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 사흘째 파장

이윤진이카루스 2011. 9. 26. 08:18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 사흘째 파장
100년 진리 허무나…과학계 패닉

등록 : 20110925 21:37 | 수정 : 20110925 22:51

“아인슈타인 맞서는 건 위험” 오류설…재현실험 준비
일부선 “다른 차원 존재증거” 웜홀·시간여행 기대감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세른)의 실험이 사실로 드러나 ‘중성미자’(뉴트리노)가 정말로 빛보다 빠르다면, 텔레비전 생방송에서 내 팬티를 먹겠다.”

영국 서리대학교의 물리학과 교수 짐 알-칼릴리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세른의 실험 결과에 대한 당혹감과 동시에 100년 넘게 현대 물리학의 ‘공리’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철저한 믿음을 드러내는 말이다.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실험 결과가 전세계 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23일 오후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 인근에 위치한 세른의 대강당에는 발표를 직접 듣기 위해 전세계에서 수백명의 과학자가 모였다. 이번 실험을 주도한 안토니오 에레디타토 박사는 “우리는 이 ‘미친’(crazy)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분들이 도와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벌써 미국의 페르미연구소는 이 실험을 재현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재현 실험은 몇달 안에 시작될 예정이다.

과학자들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바로 아인슈타인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에이피>(AP) 통신은 1905년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뒤 1세기가 넘게 그의 이론에서 허점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단 한명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그 자신이 ‘가장 큰 실수’로 인정했던 ‘우주상수’(cosmological constant) 이론은 그의 사후 43년이 지난 1998년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페르미연구소의 물리학자 롭 플런킷은 “아인슈타인에 맞서 내기를 거는 것은 위험한 짓”이라고 말했고, 하버드대학교의 과학사학자 피터 갤리슨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물리학 역사상 가장 견고한 이론”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이번 실험에 ‘오류가 있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 소동 자체가 ‘과학의 위대함’을 보여준다는 의견도 많다. 200년 이상 진리로 받아들여진 뉴튼의 역학이론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수정된 것처럼 아인슈타인의 이론 또한 얼마든지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레일리 과학센터의 대표인 돈 하워드는 “모든 것은 뒤집힐 수 있다.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의 이론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은 ‘과학이 가장 먼저 맞닥뜨려야 하는 것은 ‘사실’(fact)이며 그에 대한 해석은 그 다음 문제’라며 ‘과학의 역사는 언제나 상상할 수 없는 것에 도전해 온 역사’라고 강조했다.

만일 실험이 사실이라면 공상과학에나 등장하던 여러가지 것들이 현실로 성큼 다가올 수도 있다. 영국 <비비시>(BBC)는 세른 소속 브라이언 콕스 박사의 말을 빌려 이번 실험이 다른 차원의 존재를 시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중성미자가 다른 차원을 통한 ‘지름길’로 갔기 때문에 빛보다 빨라진 것이라는 말이다. 블랙홀과 화이트홀 사이의 통로를 뜻하는 ‘웜홀’의 존재가 증명될 수도 있다. 빛보다 빠르기 때문에 시간을 거슬러갈 수 있는 정보전달자를 통한다면 내일 일어날 문제를 오늘 해결하는 일도 이론적으로 가능해 진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