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사실이라면 천동설→지동설 전환보다 큰 충격”

이윤진이카루스 2011. 9. 24. 06:42

“사실이라면 천동설→지동설 전환보다 큰 충격”

‘빛보다 빠른 물질 있다’ 파장
현대물리학 토대 ‘흔들’…우주 탄생부터 다시 써야
과학자들 “믿을 수 없다”…실험 신뢰도에 의구심
사실땐 시간여행 가능 “중성미자, 시공 건너뛸 수도”

»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전경.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세른)가 3년여 실시해온 이른바 ‘오페라’(OPERA·Oscillation Project with Emulsion-tRacking Apparatus) 실험연구에서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는 발표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1905년 처음 주창돼 그 어떤 이론의 도전에도 흔들림 없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져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물리학과 김수봉 교수는 “실험 결과가 사실이라면 물리학계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는 것 이상의 충격”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주장이 과거에도 몇 차례 제기됐지만 권위있는 연구소의 실험 결과라는 점에서 이번엔 무게가 다르다.

빛의 속도는 ‘시간과 공간은 하나이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상대성 이론에서 유일하게 변함없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유일하게 질량이 ‘0’인 입자인 빛은 이론적으로 당연히 제일 빠른 입자여야 한다. 현대 물리학의 많은 이론은 이를 전제로 파생돼 나왔다.

하지만 극미하나마 질량을 가진 중성미자가 빛보다 더 빠르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 입자의 질량이 ‘마이너스’이거나 질량이 있어도 빛보다 더 빠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두가지 모두 현대 물리학 이론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실험 결과가 사실일 경우 “지금까지 우주의 탄생부터 모든 것을 설명해온 이론의 토대가 근본적으로 흔들린다”며 “인간이 우주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실험의 신뢰도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 물리학부의 드루 베이든 교수는 “(빛보다 빠른 물질이 있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며 “다른 연구진에 의해 사실로 판명날 때까지는 믿을 수 없다”고 <에이피>(AP) 통신에 말했다. 세른 또한 이 결과를 논문 초고 온라인 등록 사이트(ArXiv.org)에 올리고 공개 세미나 등 토론에 부쳐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미 다른 많은 과학자들도 이 실험의 검증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실험을 재현할 만한 설비가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일본의 양성자가속연구단이나 미국의 페르미연구소 정도만이 검증이 가능한데, 2곳의 장비는 세른의 설비보다는 성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험의 신뢰도보다는 다른 이론으로 결과를 설명해 보려는 과학자도 있다. 독일 도르트문트대학의 하인리히 페스는 “실험이 사실이라면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게 아니라) 시공간을 건너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고 영국 <가디언>에 말했다.

중성미자는 태양에서 핵융합을 할 때나 원전에서 핵분열을 할 때 발생하는 물질로, 온 우주에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수봉 교수는 “중성미자는 원자의 10억분의 1 크기밖에 되지 않는 물질로, 사람의 엄지손톱 크기의 면적에 1초에 1000억개 이상이 통과할 정도로 많다”며 “하지만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실체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빛보다 빠른 물질이 있다면 공상과학의 영역으로 여겨온 시간여행이 이론적으로 가능해진다. 상대성 이론에서는 빛의 속도로 움직일 경우 시간은 흐르지 않고 그보다 빠르게 움직인다면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고 설명한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