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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탈북 요청 북한외교관, ‘위장 납치극’ 원해…폭행·감금은 쇼였다” (스페인 북한대사관 진입사건)/국민일보

이윤진이카루스 2021. 4. 27.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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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탈북 요청 북한외교관, ‘위장 납치극’ 원해…폭행·감금은 쇼였다”

기사입력 2021.04.27. 오전 5:15 최종수정 2021.04.27. 오전 5:20 기사원문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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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조선’ 크리스토퍼 안, 한국 언론 최초 인터뷰>

◆ 글 싣는 순서
① 타이페이 공항서 벌어진 김한솔 구출 작전 ‘36시간’
② 첩보영화 같은 스페인 북한대사관 진입사건의 전모
③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 탈북 사건의 진실
④ 이라크 참전·MBA학위 ‘한국계’ 미국인, 자유조선 택했던 이유
⑤ 북한 암살 우려에다 스페인 송환 재판…그가 털어 놓는 심경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과 자유조선 회원들이 2019년 2월 22일 진입했던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의 모습. 지상 2층·지하 1층 구조로, 북한대사관 직원들의 주택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AP뉴시스
기상천외한 사건이 너무나도 민감한 시점에 벌어졌다. 진실은 미로 속에 갇혀있다. 첩보영화보다 더 극적인 이 사건을 두고, 정반대 주장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2019년 2월 22일, 자유조선 회원들이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에 진입했다. 아무 성과 없이 끝났던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닷새 전이었다. 사건 발생 시점은, 이후 이 사건을 둘러싸고 온갖 억측이 쏟아졌던 온상이 됐다.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41)은 스페인 북한대사관에 진입했던 10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유일하게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스페인 사법당국은 미국과 맺은 범죄인 인도청구조약에 따라 크리스토퍼 안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안은 미국 법정에서 스페인 송환 여부를 결정지을 운명의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지금 변호사 3명의 도움을 받으며 한편이 된 스페인 사법당국·미국 검찰과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크리스토퍼 안 측과 스페인 사법당국·미국 검찰 모두 인정하는 사실은 세 가지다.

① 크리스토퍼 안과 자유조선 회원들이 2월 22일 오후 5시부터 오후 9시 40분까지 4시간 40분 동안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진입해 머물렀다는 점 ② 그들이 북한대사관에서 움직일 때 북한 직원들이 대사관 내의 회의실과 지하실 안에 들어가 있었다는 점 ③ 그들이 북한대사관에서 컴퓨터, 펜 드라이브(USB), 휴대전화 등을 들고 나갔다는 점이다.

같은 팩트들을 놓고 주장이 전혀 다르다. 이 사건이 미궁 속을 헤매는 결정적 이유다.

먼저, 자유조선은 “북한 외교관이 비밀리에 탈북을 요청했으며, 북한에 남아있는 다른 가족들의 신변 위협을 우려해 위장 납치극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유주선의 핵심 주장을 요약하면 ① 북한 외교관이 문을 열어줬기 때문에 침입이나 난입이 아니며 ② 북한대사관 직원들이 회의실과 지하실 안에 들어가 있었던 것은 감금이 아니라 북한 정권이 납치라는 사실을 믿게 만들기 위한 연극이나 쇼였고 ③ 역시 탈북 작전을 감추기 위한 의도에서, 일반적인 납치·강도사건으로 보이기 위해 일부러 컴퓨터 등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 사법당국과 미국 검찰의 주장은 완벽히 정반대다. 자유조선 회원들이 ① 북한대사관에 불법적으로 진입했으며 ② 북한대사관 직원 4명을 대사관 내 회의실에 불법 폭행·감금하고 상해를 가했으며 ③ 강도 행위를 통해 북한대사관 물품을 훔쳐 달아났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자유조선의 납치 자작극은 실패로 끝이 났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 두 가지가 연이어 발생했기 때문이다. 탈북을 요청했던 북한 외교관은 탈북 계획을 접었다. 북한 정권이 납치 자작극을 눈치챘을 것이라는 공포 때문으로 추정된다. 자유조선 회원들은 애초 계획했던 북한 외교관 대신 북한대사관의 컴퓨터 등을 들고 대사관을 빠져 나왔다.

