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및 퍼온 글

전쟁 상처 치료한 英 부부의 한국 사랑

이윤진이카루스 2011. 6. 7. 16:09

전쟁 상처 치료한 英 부부의 한국 사랑


50년대입원한 어린이들 (브리스톨<영국>=연합뉴스) 이성한 특파원 = 6.25 전쟁이 끝난뒤인 1954~1956년 피난민과 전쟁 고아 등을 위해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던 영국인 의사 존 콘스(84)와 부인인 간호사 진 매리(84) 부부가 당시 한국인들의 모습을 담은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공개했다. 사진은 입원한 어린이들. 2011.6.7 ofcourse@yna.co.kr

전쟁 직후 생활상 담은 컬러 사진 180여장 공개

(브리스톨<영국>=연합뉴스) 이성한 특파원 =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눈싸움하는 간호사들, 그네 타고 연 날리는 아이들, 상의를 벗은 건강미 넘치는 해녀들, 탑골공원 팔각정 아래 갓을 쓴 환한 얼굴의 노인들, 카메라가 수줍어 등을 돌린 여자아이들….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 피란민과 부상자, 팔다리를 잃은 어린이와 고아들에게 의술을 폈던 영국인 부부가 당시 찍었던 컬러 슬라이드 사진 180여장을 5일 공개했다.

이들 사진은 영국인 의사 존 콘스(84)와 부인인 간호사 진 매리(83) 부부가 1954년 3월부터 2년 반 동안 군산, 전주, 순천, 논산, 부여, 서울, 경주 등에서 찍은 것들이다.

50년대 탑골공원 (브리스톨<영국>=연합뉴스) 이성한 특파원 = 6.25 전쟁이 끝난뒤인 1954~1956년 피난민과 전쟁 고아 등을 위해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던 영국인 의사 존 콘스(84)와 부인인 간호사 진 매리(84) 부부가 당시 한국인들의 모습을 담은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공개했다. 사진은 탑골공원에 모인 노인들. 2011.6.7 ofcourse@yna.co.kr

화질이 좋아 전후 한국인의 모습과 풍경을 생생히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콘스 박사는 1952년 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던 중 BBC TV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처참한 실상을 알게 되면서 간호사였던 부인과 의논해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는 "남북한 누가 전쟁에서 이기든 한국은 영원한 패배자로 남게 될 것이라는 기자의 호소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면서 한국행을 마음먹게 된 동기를 소개했다.

곧바로 한국으로 가기 위해 여러 경로를 수소문했지만 전쟁이 끝나지 않은 때라 민간인의 한국행은 쉽지 않았다.

미국의 퀘이커 의료봉사단의 일환으로 휴전한 1954년 3월에야 화물선을 이용해 도착해 군산도립병원에서 월 2달러가량의 봉사료를 받고 일을 시작했다.

전쟁 직후 영국인 의사 눈에 비친 한국 (브리스톨<영국>=연합뉴스) 이성한 특파원 = 6.25 전쟁이 끝난뒤인 1954~1956년 피난민과 전쟁 고아 등을 위해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던 영국인 의사 존 콘스(84)와 부인인 간호사 진 매리(84) 부부가 당시 한국인들의 모습을 담은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공개했다. 사진은 눈싸움하는 간호사들. 2011.6.7 ofcourse@yna.co.kr

병원 건물의 정면 외관은 멀쩡해 보였지만 안에 들어가니 폭격을 맞아 지붕에 큰 구멍이 뚫려 있었고 수도나 전기, 난방 시설은 없었다.

콘스 박사는 수술 담당이라 주로 외상 환자들을 많이 접했는데 자동차 배터리를 이용해 수술대 조명으로 사용해야 했다.

주말이면 고깃배를 타고 인근 섬으로 건너가 치료를 받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이동 진료를 했다.

부인 진 매리는 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간호사 훈련 경험을 바탕으로 군산 병원에 간호사 양성학교를 만들어 간호사를 길러냈다.

당시 병원에는 전쟁 직후라 외상과 결핵환자가 특히 많았고 위생이 좋지 않아 전쟁고아인 어린이 환자, 벼농사로 인해 수인성 전염병에 걸린 환자가 상당수였다.

50년대 서울시내 풍경 (브리스톨<영국>=연합뉴스) 이성한 특파원 = 6.25 전쟁이 끝난뒤인 1954~1956년 피난민과 전쟁 고아 등을 위해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던 영국인 의사 존 콘스(84)와 부인인 간호사 진 매리(84) 부부가 당시 한국인들의 모습을 담은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공개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국은행(맨 왼쪽)앞 풍경. 2011.6.7 ofcourse@yna.co.kr

의술을 베푸는 처지였지만 이 부부는 오히려 한국인들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 한국은 처참한 상황이었고 관료들의 비리, 선거 부정, 빈곤 등 어려움이 컸다"면서 "그러나 모두 너무도 친절하고 우리 부부를 가족처럼 대해줬다"고 콘스 박사는 회고했다.

그는 "한국인은 한번 친구면 영원한 친구"라며 "돕는다고 생각하고 갔지만 막상 정 많은 사람들이 호의와 친절로 이국 사람들을 대해줘 큰 감동을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한국의 자연과 토속 미에 푹 빠진 그는 주말이면 틈틈이 카메라 하나 달랑 매고 자전거를 타거나 기차 등을 이용해 불국사, 석굴암, 갑사, 화엄사 등 불교 유적지를 둘러보고 진달래꽃과 가을 추수 들판 등의 모습을 담았다.

2년 반 동안 의료 활동을 마치고 1956년 8월 브리스톨로 돌아왔지만 1966년 영국문화원 장학금을 받아 유학온 전 고려대 영문과 정종화 교수(2009년 작고) 부부가 집에 머물면서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눈길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 (브리스톨<영국>=연합뉴스) 이성한 특파원 = 6.25 전쟁이 끝난뒤인 1954~1956년 피난민과 전쟁 고아 등을 위해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던 영국인 의사 존 콘스(84)와 부인인 간호사 진 매리(84) 부부가 당시 한국인들의 모습을 담은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공개했다. 사진은 눈길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 2011.6.7 ofcourse@yna.co.kr

2001년에는 한국을 방문해 이들이 키워냈던 한국인 제자이자 간호사들을 만나 옛날 일을 회상했고 정 교수도 만나 반가움에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옛날에는 손수레에 아픈 아내를 태우고 구불구불 60㎞를 걸어 병원을 찾아온 사람도 있었는데 다시 한국에 가 보니 하늘과 땅이 완전히 뒤바뀌어 입을 다물 수 없었다"고 놀라워했다.

콘스 박사 부부는 한국의 시, 특히 김소월의 시에도 반했다.

"When you leave, weary of me, I'll bid you silent farewell(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Step by step, on the flowers Tread lightly, as you walk(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I'll not shed a drop of tear(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영국인 노부부는 영어로 번역된 `진달래꽃'을 읊조리며 브리스톨 자택을 찾은 기자를 배웅했다.

ofcour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