 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와 큰소리로 말을 주고받거나, 펜팔장 편지를 쓰는 등 아예 딴짓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수업을 계속할 수 없게 하는 말이나 행동이 튀어나왔습니다. 점심시간에 술을 먹고 들어와 비틀거리는 녀석도 있고, 교실 양동이에 오줌을 누고 간 녀석도 있고, 빈 교실에 들어가 과자봉지에다 똥을 누어서 그걸 멜로디언 케이스에 담아놓고 나간 녀석들도 있었습니다. 겨울방학 중에 학교로 몰려와 학교 건물 유리창을 다 깨부수고 학교 손수레 판자를 뜯어 고기를 구워먹고 술 취해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밤의 빈 교정을 몰려다니는 놈들도 있었습니다.
지난겨울 이 녀석들 몰려와
아기 예수 태어나신 날 경배하던 밤 -졸시 <그날 밤> 중에서
하루 종일 깨진 유리 파편들이 온몸에 박힌 것처럼 마음이 아팠습니다. 술 취해 짐승처럼 울부짖던 놈도 술 깬 뒤 데려다 교실에 들여보내야 하고, 쉬는 시간에 계단에 앉아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농담도 하고, 머리도 쓰다듬으며 관계를 지속해 나가야 했습니다. 한번은 수업 중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시를 가르치고 있는 시간이었는데요, 다 같이 시를 암송하는 동안 정혜 혼자 국어 공책이 아닌 곳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습니다. 두 번인가 주의를 주다가 공책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방금 걸렸어. 뭐 하냐고 지랄하더라.” 방금 볼펜을 놓은 곳에는 그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지금 5교시 ×× 시간! 수업하기 시져. 졸려 죽겠어 아까 수학시간에 잤어. 넘 졸려서… 2시 다 되어간다. 선생님이 공부하라고 그래. 짜증나게 시리---. 지 혼자 씨부렁거려. 방금 걸려서 점수 깎았어. 재수 없는 년.”
“하이--. 나다. 정혜. 지금 도덕 셤 보고 나서 쓰는 겨. 졸려 죽겠어. 다 찍었어. 씨발 기분 존나 더러워. 넌 잘 봤는지 모르겠당. 셤 공부 안 해. 이번 시험 망칠 겨. 지금 존나 열받어. 이윤 말 안 할래… 어휴 열 받아 --. 개 족 같어--.”
이 공책은 정혜와 연이 둘이 주고받은 이른바 펜팔장이란 공책이었는데, 공책 한 권이 거의 이런 편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내용은 지금 동시에 사귀고 있는 두 명의 남자친구와의 사소한 문제, 재미없는 학교생활에 대한 불평, 친구들에 대한 불만, 서로에 대한 기대 이런 것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한 줄이 멀다 하고 욕이 튀어나오고 두 줄이 멀다 하고 짜증을 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공부하라는 건 물론이고, 엄마가 일찍 오래도 짜증이 나고, 심지어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다쳐 입원해 있는 것도 짜증이 난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은 것보다 남자친구 생일 선물을 사 줄 수 없던 것을 더 속상해합니다. 그리고 수업 시간마다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마구 공책에 휘갈기고 있었습니다. 학교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학교 붕괴. 일본에서는 이걸 학급붕괴라고 했습니다. 도쿄대 사토 마나부 교수는 “40명의 학급을 교사 혼자서 칠판과 분필만으로 밀실 통제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점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가치관이 무너지는데 학교만 어떻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학교붕괴를 바로잡기 위해 교사가 매를 들고, 일사불란하게 통제하며, 처벌이 강화되고, 교사를 무서워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붕괴란 근대식 교육제도를 유지하려는 학교와 탈근대화되면서 정보화 시대로 진입한 사회와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근대식 교육방법인 권위적이고 통제적이며 경쟁, 긴장, 위기의식의 강조를 통해 끌고 가는 방법으로는 정보화 시대에 맞는 학생들을 길러낼 수 없습니다. 변화하는 사회, 변화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변해야 할 부분과 지켜나가야 할 부분을 지혜롭게 구별하면서 교육이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정말로 무너져야 할 것도 있고 무너져서는 안 되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는 연이와 정혜 두 아이를 불러다가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매를 들어 아주 아프게 손바닥도 때려주었습니다. 재미 삼아 사고를 치고 정학을 맞아 보자고 하는 이런 생각에 제동을 걸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다 짜증스러워하고 아무에게나 욕을 하고, 자기는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에게 잘해 주어야 한다는 식의 삶의 태도를 고쳐주어야 할 책임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속이 많이 상했고,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위에 인용된 부분과 같은 내용을 교실에서 공개적으로 읽고 아이들과 이야기해보기로 하였습니다. 해결책도 아이들과 함께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도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방학을 하는 날 한 아이가 공책 한 권을 내미는 것입니다. 무슨 공책인가 하고 펴 보았더니 한 장 한 장 아이들이 쓴 편지로 채워져 있는 공책이었습니다.
“선생님 저희들이 왜 이걸 썼는지 아세요? 가끔은 선생님이 미워서 나쁘게 말할 때도 있지만… 선생님을 존경하고 선생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아세요? 선생님을 저희가 사랑한다구요… 장난이 심해서 윤재가 미우실 텐데두 선생님은 항상 웃어주시는 모습이 얼마나 고마웠고 그리고 보기에도 좋았는데요… 그런데 선생님이 너무 편해서 아무런 표현조차 하지 못하는 저희 자신들이 얼마나 미운데요…”
“전 왜 이렇게 못났죠?… 선생님이 저한테 많은 실망을 하셨다는 거 알아요. 정말루 죄송합니다. 그런데…요? 선생님이 교직생활을 그만두고 싶다고 하셨을 때 제가 선생님께 얼마나 죄송했는지 아세요? 다신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그럼 저 펑펑 울 거예요.”
연이 편지도 그 공책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