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논담] "여당은 남의 적폐만 말할 게 아니라 자신을 돌아봤어야 했다"
김범수 입력 2021. 04. 01. 20:00 댓글 5904개
[김범수의 응시] 범죄분석가 표창원 전 의원 인터뷰
표창원 전 의원은 지난달 30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 눈높이가 높아져 불공정에 대한 평가 잣대가 달라졌다"며 "지금 정부·여당은 다른 건 몰라도 공정은 완벽하겠지라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서울, 부산 보궐선거의 공표 가능한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두 지역 모두 국민의힘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20%포인트 안팎의 격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지지율은 정권 출범 이후 최저치다. 보다 못한 여당 지도부가 뒤늦게 "반성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불과 1년 전 총선에서 절대적인 지지로 사상 초유의 거대 여당을 만들어냈던 표심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집값 잡기가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LH 투기 사건까지 겹치자 이 정부를 "무능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늘어난다. 이번 보궐선거를 부른 여권 지방자치단체장 비위를 비롯한 여러 사건을 보며 이 정권을 "위선적"이라고 믿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낸 뒤 불출마를 선언하고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표창원 전 의원을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에서 만났다. 최근 낸 책 '게으른 정의'를 중심으로 민심이 왜 정부·여당을 떠나는지, 우리 정치의 과제는 무엇인지 들었다.
-이번 서울, 부산시장 보궐 선거에 이른 과정을 포함해 겉 다르고 속 다른 정부·여당의 행태가 한둘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나.
“오랫동안 범죄전문가로 별의별 사건을 봐왔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인간 집단인 이상 여야,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잘못한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다. 여당의 문제는 과거 야당 시절 그런 사안에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의 언어로 비판, 공격했으면서 비슷한 일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여당 세력은 야당 시절 정치와 권력에 관심 가져달라, 부정부패 권력 남용을 함께 감시해 뿌리 뽑자고 국민께 호소했다. 과거에는 공과 사의 구별이 흐리고 투기나 입시 부정 같은 것도 심하지 않으면 넘어가던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말자며 적폐 청산을 부르짖은 뒤 국민 눈높이가 달라졌다.
그렇게 스스로 설정한 기준에 맞출 준비가 덜 돼 있었다는 점이 문제다. 남의 적폐만 말할 게 아니라 자신을 돌아봤어야 했다. 그동안 지탄하고 비판했던 것과 조금이라도 닮은 모습을 보이면 국민이 실망할 것을 예견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 기준으로 자신의 옥석을 가리기보다 내 편 챙기기 바빴다.”
-정치를 떠난 이유로 여당 의원이 되어 문제 있는 여당 인사를 비호하는 처지가 된 게 고통스러웠다고 했는데.
“야당이었을 때는 고위공직자 검증 때 세금 탈루, 자녀 교육, 부동산 등의 잘못을 공격하는 처지였다. 국민 눈높이에 벗어난 것을 질타했지만 여당 의원으로서는 반대 역할을 해야 했다. 약점 없는 사람은 없다. 지금 50, 60대 공직자들 대체로 한두 가지 문제는 있을 것이다. 야당이었을 때 마주한 문제와 유사한데도 다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조국 전 법무장관 사건도 그런 경우의 하나일 것 같다. 이 사안을 어떻게 보나.
“야당 때 만약 비슷한 일이 불거졌다면 누구보다 강하게 수사를 통한 진실 규명을 요구했을 것이다. 물론 판결 전에 유죄를 예단해서는 안 되고 항변권도 보장해야 한다. 검찰 개혁이 진행되는 가운데 제기된 문제이고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상황에서 강제수사를 받은 본인은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ㆍ여당의 일원으로서 법과 절차에 순응하는 것이 공정한 모습이다.
