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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납적 논리학자들

이윤진이카루스 2026. 6. 27.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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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납적 논리학자들

 

그러므로 같은 성질이 있는 여하한 두 가지 사례의 상호의존이나 유관을 확립하는 카르납의 규칙은 비-분석적인 귀납적 원리이다; 그리고 그 규칙이 옹호된다면 (그리고 흄의 무한소급이 회피될 수 있다면) 그 규칙은 종합적 명제로서, 다시 말해서, 선험적으로 유효한 것으로서 옹호될 수 있을 따름일 터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규칙에 호의적으로 논증할 수 있는가? 물론 초월적(transcendental) 논증에 의해서이다: 이것은, 지금 칸트를 선험주의자 및 초월주의자로서 비웃는 모든 종류의 귀납적 논리학자들 가운데서 매우 유행된다. (나는 칸트를 크게 찬양하지만, 그가 선험적으로 유효하다고 믿었던 원칙들을 지지하여 초월적 논증을 긍정적으로 사용한 것이 그의 중차대한 실수라고 내가 생각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 오래전인 당시 강력한 정상참작 상황이 있었다.) 그 논증은, 러셀과 제프리즈(Jeffreys) 그리고 라이헨바흐(Reichenbach)에서 다양한 확률론적 귀납 이론과 관련하여 발견될 것이다. 카르납 또한 그 논증을 사용하지만, 나의 눈에 그에게 큰 명예가 되는 특정 망설임이 함께한다. 이유인즉 그가 함수 m을 자신이 선택한 것에 (단순 귀납 규칙의 어떤 특별한 형태의 선택에 해당하는) 대하여 서술하기 때문이다:

앞선 고찰에 의하여, 강력한 논증은 아니라고 인정되는 다음 논증이 m에 호의적으로 제시될 수 있다고 밝혀진다. 매우 단순하고 자체들을 가장 자연스러운 함수들로서 제시하는 두 가지 m-함수 가운데 m는 완벽히 부적당하지 않은 유일한 것이다.’

다른 m-함수인 완벽히 부적당한함수를 선택하면 내가 논리적 확률이라고 지칭한 것을 선택하는 것에 해당할 터이다. 그 함수의 부적당함의 본질은, 물론, 그 부적당함이 단순 귀납 규칙의 여하한 형태도 암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관점에서, 확률 논리가 귀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다른 것일 리가 없다; 귀납적 확률이 논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귀납적 논리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이것이 다른 것일 리가 없다.

 

그러나 귀납적 논리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귀납적 논리학자들은 존재한다. 정말로 그 귀납적 논리학자들은 베이컨 이래 (아리스토텔레스 이래가 아닐지라도) 상당히 풍부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쉽게 반증되지 않는다. 이것이 그러한 이유는 귀납적 확률들이 ㅡ 다시 말해서 응용된 귀납적 계산들 ㅡ 항진명제적(恒眞命題的: tautological)이 아닐지라도 일관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납적 확률들은, 귀납적 확률이 논리적 확률과 객관적 확률 모두로부터 분명히 구분되는 조건으로일관적이다. 이유인즉 귀납적 확률의 확률값들이, 우리가 안 바와 같이, 동전 던지기와 같은 심지어 대칭적이고 독립적 게임의 논리적 확률 및 객관적 확률과 일반적으로 양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다양한 종류의 확률 중 몇 가지 종류나 모든 종류가, 통상적으로, 귀납적 논리학자들의 초월적 논증들에서 잘못 동일시된다고 부언할 필요가 나에게 없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ence)’, 2000, 331-2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