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동안 24시간 붙어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정혜신·이명수 부부는 둘이 나누는 대화에서 여전히 “뽕 맞는 것 이상의 쾌감과 만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호호, 깔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토요판] 김두식의 고백
정혜신ㆍ이명수 부부의 사랑(상)
‘선을 넘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녀간에 선을 넘는다’, ‘나꼼수가 선을 넘었다’처럼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매사에 선을 넘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살아온 저에게는, 안 그런 척하면서도 끊임없이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와락’ 안아준 경험도 별로 없습니다. 선을 넘는 용기 없이는 사랑도 없는 법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계를 고민하는 저의 눈에 정신과 의사 정혜신과 심리기획자 이명수 부부가 들어왔습니다. ‘마인드 프리즘’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고문피해자(진실의 힘), 해고노동자(와락), 감정노동자, 시민활동가, 기업 임원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치유의 기회를 제공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온 부부입니다. 이들이 2011년 출간한 <홀가분>은 진짜 잘 사는 것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책인 동시에 서로를 향한 사랑 고백으로 가득 찬 연서입니다. 두 사람은 각각 6년과 10년의 짧지 않은 결혼생활을 접고 재혼하여 15년째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가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왠지 이들이라면 선을 넘는 것과 지키는 것에 대해 정직한 지혜를 들려줄 것만 같았습니다. 거절당할 각오를 하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와락’ 말고 두 사람의 ‘사랑’ 얘기를 듣고 싶다고요. “신뢰할 만한 인터뷰어와 한겨레이기 때문에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답장이 날아왔습니다. 설 명절이 끝나고 양평에 있는 두 사람의 집을 찾았습니다.
사생활 보장받고 싶을 땐 2층에 ‘빨간 깃발’
-트위터 보니 설 명절에 두 분이 10편 이상 영화를 보셨더군요. 어떤 게 제일 재미있었나요?
이명수 “(정혜신을 보고) 뭐가 재밌었어? (잠시 대답을 기다리다가) <부러진 화살>, 그다음에는 인도에서 인력거 끄는 사람들을 찍은 다큐멘터리 <오래된 인력거>가 재미있었어요.”
-명절에 여기저기 인사 다니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 같은데요.
정혜신 “저희는 영화를 많이 봐요, 개봉관에서만 한 달에 15편을 본 적이 있을 정도로. 명절에도 명수씨 큰형님 댁에서 차례 지낸 다음에는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니까 여유가 있죠.”
-재밌으시겠어요. 행복하시죠?
정 “홀가분하죠.”
이 “약간 복선 깔고 물어보는 거죠? 부부관계란 게 진짜로 행복할 리가 있냐 하는?”(웃음)
-정 선생님도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의 한계를 가끔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요.
정 “그랬나요?(웃음) 우리 둘은 원래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실제로 한동안 혼인신고를 안 했고,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죠. 아이들 데리고 살다 보니 불편한 일이 생겨서 나중에는 했어요, 당장 항공 마일리지 합산이 안 되잖아요.(웃음) 저희는 회사 준비하는 기간까지 치면 거의 12년 동안 24시간 붙어 있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림 에세이의 모든 단상, 소재가 함께 출퇴근하며 나눈 대화에서 나오는데 그게 너무 즐겁고 재밌죠. 저는 이렇게 표현해요. ‘뽕 맞다가 대마초 못 피는 거다.’ 깊은 관계와 대화에서 오는 쾌감, 희열, 만족감은 뽕 맞는 것 이상이거든요. 다른 친구가 없어도 아쉽지 않고, 다른 관계나 모임을 가면 밋밋하고 심심해서 만족이 없는 거죠.”
정혜신의 인생 타임라인 |
이명수의 인생 타임라인 |
-운명적 사랑인가요?
