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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식 경제성장이 최고?... 퀘벡은 달랐다

이윤진이카루스 2012. 9. 3. 10:40

박정희식 경제성장이 최고?... 퀘벡은 달랐다

[퀘벡의 실험-4] 캐나다 사회경제모델 연구자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 인터뷰

12.09.02 14:42l최종 업데이트 12.09.02 14:51l

올 대선의 핵심 이슈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다. 특히 유럽발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도 현실화되고 있다. 경제 민주화뿐만 아니라,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은 없을까. 협동조합이 새로운 대안 경제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10년 협동조합 모델의 상징인 이탈리아 애밀리아로마냐의 볼로냐에 이어, 캐나다 퀘벡의 모습을 짚어본다. 퀘벡 모델은 1960년대 이후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경제를 이끌어 오고 있다. 경제는 견고한 성장과 함께 일자리도 늘면서,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다. 학계에선 이를 '조용한 혁명'이라 부른다. 글로벌 경제위기도 비껴간 이들의 혁명을 찬찬히 따라가본다. [편집자말]
캐나다에서 가장 넓은 퀘벡주. 790만명에 달하는 인구 가운데 프랑스계 사람들이 80%에 달한다. 공식 언어는 불어다. 이들은 스스로 퀘벡인이라 불리길 원한다. 그만큼 민족적 자존심도 강하다. 사진은 퀘벡시티 사이를 흐르는 세인트로렌스 강변 전경.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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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한국과 캐나다의 퀘벡은 어찌보면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이죠. 박정희시대가 개인과 이기주의 중심의 제도와 문화를 고착화시켰다면, 퀘벡은 조직의 신뢰와 합의의 문화를 만들었던 거죠."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의 말이다. 그와의 대화가 1시간을 넘어섰다. 지난 9일 캐나다 퀘벡주의 몬트리올 한 호텔 로비. 그는 일 주일여 동안 퀘벡 모델의 현장을 취재진과 함께했다. 그동안 서로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을 풀어놓고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캐나다 사회(적) 경제 연구자다. (참고로, 김 교수는 '사회적'이라는 표현보다 '사회경제'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고 했다. 우리가 '시장적 경제'라고 하지 않고 '시장경제'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는 캐나다의 사회 경제를 '실험'이라고 했다. 이어 그 '실험'은 우리 사회에 중대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그리곤 퀘벡이 왜 사회경제의 실험장이 됐는지를 우리에게 설명해 나갔다.

"1867년 4개의 주(州) 연합으로 출발해 1905년에 캐나다 연방이 만들어졌죠. 이후 캐나다에선 영국계와 프랑스계 이민자들 사이의 오랜 긴장과 갈등의 시간이 흘렀어요. 물론 퀘벡 사람들은 퀘벡인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죠. 나중에 영국계(나중에는 미국계) 자본에 의해 지배를 받으면서도, 퀘벡인들은 오히려 분리독립하려고 주민투표까지 불사했어요."

"서울은 오로지 산업화와 이기주의 문화에 정착"

김창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캐나다 사회경제 모델을 연구하는 국내 몇 안되는 학자다.
ⓒ 김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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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리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2번이나 했다고 하던데.
"1980년하고 1995년이에요. 과반수 찬성만 하면 독립하는 거였는데, 1995년엔 거의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부결이 됐죠.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불안감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요즘에는 분리독립 의사 자체는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 퀘벡주의 경우 캐나다에서 가장 큰 주이면서 언어는 불어를 고집한다.
"민족적 정체성이 아주 강합니다. 1960년이후 20년 동안 퀘벡에선 큰 변화가 진행됐죠. 이른바 '조용한 혁명'이라고... 영국계 사람들에 의해 사회, 경제가 좌지우지 되는 것에 반발해서 프랑스계 진보적 인사들이 주 정부에 참여하기 시작했죠. 각종 사회민주주의 정책들이 나왔어요."

당시 좌파 성향의 정치세력인 퀘벡당이 들어서면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에 대한 지원이 크게 늘었다. 수천여 개에 달하는 각종 협동조합들이 조직됐고 사회 분위기 역시 합의의 문화가 정착됐다. 김 교수는 "당시 한국은 박정희 집권기로 산업화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오로지 성장과 조직 이기주의가 최대의 가치였던 시대였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서울과 퀘벡은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었던 셈"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퀘벡의 '조용한 혁명'은 주 정부와 협동조합, 시민사회의 긴밀한 협력도 이끌어냈다. 정부는 협동조합을 전담하는 부서를 만들고 제도도 정비해 나갔다. 사회, 교육 등 복지체제도 갖춰 나갔다. 시민사회와 협동조합 등도 자발적인 협력체제를 만들었다. 90년대 들어서 경제 위기가 닥치자, 사회경제단체 연석회의인 '샹티에' 조직이 만들어진 것도 이때였다. 다시 김 교수의 말이다.

