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에서 타살 흔적이 발견되면서, 언론들은 ‘죽은 장준하가 산 박근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유신과 5·16 등 과거사에 대한 태도에 도마위에 오른 상황에서, 박정희 반독재 운동의 선봉이었던 장 선생이 권력에 의해 살해되었을 것이란 정황 증거가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장 선생의 장남 장호권 씨는 현재 장 선생 타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장준하 암살 진상규명 범국민 추진위원회(이하 장준하 규명회)’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은 잠재적 대권후보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상태다.
그는 8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역삼역 인근에서 이어진 2시간여 동안의 인터뷰에서 장준하 선생 타살 흔적 발견의 의미와 본인이 안철수 원장을 지지하게 된 배경, 이후 대선 국면에서 장준하 규명회가 직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전망을 쏟아냈다.
현재 대권구도는 여당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선후보로 확정됐고,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계 인사들의 화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민주통합당 경선이 진행되고 있으며, 민주당 경선을 전후해 안철수 원장이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 원장과의 단일화 경선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반 박근혜 전선’이 될 수 있는, 장준하 규명회가 대권 흐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 장준하 선생 유골에 타살흔적이 발견된 계기는 묘소 이장이다. 갑자기 왜 이장하게 되었나?
“작년 5월 큰 비가 와 장 선생 묘가 붕괴했다. 그것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현충원에 모시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지난해 8월 17일 추도식에 방문한 파주 시장이 ‘파주 땅에 모시면 어떻겠느냐? 장 선생의 민족정신과 민주화·통일에 대한 의지를 파주가 간직해 후손들에게 알리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파주에 장준하 공원을 세우면서 그리로 옮기기로 하고 이장하게 된 것이다.”
37년 지나도, 그 모습 그대로
- 타살의 흔적은 이전에도 있던 것 아닌가?
“장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새벽 1시에 시신을 둘러메고 내려와 집에 와서 검시를 했다. 장준하 이름만 불러도 긴급조치로 잡혀가던 시절이기에 공식적으로 검시 할 수 없어 의사 3명이 문상객으로 가장해 검시했다. 당시 사망원인은 오른쪽 귀 뒤 함몰, 그 외 아무런 외상이 없었고 오른쪽 팔 안쪽, 허벅지 뒤쪽에 멍든 자국과 주사바늘자국 2개 정도만 있었다.”
“당시 머리카락 사이에 조금 찢어진 부분이 있어 그곳에 성냥을 넣어보니 성냥이 다 들어가더라. 그래서 우리는 거기에 구멍이 난 줄 알았다. 아마 징 같은 걸로 찍은 것 아닌가 추측했는데 이번에 유골을 보니 그 부위는 깨져서 함몰된 틈 사이더라. 37년 지나도 그 모습 그대로여서 깜짝 놀랐다.”
- 민주당 정권 당시 의문사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타살’ 결론이 나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 당시 1기 조사위가, 노무현 대통령 당시 2기 조사위가 있었다. 나는 당시 외국에 있었는데 한 번은 방송국에서 이와 같은 조사위 활동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대통령이 목숨 걸고 하지 않으면 피해 받은 모든 분들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답했다. 아직 이 사회는 박정희·전두환 당시의 기득 잔존세력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다. 통수권자도 어느 한계까지 올라가면 손을 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최근 말고 그 이전에 장준하 선생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를 방영하려 했을 때, 당시 3공 핵심인사가 방송국에 전화해 방송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상조사위원회 2기 활동이 끝나고 3기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국회에 관련 법안이 상정되었는데, 3공 당시 공안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그 서류를 발의 기간이 넘길 때 까지 숨겼다고 한다. 그게 현실이다.”