이 “그렇게만 얘기할 수는 없고요. 우리는 가치관, 세계관, 취향이 완전히 다른데, ‘동의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하자, 다르지만 다른 걸 인정하자’는 태도는 같아요. 사람에 대해서 쫄지 않는 태도도 비슷해요. 이 친구는 원래 생겨먹은 게 그렇고, 저는 이 친구 영향으로 노력해서 그렇게 된 건데요. 그러나 둘의 스타일은 정반대예요. 저는 뭐든지 잘 챙기고 꼼꼼하면서 개인의 삶이 침범당하는 걸 못 견디는데, 이 친구는 그런 거 중시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면서 권위를 거의 인정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저희는 섹스 하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웃음) 이 친구도 저도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굉장히 즐기는데, 와락 같은 일들이 그런 취향에 방해가 되기도 하죠. 토요일마다 와락을 오가는 데 5시간, 상담하는 데 6시간이 걸려요. 새벽에 나가면 한밤중에 들어오니까, 금요일 저녁에는 피곤해서 못 하고, 토요일 다녀오면 일요일엔 쉬어야 하죠. 개인 생활이 침범당하는 걸 견디지 못하는 저는 짜증을 내면서 이렇게 계속 갈 수는 없다고 해요. 그런데 이 친구는 스킨십 못 하는 건 좀 아쉬워도 그대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죠. 그 일이 땡겨서죠.”
정 “그런데 사실 와락을 기획하고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전체를 조직화한 건 명수씨거든요. 자기 시간과 모든 것을 투자하면서도 개인의 삶을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죠. 양평에 처음 이사 왔을 때요, 주변 집들이 모두 은퇴하신 분들인데, 들떠서 인사들 하고 스스럼없이 왔다 갔다 하고, 식사 함께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 날 동네 선배 부부와 함께 차를 마시다가, 명수씨가 ‘앞으로 우리 집에서 은밀한 사생활이 있으면 2층에 빨간 깃발 꽂아 놓을 테니 그때는 불쑥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얘기했죠. 물론 그분들이 불편하지 않게 농반진반으로요. 그 후에는 그분들이 의식하고 조심하세요.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린 것이죠. 일상에서 그런 경계를 민감하게 잘 쳐주니까 시가와의 관계에서도 제가 굉장히 편하고 아이들과의 관계도 좋아요.”
정혜신
나보고 도덕관념이 없대요^^
저는 그냥 자유롭게 살아요
보는 것과 달리 저돌적이죠
이명수
첫 결혼도 불행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이 친구를 만났고요
더 강적 나타나면 또 그럴지도^^
엄마의 죽음과 우울증, 그리고 이혼
두 사람 모두 이야기를 빙빙 돌리는 법 없이 본질로 쑥 들어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행복을 묻는 질문에 이들은 ‘같음’과 ‘다름’, ‘와락’과 ‘경계’로 답했습니다. 경계를 지키는 데 예민한 이명수 덕분에 정혜신이 균형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이웃을 와락 껴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흔히 말하듯 ‘닭살 부부, 부부 아르티(RT)단’으로 단순하게 규정될 관계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심한 저는 당장, 뽕 맞는다는 표현이나 섹스 얘기를 신문에 그대로 써도 되는지부터 걱정됐습니다.
정 “상관없어요. 책에 대해 실컷 묻고 막상 지면에는 이혼 얘기만 적는 인터뷰보다 솔직한 게 훨씬 낫죠. 뭘 물어보셔도 돼요.”
정혜신·이명수 부부. 강재훈 선임기자 |
정 “제가 7살 때 엄마가 암 진단을 받은 게 제 인생의 첫 번째 사건이에요. 엄마가 돌아가신 뒤부터 엄마가 부재한 게 아니라 암 진단을 받은 때부터 엄마가 안 계신 거나 마찬가지였던 거죠. 부모님께서 결혼하고 3~4년 만에 얻은 굉장히 반가운 딸이 언니였어요. 그 후 아들 기다리다가 제가 나왔고 밑에는 남동생인데, 엄마가 저를 낳고 시무룩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갖다 버리라고 했대요. 나중에 알았어요, 그랬구나, 나에 대한 엄마의 마음이 그랬구나. 언니는 자기에게 굉장히 열성적이고 관심도 많았던 극성엄마로 기억해요. 저는 그런 기억이 전무해요. 그게 제 우울의 근원일 거예요. 엄마 돌아가시고 1년 후에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새엄마랑은 마음을 나눈 적이 없었어요. 거죽으로만 지냈죠, 아버지의 여자니까요.”
