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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메니데스의 중요성

이윤진이카루스 2025. 3. 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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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르메니데스의 중요성

 

파르메니데스의 이론이 ㅡ 실재는 한 가지 변화 불가능한 덩어리라는 것과 인간의 변화 가능한 세계가 망상이라는 것 ㅡ 낳은 결과는 수용될 수 없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 결과는 상식과 충돌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 결과는 분명히 터무니없다. 따라서 파르메니데스는 그의 대담한 이론을 주시한 극소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조롱받았다. 우리가 들은 바, 어떤 사람들을 그를 심지어 미친 사람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 미친 사람이 회의적이고 주저하는 합리주의자인 우리에게 마술을 거는 데 성공했다; 서구 과학자들뿐 아니라 서구 신학자들에게 마술을 거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파르메니데스의 업적은 어디에 놓여있는가?

 

파르메니데스는 우주론자임과 동시에 형이상학적 실재론자였다고 나는 믿는다. 이 근본적인 태도를 그는 자신의 선배들로부터 계승했다; 주로 아낙시만드로스로부터 계승했다. 그리고 그는 이 세계 배후에 있는 세계에 ㅡ 이 현상의 세계 배후에 있는 실재 세계 ㅡ 대하여 탐구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를 또한 계승했다.

그러나 그의 접근방식에서 무엇이 새로웠던가? 나는 이 문제를 두 가지 소제목 아래에서 다루겠다: (1) 인식론과 논리; (2) 방법론적 귀결.

 

(1) 인식론과 논리

파르메니데스는 인식론적 사유를 창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 앞서서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알크마이온(Alcmaeon) 그리고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가 있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알크마이온처럼, 파르메니데스의 서시와 비교하여 개괄적일지라도 일종의 인식론적인 서문이나 서시로써 자신의 저서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여전히 살아있는 인식론적 서문들의 전통이 시작되었다; 십중팔구 그 전통이 티마이오스[Timaeus]에 대한 플라톤의 인식론적 서문에 의하여 강화되었기 때문인데 티마이오스[Timaeus]에서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에게 크게 빚을 졌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가 인식론을 창안하지 않았을지라도, 그는 인식론을 철학적 사유의 핵심으로 만든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는 합리주의적 강령을 선언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감각보다 이성을 선언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상식, 개연성, 경험과 전통보다는 순수한 사유와 비판적인 논리적 논증을 선언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파르메니데스 이전에 논증은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할지라도 그것이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자체보다 앞선 논증에 의하여, 또는 전통에 의하여 제시되는 이론을 개선하는 시도에서 그 논증은 함축적이었다. 예를 들어 신학에서 신인동형론적(神人同形論的) 사유에 대한 크세노파네스의 비판은 분명히 고도로 논증적이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 이전에 완벽하게 분명히 표현된 어떤 논증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파르메니데스의 합리주의로 인하여 최초로 논증적인 논리적 추론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합리주의는 비판적 추론인 논박이었다. 그가 제시하는 증거들은 귀류법(歸謬法: Reductio ad absurdum)에 의한 증거들이다: 그 증거들에 의하여 상정(想定)이 불합리성으로 환원된다.

그리하여 그는 제논(Zeno)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논리적 추론이 바로 그 높이와 미묘함의 깊이에 도달하는 데 단지 한 세대가 걸렸다. 그리고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존재가 유클리드적 공간이라고 (또는 다른 어떤 공간) 내가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유클리드 정리에서 절정에 달했던 방법의 출발점이 엘레아학파의 변증법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데 나는 A. 자보(Szabó) 전적으로 의견을 같이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업적과 (그리고 아마도 탈레스[Thales]의 업적) 별도로, 서구 사상사에서 암흑에서 빛으로의 이 돌파구인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의 서시에서 그것을 그렇게 기술한다) 분명하게 표현된 비판적 논증의 창안만큼 매우 중요한 것은 없다.

 

(2) 방법론적 귀결

이 돌파구의 귀결은 매우 중요한데 특히 방법론적 귀결이 그렇다.

파르메니데스는 표면적인 현상적 세계의 배후에 있는 실재에 대한 이론적 세계의 존재를 명시적으로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논증에 의하여 창조되어 현상적 세계와 전혀 다른 실재. 그리고 그는 실재에 대한 기준과 같은 것을 언명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는 실재적인 것을, 변하지 않는 것인 불변과 동일시했다.)

게다가 그는, 공격을 통해서일지라도 (내가 믿는 바), 다음과 같은 경험주의적 독단을 언명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이전에 인간의 감각에 들지 않았던 것은 인간의 지성 안에 없다.’