인사청문회 때까지만 해도 나는 법적이나 도덕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데 과도한 의혹 제기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이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상황에서는 공직에서 물러나 사인으로서 본인과 가족의 법적 방어권을 행사하는 게 맞았다. 그렇지 않아 여권 지지층이 검찰과 전쟁이라도 벌이는 상황이 되었는데 적절하지 않았다. 그런 갈등에서 나 역시 역할을 맡았던 것을 반성한다. 국회의원을 더 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의 큰 부분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였지만 이제 와서 보니 전 정부와 다르지 않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온당하지 않은 비판이다. 국정 농단은 국정원 선거 개입을 시작으로 대통령과 측근 등이 재벌에게서 거액을 뺏고, 인사에 간여하는 등 부정의 정도가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불법이나 불공정, 불합리를 강하게 비난한 당사자이기 때문에 과거와 비교 안 될 정도로 경미한 사안이더라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 것만으로도 그런 비난을 감당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 그가 공정하리라고 누가 기대했나. 표를 준 것은 깨끗해 보이지는 않지만 경제라도 잘하라는 의미였다. 그런 시절의 불공정에 대한 평가와 지금은 잣대가 다르다. 지난 정권의 잘못을 파헤쳤던 만큼 다른 건 몰라도 공정은 완벽하게 하겠지 하는 기대에 부응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보수 정당이 잘하는 것 같지도 않다.
“보수는 어떤 사회이든 그 사회의 근간이다. 보수가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린다. 지금 보수가 그런 당당함을 갖추고 있느냐가 큰 문제다. 지금까지 보수는 독재권력의 힘, 재벌과 유착한 금력 등으로 지탱해온 세력이다. 게다가 매카시즘만 동원하면 선거에서 이겼으니 거기에 쉽게 의지했다.
현정권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그대로 보수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다. 보수가 가져야 할 당당함 뒤에는 원칙과 준법이 있어야 하는데 법 자체를 우습게 여긴 10년 정권이 있었고 지금도 그런 과거와 단절했는지 의문이다. 극단세력을 품어 안으려 하고 가짜뉴스를 생산하거나 거기에 경도되고 극단적인 공격을 일삼는 것은 제대로 된 보수의 정체성을 수립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래도 국민의힘 지지율이 전에 없이 높은 수준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 체제에서 변화 조짐이 전혀 없진 않았다.
“김종인 비대위의 역할이 있다. 그중 광주에 가서 전두환 정권 이후 이어온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고 끊어낸 것이 컸다. 박근혜, 이명박 유죄에 사과를 표명하면서 오랫동안 보수 가치를 지켜내지 못한 과거와 단절하려고 했다. 국민의 다수는 심정적 보수다. 급격한 변화를 바라는 것은 소수다. 분단 국가라는 변수까지 감안한다면 보수는 조금만 잘해도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는 국민이 많다.
비대위의 노력이 그런 여지를 만들어 가고 있지만 항구적이고 장기적일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여전히 구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매카시즘을 선동하거나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극단적인 유튜브와 야합하고, 선거 부정 운운하며 선거 체제 불신을 야기하는 것은 보수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 높아져 보수를 지지할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지금 지지율이 유지될지는 앞으로의 혁신에 달렸다. 내부 문제가 불거지고 진보 세력의 자성이 일어나면 바뀔 수 있다.”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수준 낮은 한국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가능할까.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정당 운영과 선거 공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처럼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다선 지역구를 이어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 국민소환제 같은 게 필요하다. 꼴찌 수준인 국회의원 신뢰도가 나아지지 않는 것은 여든 야든 정치기득권 세력이 이런 개혁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여당만 쥔 것 같지만 때가 되면 여당이 될 수 있는 야당도 실은 권력이다. 양 진영 모두에 국민의 심판을 따갑게 받아들이지 않는 뿌리 깊은 기득권 세력이 있다.
청년정치 활성화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보여 주기식 청년 정치는 풀뿌리에서 청년들이 활발하게 일하고 그래서 국민에게 선택받는 경연의 장을 보장하지 않는다. 청년기본법은 34세까지를 대상으로 하지만 지금 정당들의 청년 기준은 45세까지다. 지역 조직을 40대가 장악해 20, 30대의 설 자리가 없다. 그런 부분부터 바꿔 청년이 기성세대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와 당당히 맞상대할 수 있어야 진영끼리 비난하면서도 서로 이득을 챙기는 구조가 바뀔 것이다. 정치에 대한 시민과 언론의 관심과 감시도 중요하다.”
