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쿠데타가 발생한 지 50년. "5·16은 구국의 혁명"이라거나 "박정희의 공적을 명확히 평가해야 한다"는 보수 일각의 의견이 쏟아졌다.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정부를 전복한 쿠데타이지만, 이후 산업화와 경제발전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근대화 혁명'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야권인사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은 이 같은 논의 자체를 일축했다. 5·16은 '혁명이냐, 쿠데타냐'는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명백한 헌법 유린 행위"라는 것이다. 보수진영에서 제기하는 '경제발전 공로'도 "박정희가 아닌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버틴 당시 노동자들의 몫"이라고 못 박았다.
16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5·16쿠데타 50년 학술대회 자료집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인사들은 '박정희 정권 긍정론'을 반박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자료집은 지난 3월 14일 열린 '5·16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토론문을 종합한 책으로, 박명림 연세대 교수, 조국 서울대 교수, 김재홍 경기대 교수, 최장집 고려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민주평화복지포럼(상임대표 이부영)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 천정배 최고위원, 한승헌 전 감사원장,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이영순 전 의원 등 각계 인사 60여 명이 참석했다.
"'박정희 향수'는 독극물, 속지 말아야"
이부영 민주평화복지포럼 대표는 이날 축사에서 "5·16은 분명한 쿠데타이고 군사 반란인데 이를 찬양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박 정권에 대한 잘못된 의식을 바로 방지하기 위해 오늘 같은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박정희는 유신을 선포하기 전 북측에 정변 사실을 통보하고 북의 양해 하에 유신을 선포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박정희 정권은 이 유신체제에 근거해 수많은 민주화 운동 인사를 좌익친북으로 몰아 사법 살인하고, 고문하고, 징역살이를 시켰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가 언급한 사실은 지난 학술대회에서 박명림 교수가 처음 제기한 것으로, 박 교수는 미국의 미공개 비밀자료를 토대로 이를 폭로했다. 박 교수는 당시 "이 같은 조치는 반공을 주창하며 북과 결탁한 박정희 정권의 자기모순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 "박정희, 비상사태선포 미국보다 북에 먼저 알렸다")
한승헌 전 감사원장도 '박정희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보수진영의 주장을 맹비난했다. 한 전 원장은 "대역죄의 산물인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벌어진 야만과 탄압의 지배는 무슨 핑계를 대도 갚을 수 없는 역사적 죄악"이라며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런 쿠데타를 두고 딴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횡횡한다는 것에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에는 '박정희 향수'라는 아주 해로운 향수가 판매되고 있다"며 "독극물질인데도 그럴싸하게 포장해 속아 넘어가는 소비자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 계신 분들이 향수의 독성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줄 백신이 됐으면 한다. 소비자 고발이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경제발전, 박정희 아닌 노동자들의 공"
출판기념회에 이어 진행된 강연회에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최근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이야기하는 일이 많은데, 우리가 박정희를 (투표로) 뽑은 적이 있던가?"라며 "박정희는 헌법을 유린하고 정권을 탈위한 반란군"이라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박정희는 자기 변신을 거듭해 온 기회주의자"라며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이 이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공은 그에게 돌아가야 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열심히 일했던 노동자들에게 공을 돌려야 한다. 박정희는 '민주주의 하다가는 깡통찬다', '나를 안 따르면 북한에 잡아먹힌다'라고 협박하며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양립할 수 없다고 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민주화된 이후에도 경제발전을 거듭했다. 민주화 세력이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양립시켜 온 것이다."
한 교수는 결론적으로 "박정희는 경제발전에도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민주주의에서도 무능력했을 뿐"이라고 폄하했다. 다만 "현재 민주화를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청년실업 등으로 고통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은 민주세력이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 역시 "세계 최저의 임금수준,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세계 최대의 산업 재해로 벌어들인 초과 이윤을 재벌들에 몰아줘 급속한 산업화, 즉 고도 성장을 달성한 것이 박정희 개발 독재의 실상"이라며 "박정권 시절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은 노동자 민중의 희생을 감내한 부지런함 덕분이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