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사조와 낭만주의
계몽사조와 낭만주의에 한 가지 중요한 요점이 공통적으로 있다: 두 가지 사상 모두는 인류의 역사를 주로 투쟁하는 이념들과 신념들의 역사로서 본다; 이념적 갈등들의 역사로서 본다. 이런 면에서 그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계몽사조와 낭만주의가 그렇게 크게 갈라지는 것은 이 이념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서 이다. 낭만주의는 신념의 힘과 같은 것을 귀중하게 여긴다: 낭만주의는 신념의 지닌 열정과 깊이를, 신념이 지닌 진리라는 문제와는 별개로, 귀중하게 여긴다. 이것이 낭만파가 계몽사조를 그렇게 경멸하는 실제적 이유인 듯이 보인다. 이유인즉 계몽사조는 신념과 신념이 지닌 힘을 어느 정도로 불신하며 바라보기 때문이다. 계몽사조는 다른 사람들이 지닌 신념에 대하여 관용과 심지어 존중을 가르칠지라도, 계몽사조의 가장 큰 가치는 신념이 아니라 진리이다. 그래서 계몽사조는, 절대적 진리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을지라도, 절대적 진리와 같은 것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오류들을 수정함을 통하여 그 진리에 근접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사실상 계몽사조라는 철학의 근본적 논지이다; 그리고 이것에, 낭만파의 역사관련 상대론에 대한 계몽사조의 가장 큰 대비점이 놓인다.
그러나 진리에로의 접근은 쉽지 않다. 진리로 향하는 한 가지 방법만 있는데 오류를 통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저지르는 오류를 통해서만 우리가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저지르는 오류들을, 진리를 향한 디딤돌로서 평가할 준비가 되고 심지어 간직할 준비가 된 사람만 그리고 자신의 오류들을 탐색하는 사람만 배울 것이다: 자신의 오류들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만 그가 그 오류들로부터 자신을 해방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오류들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만 배울 것이다.
지식을 통한 우리 자신의 해방이라는 관념은 그리하여 자연에 대한 우리의 지배라는 관념과 동일하지 않다. 전자(前者)는 더 정확하게 오류로 부터의, 미신으로부터의 그리고 거짓 우상들로부터의 정신적 자기-해방이라는 관념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관념들에 대한 자기 자신의 비판을 통한 ㅡ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항상 필요할지라도 ㅡ 자기 자신의 정신적 자기-해방과 성장이라는 관념이다.
그리하여 계몽사조가, 순전히 실용적 이유들로 그리고 계몽사조가 더 냉철한 자세에 의하여 정치에서 그리고 실용적 사건들에서 나은 것들이 이룩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광신주의와 광신적 형태들의 믿음을 배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 계몽사조가 광신적 믿음을 배격하는 것은, 더 정확하게, 우리의 오류들을 비판함에 의하여 우리가 진리를 탐구해야 한다는 관념의 당연한 결과이다. 이 자기-비판과 이 자기-해방은, 다원론적 사회에서만,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의 오류들뿐 아니라 우리의 오류들도 용납하는 열린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지식을 통한 자기-해방이라는 이념은 계몽사조의 근본적 이념인데 본질적으로 광신주의에 대한 강력한 적대자이다; 이유인즉 그 이념으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가 지닌 관념들과 동일시하는 대신 우리 자신의 관념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고립시키거나 심지어 분리시키려고 (그 관념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때로 이념들이 지닌 압도적인 역사적 힘을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허위나 거짓 이념들의 압도적 영향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지를 우리가 틀림없이 배운다. 진리 추구를 그리고 오류들로부터의 우리의 해방을 성취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관념들을 우리가 반대하는 관념들과 꼭 마찬가지로 비판적으로 보도록 우리 자신을 훈련시켜야 한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148-50쪽 ㅡ
'칼포퍼 원전+번역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칸트와 지식을 통한 자기-해방 (0) | 2025.09.25 |
|---|---|
| 삶의 의미와 역사의 의미 (0) | 2025.09.25 |
| 나은 세상을 찾아서, II부 역사에 관하여, 9장 이마누엘 칸트- 계몽사조의 철학자 (번역 수정본) (5) | 2025.09.23 |
| 칸트와 계몽사조 (0) | 2025.09.23 |
|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뉴튼의 우주론 (0) | 2025.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