자유조선 회원으로 활동했던 크리스토퍼 안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페인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과 관련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북한 정권이 ‘납치’ 믿도록 일부러 CCTV 앞에서 쇼했다”


크리스토퍼 안은 스페인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과 관련해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지난 20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됐던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다. 크리스토퍼 안이 이 사건과 관련해 모습을 드러내고 직접 설명한 것은 한국 언론·해외 언론을 통틀어서 처음이다.

크리스토퍼 안의 주장은 하나였다. “그들(스페인 사법당국·미국 검찰)의 주장은 모두 진실이 아니다.” 그리고 국민일보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사람들이 진실을 알기를 바란다."

크리스토퍼 안은 “북한대사관에 진입했던 자유조선 회원들의 임무는 각각 달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 회원들은 북한 정권이 납치라고 믿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CCTV 앞에서 쇼를 벌였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북한대사관 직원들을 폭행하고 감금하는 흉내를 냈다는 것이다.

특히 크리스토퍼 안은 “나는 북한대사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임무를 맡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북한대사관 직원들에게 ‘걱정하지 마라. 지금 대사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다 쇼다. 이 시간이 지나면, 당신들은 새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토퍼 안은 이어 “내 가방엔 총과 칼이 아니라, 북한외교관 자녀에게 줄 캔디와 장난감들이 들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스페인 북한대사관은 대사관 직원들의 주택 기능도 겸하고 있어 당시 어린이도 대사관에 있었다.

크리스토퍼 안은 또 “납치 자작극을 요청했던 북한 외교관이 ‘빨리 나가라’면서 북한대사관 차량 3대의 열쇠를 줘 그 차들을 대사관을 타고 빠져 나갔다”고 강조했다. 스페인 법원의 문서에는 “그들이 메르세데스-벤츠의 승합차와 도요타·아우디 차량을 점유했다”는 내용이 있다. 차량을 둘러싼 대목도 진실공방이 빚어지는 부분이다.

국민일보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스페인 법원의 문서들을 단독 입수했다. 크리스토퍼 안과 나눈 인터뷰 내용을 위주로 스페인 법원 문서의 기록과 비교해 보도한다.

-스페인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북한대사관을 진입하기 전에, 자유조선의 누군가로부터 ‘마드리드에 중요한 작전이 있는데, 참가할 수 있는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이 사람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피했다. 그는 이번 인터뷰 내내 자신의 발언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는 것을 우려하는 눈치였다.) 나는 ‘미안하지만, 일이 있어 그 주에는 못 간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네가 진짜 있었으면 좋겠다. 네가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부탁인데, 일정을 조정할 수 있겠냐’고 재차 물었다. 그래서 내가 스케줄을 조정했다. 그리고 마드리드에 가게 됐다.”

스페인 법원 문서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안은 뉴욕에서 출발한 ‘아메리칸 에어라인’ 비행기를 타고 2월 22일 오전 8시 10분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자유조선 회원들이 스페인 북한대사관을 진입하기 약 9시간 전에 스페인 땅을 밟은 것이다.

크리스토퍼 안이 2019년 2월 22일 가방을 메고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북한대사관의 CCTV에 찍혔다. 크리스토퍼 안은 “내 가방엔 총과 칼이 아니라, 북한외교관 자녀에게 줄 캔디와 장난감들이 들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진은 미국 법무부가 공개했다. AP뉴시스

“북한대사관 진입에 참여한 서너명, 한국말 썼다”


-자유조선이 당신에게 꼭 참여를 부탁한 이유가 있는가.

“나는 모른다. 자유조선 임무에 참여할 사람들을 뽑는 것은 내 일이 아니다. 나는 자유조선 임무에 잠시 참여한 뒤 그것이 끝나면 내 삶을 사는 사람이다.”

-스페인 북한대사관 진입 작전은 언제 알았나.

"나는 마드리드에 도착한 이후 자유조선 회원들이 묵고 있던 호텔로 갔다. 오전 10시∼11시쯤이었다. 제일 먼저 샤워를 했다. 그 뒤에 (자유조선의 리더이며 한국계인) 에이드리언 홍 창으로부터 구체적인 얘기를 들었다.”

