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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와 역사의 의미

이윤진이카루스 2025. 9. 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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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와 역사의 의미

 

삶의 의미역사의 의미사이의 유사점은 연구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나는 삶의 의미라는 표현에서 의미라는 단어의 모호성을 먼저 검토하겠다. 이 표현은, 더 심오하고 숨겨진 의미라는 ㅡ 경구(警句: epigram)의 혹은 시()의 또는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신비의 합창(Chorus Mysticus)이라는 숨겨진 의미와 같은 것 ㅡ 뜻으로 때때로 사용된다. 그러나 몇몇 시인의 그리고 또한 혹시 몇몇 철학자의 지혜가, ‘삶의 의미라는 표현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쳤다; 삶의 의미가, 숨겨진 그리고 혹시 발견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 우리 자신이 우리의 삶에 부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우리의 과업을 통하여, 우리의 능동적 행위를 통하여, 우리 삶의 방식 전체를 통하여, 그리고 우리의 친구들과 우리의 동료 인간들에 대하여 그리고 세계에 대하여 우리가 채택하는 태도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발견으로 떠오를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삶의 의미 추구는 윤리적 질문으로 ㅡ 나의 삶을 유의미하게 만들기 위하여 나는 나 자신에게 어떤 과제들을 설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ㅡ 변한다; 혹은 칸트가 그것을 표현한 바와 같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부분적 답변은, 자유와 자율에 대한 칸트의 관념과 법률 앞에서 평등이라는 관념에 의해서만 제한되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상호 간의 존중이라는 관념에 의해서만 제한되는 다원론이라는 칸트의 이념에서 주어진다; 지식을 통한 자기-해방이라는 이념처럼,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이념들.

역사의 의미라는 표현도 유사한 방식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 이것 또한, 세계역사의 기초를 이루는 비밀이나 숨겨진 의미라는 뜻에서 흔히 해석되었다; 또는 혹시 역사에서 본질적인 숨겨진 방향이나 진화적 경향이라는 뜻에서; 또는 세계가 지향하여 애쓰고 있는 목적이라는 의미에서. 그러나 삶의 숨겨진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그러한 것처럼, 숨겨진 역사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잘못 생각된 것이라고 내가 믿는다: 숨겨진 역사의 의미를 탐색하는 대신,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우리의 과제로 삼을 수 있다. 우리는 정치 역사에 ㅡ 그리고 그리하여 우리 자신에 ㅡ 목표를 부여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정치 역사에서 더 심오하고 숨겨진 의미를 찾는 대신, 무엇이 가치 있고 인간적 정치 역사의 목표들이 될 수 있을 터인지 우리가 자문할 수 있다: 인류에게 합당하고 혜택이 되는 목표들.

나의 첫 번째 논지는, 그리하여, 역사 안에 숨겨진 것이라는 뜻에서 혹은 역사관련 하느님의 비극 안에 숨겨진 도덕적 교훈이라는 뜻에서 혹은 역사에 관한 몇 가지 진화적 경향이나 법칙이라는 뜻에서 또는 혹시 어떤 위대한 역사가나 철학자나 종교 지도자에 의하여 발견될 어떤 다른 의미라는 뜻에서 역사의 의미 말하기를 우리가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첫 번째 논지는 부정적이다. 역사에 숨겨진 의미가 없다고, 그리고 자신들이 그런 의미를 발견했다고 믿는 저 역사가들이나 철학자들은 자기들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그러나 나의 두 번째 논지는 매우 긍정적이다. 우리 자신이 정치 역사에 한 가지 의미를 ㅡ 혹은 더 정확하게 복수의 의미들 ㅡ 부여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합당하고 가치가 있는 의미들.

그러나 나는 저것보다 훨씬 더 멀리 나아간다. 이유인즉 나의 세 번째 논지는 역사로부터, 역사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하거나 우리 자신을 겸손한 윤리 개혁자들로서 확립하려는 시도가 헛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배울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윤리적 목표들이 있는 역사적 힘을 과소평가한다면 우리는 결코 역사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 윤리적 목표들은, 처음 그 목표들을 생각했던 사람들에 의하여 예견되지 못하고 흔히 지독한 결과들을 초래했다. 그러나 몇 가지 국면에서, 미국혁명에 의하여 혹은 칸트에 의하여 재현된 바와 같이, 우리는 계몽사조의 목표들과 이상들에 이전 세대보다 더 근접했다. 더욱 특히 다원론적이거나 열린사회라는 이념인 지식을 통한 자기-해방이라는 이념과, 영구적 평화를 확립함에 의하여 끔찍한 전쟁들의 역사를 종식시킨다는 관념은 혹시 여전히 요원한 이념들일지라도 거의 우리 모두의 목표와 희망이 되었다.

