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문명과 문화 충돌
물론 민족주의의 선배들이 있었다. 그러나 로마 문화도 고대 그리스 문화도 민족주의적은 아니었다. 이 고대 문화들 각각은 지중해 부근에서 그리고 근동에서 다양한 문화들이 충돌한 결과로서 출현했다. 이것은 그리스 문화에 대해서도 또한 사실인데 그리스 문화는 아마도 현재 서구 문화에 가장 중요하게 기여했다: 자유의 개념, 민주주의의 발견 그리고 궁극적으로 현대 자연과학을 낳은 비판적이고 합리적 태도를 나는 의미한다.
심지어 우리에 전해져 내려오는 그리스 문예 작품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들인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Odyssey)도 문화 충돌을 유창하게 선언하는 것들이다; 정말로 이 충돌은 그 작품들의 실제적 주제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작품들은 합리적이고 설명적 태도 두 가지 모두를 증언한다. 사실상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나오는 신들(gods)의 정확한 기능은, 이해될 수 있는 심리학적 이론을 이용하여 그렇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것들을 (아킬레스와 아가멤논 사이의 불화와 같은) 설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무나 인간적인 이 신적(神的) 형상들의 ㅡ 신적 형상들인데 그 형상들이 지닌 인간적 약점들이 분명하고 또한 때때로 비판적으로 판단되는 ㅡ 이해관계들과 질투를 통하여. 전쟁의 신인 아레스(Aries)는 특히 실패한다. 그리고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Odyssey) 모두에서 그리스인이 아닌 사람들은 적어도 아카이아인들(Achaens)인 그리스인들과 꼭 마찬가지로 동정적으로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비판적이고 계몽된 태도는, 페르시아의 공격에 대항하는 그리스의 자유 투쟁의 영향을 받아서 자유라는 관념이 최초로 경축되었던 저 작품들에서 다시 출현한다; 특히 아이스킬로스(Aeschylus)와 헤로도토스의 작품들에서. 그것은 민족적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개인적 자유이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적 아테네인들의 자유인데 페르시아의 대왕들의 신민들이 견딘 자유의 결핍과 대비된다. 이런 맥락에서 자유는 단순히 이념이 아니라, 삶을 낫게 그리고 더 살아갈 가치가 있게 만드는 삶의 한 방식이다. 아이스킬로스와 헤로도토스 모두가 이것을 분명히 했다. 그들은 모두, 자유의 문화와 독재의 문화인 이 서구 문화와 동방 문화의 충돌에 대한 증인들로서 글을 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이 충돌이 가져온 계몽적 효과를 증언하는데 그 효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의 문화를 의식적이고 비판적으로 거리를 두어 평가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전통적 신화들을 합리적이고 비판적으로 평가하게 되었다. 이오니아(Ionia)에서 (소아시아의 일부) 이것은 비판적 우주론을, 우주 체계의 구조에 관한 비판적인 사변적 이론들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연현상들에 대한 참된 설명의 탐구인 자연과학을 낳았다. 자연과학이, 자연에 대한 신화적 설명에 대한 합리적이고 비판적 태도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서 발생한다고 우리는 아마도 말할 것이다. 내가 합리적 비판을 말할 때, 나는 진리의 관점에서부터의 비판을 의미한다: ‘이것은 참인가?’ 그리고 ‘이것은 참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들의 관점.
자연현상들에 대한 이 신화적 설명의 진실성을 의문시함에 의하여, 그리스인들은 자연과학들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이론들을 창시했다. 그리고 선사시대에 관한 신화적 보고서들의 진실성을 의문시함에 의하여, 그들은 역사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역사기록학의 아버지로서 올바르게 지칭되는데 역사 연구의 선배만은 아니었다. 문화 충돌의, 특히 그리스와 이집트 그리고 메데-페르시아 문화들 사이 충돌의 비판적이고 정보 제공적 본성을 실제로 발견한 사람은 그였다.
이 지점에서 나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성 작품에서 일화를 인용하고 싶은데 그 작품은 실제로 그리스인들이 근동의 주민들, 특히 페르시아인들과 군사적 및 문화적으로 충돌한 역사이다. 이 일화들에서 헤로도토스는, 합리적 사람은 심지어 처음에 당연시하는 저것들이 의문시될 것임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 극단적이고 다소 기괴한 사례를 이용한다.
헤로도토스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III, 38): ‘다리우스가 왕이던 어느 때 다리우스는 자신의 궁정에 있는 그리스인들을 불러서 돈을 얼마나 주면 사망한 그들의 아버지의 시신을 먹을 각오가 되겠느냐고 물었다. 어떤 것도, 그러나 절대적으로 어떤 것도 전혀 그들을 그렇게 하도록 유혹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리스인들은 답변했다. 그다음 다리우스는 자신들의 아버지 시신을 먹는 습관이 있던 인도 민족인 칼라티에인들(Kallatiers)을 불러서 통역이 있던 그리스인들의 입회하에 돈을 얼마나 주면 사망한 그들의 아버지의 시신을 화장하는 데 동의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칼라티에인은 공포의 비명을 지르면서 다리우스에게 그런 불경죄를 심지어 입 밖에 내지도 말아 달라고 탄원했다. 저것이 세상의 방식이다.’
이 일화를 자신의 동시대 그리스인들에게 전하면서 헤로도토스는 그들에게 외국의 습관을 존중할 것을 가르치려고 의도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당연시하던 것들을 비판할 수 있도록 만들려고 의도했다. 이런 종류의 문화적 대립을 통하여 그 자신이 분명히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는 자기 경험을 독자와 공유하기를 원했다.
관습과 전통적 신화들 사이의 유사점들과 차이점들은 그를 매료했다. 나의 추측이자 나의 가설은, 바로 이 차이점들이 그의 세대들과 후속 세대들에 결정적으로 중요하게 되었고 내가 추측하기에 유럽 문화에 그렇게 결정적 영향을 ㅡ 물론 많은 다른 중요한 영향과 함께 ㅡ 미친 저 비판적이고 합리적 태도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121-4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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