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확률과 절대확률
2. 상대확률과 절대확률
확률계산에 대한 해석을 토론하는 데서 언급되어야 하는 두 가지 공식만 있다; 첫 번째 공식은
(R) p(α,b) = r,
즉 말로 표현하여 ‘b가 주어진 α의 (상대)확률은 r이다’인데 그곳에서 r은 0(zero)과 1 사이의 어떤 분수이다 (이 한계가 포함된다).
두 번째 공식은
(A) p(α) = r인데,
말로 표현하여 ‘α의 (절대)확률은 r이다’이다.
b가 주어진 α의 상대확률은 때로 또한 ‘조건 b 하의 α의 조건적 확률’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α의 절대확률은 때때로 α의 ‘이전(prior)’이나 ‘초기(initial)’ 혹은 선험적(α priori) 확률로 불렸다.
(R)을 과학적 발견의 논리(L.Sc.D.)에서 상세하게 토론된 빈도 해석의 의미로 우리가 해석한다면,
p(α,b) = r은
‘참조집합 b (혹은 참조수열 b) 안에서 α의 상대빈도는 r이다’가 된다.
다른 한편,
p(α) = r은
빈도 관계로 (사소한 방식으로를 제외하고 ㅡ 참조집합 b를 ‘이해된 것’으로서 수용함으로써) 해석될 수 없다. 이유인즉 ‘유럽의 새들 가운데서’나 이것과 같은 것이 이해된 것으로서 수용되지 않으면 ‘참새들이 흔히 발생한다’라고 말하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p(α) = r은
빈도 관계를 제외하고 예를 들어 내가 확률의 ‘논리적 해석’으로 부르는 것 안에서 어려움 없이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α', ‘b’, 기타 등등의 글자를 서술의 명칭으로 수용한다. α의 절대적인 논리적 확률은 ㅡ 다시 말해서, p(α) ㅡ 그렇다면 내가 과학적 발견의 논리(L.Sc.D.)에서 ‘논리적 확률’로 기술한 것이다: 그 값 r은 서술 α가 적게 말할수록 그만큼 더 커진다. 혹은 다시 말해서 α의 내용이 클수록 그 내용의 절대적인 논리적 확률값은 그만큼 적다. 이것은 주장 α가 (내일 비가 올 것이다) 주장 αb보다 (내일 비가 올 것이고 일주일의 토요일에 해가 날 것이다), b가 α로부터 귀결되지 않으면 (예를 들어 b가 항진명제[恒眞命題: tautology]라면 α로부터 귀결된다), 분명히 더 개연적이라는 사실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절대확률이라는 관념은 무의미하다고 때로 언급되었다; 그리고 정말로 우리가 안 바와 같이 빈도 해석 내부에서 절대확률이라는 관념에 유용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p(α)는 심지어 빈도이론 내부에서도 무의미한 것으로서 기술되기 어렵다. 이유인즉 절대확률의 의미가 상대확률의 도움을 받아서 정의(定義)될 수 있기 때문이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ence)’, 2000년, 283-4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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