이 목표들에 우리가 더 근접했다고 말함에 의하여, 물론 나는 우리가 곧 혹은 언제가 그 목표들에 도달할 것이라고 모험적으로 예언하고 있지 않다. 틀림없이 우리는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Erasmus of Rotterdam), 이마누엘 칸트, 프리드리히 쉴러, 벤담(Bentham), 밀 부자(Mills)와 스펜서(Spencer), 그리고 독일에서 베르타 폰 주트너(Berta von Suttner)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푀르스터(Friedrich Wilhelm Förster)가 지향하여 싸운 평화의 이념은 오늘날 모든 문명국가의 외교관들과 정치가들에 의하여 국제정치의 목표로서 공개적으로 인정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기대되는 평화라는 관념을 위한 저 위대한 투사들을 뛰어넘고 우리가 25년 전에 기대할 수 있었을 터인 것을 뛰어넘는다.

인정되는 바와 같이, 이 커다란 성공은 매우 부분적인 것일 뿐이고 그 성공은 에라스무스의 이념이나 칸트의 이념에 의해서라기보다 핵전쟁은 인류를 끝장낼 터라는 깨달음에 의하여 실현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평화가 지금 일반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우리의 정치적 목표로서 인정된다는 사실과 우리의 난제들은 주로 지금까지 외교관들과 정치가들이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찾지 못함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나는 여기서 저 난제들을 토론할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세 가지 논지를 더 상세하게 설명하고 토론하면 그 난제들을 이해하고 올바르게 볼 수 있다.

정치적 역사에 숨겨진 의미가 없고 ㅡ 우리가 아마도 찾아서 발견할 의미가 없다는 ㅡ 숨겨진 경향과 같은 것도 없다는 부정적 주장인 나의 첫 번째 논지19세기의 다양한 진보 이론들을 ㅡ 예를 들어 콩트, 헤겔 그리고 마르크스의 이론들 ㅡ 부인한다. 그러나 그 논지는, 예를 들어 플라톤과 지오바니 바티스타 비코(Giovanni Battista Vico), 니체 및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제기된 고전적 순환 이론들뿐 아니라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20세기 서양의 몰락(Decline of the West) 이론도 부인한다.

나는 이 모든 이론을 잘못 판단된 것으로서 그리고 심지어 어떤 면에서 무의미한 것으로서 간주한다. 이유인즉 그 이론들을 잘못 표현된 질문에 답하기 때문이다. ‘진보’, ‘후퇴’, ‘몰락등등과 같은 관념들은 가치 판단을 암시한다; 그리하여 이 모든 이론은, 역사적 진보나 후퇴를 혹은 진보와 후퇴로 구성된 순환을 예언하든, 가치들의 어떤 규모를 틀림없이 필수적으로 언급한다. 그런 가치들의 규모는 도덕적이거나 경제적 혹은 아마도 미학적이거나 예술론적일 수 있다; 그리고 후자(後者) 가치들의 영역 안에서 그런 가치들의 규모는 음악이나 회화 혹은 건축이나 문학과 관련될 수 있다. 그 규모는 과학이나 기술의 영역들과 또한 관련될 것이다. 가치들의 또 다른 규모는 우리의 건강이나 사망률의 통계에 그리고 또 다른 규모는 우리의 도덕성에 근거할 것이다. 분명히 우리는 이 분야 중 한 가지나 몇 가지로 진보할 수 있고 동시에 다른 분야들에서 퇴보하여 바닥에 닿을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독일에서 바흐의 위대한 작품의 시기인 1720-50년에 문학이나 회화에서 아주 뛰어난 작품들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리고 몇몇 분야에서 ㅡ 가령 경제학이나 교육 분야들에서 ㅡ 진보는 틀림없이 다른 분야들에서의 퇴보로 흔히 대가를 치른다; 자동차 교통의 속도와 확산 및 빈도가 안전을 희생하여 대가를 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제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이거나 경제적 가치들의 실현에 참인 것은, 물론, 특정 도덕적 가치들에 대하여 그리고 특히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의 근본적 공준(公準: postulates)에 대해서도 또한 성립한다. 그리하여 미국의 많은 시민은, 남부 주들에서 노예제도가 지속되는 것이 용인될 수 없고 그들의 양심이 명령하는 것과 양립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혹독한 전쟁으로 그리고 번성하고 독특한 문명을 파괴함으로써 노예를 해방하는 것에 대가를 치러야 했다.

