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가능성의 증가가 아니라면
단어의 정확이나 정밀을 필요 이상으로 추구하지 말라
미적분의 훌륭한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정확이나 모든 의미 분석 또는 설명을 거의 본능적으로 무시한 것이었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cence)’, 2000년,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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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定義)에 대한 문제들이나 ‘분석’ 혹은 ‘해설’은 그것들만으로 중요성이 없다; 그것들은 다르고 더 심각한 문제들과 상대적으로만 중요할 수 있다. 어떤 용어를 더 ‘정확한’ 용어로 대체하는 것은 합리적 사업이 될 수 없다 ㅡ 이것은 실제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의(定義)가 있다면, 우리가 먼저 몇 가지 용어사용법적 모호함을 정리한다면 그 해결책이 아마도 더 쉬워질 어떤 심각한 문제와 관련하여 이것은 심각한 과제가 될 것이다.
정확성의 증가가 크게 중요할 수 있다고 나는 인정할 각오가 되어있다: 정확성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확성이 이론의 시험가능성을 증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발견의 논리의 37절과 비교하라.) 다른 경우들에서 정확성은,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때 필요한 저 구분들만을 실행하는 데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정확성은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정확성은 본질적으로 가치로서 ㅡ 명확성이나 명료성처럼 ㅡ 취급되어서도 안 된다.
부언하면 사실상 정의(定義)들로 인하여 사실적 문제가 언어적 문제로 변화함으로써 문제들로부터 문제들의 경험적 특징이 박탈되기만 할 터인 반면 정의(定義)에 의하여 마치 문제들의 해결책이 아마도 발전되는 것처럼 보일 문제들에 대한 전체 범주가 있다. 예를 들어, 매우 모호하다고 인정되지만 아마도 사실적 문제인 ‘모든 예술 작품은 아름다운가, 혹은 아름답지 않은 예술 작품이 있는가?’를 우리가 해결하고 싶어 한다면 ‘예술 작품’이나 ‘아름다운’을 정의(定義)할 유혹에 대하여 우리가 경계해야 하지만 오히려 아마도 합당하게 예술 작품으로서 그리고 동시에 아름답지 않은 것으로서 기술될 사물들을 기억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사례들을 찾아야 한다. 쇤베르크(Schönberg)의 달에 홀린 피에로(Pierrot Lunaire); 오웰(Orwell)의 1984년; 몇몇 만화 (심지어 레오나르도[Leonardo]에 의한); 그리고 거인국(巨人國: Brobdingnag)의 걸리버(Gulliver)가 아마도 자격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 목록은 주관적인 만큼 개괄적이고, 그 목록에 근거한 해결책은 그리하여 미심쩍다. 그러나 그 목록은 아마도 개선될 터이다. 게다가 그 해결책의 모호함과 미심쩍음은 그 문제의 모호함 및 미심쩍음과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이제 한편으로 우리가 가령 ‘예술 작품’의 속성 가운데 아름다움을 포함하기 위하여 ‘예술 작품’을 정의(定義)한다면, ‘정확성’으로써 우리의 문제에 안전하게 우리가 답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사실적 문제를, 순전히 언어적 문제로 (아마도 부지불식간에) 대체하며 따라서 사실적 예술 작품에 대한 심사숙고가 더 이상 사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없다. 내가 작성한 목록은 더 이상 개괄적이면서 주관적이지 않을 것이지만, 이제 완벽히 무관할 것이다; 그 목록의 항목 모두가 나의 제안과 반대로 틀림없이 아름답거나 그렇지 않으면 또한 나의 제안과 반대로 예술 작품이 아니라고 우리가 선험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목록이나 유사한 목록에서 언급된 작품 중 여하한 작품도 우리가 알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이것을 주장할 수 있다. (과학적 분야에서 사실적 문제들을 순전히 언어적 문제들로 매우 유사하게 변환하는 것은, 규약주의(規約主義: conventionalism)에 의하여 그리고 모든 규약주의적 해석이나 술책(stratagems)에 의하여 이룩된다; 나의 저서 과학적 발견의 논리, 19 및 20절과 비교하라. 철학에서 철학적 문제나 다른 문제를 언어적 문제로 변환하면 ㅡ 특히 정의(定義)와 ‘해설’이 ‘분석적(analytic)’ 철학의 공언된 목표가 된 시기 이래 ㅡ 저주일 따름이다.)
내가 제시한 사례들은, 과학의 전체 역사에 의하여 가르쳐진 교훈을 강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절대적 정확성은 심지어 논리학과 수학에서조차도 (미적분에 관하여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의 사례에 의하여 예시되는 바와 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교훈; 다루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위하여 필요 이상으로 정확해지려고 우리가 노력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 그리고 ‘더 정확한 것’에 대한 요구는 본질적으로 진정한 문제일 (물론 정확성 향상으로 인하여 어떤 이론의 시험가능성이 개선될 때를 제외하고) 수 없다는 교훈.
의미-분석 자체의 목적에 관한 한, 의미-분석은 항상 무의미하다. 한 단어에 대한 두 가지 이상의 의미가 습관적으로 혼동되는 곳에서 (사례로서, ‘probability’의 경우에서) 한 가지 의미나 다른 의미에 대하여 참이고, 그 의미들이 구분되지 않으면 양립될 수 없게 되는 명제들이 있다고 밝힘으로써 이 사실에 주시하면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입증은 무엇인가?’나 ‘“입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와 같은 질문은 공허하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cence)’, 2000년, 275-7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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