“그들은 여전히 많은 것을 갖고 있다. 특히 정보를 갖고 있다. 소위 야당, 적대관계 정치세력들의 개인적 약점까지 갖고 있으니까. 이번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출마 저지 논란도 그런 것과 흡사하다. 다들 정치생명 때문에 (과거사에 대해)어느 선 까지 가다가 중단한다. 장준하 선생 사인도 당시 1~2기 조사관들이 정말 열심히 했다. 찾아내려 했는데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과거사를 감추려는 이유
- 그들이 과거사가 밝혀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장준하 선생을 타살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솔선수범해서 과거의 문제를 밝히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안하려 하겠는가? 장준하 선생은 그 분이 가진 상징성 이전에 한 명의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이 살해를 당했다면 국가는 조사할 책무가 있다. 그럼에도 안 하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자꾸 박근혜씨와 연결을 시키지만, 젊었던 박근혜씨는 당시 유신정권에 참여할 위치가 아니었다. 딸로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지만 제대로 된 퍼스트레이디 역할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때문에 이런 문제들에 대해 박근혜 후보에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문제는 그 주변이다. 유신의 잔존세력들이 이제 와서 박정희의 딸을 내세워 대통령을 만들려 하고 있다. 만약 박 후보가 스탈린의 딸처럼 그들을 배재하고 자기 길을 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씨도 그들의 힘을 이용해 통수권자가 되려고 한다. 즉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쿠데타 세력의 집권전략이 박근혜를 통해 진행중이다.”
“이것이 의심에 불과하다면 박근혜씨는 자기의 역사 인식을 알려줄 의무가 있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겠다면, 역사관은 그 책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장 선생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전 국민이 들끓고 있으니 이에 대한 분명한 자기 의견을 내세워야 한다. 야당에서 대통령이 나온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물을 것이다. 장 선생 죽음에 국가기관이 개입되어 있기에 그 수장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다.”
- 3공·5공 잔존세력이 박근혜 후보를 계기로 정권을 재창출 한다는 건 너무 과거의 프레임 아닌가?
“내가 우려하는 모든 것은 그 상황에 대한 것이다. 박근혜씨가 예뻐서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다. 그들에 의해 잘 먹고 잘 살아온 기득세력이 있다. 많은 국민들이 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시스템 속에 관념화 되어 있다. ‘출세해라’, ‘돈 벌어라’ 이렇게 가니 이제 많은 순박한 국민들은 나에게 조금만 이익이 돌아와도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싫고 좋은 기준이 분명해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옳고 그름은 판단하지 않는다. 야권도 많이 잘못 했다. 실망을 줬다. 둘 다 싫은데 비교적 돈 있는 놈들이 모양이 좋은 것이다. 그 막연한 허상을 보고 유권자들은 움직여준다. 그러면서 왜 수탈당하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게 참 가슴이 아프다.”
“해방 후 이승만이 분단을 고착화하며 일본의 앞잡이를 고용했다. 이승만이 정통성 있는 나라를 만들어놓았다면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박정희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기보다 마지막 총독이었다. 한일협정 하겠다고 김종필을 보낸 것은 나는 일본정부와 일왕에게 통치자금 받아온 것이라고 본다. 한일관계의 정리할 것은 하나도 못하고.”
“지금 이런 사람들이 다시 박근혜를 내세운다고 하니, 박근혜 후보가 제대로 한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던 기득권, 재물과 조직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 역사는 후퇴한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이 시점에서 일본과의 외교관계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 마디라도 했는가?”
“박근혜가 위안부 문제 말 한적 있나?”
- 기득권 층의 헤게모니 재장악은 이명박 정부 때 이뤄진 것 아닌가? 이명박 정부의 성격은 무엇인가?
“솔직히 말해 탄생하지 말았어야 할 정부다. 이명박 정부는 친일파가 살아날 다리를 만들어준 정도다. 이명박 정부는 친일을 넘은 애일이다. 독도도 가고, 위안부도 얘기했지만 그것은 임기 말 처음 꺼낸 얘기다. 일본에 빌미를 줬고 정작 대책은 없다. 이번에 장준하 선생과 관련해 청와대에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답변은 (진상조사를 할지 말지 여부를 결정하는데)걸리는 시간이 150일이라는 것이다. 그 때는 대선 후다.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 그런 주장을 사실로 치면, 과거 세력의 부활을 막는 방법은 무엇인가?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간단하다. 그들의 대표주자인 박근혜와 상대할 수 있는 대표주자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와 비슷한 사람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정당정치 시스템에 대해 국민들이 호감을 갖지 않는다. 그 와중에 국민들은 다른 방향을 선호하고 있고 예를 들어 안철수 현상이 있다.”
