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위해 존재해야 하는 ‘이상한 나라의 학생들’ | |
경남 거창고 전성은 전 교장 “일제 식민주의 잔재 남아 몰개성적 주입식 교육 여전” 학교 분권화 필요성 역설도 | |
권은중 기자 | |
〈왜 학교는 불행한가〉 전성은 지음/메디치·1만1500원 전성은(사진) 전 거창고 교장은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1953년 설립돼 1956년 그의 아버지 전영창 선생이 인수한 거창고는 그 어떤 학교보다도 유명하다. 최초의 남녀공학 고교였고 최초의 행복학교이자 최초로 공교육 대안학교로 불렸다. 1970년 거창고 학생들은 고교생으로는 처음으로 3선개헌 반대 시위를 했다. 이 학교 졸업생에게 권하는 직업 선택의 첫째 조건은 월급이 적은 곳이다. ‘부자 되세요’란 말이 시대정신처럼 통용되어온 세상에서 그런 원칙을 가진 학교도 처음일 것이다. 그런데도 명문대 진학률은 높았다. 거창고에 대한 관심은 컸지만 그는 언론 접촉을 피해왔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교육에 대한 책을 썼다. 최근 펴낸 <왜 학교는 불행한가>는 그가 1965년부터 2006년까지 41년간 아이들을 가르쳐오면서 느끼고 생각한 바를 정리한 책이다. 18일 만난 그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먼저 진단했다. 원인은 우리 교육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는 “‘국가나 학교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교육학의 첫번째 원칙이 우리 사회에서는 완전히 거꾸로 됐다”며 “인간이 국가와 학교를 위해 존재한다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잘라 말하며 책의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전 전 교장은 “국가를 위해 학교와 학생이 존재한다”는 고대 국가에나 존재할 법한 교육관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은 일제에 의한 식민지 교육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하고, 우리나라는 지금도 과거와 똑같이 부국강병을 목표로 한 인재 양성에 매달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인재’라는 단어는 말만 바꾸었지 자본주의 초기의 ‘인적자본’(human capital)과 같은 맥락이란 것이다. 이런 식민지 교육은 어떻게 지금까지 우리 교육을 억압하고 있을까? 과거 조선총독부는 △학교 설립허가 △교과서 △교과 과정 △평가 등 4가지로 학교를 통제했는데 지금도 교육과학기술부가 똑같은 방법으로 학교를 통제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검정 교과서를 통한 교과 과정은 결국 정답문화를 낳게 되고 이 문화는 성적 위주의 주입식 교육만 존재하게 만든다. 주입식 교육은 선생과 제자의 관계를 단순한 명령-복종의 관계로 만들고 이런 학교문화는 정치, 경제, 사회로 확산되는 악순환을 가져왔다. 100년이나 이어져온 이런 교육은 요즘 더 극성이어서 온 국민이 과거시험 준비를 하는 조선시대와 다를 것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그는 개탄했다. 이런 병폐를 이유로 이미 서구 선진국에서는 교육의 상당 부분을 학교 자율에 맡기고 있다. 정부 중심의 중앙통제 교육은 아이들의 개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섬김의 교육’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제도로는 어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와도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구조에 쓰이는 아이들밖에 키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학교교육의 해법은 무엇일까? 전 전 교장은 “핵심은 일제 때부터 이어져온 교육제도를 바꾸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단점이 있지만 그 단점 때문에 조선 왕조 국가로 돌아가지 않듯이 좋은 제도를 도입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 전 교장은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기관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을 2년간 맡으며 중앙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학교에 자율성을 주는 분권화 방안을 당시 청와대에 건의한 바 있다. 하지만 탄핵 등 당시의 정치적 이유로 개혁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정년퇴임한 뒤 전 전 교장은 거창에서 거창고 설립자이자 아버지인 고 전영창 선생의 유고를 정리해 왔다. 이사장이었던 고 원경선(원혜영 민주당 의원의 아버지) 선생과 선친이 실천했던 교육 관련 생각들을 정리해야겠다고 맘먹고 있을 때 출판사 권유로 이 책을 내게 됐다고 한다. 그는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내 생각이 아니라 두분을 비롯해 거창고에서 활동했던 분들의 생각을 옮긴 것”이라며 “이 책이 교육제도 개선 뒤에 필요한 교과 과정이나 정치와 교육 관계 같은 새로운 생각들의 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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