그는 ‘북한 외교관의 탈북 요청을 어떻게 연락 받았는지 아는가’는 질문에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북한대사관 진입 작전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탈북자를 돕는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작전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놀라기는 했다. 다만, 당일 도착한 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상당히 장기간 준비를 한 것 같은 모습이어서 안심이 되긴 했다. 나는 내게 맡겨진 북한대사관 직원들을 안심시키는 역할에만 집중하기로 하고, 마음을 추스렸다.”

-당시 작전에 참여한 자유조선 회원 중 알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가.
“처음 본 사람이 6명 정도 됐다. 내가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1∼2명 정도 있었다. 다만, 자유조선 임무를 하면서 신분을 구체적으로 묻지는 않는다.”

-미국 AP통신은 같은 해 3월 26일 '북한대사관에 들어간 자유조선 회원 중 한국 국적자 1명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한국인도 있었나.
“내 기억엔 3∼4명이 한국말을 썼다. 그러나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한국 국적인지, 한국계인데 다른 나라 국적인지는 알지 못한다.”

이 발언은 한국 국적자도 스페인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에 가담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계 미국인인 크리스토퍼 안 자신을 포함해 최소 4명 이상의 한국계 출신들이 북한대사관에 진입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스페인 법원 문서에는 크리스토퍼 안과 자유조선 회원들이 스페인 북한대사관에 진입하는 내용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자유조선의 리더인 에이드리언 홍 창은 22일 오후 5시 북한대사관의 벨을 누르고 “상무관을 만나러 왔다”고 밝혔다. 에이드리언 홍 창은 자신의 신분을 속였고, 북한대사관 직원은 순순히 문을 열어줬다. 또 문을 열어준 직원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밖에 대기하고 있던 9명의 자유조선 회원들이 북한대사관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당시 북한대사관에는 대사관 직원들과 가족 등 모두 7명이 있었다.

그러나 이 대목도 양측의 주장은 엇갈린다. 크리스토퍼 안 측의 변호인단은 “에이드리언 홍 창이 신분을 속인 것도, 문을 열어준 직원이 한눈을 팔았다는 것도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는 상황이다. 북한대사관에 진입할 때부터 이미 약속했던 절차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안이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으로 들어가기 전의 모습이 북한대사관의 CCTV에 찍혔다. 크리스토퍼 안은 “이 작전 한 달 전에 샤워를 하다가 오른손목뼈를 다쳤다. 깁스를 풀고 의료용 손목보호대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노란 원 안이 크리스토퍼 안이 주장하는 의료용 손목보호대. 이 사진은 미국 법무부가 공개했다. AP뉴시스

“나는 대사관 직원 설득 역할…납치처럼 보이려 애썼을 뿐”


다시 크리스토퍼 안과의 인터뷰다.

-당신도 탈북을 요청했던 북한 외교관과 대화를 나눴는가.

“북한 사람들이 외교관이라든가, 다른 이유로 해외에 나올 때 진짜 세계를 본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자녀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북한 외교관들을 봤을 때 ‘그들은 북한 사람도 아니고, 외교관도 아니고, 그저 부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북한대사관 안에 있던 모든 외교관들에게 ‘걱정하지 마라’고 설득했다. 탈북을 요청한 그 외교관에게 특별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스페인 법원 문서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이 문서에는 자유조선 회원들이 북한대사관에서 무는 동안 대사관 직원 4명을 플라스틱 줄 등으로 결박하고, 폭행했으며, 회의실에 감금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안 측의 변호사들은 “스페인 수사당국이 북한대사관 직원들의 일방적인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이 주장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박·폭행·감금 여부는 크리스토퍼 안의 스페인 송환 재판에서 핵심 쟁점이다.

-북한대사관에서 자유조선 회원들의 폭력적인 행동은 없었다는 것인가.
“우리는 사람을 살리러 북한대사관에 들어갔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에 사람의 생명이 달려있던 순간이었다. 탈북을 요청했던 사람들만 구출한다면 절반의 성공이었다. 북한에 있는 다른 가족들의 생명까지 구해야 했다. 이번 작전에선 납치 연극이 성공해야 100% 성공이었다.

