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사조의 시조 크세노파네스
1 그리스 계몽사조의 시조
내가 좌우명으로서 선정한 확신에 찬 문장은 탁월한 그리스 철학 역사가인 (그러나 심지어 ‘실수로’도 ‘철학의... 역사에서 명사가 된’ 적이 없는 사람으로 내가 우려하는) 해롤드 F. 처니스 (Harold F. Cherniss)의 펜에서 유래한다. 내가 인용한 문장은, 처벌받지 않고 크세노파네스를 욕하는 것을 허용하는 전통인 어떤 형태에 부합한다.
이 형태의 뿌리는 크세노파네스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동시대인인 위대한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에게서 기인하는 거장의 냉소에서 감지될 것이다 (DK B40: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아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이유인즉 그것이 헤시오도스(Hesiod)가 아는 데 도움을 주지도
못했고 피타고라스에게도 그러했고 크세노파네스나 헤카타이오스
(Hecataeus)에게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론 냉소로서 의도되었지만, 비의도적으로 크세노파네스를 고귀한 무리의 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 게다가 헤라클레이토스는 여기서 그가 많이 안다고 믿는다 ㅡ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다소 너무 많이 안다고 믿는다. 올바른 지식은 아마도 낮과 밤이 (그래서 모든 반대가 되는 것이) 하나라는 것을 아는 것인데 이유인즉 밤이 없으면 낮이 존재하지 않고 반대의 경우도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의 냉소는 우리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 냉소는 헤라클레이토스가 피타고라스를 단순한 점쟁이로서, 무당으로서 여기지 않았다는 논증으로서 ㅡ 약한 논증으로 인정된다 ㅡ 아마도 사용될 것인데 왜냐하면 헤라클레이토스가 피타고라스를 크세노파네스와 동일선상에 놓았기 때문이다. 이유인즉 신(神)의 존재를 믿었던 당시 모든 철학자 중에서, 키케로(Cicero)에 따르면, 크세노파네스가 ‘미래를 예측하는 관행을 강력하게 거부했던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의심할 바 없이 이것으로 인하여크세노파네스는 무속신앙에 대한 강력한 반대자가 또한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위에 언급된 형태를 설명하는 것은 초기 계몽사조에서 크세노파네스의 지도력이었다: 그를 배척하는 오래된 전통. 모든 실재적 철학의 본질과 대조적으로 계몽사조의 깊이가 철저히 부족하기 때문에 계몽사조를 경멸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실재적인 철학자가 될 수 없다는 상투적인 말을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유인즉 만약 당신이 철학자라면 당신은 깊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헤겔(Hegel)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그 고귀한 깊이(‘die erhabene Tiefe’)에 도달하려고 당신은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물론, 쇼펜하우어가 재빨리 간파한 바와 같이 순전히 직설적인 은유이다. 그러나 헤겔이 실제로 의도하는 바는 자신의 사상이 지닌 무한한 깊이 때문에 자신이 다른 모든 사람 위로 고상해졌다는 것이다.) 몇몇 철학자들을 다른 철학자들보다 더 유행하게 만드는 것은 이 ‘그들 자신이 지닌 지식’이다. 그리고 계몽사조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이 지식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실수’에 의해서만 철학사에 들어갈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크세노파네스는 유럽 계몽사조가 내놓았던 이념들의 선례에 아주 근접했다. 그러나 이 이념들은 지식인들 가운데서 존중받지 못했는데 그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ㅡ 특히 성직자들의 권력이나 (나중에) 정치적인 권력 ㅡ 확대하려는 목적으로 이 이념들을 오용했다. 이 이념들의 오용은 자신들이 내놓은 이념들이 깊이가 있다고 하여 ㅡ 자신들이 지닌 초월적으로 (다시 말해서, 비경험적으로) 영감을 받은 ㅡ 심지어 신성한 ㅡ 근원이 있다고 하여, 자신들이 내놓는 예언적 중요성이 있다고 하여 ㅡ 사람들을 위압하려는 시도와 항상 연관되어 있었다.
이 이념의 오용 얼마간을, 매우 드물지만, 우리는 심지어 소크라테스 이전의 위대한 철학자들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모호한 자the obscure)’로 지칭되었을 때, 그 이유는 아마도 그의 탁월한 언명들에 예언적 풍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그의 언명들에는 예언적 풍취가 많지 않아서 그는, 의심할 바 없이 핵심적인 비난으로부터 그를 구한 것이 그의 ‘모호성(obscurity)’이었을지라도, 계몽사조에 속했다고 (예를 들어 DK B43, 44, 55와 또한 B47-54를 비교하라) 언급될 개연성이 높다: 그는 깊이가 없다는 비난을 받은 적이 없는데, 그 비난은 크세노파네스에 대한 표준적인 비난이다.)
그 비난은, 깊이가 없는 많은 사람이 크게 두려워하는 비난이다; 그리고 그런 까닭으로 자신들의 경박함으로부터 자신들을 떼어놓기를 소망하기 때문에 ㅡ 그 비난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림으로써 ㅡ 그리고 물론, 또한 이해될 수도 없고 위압적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비난이 그들에 의하여 널리 이용된다. ‘나는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것이 철학이다’는 매우 천재적인 젊은 물리학자가 하이데거(Heidegger)가 말하는 것을 들은 후의 깊은 확신이다. (나는 인정한다: 만약 이것이 철학이라면 크세노파네스는 실수로 철학사에 들어갔다.)
크세노파네스를 폄하하는 사람들 모두가 계몽사조의 적(敵)이라고 내가 암시하지 않음을 주목하라. 헤라클레이토스를 포함하여 밀레토스학파의 위대한 창시자들 모두가 다양한 정도로 계몽사조의 어느 단계에 속했다. 그래서 아래 3절에서 논의된 크세노파네스의 우주론에 대한 오해와, 이 오해에서 비롯된 크세노파네스에 대한 공격은 반(反)-계몽사조적 경향과 관련이 없다; 그것들은 단지 크세노파네스가 자신의 비판자들에게 완전히 얼빠진 사람으로 보였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나 갈레노스(Galen)가 크세노파네스를 옹호한 것을 보면 이 비판자들 몇 명은 정말로 반(反)-크세노파네스와 반(反)-계몽사조 전통에 속했다.
크세노파네스가 유럽 계몽사조의 모든 주요 이념의 선례가 되어서 강력하게 그 주요 이념을 대표했다는 것이 크세노파네스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라고 나는 제안한다. 이 이념들 가운데는 진리를 위하여 투쟁하고 모호함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이념이 있다; 명료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말하고 글을 쓰는 이념; 반어법 사용하기와 특히 자신에 대하여 반어법을 사용하는 이념; 심오한 사상가인 체하기를 피하는 이념;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념; 세상을 경외감으로, 그리고 남에게 전염시키는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이념.
ㅡ 칼 포퍼 저, 아르네 피터슨 편집, ‘파메니데스의 세계’, 2007년,
33-35쪽 ㅡ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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