-전공의 시절에 월급의 절반 이상을 정신분석에 썼다고 들었습니다. 효과가 있었나요?
정 “그럼요. 일생 두 번의 치유 기회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젊은 날에 정신분석 받았던 것, 그다음이 명수씨 만나서의 과정이죠. 명수씨와의 대화, 관계를 통해서 치유가 더 많이 됐어요.”
연세대에 정신분석하는 선배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르네상스적인 수혜”를 받았던 거의 마지막 세대가 정혜신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요즘 들어 정신분석의 틀 안에서만 치유가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더 절박하게 삶이 파괴되어 신속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거리의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정혜신이 두 번째 치유자인 이명수를 만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신경성 위통과 뻣뻣한 뒷목에 시달리던 광고기획자 이명수를 정혜신에게 소개한 것은 이명수를 스카우트한 광고회사 사장이었습니다. 이런 첫 만남 때문에 나중에는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이른바 ‘전이’가 일어난 것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습니다. 언제 처음으로 그에게 사랑을 느꼈는지 물었습니다.
정 “(하늘 보며 잠시 침묵) 어떤 사람의 무의식까지 가면 그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근원이 있고 동기가 있어요. ‘환자는 언제나 옳다’(Patient is always right)는 말도 무의식까지 사람을 깊이 이해했을 때 나오는 거죠. 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 옳죠. 극성맞은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굉장히 유한 분이어서, 저는 권위를 실감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 무의식에 굉장히 충실해요. 제가 살아오면서 겉으로 보기엔 설명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것 같은 선택을 한 적이 적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어요. 명수씨와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심한 신경성 위통으로 찾아왔는데, 몇 번 만나기도 전에 제 마음이 확 끌리기 시작했어요. 아직 전이가 일어날 상황도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사랑은 아니었겠죠, 끌림, 무지하게 끌리는 정도?”
-주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정 “난리가 났죠. 돌이켜 보기 싫을 정도로 험한 일이 많았습니다. 기독교 집안 출신이라 안수기도를 빙자한 폭력까지 있었죠, 마귀에 씌었다고. 그런데도 단 한 번 흔들리지 않았어요. 결정을 내릴 때까지 잠시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딱 그래야겠구나 느낌이 온 다음에는 흔들리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저의 무의식적 본능, 감각, 근원적 건강성을 믿었어요.”
-누구의 지지도 없이 결정을 내려 본 경험 때문에, 상담하는 사람들에게도 “당신은 언제나 옳다”고 격려할 수 있는 건가요?
정 “무의식까지 이해하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런 경험 때문에 내가 더 나다워지고 ‘심리적인 에스라인’이 나오게 된 건 맞아요. 옛날엔 원형 원석 같은 게 있었을 뿐인데, 그 이후에 둘이 견주고 갈등하고 얘기하고 충돌하고 또다시 해결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견디고 통과하면서 심리적인 에스라인이 분명하게 나온 것 같아요.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건 예전 배우자들이죠. 어쨌든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니까요.”
-2000년에 두 사람의 이혼 과정이 인터넷에 ‘폭로’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죠?
정 “제가 바로 사실관계를 인정하자 인터넷에 도배가 됐고요. 어마어마한 댓글들을 밤새 보다가 어느 순간 ‘아, 이 사람들이 지금 내 얘길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얘길 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다음부터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별로 영향을 안 받았어요.”
-단아한 선생님의 이미지하고는 잘 안 맞는 얘기 같습니다.