유사하게, 과학의 진보는 ㅡ 그 자체가 부분적으로 지식을 통한 자기-해방이라는 이상의 결과 ㅡ 우리의 삶을 연장하고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진보로 인하여 우리는 그 삶을 핵전쟁의 위협 하에서 보내게 되어서 그 진보가, 모든 것을 감안하면, 인간의 행복과 만족에 기여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가 진보할 수 있고 동시에 퇴보할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진보에 대한 역사관련 이론들과 퇴보의 이론들 그리고 순환에 관한 이론들과 심지어 파멸에 대한 예언들 모두는, 그것들이 자체의 문제들을 야기하는 방식에서 분명히 틀렸기 때문에, 동등하게 옹호될 수 없다. 그것들 모두는 사이비-과학 이론들에 시달린다 (내가 다른 곳에서 밝히려고 시도한 바와 같이). 내가 역사주의적(historicist)이론들로 명명했던, 역사에 관한 이 사이비-과학이론들에, 그 이론들 자체의 다소 흥미로운 역사가 있다.

호메로스의 역사 이론은 ㅡ 구약성경의 창세기에서 역사 이론과 같이 ㅡ 역사적 사건들을, 매우 변덕스러운 인간-같은 신들(: deities)이 지닌 예측 불가능한 의지의 즉각적 표현으로서 해석한다. 이 유형의 이론은, 나중의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우세한 하느님의 관념과 양립될 수 없었다. 그리고 정말로 정치 역사를 ㅡ 강도질, 전쟁, 약탈, 강탈 그리고 항상 증가하는 파괴 수단들의 역사 ㅡ 하느님의 직접적 업적으로서 간주하는 것은 불경죄나 다름없다. 역사가 자비로운 하느님의 업적이라면, 하느님의 의지가 우리에게 난해하고 이해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다는 조건으로만 그 역사는 그럴 수 있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역사에서 자비로운 하느님의 직접적 행동을 보려고 노력한다면, 우리가 역사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리하여 역사의 의미를 실제로 우리에게 이해 가능하도록 만들려고 (역사의 의미를 이해 불가능하게 내버려두기보다) 시도하는 종교는, 역사의 의미를 전능한 하느님의 신성한 의지의 직접적 계시로서가 아니라 몇몇 선하고 몇몇 악한 권력들 ㅡ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작용하는 권력들 ㅡ 사이에서의 갈등으로서 이해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이것이, 성 아구스티누스(St Augustine)가 자기 저서 신국(神國: De Civitate Dei)에서 시도한 것이다. 그는 구약성서에 의해서 뿐 아니라 플라톤에 의해서도 또한 영향을 받았는데 플라톤은 정치 역사를, 원래 성스럽고 완벽하고 조화롭고 공산주의적 도시국가가 은총으로부터 타락하는 역사로서 해석했는데 그 도시국가의 도덕적 쇠퇴는 인종적 타락 및 그 결과들에 의하여 발생했다: 지도적 귀족계급의 세속적 야망과 이기심에 의하여 발생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에 미친 또 다른 중요한 영향은 그 자신의 마니교(Manichean) 기간에서 유래한다: 세상을, 오르무즈드(Ormuzd)와 아리만(Ahriman)에 의하여 인격화된 선한 원칙들과 사악한 원칙들 사이의 싸움터로서 해석한 폐르시아적-마니교적 이단으로부터.