그는 또한 1차적 성질과 부차적 성질을 (내가 생각하기에 무효인) 구분하여 언명한 것과 유사한 것을 내놓았다.

방법론 자체 안에서 그는 최초의 연역체계를 창안하였고 그는 경합하는 다수의 이론들이라는 방법과 또한 경합하는 이론들에 대한 비판적 토론에 의하여 평가하는 방법을 도입하였다.

그는 결정론을 도입하였고 (극단적으로 엄격한 형태로) 설명을 논리적 연역과 연결시켰다.

다소 비의도적으로, 그는 또한 오류판정이 가능한 최초의 연역적 이론을 도입하였다. 아무튼 그는 현상을 설명하는 과제를 틀림없이 인정하였다; 그리고 그는 현상 설명을, 현상 배후에 있는 실재에 대한 이론과 결합시킬 필요를 알았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 다음과 같은 과학적 방법에 대한 더 전문화된 관념들이 숨어있었다:

불변에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불변은 설명항(explicans)으로서 사용될 수 있다.

합리적 과학은 불변 탐색이다.

()로부터 아무것도 출현할 수 없다.

엄청나게 다양한 현상들은 자체 배후에 틀림없이 한 가지 (혹은 아무튼 극소수 형태의) 실재를 지닌다. 그리하여 우리는 보존의 법칙에 (그래서 실체’, ‘질량에너지와 같은 관념에) 도달한다.

실재적인 것이 자체와 동일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과학은 방정식들을 통하여 표현될 수 있다. 현상의 변화는 변하지 않는 실재에 의하여 통제된다.

 

파르메니데스의 우주론은 그의 인식론, 논리 그리고 방법론과 함께 형이상학적 연구 강령을 구현한다고 언급될 (다소 자의적으로) 것이다; 그 용어 모두가 그의 다소 직관적인 형이상학적 우주론이자 세계에 대한 그의 형이상학적 견해로부터 흘러나오거나 그 우주론에 함축되어 있음을 그 용어가 우리에게 상기시킬 수 있다. 그 용어는, 연구와 관련된 새로운 문제들을 제시할 뿐 아니라 이 문제들에 대하여 어떤 종류의 해결책들이 만족스럽거나 수용 가능하게 느껴질 터인지를 또한 제안하기 때문에 연구 강령으로서 기술될 수 있다.

그런 포괄적 연구 강령의 기능은 몇 가지 면에서, 토마스 쿤(Thomas Kuhn)이 스스로 불행하게도 패러다임(paradigms)’이라고 지칭했던 저 지배적 과학이론에 귀속시키는 기능과 매우 유사하다: 연구 강령은, 그 강령이 지배적이 되면, 과학적 탐구에 지시적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연구 강령들은, 쿤의 지배적 이론들이 그러한 정도로, 과학의 일부를 형성하지 않는다. 연구 강령들은 특성상 형이상학적이고 인식론적이며 방법론적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연구 강령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분명하게 설명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그 연구 강령은 처음에 반대의견을 유발함에 의하여 발전해 원자론자들의 연구 강령이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다시 반대의견을 유발함에 의하여 물질의 연속성 이론에 대한 연구 강령으로 발전했다. 궁극적으로 파르메니데스의 연구 강령은 물질 구조에 대한 과학적 이론으로 발전하였는데 특히 현대 원자론으로 발전하였다.

 

13 파르메니데스의 진리 탐구가 남긴 유산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이 파르메니데스의 업적과 즉각적인 영향에 대하여 다소 합당한 설명을 내놓는다면, 제논(Zeno)과 엘레아학파로부터 엠페도클레스와 원자론자들 및 플라톤에 이르는 그의 후계자들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가 합리주의자였다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직관을 지닌 사람이었다; 많은 과학자들처럼, 그는 신비주의와 논리를 결합했다.

더욱 특히 원자론자들은 파르메니데스의 사유를 많이 유지했다. 원자론자들은 심지어, 정성적(定性的: qualitative) 변화와 내재적이거나 본질적 참신성들이 망상들이라는 파르메니데스의 교설을 유지했다: 인간의 망상들로 그렇게 구성되어 인간이 기만당하여 자신들의 감각기관에 의존하게 되며 유혹에 빠져 자신들의 감각 내용을 (자신들의 감각기관의 내용인) ‘지적(知的) 사유로 그래서 지식으로 착각하게 된다. 파르메니데스는 지식에 관한 감각주의적 이론을 파괴적으로 비꼬면서 공격하여 이 관념을 언명한다:

 

한때 실수를 많이 저지르는 감각기관의 혼합 속에 있는 것,

저것이 인간에게 진정한 지식처럼 보인다. 이유인즉 인간은 자신의

지적(知的) 정신과 자신의 감각기관이 지닌 본성이나 혼합을 동일한

것으로서 수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혼합에서 득세한 것을 각자 인간과 모든 인간에게서

사유라고 부른다.