“그 사람은 깨끗하고 박근혜와 대칭된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모자란 점이 있어도 채워주면 된다. 그렇다면 그를 내세워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 것이다. 만약 안철수 원장이 대통령이 되면 정치적 경험이 없어도 기존 민주 정당세력이 (도움을)주면 될 것 아닌가? 전반적인 기대를 몰아줘 반민족에 대한 싸움을 해야 한다.”
- 상대방이 온전한 세력을 갖고 있는 반면, 안철수 원장은 그렇지 않다. 세력 대 세력의 대결이 안 되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 쪽은 나름의 세력이 있다. 무소속 대통령에 대한 우려도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
“정당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안철수 원장은 대통령만 하면 된다. 국민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달라는 것이다. 행정은 전문가들을 쓰면 되고 정치는 정치인이 하면 된다. 삼권분립을 제대로 만들어 놓는 것이 우선이다. 안철수는 단임으로 끝내야 하는 사람이다. 역사의 흐름에서 그는 구원투수다. 그리고 차차기는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국민의 의식이다. 문화가 있고 정체성을 만들어놓으면 차차기도 딴 짓을 못할 것이다.”
안철수를 지지한 이유
- 그 계기를 장준하 선생으로 만들겠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장준하 규명회의 역할을 무엇으로 규정해야 하나?
“장 선생은 37년 만에 묘가 무너졌다. 그게 엄청난 이슈가 된 것이다. 장 선생이 유신철폐 100만인 서명운동을 했는데, 그것을 흉내 내 (장 선생 진상규명을 위한)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였고, 1주일이 안돼서 엄청난 호응이 있었다. 나는 박근혜 주변 세력이 하려고 하는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막기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그것을 혼자 할 수 없으니 뜻이 같은 시민단체를 끌어 모으려 한다.”
“장준하 규명회는 7일 준비위원회를 발족해서 인선작업에 들어갔다. 많은 분들이 하겠다고 했다. 아마 19~20일 사이에 발표할 예정이다. 여기서는 장준하 선생 의문사의 진상을 규명한다. 장 선생님 시신을 부검하는 방법과 국내외 법의학자들이 공유해 진상을 규명하는 등의 역할이 있다. 이는 장 선생 하나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신 때 의문사 당한 많은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 장호권 선생은 사실상 안철수 원장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건데, 장준하 규명회에 들어가나?
“설립 후 유족인 나는 빠질 것이다. 나는 박근혜 후보 주변의 세력을 저지하는 일에 전념을 다할 것이다. 인선과 관련해서는 동교동(김대중)과 상도동(김영삼)을 찾아 관여를 했다. 아마 장준하 규명회의 대표를 뽑고 50여명의 집행부가 있을 것으로 보이며 고문과 천여명의 발기인 정도가 포함될 것이다.”
- 장준하 규명회는 박근혜 후보와도 민감하게 얽힌 사안인데, 김영삼 전 대통령도 돕겠다고 했다.
“사실 상도동보다는 동교동과 조금 더 왕래가 있었다. 장 선생님 살아계실 때도 김대중 선생이 우리 집에 찾아왔고, 김대중 선생은 장 선생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다만 김영삼 선생을 먼저 찾아간 것은 김대중 선생이 고인이 되었으니까. 내가 상도동에 간 날은 우연인지 박근혜 후보가 다녀간 다음날이었다. 찾아가서 뵈니 건강이 좋아 보이시진 않더라. 건강은 괜찮다고 하시는데, 어제일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라고 물었더니 대답은 안하셨다.”
“김영삼 선생에게 내가 온 이유를 설명하니 ‘알고 있다, 얘기 들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가 대통령 때 장 선생 일에 대해 관심 있게 못 봐서 미안하다’고 하시더라. ‘이제라도 과거의 잘못을 고치고 진상을 밝혀야겠다, 그러니 열심히 하겠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하겠다’고 하셨다. 다만 마지막 얘기가 마음에 걸렸다. 김영삼 선생은 ‘열심히 하세요, 그런데 용기를 갖고 하세요’라고 말했다. 일상적 언어일 수도 있겠지만 힘든 일이 봉착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 미칠 수도”
- 어쩌면 장준하 규명회가 반 박근혜 연합전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스펙트럼이 어디까지 넓어질지도 관심사인데, 인선은 얼마만큼 구성되었는가?