"캐나다가 미국의 아류? 미국보다 훨씬 우월한 사회경제체제"

캐나다 퀘벡주에 있는 소비자협동조합매장. 국내 대형마트의 체인브랜드를 이용하면서도, 운영은 협동조합이 맡아 하고 있다. 마을 주민 상당수가 조합원으로 가입해 물건을 구입한다. 또 퀘벡지역에서 직접 만드는 농산물이나 소비재도 판매한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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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사람들은 캐나다라는 나라를 잘 모르죠. 여전히 미국의 아류 국가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으니까.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어 원주민 대책만 보면 알 수 있어요. 미국은 원주민보호구역이라고 해놓았지만 사실상 격리 구역이나 다름없어요. 이들에게 허용한 것은 카지노와 수공업뿐이죠. 카지노가 돈이 되니까 이마저 백인들이 장악해버렸고. 미국쪽 원주민들은 기념품 정도 팔거나 대부분 알코올 중독자로 힘들게 살죠."

- 캐나다의 원주민 대책이라면.
"원주민의 자활을 돕는 프로그램을 통해 정책적으로 지원해요. 그리고 협동조합을 만듭니다. 원주민 스스로 말이죠. 원주민 협동조합을 통해 사회로부터 격리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찾아가죠. 물론 정부는 이들 협동조합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갖고 있고. 이런 부분을 보면 (캐나다가) 미국보다 훨씬 우월한 체제를 가진 나라라는 생각이 들죠."

김 교수는 "1960년 이래 퀘벡에선 50년 넘게 사회경제가 성장, 발전해 왔다"면서 "그동안 사회경제 주체들도 재정 기반을 갖춰왔는데 그 바탕에는 데자르댕과 같은 협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퀘벡주는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기업이 존재한다. 사진은 퀘벡주 몽마니 지역에 위치한 건축자재와 공구만을 파는 소비자협동조합이다. 이곳은 '올해의 협동조합'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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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벡을 중심으로 정말 다양한 협동조합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퀘벡주 인구가 770만 정도인데, 협동조합 조합원 수는 880만이에요. 전체 인구 수를 넘어서는 것인데, 데자르댕(북미 최대의 금융협동조합기업)의 기여가 크죠. 이곳 조합원만 580만 명이에요. 데자르댕뿐 아니라 보험협동조합 등도 많아요. 협동조합이 금융부문을 버티고 있으면서, 지역사회뿐 아니라 일반 사기업까지 지원해주고 있죠."

그는 "비금융 부문에서도 농업과 임가공업 등에서 협동조합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면서 "주유소뿐 아니라 등산장비 등 각종 소비부문 협동조합 기업들도 캐나다 전체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최근에는 응급구조활동에 나서는 노동자협동조합을 비롯해 보육, 장례, 문화예술 등의 분야로까지 협동조합이 확산하는 추세"라며 "조합원뿐 아니라 조직 자체도 좀더 개방적인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원순의 서울 실험과 퀘벡의 사회경제 시스템, 접목될 수 있을까

캐나다 몬트리올의 라발지역에 위치한 지역개발협동조합네트워크(CDR). 86년에 만들어진 이곳은 협동조합 모델을 지역사회에 알리고, 각종 교육과 법률자문 등을 수행한다.주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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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와 나눈 대화는 계속됐다. 1시간 정도 예상했던 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야기를 진행할수록 그의 말소리는 더욱 또렷했다. 밴쿠버의 연구소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대화는 자연스레 우리가 어떻게 접목할수 있을까였다. 아직 우리에게 적용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퀘벡의 사회경제 바탕에는 풍부한 사회연대기금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튼튼한 재정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퀘벡에는 자산규모만 220조 원에 달하는 데자르댕이라는 금융협동조합기업이 있다. 데자르댕은 매년 각종 기금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김 교수는 "퀘벡 주 정부와 협동조합연합회, 중앙 노동단체 등이 사회연대기금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의 설립, 고용유지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서울을 협동조합의 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김 교수는 "매우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박 시장이 추진중인 '마을 공동체' 등 협동조합정책에 참조할 만한 퀘벡의 사례를 소개했다. 지역개발협동조합네트워크(CDR)다. 이곳은 취재진도 지난 9일 방문했던 곳이다. 지역사회 개발을 자치단체나 정부가 아니라 협동조합이 맡아 하는 것이다. 지역주민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지역개발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시디알은 퀘벡의 독특한 모델"이라며 "지역주민이 조합원으로 직접 사업에 참여하면 자치단체로선 예산집행 과정에서의 낭비도 줄일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지역개발은 정부가 이끌면 주민이 따라오는 방식"이라며 "이제는 주민이 이끌고, 정부는 재정 지원과 정책 조율을 통해 민관이 서로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김 교수의 말을 옮겨본다.

"박원순의 서울 실험이 어떻게 될지 아직 예단하기엔 이르지요.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등 사회 경제 육성에 서울시가 적극 나선다고, 당장 어떤 의미있는 성과가 나오긴 쉽지 않지요. 어느 정도 성과를 보기 위해선 시간의 시험대를 견뎌야 합니다. 그건 우리 사회의 몫이기도 하지요."

퀘벡주의 옛 시가지. 퀘벡을 상징하는 깃발이 도시 곳곳에 걸려있다. 퀘벡인들은 1960년대 이후 영미계 중심의 사회 문화에 반대해 '조용한 혁명'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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