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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아이들을 뛰어놀게 하자 / 정남구

이윤진이카루스 2012. 2. 17. 09:32

일본에서 운동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만
하는 게 아니다

두해 전 이맘때 특파원 발령을 받고 도쿄에 왔다. 돌이켜보면 가장 잘한 일은 아이들을 일본 학교에 보낸 일인 듯하다. 그리 길다고는 할 수 없는 3년의 체재기간 동안, 나는 두 아들이 일본을 조금이라도 더 깊이 체험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일본 학교엔 내가 미처 생각지 않았던 장점이 있었다. 아이들이 실컷 운동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중학생이 된 큰아이는 부 활동으로 탁구를 선택했다. 운동량이 장난이 아니다. 학교가 끝나면 거의 매일 3시간쯤 연습을 하고 온다. 학교가 쉬는 토요일에도 두번 가운데 한번은 학교 체육관에 가서 연습하고, 방학 때도 운동을 쉬는 날은 길어야 일주일이다. 유니폼과 라켓을 구입하는 것 외에 다른 비용은 전혀 들지 않았다. 코치를 맡은 선생님의 열정이 참으로 놀라웠는데, 아들 얘기론 다른 운동부 지도 선생님들도 다 마찬가지라고 한다.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작은아이는 매주 한차례 체온을 재서 적은 카드를 들려 학교에 보냈다. 부모가 미리 몸 상태를 점검해서 동의해야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교엔 수영장이 있고, 모두가 초등학교 때부터 수영을 배운다. 가끔은 먼거리 달리기도 연습한다. 작은아이는 지난해 말 동네 소년야구단에도 입단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에 문을 닫은 학교 운동장에 모여 연습도 하고 각종 경기에도 참가한다. 헬멧은 물론 유니폼도 선배 선수들한테 절반가량은 물려받았다. 코치가 다섯명이나 되는데,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래서 부모의 경제적 부담이 거의 없다. 회비는 한달에 1000엔(약 1만5000원)이고, 돌아가며 물당번을 하는 부모들의 회비가 1500엔이다. 점심은 코치나 선수 모두가 주먹밥을 싸가지고 와서 먹는다.

두 아이는 외발자전거도 제법 탈 줄 안다. 이웃에 사는 중·고등학생 형제는 꽤 유명한 외발자전거 선수인데, 마을 초등학교가 매주 월요일 학교 체육관을 그들 형제 및 함께 연습하는 이들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거기서 배운 덕분이다. 일본엔 외발자전거를 타는 어린이가 아주 많다.

일본에서 운동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만 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즐거움을 찾아 운동을 한다. 그 과정에서 뛰어난 선수가 발굴되고, 직업 운동선수가 나오기도 한다. 학교 운동부에 속해 있다고 해서 공부를 소홀히 하는 일도 없다. 나는 가끔 구청이 운영하는 체육관에 탁구를 하러 가는데, 그곳을 찾는 이들의 실력이 모두 아마추어 선수급이다. 소년야구단의 자원봉사자 코치들도 대개 학창시절 야구선수를 했던 이들이다. 운동은 그렇게 생애 내내 이어진다.

어릴 적 꾸준한 운동은 정말 대단한 체력향상 효과가 있다. 문부과학성이 일본인의 체력을 조사해 지난해 10월 발표한 결과를 보면, 학교에서 운동부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40~44살 남성의 체력이 운동부 경험이 없는 25~29살 청년의 체력보다 좋았다.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운동이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결과는 세계 각국에서 아주 많이 나와 있다. 운동을 하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성적이 좋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갈 날은 아직 꽤 남았지만, 나는 벌써부터 조금 걱정이 된다. 과연 내 아이들이 지금처럼 즐겁게 운동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한국에선 요즘 탁구연습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안전하게 외발자전거를 탈 곳도, 동네 어린이야구단이 연습을 할 만한 곳도 드물다.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도 흔하지 않다. 일본의 체육 인프라가 한국에 절반만 있어도 참 좋겠다. 내 욕심이 과한가?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