-한국 정치가 갈수록 진영에 매몰되는 데는 언론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언론 개혁 목소리도 갈수록 커진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생명이다. 그 자유를 옥죄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옳지 않다. 언론 개혁은 필요할지 모르지만 개혁의 주체가 문제다. 언론보다 더 감시의 대상이어야 할 정치권력이 언론을 개혁한다는 것은 코미디다. 언론 개혁을 권력의 칼로 접근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과거 독재권력이 칼을 들고 언론을 통폐합하고 저항하는 언론인을 내쫓았다. 목적이 옳고 그때보다 민주적이라고 해서, 해도 되는 건 아니다. 언론 스스로 자부심을 잃지 말고 올바른 보도, 정의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언론의 상업화 물결이 거세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어느 편에 기울어 죄책감을 느끼는 언론인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시민단체의 감시가 필요하다.”
-진영 다툼이 격해질수록 국민의 정치 불신이 커지는 것 같다.
“정치판의 진영 다툼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냥 둬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이번 책 제목을 ‘게으른 정의’라고 한 것은 편 가르기로 무조건 상대를 부정하고 불신하는 태도를 비판한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들여다보고 살펴보고 다른 사람을 인정할 것은 해야 한다.
여야 모두 좀비 정치, 동원 정치, 팬덤 정치를 넘어 지지자들을 전투병으로 동원하는 정치 관행을 깨야 할 때가 됐다. 이명박 정권 때 교수직 버려가며 싸운 것도 권력의 여론 조작에 세뇌당하면 타깃으로 삼는 다른 편을 집단 공격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슬프게도 지금 여당에서도 마찬가지로 집단 공격 양상이 나타난다. 민주진보 진영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위선자라는 지적을 받는 것은 동원정치의 영향도 있다. 정권 핵심부부터 자극적인 선동으로 지지자를 끌어들이려는 유혹을 벗어던져야 한다.”
-검찰 개혁 과정의 갈등과 혼란이 컸다.
“가장 좋은 개혁은 대상자들의 동의를 얻어 진행해 가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검찰 개혁은 그러지 못했다. 당사자들이 수긍하지 않는다면 차선책으로 객관적인 처지에 있는 제3자의 수긍과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당장 개혁으로 혼란과 갈등이 생기더라도 나중에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검찰 개혁이 이런 차선책으로 진행되었느냐 하는 논란이 있다. 권력을 치니까 괘씸죄를 사서 개혁이 더 강해지는 식으로 비치는 게 아쉽다.
이런 방식으로는 권력구도가 바뀌어 지금 야당이 여당이 되면 당시 개혁이 잘못되었다는 명분을 줄 수도 있다. 거기에 다수 국민이 공감한다면 개혁은 되돌아갈 수도 있다. 절차 위반이나 공정성 시비 등 과정의 문제로 개혁을 되돌릴 구실을 주는 것이 안타깝다.”
-권력기관 개혁으로 경찰의 권한이 커진 데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정치권력과 야합하면서 편향된 사법권력을 휘둘러왔다는 것이 검찰 개혁의 큰 명분이었다. 만약 경찰이 그런 행태를 보인다면 개혁은 의미가 없다. 정치적 중립이 중요하다. 정치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법과 절차와 양심에 따라 사건만 보고 수사해야 한다. 검찰 주도의 수사 구조에서 감춰지곤 했던 권력의 비리와 범죄를 철저하게 수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게 핵심이다. 그런 원칙이 5년, 10년쯤 지켜지면 개혁의 방향성은 지속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
조직이 비대해진 만큼 이를 감시 통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영국의 경찰 개혁 사례에서 보듯 경찰위원회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지난 국회에서 감사권을 경찰위원회에 주자는 법안을 냈지만 경찰은 반대했고 여당에서도 반향이 없었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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