이 영향들로 인하여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인류의 정치 역사를, 하느님의 나라(Civitate Dei)라는 선한 원칙들과 악마의 나라(civitas diaboli)라는 사악한 원칙들 사이의 ㅡ 다시 말해서, 천국과 지옥 사이의 ㅡ 갈등으로서 기술하게 되었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거의 모든 나중 이론들은 ㅡ 아마도 진보에 대한 더 우활한(迂闊: naive) 이론 중 몇 가지 이론들을 제외하고 ㅡ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거의 마니교적인 이 이론들로 거슬러 추적될 수 있다. 현대 역사주의적 이론 대부분은, 그의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 범주들을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의 언어로 번역할 따름이다. 그리하여 그 이론들은 하느님과 악마를, 도덕적으로 혹은 생물학적으로 선량한 종족들로 통치하기에 적합한 인종들과 도덕으로나 생물학적으로 나쁘거나 통치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종족들로 대체할 따름일 것이다; 혹은 선량한 계급들과 나쁜 계급들로 ㅡ 무산자들과 자본가들. (‘우리 공산주의자는. 자본주의란 노동자들이 노예 상태로 전락하는 지옥이라고 믿는다라고 1970년경 흐루쇼프[Khruschchev]가 서술한다.) 이것으로 인하여 아우구스티누스 이론의 특징은 변하지 않는다.

이 이론들에서 올바를 수 있는 극소수의 것은, 우리 자신의 이념들과 이상들이 우리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힘들이라는 그 이론들에 있는 본질적 전제이다. 그러나 훌륭하고 고귀한 이념들도 역사에 파멸적 영향을 때때로 미칠 것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반대로, 나쁜 것을 의도했지만 좋은 것으로 나타나는 이념이자 역사적 힘을 우리가 때때로 발견할 수 있다는 것 (버나드 드 맨더빌[Bernard de Mandeville]이 아마도 최초로 안 바와 같이); 실수가 진리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리가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래서 우리는, 고도로 다원론적인 우리의 역사를 흑백으로 그리는 것으로서 혹은 몇 가지 대비되는 색깔로 채색된 그림으로서 간주하는 것을 신중하게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역사에, 진보나 순환이나 파멸을 예측하기 위하여 혹은 유사하게 역사와 관련하여 예측들을 실행하기 위하여 이용될 수 있는 역사관련 법칙들을 자의적으로 부여하지 않도록 우리는 훨씬 더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반 대중은, 특히 헤겔 이후 그리고 슈펭글러 이후는 훨씬 더, 진정한 학자는 ㅡ 현자나 철학자 또는 역사가 ㅡ 점술가나 점쟁이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을 기대하고 요구한다. 그런 사람이 미래를 예언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고 요구한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이 요구로 인하여 자체에 대한 공급이 생긴다. 사실상 그 고집스러운 요구로 인하여 예언가들이 크게 과잉으로 생겨났다. 많이 과장하지 않고도 우리는, 오늘날 명망 있는 모든 지성인이 역사관련 예언의 기술에서 전문가가 되려는 억제할 수 없는 의무감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을 터이다. 그리고 그가 지닌 비관론의 심연은 (이유인즉 비관론자가 되지 않으면 전문가의 예의가 거의 훼손되기 때문에), 그가 내놓은 심오한 계시들 및 일반적 위엄과 쌍벽을 이룬다.