우리로서는 납치로 위장해야 하는데, 북한 외교관에게 ‘자, 갑시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일부러 CCTV 앞에서 쇼를 벌였다. 북한 정권이 이 화면을 볼 때를 대비해 납치처럼 보여야 했다.

우리는 납치 연극이 실패하면 ‘북한에 있는 이들의 가족이 다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정말 납치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을 뿐이다.”

-당신은 납치가 연극이었다고 해도 폭력에 가담하지 않았나.

“공교롭게 나는 이 작전 한 달 전에 샤워를 하다가 오른손목뼈를 다쳤다. 깁스를 풀고 의료용 손목보호대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의료용 손목보호대를 하고 있었던 모습은 북한대사관 앞 CCTV에도 찍혔다. 나는 작전을 마치고 난 뒤에도 병원을 다녔다. 내 의료기록에 오른손이 악화됐거나 어떤 상처를 입었다는 내용은 없다.”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 정문 모습. 북한대사관임을 알리는 안내판과 초인종이 보인다. AP뉴시스

“북한대사관 냉장고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북한대사관 안에서 특별하게 느꼈던 것은 없었나.
“대사관 건물이라는 것이 밖에서 보면 멋지지 않나. 북한대사관도 그랬다. 그런데, 실내에 들어와보니, 가구가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낡은 싸구려 가구들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가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물도 없었나.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아, 이 사람들이 정말 힘들게 살았구나’ 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아, 이 사람들이 오늘만 견디면, 이렇게 안 살아도 되니까, 앞으로는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입 초반에는 모든 것이 자유조선의 계획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두 가지 돌발 상황이 자유조선의 발목을 잡는다.

먼저, 대사관 직원의 부인이 2층에서 뛰어내렸다. 스페인 법원 문서에 따르면, 그 여성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여성을 발견한 행인이 응급의료진과 동시에 경찰에 신고했다. 그 여성은 출동한 경찰에게 ‘많은 사람들이 북한대사관을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스페인 경찰관 3명이 북한대사관으로 출동했다. 다만, 북한대사관 직원이 행인에게 경찰 신고를 부탁했는지, 행인이 여성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경찰에 신고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경찰을 맞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에이드리언 홍이었다. 그는 북한 지도자 김정은 배지를 달고 태연하게 “대사관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혹시 북한 사람이 다치는 일이 있었다면 알려 달라”고 경찰을 속였다.

국민일보가 단독 입수한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과 관련한 스페인 법원의 문서

“갑자기 울려퍼진 전화벨 소리…동요했던 북한외교관”


그러나 이번에는 두 번째 돌발 상황이 터져 나왔다. 크리스토퍼 안의 설명이다.

-에이드리언 홍이 경찰을 돌려보낸 이후 아무 일이 없었나.

“갑자기 북한대사관 안에 있는 전화기들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북한대사관 실내에 가구가 없다보니, 소리가 울려서 들렸다. 대사관에 전화가 몇 대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느낌엔 벨소리가 울리다보니, 대사관 안에 있는 모든 전화가 울리는 것 같았다.

전화를 안 받으니, 전화가 끊이질 않고 계속 왔다. 그 때, 납치 자작극을 시도했던 북한 외교관이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북한 당국이 납치 연기를 눈치챘다고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그가 우리에게 떠날 것을 요구했다.”

스페인 법원 문서에는 자유조선 회원들이 들고 나간 북한대사관 물품의 목록이 있다. 두 대의 컴퓨터와 두 개의 하드 드라이브, 두 개의 펜 드라이브(USB), 그리고 한 대의 휴대전화다.

