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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머리 나쁜 한국 학생들?

이윤진이카루스 2012. 2. 21. 12:29

 

세계에서 가장 머리 나쁜 한국 학생들?

['사교육 중독', 이젠 빨간불·②] 미친 사교육, 비용만큼 효과 있나?

이대희 기자,성현석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2-21 오전 8:12:01

 
- '사교육 중독', 이젠 빨간불
<1> 대치동 학원가의 점심시간 : "엄마가 말하길 제 꿈은 하버드대 편입이래요"
삼년째 대학입시를 준비 중인 박영민(21, 가명) 씨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로 대입 지원 자격을 얻었다. 아버지의 권유였다. 학원 강사였던 아버지는 사교육을 신뢰했다. 서울대를 졸업한 아버지의 권유로 박 씨는 학원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진 학교를 자퇴했다.

그는 그러나, 학원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부모의 기대와 달리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나아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감만 느끼고 있다.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박 씨는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모르니, 하루 종일 학원에 있어도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며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서 'SKY 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합격하지 못하면 올해를 마지막으로 공부를 포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모든 정권이 '사교육 잡겠다' 약속, 여전한 학부모 주머니 털기

박 씨의 사례는 사교육이 공교육을 완전히 대체한, 조금은 극단적인 경우다. 그러나 박 씨의 사례에서 '고교 중퇴'라는 대목만 빼면, 아주 익숙한 모습이 나타난다. 위험 수위에 달한 '사교육 맹신', '사교육 의존증'이다.

한국 사회의 '사교육 의존증'은 도무지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어느 정부건 사교육비 절감 대책을 내놓는다. 이명박 정부도 그랬다. 현 정부는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를 사교육비 절감 대책으로 포장했다. 실상은 고교 평준화의 틀을 깨는 시도였다. 결과는? 아이들은 더 이른 나이부터 사교육 경쟁에 시달리게 됐다.

그리고 이런 경쟁은 부모의 경제력을 연료 삼아 타오른다. 어른들의 주머니가 계속 쪼그라드는데 내수 경기가 살아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한국은행, KDI, 기획재정부 등 경제 관련 기관마저 '사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학교를 대체한 학원, 산업이 된 교육…'주5일 수업제'도 중요 변수

지난 20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의 '한국 사회지표 변화' 보고서를 보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계층이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계층의 8.11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이 격차는 2003년 6.04배에서 2010년 8.11배로 계속 벌어져 왔다. 고소득층의 경우, 실제 지출하는 사교육비에 비해 축소해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격차는 더 클 수 있다.

경쟁적인 사교육비 지출은 과거 '대학생 아르바이트', '단과 학원 강좌' 수준이던 사교육을 거대한 산업으로 변모시켰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직업까지 등장했다. 서울 강남 일대에선 학생의 학원 스케줄까지 관리하는 학습매니저가 활동 중이다. 아이들이 워낙 많은 학원에 다니다 보니, 아이가 다녀야 할 학원을 관리해주는 신종 직업이 생겨난 것이다. 올해부터 전면 실시되는 주5일 수업제 역시 중요한 변수다. '사교육 산업'이라는 관점에선 시장의 '수요'를 키우는 게 계기가 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사교육 산업 팽창에 비례해서 학력도 향상됐을까?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 사교육 산업의 급격한 팽창에 비례해서 아이들의 학력도 향상됐을까. 물론, 제대로 된 의미의 지식과 학력은 입시 성적만으로 평가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진짜 공부'를 겨냥했건 그저 '수능 점수 향상'만을 목표로 삼았건 지나친 학원 의존증은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이다. "잠 충분히 자고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하면 대입 수석한다"라는 식의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교육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 내놓은 진단이다. 박재원 비유와상징 행복한공부연구소 소장이 그런 경우다. 박 소장은 <대한민국은 사교육에 속고 있다>라는 책에서 "대치동에서 상담을 하면서 (학원에 다녀도) 성적을 올리는 게 아니라 도리어 마음의 상처와 압박감만 받고 돌아서는 들러리 학생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며 "이들은 공부에 대해 기본적인 의욕이 없는 탓에 당연히 성적도 오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3년마다 나오는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 학생들의 학업 흥미도 지표는 늘 꼴찌 수준이다.