점치기를 그 자체가 속하는 곳에 ㅡ 야외전시장 ㅡ 놓아두려고 시도할 적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에게 물론, 점술가들이 진리를 예언하는 적이 없다고 말하려는 의도가 없다: 그 점술가들의 예언들이 충분히 모호하면, 참인 그들 예언의 숫자는, 거짓인 그들의 예언 숫자를 심지어 능가할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유일한 것은, 슈펭글러가 그렇게 많은 수요를 창출한 저 야망적인 역사적 예측들과 같은 것을 우리가 창출하는 데 아마도 도움을 줄 과학적이거나 역사적 혹은 철학적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관련 예측들이 사실이 될지 아닐지는, 방법의 문제도 아니고 지혜나 직관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우연의 문제이다. 이 예측들은 자의적이고 우연적이고 비과학적이다. 그러나 그 예측 중 어떤 예측도 강력한 정치 선전적 효과를 이룩할 가능성이 높다. 충분한 숫자의 사람들이 서구의 쇠퇴를 신뢰하면, 서구는 쇠퇴할 것이다; 서구의 쇠퇴에 대한 저 정치적 선전이 없었을지라도, 서구는 계속해서 번창했을 터이다. 예언자들, 심지어 거짓 예언자들도 산을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관념들, 심지어 틀린 관념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다행히도 올바른 관념들로써 틀린 관념들과 싸우는 것이 가능할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것에서 나는 몇 가지 다소 낙관론적인 관념들을 표현하겠다; 그러나 그 관념들은, 크게 강조하여, 미래에 대한 예언들로서 간주될 수 없는데 이유인즉 나는 미래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것을 안다고 믿는 사람들을 내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로부터 배우는 우리의 능력에 관해서만 나는 낙관적이다; 좋고 나쁜 많은 것들이 가능했고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더 좋은 세상을 희구하고 그 세상을 위하여 노력하고 일하는 것을 포기할 이유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나의 두 번째 논지, 우리가 정치 역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목표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가지 의미와 한 가지 목표이거나 몇 가지 의미들과 목표들인데 그것들은 우호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것들이다.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두 가지 다른 방식들로 이해될 수 있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방식은, 우리의 윤리적 개념들에 근거하여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의미를 부여한다라는 표현의 덜 근본적인 또 다른 의미에서, 칸트적 철학자인 테오도르 레싱(Theodor Lessing)은 역사서술을, ‘무의미에 의미를 부여하기로서 (Geschichte als Sinngebung des Sinnlosen) 기술했다. 테오도르 레싱의 논지는 (나의 논지와 다를지라도 내가 동의하고 싶은) 이렇다: 역사가 본질적으로 무의미할지라도, 역사에 관하여 서술된 전통적 저서들에게 우리는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관념들이 ㅡ 가령, 자유의 관념과 지식을 통한 자기-해방의 관념 ㅡ 역사의 굴곡진 길을 통하여 어떻게 진행했는지를 질문함에 의하여. ‘진보라는 단어를 진보의 법칙이라는 의미에서 사용하지 않도록 우리가 조심한다면, 어떤 진보를 우리가 이룩했는지 혹은 어떤 좌절들을 우리가 경험했는지 그리고 특히 특정 방향들로 진보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를 질문함에 의하여 전통적인 역사에 우리는 심지어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우리가 지불한 그 대가의 일부는 우리가 저지른 많은 비극적인 오류들에 ㅡ 우리의 목표들에서의 오류들과 우리의 수단 선택에서의 오류들 ㅡ 의하여 밝혀진다.

유사한 생각이, 역사주의를 배격했고 그와 더불어 역사적 진보에 대하여 주장되는 법칙들을 배격했지만 역사에서의 사건들에 윤리적이고 경제적이고 정치적 진보라는 기준을 적용하여 비판적 관점에서 그 사건들을 판단함을 회피하지 않았던 위대한 영국 역사가 H. A. L. 피셔(Fisher)에 의하여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피셔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나보다 더 현명하고 박식한 사람들은 역사에서 책략, 리듬, 미리 결정된 모형을

감지했다...파도가 이어지는 것과 같이 한 가지 비상 상황이 또 다른 비상 상황

으로 이어지는, 그 사실이 독특하기 때문에 그 사실과 관련하여 역사가에게

일반화들이 있을 수 없고 다만 한 가지 안전한 규칙만 있을 수 있는 하나의 위대

한 사실만 나는 볼 수 있을 뿐이다: 역사가가 인정해야 하는...우발적인 것과 예견

되지 않는 것의 작용이라는 규칙.

 

여기서 피셔는, 발전과 관련하여 내재적 경향들은 없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계속해서 말한다:

 

이것은 냉소와 절망의 교설이 아니다. 진보에 관한 사실은 역사의 기록장에 크고

명백하게 서술된다; 그러나 진보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다. 한 세대가 얻은 토대 를 다음 세대가 잃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어떤 진보는 ㅡ 여기서 피셔는 진보에 의하여, 자유와 정의의 분야에서 사회적 개량을 그리고 또한 경제적 진보를 의미한다 ㅡ 전쟁과 권력-정치적 싸움이 불합리하고 잔인하게 출현함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혹시 이 진보의 지속을 담보할 역사적 법칙들이 없기 때문에, 진보의 미래 운명은 ㅡ 그리고 그 운명과 함께 우리 자신의 운명 ㅡ 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렸을 것이다.

