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주의자에 대한 나의 응수
객관적 이론가는, 조건 b를 상수로 유지함으로써 자신이 상당히 안정된 r을 얻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가 매우 큰 표본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을 그가 추정할 것인데 왜냐하면 베르누이가 그에게 그 표본이 매우 개연적으로 대표적일 것이라고, 다시 말해서 그 표본이 우리가 결정하려고 시도하는 저 r에 근접한 빈도를 보일 것이라고 알려주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주관적 이론가는 변하는 b를 사용하여 연구하고 결과적으로 변하는 r을 사용하여 연구한다. 그는 자신의 통계적 경험이 축적되면서 자신이 사실상 점점 더 많은 안정된 r을 얻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객관주의적 r을, 자신의 항상 더 안정된 이 r과 동일시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 관점에 의하여 생성된 다양한 난제로부터, 다음과 같은 것이 여기서 토론을 위하여 선정될 것이다.
주관주의적 관점으로 r에서 변화는, 정확하게 우리가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방식을 반영한다. 그리고 r이 항상 더 안정된다는 사실은, 우리의 학습 증가에 의하여 우리의 합리적 소신이 안정되는 방식을 반영한다.
안정화의 사실 자체는 의심의 대상이 될 리 없다: 단순 귀납 규칙에 따라서, r은 개략적으로 m/n일 것이고 m/n에서 n은 우리가 지닌 유관한 전체 관찰의 숫자이고, m은 α에 의하여 표현되는 것과 같은 성질이 관찰되었던 (혹은 α에 호의적인 것) 관찰의 숫자이다; 여기서 다시 α는 우리가 고려 중인 가설이고 b는 우리가 m/n에 의하여 표현된 통계를 획득하는 증거이다; 그래서 우리는
p(α,b) = r ≈ m/n을
얻는다.
이제 n이 매우 커지면, 여하한 특정 새로운 관찰은 r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이유인즉 n이 매우 크다면, (m + 1)/(n + 1)이나 m/(n + 1)이 m/n과 거의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사실은, 우리의 경험이 축적되고 n이 커졌을 때 r이 틀림없이 비교적 안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사실에 또한 다양하고 덜 호의적인 면이 있다. 이 사실에 의하여 주관적 학습 이론이 거대한 권위를 우리의 과거에 귀속시킨다고 밝혀진다. 평생 학습 후에 더 많이 배우려는 희망이 남아 있을 리 없다: 우리의 과거 경험에 있는 권위로 인하여 수정이 실제로 불가능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늙어갈수록 우리는 과거에 얽매여 점점 더 다루기 힘들어지고 점점 더 느려터진다. 과학에도 같은 것이 성립한다.
기술된 사실들이 참일지라도 심리학적이고 역사적 사실들의 문제로서 (그리고 그 사실들이 몇몇 개인들에게 참일지라도, 그 사실들은 과학의 역사적 발전에 분명히 참이 아니다), 그 사실들은 기묘하게 불만족스러운 학습 이론을 분명히 대변한다. 그 이론은 수확체감(diminishing returns)의 이론이다.
이 비판적 공격에 대하여 매우 명백한 답변과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이렇다. 우리가 지닌 소신의 안정성 증가는, 오직 우리의 소신이 경험에서 점점 낫게 확립되었다는 사실의 결과이다. 그 소신은 항상 더 신뢰 가능하게 되고 있다. 알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에서 우리가 진보한다면, 더 멀리 진보할수록 궁극의 상태와 같은 것에 우리가 더 가까이 접근한다면 우리는 불평해서는 안 된다.
이 방어에 대한 나의 응수는 이렇다. 실제적 궁극은 물론 이 방식으로 도달되지 않으며 그 궁극은 그 비판적 공격에 함축되어 있지 않았다. 확률 r값을 변화시키는 것을, 학습이 의미한다면 그리고 이 변화들이 개선이라면 우리의 귀납적 값들을 통하여 우리가 접근하는 r의 참된 값인 ‘참인’ 확률값과 같은 것이 틀림없이 존재한다. 나에게 답변했던 주관주의적 옹호자가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은 이와 같은 것이었다: 이 주사위를 매우 자주 던짐으로써 우리의 주관적 확률값이 시간에 맞춰 참인 값에 점점 더 가까이 근접할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 이론가의 값인 객관적 값이 아니라면 무엇이 참인 확률값인가? 게다가 이 ‘참’이거나 ‘객관적’ 값의 대체물이 (혹은 제거) 주관적 이론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ㅡ 객관적 확률 이론에 있는 기본적으로 불만족스러운 특징 때문에 선택된 목표 ㅡ 아니었던가?
‘참인’ 혹은 ‘객관적’ 확률값과 같은 것의 도움을 받으면, 주관주의는 자살할 터이다: 주관주의는 비밀을 누설할 따름일 터이다.
그러나 이것과 별도로, 수확체감(diminishing returns)에 대한 논증은 실제로 전혀 답변되지 않았다. 내가 밝힌 바와 같이 수확체감은 경험 축적을 산술적으로만 생각한 결과이다 ㅡ 이 축적에 의하여 어떤 ‘참인’ 값이 성공적으로 점점 더 근접되든 아니든. 학습 부진이 증가하면 나은 근사치의 결과라고 믿을 근거가 우리에게 전혀 없다; 정말로 그 부진이 나은 근사치와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우리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빨강 또는 파랑’의 게임을 기억하라.)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ence)’, 2000년, 314-6쪽 ㅡ
'칼포퍼 원전+번역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경험에 대한 데이비드 흄의 논증 (0) | 2026.06.27 |
|---|---|
| 주관적-귀납적 이론이 틀린 이유 (0) | 2026.06.27 |
| 주관주의자와 객관주의자의 차이점 (0) | 2026.06.26 |
| 주관적-귀납 이론과 객관적 이론의 차이점 (0) | 2026.06.26 |
| Law(Rule) of Detachment/Modus Ponens (0) | 2026.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