정 “명수씨는 나보고 도덕관념이 전혀 없다고 그래요.(웃음) 오히려 이 사람이 원칙적이에요. 저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가 아니라, 그냥 자유롭게 살아요. 제가 원하는 걸 단 한 번도 망설이거나 포기한 적이 없어요. 보이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저돌적이에요.”
정혜신·이명수 부부와 김두식. 강재훈 선임기자 |
통념의 벽을 넘은 사람만의 평화
정혜신에게는 통념의 벽을 넘어본 사람만이 갖는 독특한 평화가 있었습니다. 문득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원회 권지영 대표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정혜신은 우리에게 엄마 같은 사람이다.” 아이러니였습니다. ‘엄마의 부재’에서 출발한 그가 오히려 누구보다 더 훌륭한 엄마, 남을 이해하고 보듬고 안아주는 치유자로 성장했으니까요.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의문은 남습니다. 앞으로 또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가능성은 없을까. 묻기도 전에 이명수 대표가 대답을 시작했습니다. 마음을 읽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질문지가 따로 필요 없었습니다.
이 “저는 첫 번째 결혼이 전혀 불행하지 않았어요. 좋은 편에 속했죠. 오래 연애한 캠퍼스 커플이었고 10년 정도 살았습니다. 그러다 정혜신, 이 친구를 만나게 된 거구요. 그래서 우리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자주 물어요, ‘더 강적이 나타나면 또 그럴지도 모르겠네’ 하고.(웃음) 제가 가끔 ‘내가 더 강적을 만나서 잠시 그 여자하고 섹스를 하거나 연애를 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공연을 같이 다닐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해요. 하지만 이 친구는 걱정을 안 해요. 내 맘 중심에 자기가 있다는 걸 완전하게 느끼고 있어서죠.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제가 바람 같은 구석이 있지만, 이제는 굉장히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린 바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 “저는 명수씨가 바람같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살면서 그랬던 적도 있어요. 그러면 또 제게 얘기하고요. 근데 저는 그게 전혀 문제가 안 돼요. 왜냐면 나랑 이명수라는 한 인간의 내면 세계는 천 개 정도의 조각을 계속 맞추어온 꽉 맞는 관계거든요. 그걸 맞춰가는 과정에서 면과 면 사이의 끊임없는 접촉이 있었고요. 나 아닌 누구와 어떤 접촉을 하더라도 그건 서너 조각 정도의 일부분에 불과한 거죠. 지금까지 우리가 나눴던 관계의 깊이, 양 이런 것들보다 더 할 수 있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어요.”
어디서 저런 자신감이 나오나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남과 다른 ‘부부’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독립된 개체인 두 사람 사이의 성숙한 관계’가 상위 개념이고, 부부는 그보다 아래에 있는 일종의 틀에 불과했습니다. 부부인데 다른 사람과 그래도 되느냐는 식의 고정관념을 벗어버린 상태였습니다. 틀을 넘어선 그곳에 묘한 탄탄함이 있었습니다. 이명수에게 정혜신은 어떤 사람인지 물었습니다.
이 “이 친구는 누구하고든 거리낌 없이 눈 마주치고 무장해제를 시켜버려요. 예를 들어 비즈니스 관계에서 우리가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으면 저는 ‘저 사람을 어떻게 설득할까’ 계획서도 짜고 계산을 하죠. 그런데 이 사람은 설득하지 않고 그냥 가서 ‘내가 이걸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네요’ 그래요. 그러면 그쪽에서도 함께 고민하고는 이러죠. ‘지금 내가 뾰족한 아이디어가 없는데 적당한 다른 사람을 찾아봅시다.’ 저는 매사에 객관적으로 균형감각을 유지하려다 보니 늘 경직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 친구하고 살면서 무지하게 많이 무장해제되었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정혜신과 조각을 맞추어온 남자, 이명수의 삶이 알고 싶어졌습니다. 틀을 넘어선 이 부부의 자녀들은 과연 어찌 사는지도 궁금했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