피셔가 옳기 때문만이 아니라, 역사에 자체의 본질적이고 지속적인 ㅡ 기계적이든 변증법적이든 아니면 구조적이든 ㅡ 법칙들이 있다는 관념보다 역사가 부분적으로 우리에 달렸다는 그의 관념이 어떻게 훨씬 더 유의미하고 고귀한지를 내가 밝히기를 원하기 때문에도 나는 피셔를 인용했다; 혹은 역사의 꼭두각시-놀음에서 우리가 꼭두각시라는 관념보다 역사가 부분적으로 우리에 달렸다는 그의 관념; 혹은 우리가 선과 악의 권능과 같은 초인간적인 역사적 권능들의 희생자들이나, 무산자들과 자본가들의 집단적 힘의 희생자들이라는 관념보다 역사가 부분적으로 우리에 달렸다는 그의 관념.

그리하여 역사나 역사 저서들을 저술하고 읽으면서 우리는 역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역사에 의미 부여하기의 더 중요하고 다른 의미로 선회한다: 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과제들을 정할 수 있다는 관념을 의미한다; 개인적 삶을 영위하는 개인들로서뿐 아니라 시민으로서 그리고 특히, 역사의 무의미한 비극을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서 간주하여 그 비극 안에서 미래의 역사를 유의미하게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는 세계의 시민들로서 우리 자신에 과제를 정할 수 있다는 관념. 그 과제는, 주로 좋은 의도들과 좋은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비극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극히 어렵다. 그리고 내가 지식을 통한 자기-해방이라는 계몽사조와 비판적 합리주의라는 이념을 지지하기 때문에, 심지어 계몽사조와 합리주의라는 관념들이 가장 지독한 결과들을 초래했다는 요점을 강조하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더 필요하다고 나는 느낀다.

프랑스 혁명을 환영했던 칸트에게, 자유와 평등과 형제애의 이름으로 극악무도한 범죄들이 저질러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였다: 십자군 원정에서, 마녀사냥의 다양한 기간들에서 그리고 30년 전쟁 동안 기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극악무도한 범죄들과 꼭 마찬가지로. 그래서 칸트와 함께 우리는, 프랑스 혁명의 공포로부터 교훈을 얻을 것인데 너무 자주 반복될 수 없는 교훈이다: 광신주의는 항상 사악하여 다원론적 사회와 양립될 수 없다는 그래서 우리는 여하한 형태의 광신주의도 반대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ㅡ 심지어 그 목표들이 광신적으로 추구될지라도 본질적으로 윤리적으로 반대할 수 없을 때 그렇고 그 목표들이 우리 자신의 개인적 목표들과 일치할 때 훨씬 더 그렇다 ㅡ 교훈. 광신주의의 위험들 및 광신주의를 어떤 상황에서도 반대하는 우리의 의무는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들이다.

그러나 광신주의와 광신주의의 무절제를 피할 수 있는가? 역사는 우리에게, 저 윤리적 목표들 자체가 광신적으로 신봉되고 지지받을 때만 역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윤리적 목표들에 의하여 이끌어지는 모든 시도가 틀림없이 허사라고 가르치지 않는가? 그리고 모든 종교와 모든 혁명의 역사는, 윤리적 관념에 대한 광신적 신봉이 그 관념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그 관념을 그 관념의 바로 반대상황으로 반복적으로 변환시킨다는 것을, 우리에게 밝히지 않는가? 그 광신적 신봉으로 인하여 우리가 자유의 이름으로 모든 감옥 문을 열고, 우리의 새로운 자유에 대한 새로운 적대자들을 가두고 거의 즉각 그 문들을 닫게 될 따름임을 우리에게 밝히지 않는가?. 그 광신적 신봉으로 인하여 우리는 모든 사람의 평등을 가르침 받게 되지만 또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평등하게 될 것임을 우리에게 밝히지 않는가? 그리고 이 평등은, 덜 평등했던 조상들 몇몇의 불평등을 3대 및 4대 자손들에게 가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는 질투하는 신(: god)이 아닌가? 이 평등으로 인하여 우리는 모든 사람의 형제애를 선언하게 되지 않는가; 그리고 또한 우리가 우리 형제들의 보호자들이라고 ㅡ 마치 그 형제들을 지배하려는 우리의 소망이 형제 살해죄일 것이라고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인 양 ㅡ 선언하게 되지 않는가? 역사는 우리에게, 모든 윤리적 관념이 해롭고 그 관념 중 최고의 관념들은 흔히 가장 해롭다고 가르치지 않는가?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그리고 더 최근에 아프리카의 혁명들로부터 계몽사조의 이념들과 나은 세상에 대한 꿈들은 헛소리일 뿐 아니라 범죄성 헛소리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가 배울 수 있지 않은가?