-북한대사관 물품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자유조선의 지도부가 아니라 모르겠다. 나는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자유조선 회원들, 북한 핵 정보 찾고다닌다는 느낌 없었다”


의혹을 증폭시킬만한 이유들은 더 있었다. 자유조선의 북한대사관 진입 시점이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닷새 전이었다는 사실은 온갖 억측을 자아냈다.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의 이름도 갑자기 튀어 올랐다. 스페인 정부는 북한 핵실험 도발에 대한 항의로 2017년 9월, 당시 북한 대사였던 김혁철을 추방했다. 그런데, 김혁철이 북한의 대미 특별대표로 영전했다. 그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북·미 실무협상의 북한 측 대표를 맡았다.

이런 상황들이 겹치면서 자유조선이 북한의 핵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컴퓨터 등을 들고 나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혹시 자유조선 회원들이 북한 핵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컴퓨터 등을 들고 나갔다고 생각하나.
“당시 자유조선 회원들이 핵 정보 등 무언가를 특별히 찾고 다닌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그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또는 중앙정보국(CIA)과 협력한 적이 있나는 질문에 “내가 보기에 지도부가 협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과거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정확히 모른다”고 답했다.

크리스포터 안은 또 ‘한국 정보기관이나 외교당국과 접촉한 적이 있느냐’의 질문에도 “나는 전혀 모른다. 나는 자유조선의 지도부가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 기사에 따르면, 에이드리언 홍은 스페인에서 돌아온 뒤 북한대사관에서 가져왔던 2대의 컴퓨터를 자신이 묵던 뉴욕의 호텔에서 FBI 요원들에게 보여줬다. FBI 요원들은 에이드리언에게 컴퓨터들을 2주만 보고, 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에이드리언은 응했다.

그러나 FBI 요원들은 에이드리언에게 다시 주지 않았다. FBI는 또 에이드리언 홍에겐 수배 명령을 내렸고, 크리스토퍼 안은 체포했다. 크리스토퍼 안이 지금 재판을 받는 이유다.

로이터통신은 자유조선이 들고 나온 북한대사관의 물품들이 북한에 반환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가 스페인 법원에 전달했고, 스페인 법원이 이를 북한에 넘겼다는 것이다.

-에이드리언이 FBI 요원들에게 컴퓨터를 보여줄 때 같이 있었나.
“통상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오면, 정리 미팅을 한다. 북한대사관 진입 이후에는 뉴욕에서 그것을 했다. 그러나 나는 LA에서 일이 있었다. 그 미팅에 참석하지 않았다.”

크리스토퍼 안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단독 인터뷰를 마치고 시내에서 사진 촬영에 응했다.

“탈북 요청 북한외교관, ‘빨리 나가라’며 대사관 차량 열쇠 줬다”


-스페인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북한대사관 직원들의 일방적인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납치 자작극을 요청했던 북한 외교관조차도 거짓말을 한 것 같다. 그러나 기분 나쁜 것은 없다. 그는 선택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

스페인 법원 문서는 “자유조선 회원들이 오후 9시 40분쯤 3대의 북한대사관 차를 타고 대사관을 빠져 나갔으며, 에이드리언 홍은 오후 9시 46분에 우버를 불러 타고 갔다”고 설명했다.

-북한대사관에서 나올 때 왜 대사관 차량을 이용했나.

“납치 위장극을 요청했던 북한 외교관이 ‘빨리 가라’고 차 열쇠들을 줬다.”

-탈북을 원했던 사람들을 구출하지 못하고 나올 때 심정은 어땠나.
“도와드려야 하는 분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슬픔이 몰려 왔다 (그는 여기서 두 번째로 울먹거렸다). 북한 외교관과 그 가족들이 혹시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몰려 왔다. 다른 회원들도 다 패닉이었다. 운전을 하는 다른 회원도 너무 과속으로 달려 내가 '모든 것이 잘 될 거야'라고 위로를 할 정도였다.”

-실패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북한대사관 직원의 부인이 2층에서 뛰어내렸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유야 어떻든 그 분이 오해를 한 것 같다. 우리가 더 잘 설명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 그러나 그 분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북한대사관 차량 3대와 우버에 나눠 탄 크리스토퍼 안과 자유조선 회원들은 22일 밤 마드리드 시내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어딘가로 흩어졌다. 그들이 사라졌던 암흑 속에 아직 진실이 묻혀 있다.

로스앤젤레스·워싱턴=글·사진 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