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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와 논쟁

이윤진이카루스 2025. 12. 2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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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와 논쟁

 

슈뢰딩거는 자신의 관념론을 쇼펜하우어로부터 흡수했다. 그러나 나는, 볼츠만이 혹독하게 말했고 예를 들어 철학자로 자처한 적이 없는 처칠이 탁월한 반대 논증을 펼쳤던 철학인 이 철학의 약점을 그가 보기를 나는 기대했다. 슈뢰딩거가 그런 감각주의적이고 실증주의적 견해를 우리의 모든 지식은... 전적으로 즉각적 감각 감지에 의존한다로서 표현했을 때 나는 훨씬 더 놀랐다.

나의 논문 시간의 화살에 관하여 우리는 또 달리 격렬하게 충돌했는데 그 논문에서 엔트로피가 물리적 과정과 연결되든 말든 비가역적 물리적 과정의 존재를 나는 주장했다. 전형적 경우는, 팽창하는 지구 광선파장이나 입자들을 무한으로 (뉴튼 공간의) 보내는 과정이다 (외파[外破: explosion]과 같은). 반대의 경우는 ㅡ 무한으로부터 수축되는 가간섭성 지구 파(可干涉性 地球 波: a coherent spherical wave)(혹은 무한으로부터 내파[內破: implosion]) 발생할 수 없다 ㅡ 그런 일이 빛 전파에 관한 혹은 운동에 관한 보편법칙에 의하여 배제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이 초기조건을 실현하기에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할 터이기 때문이다.

슈뢰딩거는 볼츠만의 이론을 구조하려고 노력하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논문을 집필했는데, 볼츠만의 이론에 따르면 엔트로피 증가의 방향이 시간 방향을 완전히 결정했다 (혹은 이 방향을 정의[定義]했다ㅡ 그러나 이것에 관하여 잊어버리자). 내가 제안한 방법과 같은 방법이 있다면 이 이론이 붕괴할 터라고 그는 주장했는데, 내가 제안한 방법에 의하여 우리는 엔트로피 증가와 독립적으로 시간의 화살을 결정할 수 있었다.

그 정도까지 우리의 의견을 일치했다. 그러나 내가 어디에서 틀렸는지를 말해달라고 내가 그에게 요구했을 때, 슈뢰딩거는 물리학에 가장 아름다운 이론을 ㅡ 심오한 철학적 내용을 지닌 이론 ㅡ 감정도 없이 파괴했다고 나를 비판했다; 어떤 철학자도 감히 해치지 못할 이론을 감정도 없이 파괴했다고. 물리학자가 아닌 사람이 그런 이론을 공격한다는 것은 신성모독은 아닐지라도 건방지다고 그가 느꼈다. 정신과 물질(Mind and Matter)에 새로운 구절을 삽입함에 (괄호 속에) 의하여 그는 이것을 집요하게 추구했다: “이것에 물리학자의 방법론에 관한 중요한 결론이 있다. 물리학자는 독립적으로 시간의 화살을 결정하는 어떤 것도 도입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러면 볼츠만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붕괴한다.” 슈뢰딩거가 열정에 휩쓸렸다고 나는 여전히 느낀다: 물리학자나 다른 사람이 독립적으로 시간의 화살을 결정할 수 있다면 그리고 슈뢰딩거가 (내가 생각하기에 옳다) 이것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하는 결론이 이것에 있다, 좋든 싫든 그는 볼츠만-슈뢰딩거 이론의 붕괴와 그 이론에 근거한 관념론의 붕괴를 위한 논증을 수용해야 한다. 슈뢰딩거가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 것은 ㅡ 그가 또 다른 출구를 발견할 수 없었다면 ㅡ 틀렸다. 그러나 그는 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의 논지에 ㅡ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 논지를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ㅡ 관한 또 다른 충돌은 그의 아름다운 저서 생명은 무엇인가(What is Life)?에 있다. 이것은 천재의 저서인데 특히 유전적 암호문(The Hereditary Code-Script)”이라는 제목의 짧은 절에서 그러한데 그 절은 바로 자체의 제목이 생물학적 이론 중 가장 중요한 이론 한 가지를 담고 있다. 정말로 그 저서는 기적이다: 교양이 있는 비과학자들을 위하여 쓰여서도 그 저서는 새롭고 선구적인 과학적 관념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저서는 자체의 주요 질문인 생명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 내가 보기에 완전히 명백하게 틀린 제안을 담고 있다. 6장에 생명체의 특징은 무엇인가? 언제 물질 한 조각이 살아있다고 언급되는가?”라는 단어들로 시작되는 절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슈뢰딩거는 다음 절의 제목에서 답변을 제시한다: “그것은 음 엔트로피를 먹고 산다”. 이 절의 첫 번째 문장은, “생명체가 그렇게 불가사의하게 보이는 것은 평형이라는 무기력 상태로 급격히 쇠퇴하는 것을 피함에 의해서이다...”라고 쓰여 있다. 통계적 엔트로피 이론을 개괄적으로 토론한 후, 슈뢰딩거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통계적 이론을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있는 생명체의 탁월한 능력을 표현할 것인가, 그 능력에 의하여 생명체는 열역학적 평형으로 (죽음) 쇠퇴를 늦추는데? 우리는 이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하자면 자신에게 한 줄기 음 엔트로피를 끌어들여, ‘그것은 음 엔트로피를 먹고 산다’....” 그리고 그는 부언한다: “그리하여 상당히 높은 질서의 수준에서 (상당히 낮은 엔트로피의 수준) 생명체가 정지된 상태로 자체를 유지하는 장치는, 실제로 자체의 환경으로부터 질서를 지속적으로 빨아들이는 것을 본질로 한다.”

지금 인정되는 바와 같이 생명체는 모두 이렇게 한다. 그러나 생명체에, 즉 유기체에 특징적인 것이 이것이라는 슈뢰딩거의 논지를 나는 부인했고 여전히 부인한다; 이유인즉 그것은 모든 증기기관에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든 기름보일러와 모든 자동태엽 시계는 자체의 환경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질서를 빨아들인다라고 언급될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 질문에 대한 슈뢰딩거의 답변이 옳을 리가 없다: 음 엔트로피를 먹고 사는 것은 생명체의 특징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슈뢰딩거와 다른 나의 의견 중 몇 가지 의견에 관하여 서술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받았다: 한 번 이상 우리의 관점들이 최종적 갈라짐으로 보였던 모든 우리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돌아와 우리의 토론을 ㅡ 다른 물리학자와 내가 벌인 어떤 토론보다 더 흥미롭고 틀림없이 더 자극적인 토론 ㅡ 재개했다. 우리가 토론한 주제들은, 내가 얼마간 연구하려던 주제였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저 탁월한 저서에서 생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하여 나 자신이 남의 도움 없이 그 질문을 다시 제기할 용기가 나에게 생겼다 (비록 내가 무엇인가?라는 형태의 질문을 피하고 노력했지만).

 

자서전의 나머지 부분의 관련이 있는 듯이 보이는 곳에서 내가 역사관련 비평을 낼지라도 사건들에 관해서라기보다 관념들에 관하여 보고할 의도가 나에게 있다. 내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나의 후기 세월 동안 내가 다룬 그리고 내가 여전히 다루고 있는 다양한 관념과 문제의 탐구이다. 그것 중 몇 가지는, 내가 슈뢰딩거와 토론하는 커다란 행운을 경험했던 문제들과 연관되는 것으로 밝혀질 것이다.

ㅡ 칼 포퍼, ‘끝없는 탐구(Unended Quest)’, 1993, 135-8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