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명과 동양 문명의 분기점
위에 밝혀진 바와 같이 크세노파네스가 말하는 진리에 대한 ‘연구 자유’는 인식론적이고 윤리적인 요구나 원칙 양쪽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요구나 원칙은 비판과 자기-비판을 주요 동력으로 한다. 진리 연구와 비판적 방법론 사이의 이 동력은 어떻게 발생했을까? 음유시인으로서 크세노파네스가 경험한 결과로서 발생했음이 매우 개연적인데, 크세노파네스는 헤시오도스(Hesiod)와 호메로스(Homer)의 고전 작품을 암송했지만 또한 틀림없이 자작시를 포함하여 동시대 시인들의 작품을 암송했고 그 장소는 그런 시 암송에서 다양한 기대와 개념을 모두 지닌 매우 많은 문화가 마주치는 지중해 지역들이었다.
크세노파네스의 시대에 문화-충돌이 예술세계에서도 감지될 수 있었고, 그래서 그의 직업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령 동양적 연극과 그리스적 연극 사이에서 발견하는 일은 오랫동안 연구할 필요도 없었다. 예를 들어 동양 극작가들은 필연적으로 신성한 제사의 일환으로서 자신들의 신(神)들 앞에 절을 하는 경배 몸짓을 포함시켰을 터인 반면 이런 종류의 복종은 그리스 연극의 전통이 아니었다. 반대로 그리스 극작가들은 신(神)들과 논쟁을 벌였는데 심지어 신(神)들이 무의미하게 잔인하다고 비난했다. 신(神)들은 더 합리적이고 책임지라는 말을 들었다: ‘당신들은 폭군들이어서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당신들은 우리와 장난을 치지만, 우리 인간들은 당신의 장난을 폭로할 것이다!’
신(神)들의 가족과 그들의 변덕에 대항하는 이 문명 방어로 인하여 크세노파네스는 세상의 존재와 인류애로 이루어진 세상의 존재가 공평이나 정의로움에 달려있다는, 그리고 최고 권력의 윤리는 전능한 신(神)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는, 견해에 도달했다고 나는 제안한다; 그리고 이 견해는 우리 인간의 평화 추구와 전쟁에 반대하는 우리의 투쟁에 대한 지침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제안한다. 크세노파네스는 이 견해를 인식론과 과학의 영역에까지, 우리의 진리 탐구까지 가져갔다고 나는 나아가 제안한다.
내가 보기에 크세노파네스의 일신론은 여기서 기독교적 일신론이나 유대교 적 일신론과 동일하거나 더 훌륭하다 (구약의 하느님은 질투하여 복수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크세노파네스의 도덕론은 과학과 정치에서의 현재 상황을 훨씬 낫게 규정하고, 영향력이 있지만 무책임한 몇몇 지식인들의 암호인 ‘무슨 일이든 통한다(anything goes)!’와 같은 현대적 구호들에 의하여 표출된 얼빠진 짓보다 틀림없이 선호될 수 있다.
ㅡ 칼 포퍼 저, 아르네 피터슨 편집,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2007년,
53-54쪽 ㅡ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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