 

이 반()-경험주의적 단편 글이 다음과 같은 유명한 경험주의적 금언을 답변으로 만들어낸 자극제였다고 나는 추측한다: ‘이전에 우리의 감각에 들지 않았던 것은 우리의 지성 안에 (혹은 인간의 정신 안에) 없다.’ 이유인즉 파르메니데스의 단편 글이, ‘이전에 인간이 지닌 많이 실수를 저지르는 감각 안에 들지 않았던 것은 인간의 (실수를 많이 저지르는) 지성 안에 없기때문에 소위 인간의 지식이 오류성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주의적 반응은 처음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인간이 척도다라는 (인간척도론[homo mensurα]) 교설이, 지식은 신()들에게만 있다고 치부하며 인간은 단지 추측하거나 (크세노파네스)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파르메니데스) 주장한 저 모든 사람들을 (헤라클레이토스, 크세노파네스, 파르메니데스) 겨냥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에 대항하여 프로타고라스는 지식의 문제들에서 우리가 인간의 지식을 우리의 척도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조적으로 엠페도클레스와 특히 원자론자들은 파르메니데스의 견해를 수용했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너무 둔하여 우리는 실재적인 것들의 ㅡ 원자론자들에게 관찰이 불가능한 원자들 ㅡ 움직임과 공간적 재배치를 관찰할 수 없다고 그들이 말했다. 우리가 지닌 감각의 둔감성 때문에 이 움직임들과 재배치들은 우리에게 정성적(定性的: qualitative) 변화로서만 나타나는데 그 변화는 파르메니데스에게서처럼 망상이라고 원자론자들이 말했다. 오직 파르메니데스적인 합리적 사유만, 우리를 도와서 우리가 이 망상을 초월하여 공동(空洞) 속에서 움직이는 원자들의 결과로서 그 망상을 해석할 수 있다.

그리하여 초기 원자론자들은, 파르메니데스처럼, 우리의 감각들에 우리가 의존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들은 또한 견해의 길에서 유래하는 파르메니데스의 이론을 접수했는데 그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감각기관들에 발생하는 것은 감각기관들이 우리의 환경과 혼합되는 것이다. (물론 파르메니데스의 견해의 길에서처럼, ‘빛과 어둠이나 뜨거움 및 차가움과 혼합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원자들로 구성된 물체들로부터 나오는 원자들과 혼합된다.)

그러나 감각 경험이 없다면,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개선하는 문제가 출현하지 않았을 터이어서 파르메니데스의 우주론을 논박하고 파르메니데스가 망상들로 생각한 것을 원자들의 움직임에 의하여 설명하는 원자론이 결코 출현하지 않았을 터임을 데모크리토스가 (갈레노스[Galen])에 따르면) 깨달았다. 그리하여 갈레노스가 전하는 바와 같이, 데모크리토스의 이성과 감각 사이의 유명한 대화가 탄생했다:

 

색깔이 있고 ㅡ 규약에 의하여; 달콤하고 ㅡ 규약에 의하여; 쓰다 ㅡ 규약에 의하여.

그러나 사실상 ㅡ 원자들과 공동(空洞)이다.

 

이 추론에 대항하여, 그는 ㅡ 데모크리토스 ㅡ 그래서 감각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상상했다:

 

불쌍한 지성! 네가 우리로부터 너의 자격증을 가져가서 우리의

몰락을 원한다?

우리를 아래로 던지면 너는 네 자신을 무너뜨린다!

Poor intellect! You take your credentials from us and want

our downfall? Casting us down you fall yourself!

 

그리하여 파르메니데스가 주장하는 두 가지 길은 이성의 길과 감각의 길이 되었다: 합리주의와 경험주의가 되었다. 이것들은 또한 1차적 성질과 부수적 성질 사이의 구분을 ㅡ 공간적 형태 즉, 연장과 (실재적이고 객관적인) 색깔 및 소리 사이의 (주관적이어서 망상적보다 나을 것이 없는) 구분 ㅡ 야기했다; 갈릴레오와 그 후배들에게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구분.

ㅡ 칼 포퍼 저, 아르네 피터슨 편집,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2007, 159-163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