이 의문들에 대한 나의 답변은 나의 세 번째 논지에 담겨있다: 우리는 서유럽과 미국의 역사로부터, 우리의 역사에 윤리적 의미나 목표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항상 헛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저것은, 우리가 어느 때고 우리의 윤리적 목표들을 실현했거나 어느 때고 완전히 실현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의 주장은 매우 겸허하다. 내가 말하는 유일한 것은, 윤리적으로 고취된 사회적 비판은 어떤 곳들에서 성공적이었다는 것과 그 비판이 적어도 당분간 사회적 및 공적 생활의 최악 결점 중 몇 가지 결점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세 번째 논지는 이렇다. 나의 세 번째 논지는 역사의 모든 비관론적 견해를 부인하기 때문에 낙관적이다. 이유인즉 순환적 진보와 쇠퇴에 관한 모든 이론은, 우리 자신이 역사에 윤리적 목표인 윤리적 의미를 성공적으로 부과한다면, 분명히 반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리적 목표들을 부과하기 위한, 사회적 관계들을 성공적으로 향상

시키기 위한 매우 확정적인 특정 전제조건들이 있다. 사회적 이상들과 사회적 비판은, 사람들 자신의 견해들과 다른 견해를 존중하는 것을 사람들이 배우고

사람들 자신의 정치적 목표들에서 냉철하고 실재론적이 되기를 배운 곳에서만

성공에 의하여 보상받는다; 지구상에서 천국을 창조하려는 시도가 우리의 동료들에게 쉽게 우리의 지구를 지옥으로 바꾸어놓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배운 곳에서.

이 교훈을 배운 최초의 국가는 스위스와 영국인데 거기서 지구상에 천국을 창조하려는 몇 가지 유토피아적 시도가 환멸을 초래했다. 거대한 현대 혁명 중 최초의 혁명인 영국혁명은 천국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찰스 I세의 처형과 크롬웰의 독재를 초래했다. 철저하게 환멸을 느끼고 영국은 자체의 교훈을 배웠다: 영국은 법치의 필요성을 신봉하도록 전향했다. 권력에 의하여 영국에 로마가톨릭을 재도입하려는 제임스 II세의 시도는 저 태도의 암초에 좌초했다. 종교적 및 시민적 싸움에 지쳐서 영국은, 존 로크와 계몽사조의 다른 선구자들의 종교적 관용을 지지하는 주장들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고 강요된 종교에서 가치가 있을 리 없다는 원칙을 수용했다; 우리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할지도 모르지, 사람들이 지닌 신념들에 반하여 사람들을 교회로 강제로 끌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원칙 (교황 이노센트 XI세가 표현한 바와 같이).

미국혁명은 광신주의와 불관용이라는 함정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스위스와 영국 및 미국이 모두 몇 가지 환멸적인 정치적 경험들을 겪어야 했다는데 민주주의적 개혁들에 의하여, 혁명과 광신주의와 독재 및 강제를 수단으로 도달될 수 없었을 터인 윤리-정치적 목표들을 이룩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우연적일 리가 없다.

아무튼 영어권 민주주의 국가들로부터 뿐 아니라 스위스와 스칸디나비아의 역사로부터도 또한, 우리가 우리에게 목표들을 정할 수 있다는 것과 우리가 그 목표들을 때때로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ㅡ 이 목표들이 너무 광범위하지도 않고 너무 협소하지도 않으며 다원론적 정신으로 구상된다면 ㅡ 다시 말해서, 그 목표들이 현격하게 다른 관념들과 믿음들을 지닌 모든 종류의 사람들의 자유와 신념들에 대한 존중을 구체화한다는 것을 우리가 배울 수 있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역사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음이 밝혀진다; 그것이, 정확하게, 나의 세 번째 논지이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 138-48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