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자유는 우리의 개인적인 책임인 우리의 인간성에 대한 전제조건이다. 나은 세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으려는 어떤 시도도 자유라는 기본적 가치에 의하여 통제되어야 한다.
미국혁명이라는 위대하고 거의 항상 오해되는 사례가 주목되지 않는 (적어도 학교에서) 반면, 유럽이 프랑스 혁명이라는 실패한 (적어도 드골[de Gaulle]이 제5 공화국을 세울 때까지 실패한) 사례에만 거의 항상 집중했다는 것은 비극적이라고 나는 안다. 이유인즉 미국은, 아테네의 솔론(Solon)이 최초로 실행하려고 시도했고 칸트가 광범위하게 분석한 개인적 자유라는 이념이 유토피아적 꿈은 아니라는 증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례는, 자유에 헌신하는 형태의 정부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가장 큰 난제들을 극복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사례는, 권력 분할과 분배를 통한 그리고 그렇게 나누어진 권력들 가운데서 상호 감시와 견제를 통한 독재 방지에 ㅡ 특히 국민 다수의 독재 ㅡ 근거한 정부 형태이다. 이 이념은, 독일 민주주의의 기본법을 포함하여, 모든 다른 민주주의 체제들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미국은 험난한 시대를 거쳐야 했다. 미국은 혁명과 독립전쟁 이후 항상 험난한 시대를 거치고 있었고, 미국이 커다란 성공들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험난 시대의 끝장을 아직 보지 못했다. 자유를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
모든 개인의 자유라는 위대한 이념은 미국혁명에 영감을 불어넣었는데, 혁명 이전 시대부터 특히 스페인인들로부터 계승된 노예제도와 가장 큰 대비를 이루는데 그 노예제도는 남부의 주들에서 1백 년 이상을 깊이 뿌리를 내렸다. 남부가 북부에 대하여 예방 전쟁을 시작했을 때. 미합중국은 그 쟁점에 관하여 둘로 쪼개져 있었다. 그 전쟁은 틀림없이 미국에서 가장 혹독한 전쟁이었는데 친구들과 같은 가족들이 서로 대적한 내전이었다. 자유로 향하는 미국의 여정이, 프랑스의 여정처럼 실패로 판명될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였다. 그러나 양측이 낸 가장 큰 희생에도 (60만 명이 사망하고 그중에는 에이브러햄 링컨도 한 명이다) 불구하고 남부의 초기 성공적인 공격은 격퇴되었고 결국 제압되었다. 노예들은 해방되었지만, 이전 흑인 노예들의 자손들을 통합하는 방법에 관하여 거대한 문제가 남았다; 피부색 차이점들 때문에 잊히기가 그렇게 쉽지 않던 잔인하고 몇 세기에 걸친 제도를 극복하는 방법.
이 상황이 심지어 상당히 정확하게 기술되어 평가된 독일의 역사적 업적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나의 생애에서 가장 강력한 인상들 중 한 가지 인상은, 과거의 노예들이 동등한 인권을 지닌 시민들이 되는 것을 미국 정부가 도우려고 다양하게 시도하는 것을 내가 1950년과 1989년 사이에 내가 목격한 것에서 유래한다. 나는 한 가지 일화를 언급만 하겠다. 1956년 과거 남부 주들의 핵심에 있던 애틀랜타 대학에 나는 초빙교수로 있었다. 당시 그 대학에는 흑인 학생들만 다녔고 백인 교수들은 소수였다. 한번은 유명한 흑인 학자이던 총장에게, 이 크고 훌륭한 대학이 어떻게 그리고 언제 설립되었는지를 나는 물었다. 딥 사우스(Deep South) 지역에 있는 이 흑인 대학이, 남북전쟁 이후 6년 만에 모든 기독교 교회들에 의하여 백인 목사들과 흑인 목사들 및 교수들이 서로 협력하여 가르치던 몇 개의 흑인 대학들을 ㅡ 내가 생각하기에 8개 대학이다 ㅡ 통합하여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는 놀랐다.
이 이야기를 숙고하여, 남북전쟁의 종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는 마이어 백과사전(Meyers Enzyklopädisches Lexicon)의 항목과 비교하는 일을 여러분에 나는 맡긴다: ‘다른 한편의 노예제도는 남북전쟁의 원인이었는데 해결되는 듯이 보이기만 했다.’ 문제의 항목에 있는 많은 다른 것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것은 내가 보기에 완전히 틀렸고 어떤 진정한 해결책을 저자는 제시했을 터인지 나는 의아하다. 아무튼 애틀랜타 대학의 역사는, 내가 나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많은 다른 노력들이 그랬던 바와 같이, 나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나는 많은 나라에 가봤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미국에서처럼 자유로운 숨결을 느끼지 못했다. 어느 곳에서도 관용 및 도움을 주려는 열망과 배우려는 열망과 결합된 그렇게 많은 이상주의(理想主義: idealism)를 ㅡ 그렇게 능동적이고 실제적인 이상주의, 도움을 주려는 그렇게 큰 의지 ㅡ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나중에 나는, 흑인들의 통합이 완벽한 성공이어서 피부색이 더 이상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는 듯이 보이는 미국 대학들에 나는 또한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열정적인 환대를 받지 못할 것임을 완벽하게 의식하고 말한다. 3년 전 하노버(Hanover)에서 열린 어느 회의에서, 미국이 다른 몇 차례의 강좌들에서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을 옹호하는 강좌를 열었다. 진짜 고함소리가 일었고 나의 말에는 휘파람 합창이 따라왔다. 나는 이것을, 나의 청중이 지겨워하지 않는다는 신호로서 환영했다. 그리고 자유와 관용을 위하여 내가 싸우고 있다는 것을 내가 상상할 수 있었기 ㅡ 혹은 확신할 수 있었기 ㅡ 때문에 나는 행복했다.
ㅡ 칼 포퍼, ‘모든 생명체는 문제해결 중이다’, 2008년, 112~115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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