최하위권의 효율로 최상위권의 성취도…세계에서 가장 미련한 한국 학생?

눈길을 끄는 지표는 이밖에도 많다. 2008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중고생들의 '학습효율화지수'는 OECD 30개 회원국 중 24위에 불과했다. '학습효율화지수'란 PISA 점수를 학습시간으로 나눈 수치다.

이 수치가 낮다는 것은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에 비해서는 성적이 저조하다는 뜻이다. PISA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주당 학습시간은 49.43시간으로 OECD 평균(33.92시간)보다 훨씬 높다. PISA 발표에서 한국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늘 최상위권을 기록한 것 역시 중요한 대목이지만, 이는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워낙 길어서 나온 결과일 뿐이다. 최하위권의 효율로 최상위권의 성취도를 기록했다는 것은, 투입한 시간과 노력이 임계치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뜻이다. 결국 '한국 학생들이 치열한 교육 경쟁 덕분에 세계적으로 우수하다'라는 익숙한 얘기는, 한국 학생들이 세계에서 가장 미련하게 공부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이 퇴화한 아이들, '비즈니스 프렌들리'와도 거리 멀어

한국 학생들이 유난히 머리가 나쁜 걸까. 그럴 리는 없다. 과도한 사교육이 오히려 '진짜 학력'은 떨어뜨렸다는 설명이 나온다. 일방적으로 '떠먹여 주는' 사교육에 지나치게 의존하다보니, 학생 스스로 생각해서 지식을 흡수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퇴화했다는 것.

이런 설명대로라면, 과도한 사교육은 지식 경쟁력이라는 면에서도 해악인 셈이다. 시장주의자들은 지식 경쟁력을 흔히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경쟁력을 가늠하기에는, 청소년들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의 총량보다 '학습효율화지수'가 더 적절하다. 되도록 적은 시간을 들여서 많은 지적 활동을 수행할 수 있어야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따라서 최하위권을 기록한 '학습효율화지수'는 효율적으로 일하는 지식 노동자를 원하는 기업가, 시장주의자들에게도 위험한 징후다.

물론, 아이들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이들이라면 더 말할 것이 없다. 정권이 어떻게 바뀌건, 교육당국은 늘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상식을 갖고 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이들이라면, 지나친 사교육이 아이들에게 해롭다는 걸 안다. 대신, 스스로 고민하며 공부하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그게 '자기주도적 학습'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극단적인 경쟁에 내몰린 학생, 학부모들에게는 그저 공허하게만 들릴 뿐이다. 그래서 더 쉽고,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시행착오'가 생략된 학원 수업, 아이들에게 수동적인 태도 심는다"

▲ '사교육 일번지' 강남 대치동의 한 학원. ⓒ연합
박 소장은 "늘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문제풀이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 과정이 생략될 수밖에 없다. 수동적인 학습 태도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를 잡게 된다"며 "학업 흡수력이 뛰어난 학생은 대치동에 왔을 때 이미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학업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은, 그 능력을 대치동 학원가에서 얻은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박 소장이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학교에서 해결하고, 부족한 것을 사교육을 통해 보완하는 식"으로 학습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대치동 교육', 화려한 성공 뒤에 숨겨진 다수의 실패에 주목해야"

이어 그는 "문제는 '대치동에 가면 뭔가 되겠지'라고 막연하게 기대하고 자녀를 학원에 밀어 넣는 부모들"이라며 "대치동의 화려한 성공신화 뒤에 숨겨진 다수의 실패 사례"에 주목하라고 강조했다.

연봉 18억 원을 받는 학원 강사에서 사교육 비판자로 거듭나서 화제가 됐던 이범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 역시 종종 비슷한 지적을 했다. 이 보좌관은 "성공사례만 알려지는 특성 탓에 사교육 효과가 크게 부풀려져 있다"며 "사교육 몰입은 굉장히 비효율적인 대응책"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