“이미 많은 부분이 정해졌다. 이후 발표 하겠지만 박근혜 후보 측에서 의외라고 할 수 있는 분들도 들어올 수 있다. 규명회는 법조 학계 종교계 등이 적극 가담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내가 CSKorea(안철수 원장 지지단체)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이는 장준하와 같은 뜻을 지닌 올바른 지도자를 뽑자는 의미로 구성된 단체다. 나는 정치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 주변 인물들이 다시 정권을 잡는 것을 보기 힘들다.”
“장 선생도 지금에 와서 도저히 못 참겠다며 일어나신 것 아닌가 싶다. 박정희가 산업역군으로 평가받고 그 이유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재건국민운동본부, 새마을사업 등을 꼽지만 사실 이것의 기초는 장면 정부가 닦았다. 당시 장 선생이 국토사업본부장을 했고 그때 대한민국 공채 1기 공무원들을 뽑았다. 2천여명이 되었는데 장 선생이 이들을 교육했다. 이들이 서울에 와서 임명장을 받던 그 날이 바로 5.16이다.”
“장면정권이 계속했다면 우리가 지금 자동차 안타고 다녔겠나? 좀 늦었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자전거만 타고 다닐 것이다? 그렇지 않다. 마치 자기들이 다한 것처럼 해놓고 밑에 깔린 국민들의 피와 희생은 무시했다. 나는 유신이란 단어자체가 너무 싫다. 메이지유신, 일본이 쓰던 걸…. 뼛속깊이 그런(친일) 것이고, 박정희는 청와대 안가에서 엔카와 일본군가를 부르며 향수를 느꼈다고 한다. 이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장준하 선생은 희망가, 독립군가 이런 것을 불렀는데, 이 나라 수장이란 자는 일본 정종을 마시며 엔카를 듣고 그걸로 향수를 느낀다니, 향수는 고향을 그리는 것이다. 고향이 일본이란 얘기지.”
“나는 한때 만약 박근혜 후보와 과거세력이 이 나라의 권력을 잡으면 나라를 떠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바꿨다.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라도 싸우겠다. 그건 장준하 선생이 관을 열고 본인의 유골을 내게 보여주실 때 바뀐 감정이다. 지금은 내 자신이 없는 것 같다. 장 선생의 혼이 자기 아들의 몸을 빌린 것 아닌가 생각도 든다. 8월 초 개묘하고 1달 이상 하루에 2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내 나이가 지금 몇인데 밥도 잘 안 먹고, 피곤한 상태에서도 머리가 맑은 편이다. 가만히 장 선생이 뭐 하시려나 생각을 해본다. 그 분은 정말 나라걱정을 많이 하신 분이다.”
장 선생의 장남 장호권 씨는 현재 장 선생 타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장준하 암살 진상규명 범국민 추진위원회(이하 장준하 규명회)’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은 잠재적 대권후보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상태다.
그는 8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역삼역 인근에서 이어진 2시간여 동안의 인터뷰에서 장준하 선생 타살 흔적 발견의 의미와 본인이 안철수 원장을 지지하게 된 배경, 이후 대선 국면에서 장준하 규명회가 직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전망을 쏟아냈다.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씨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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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권구도는 여당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선후보로 확정됐고,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계 인사들의 화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민주통합당 경선이 진행되고 있으며, 민주당 경선을 전후해 안철수 원장이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 원장과의 단일화 경선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반 박근혜 전선’이 될 수 있는, 장준하 규명회가 대권 흐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 장준하 선생 유골에 타살흔적이 발견된 계기는 묘소 이장이다. 갑자기 왜 이장하게 되었나?
“작년 5월 큰 비가 와 장 선생 묘가 붕괴했다. 그것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현충원에 모시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지난해 8월 17일 추도식에 방문한 파주 시장이 ‘파주 땅에 모시면 어떻겠느냐? 장 선생의 민족정신과 민주화·통일에 대한 의지를 파주가 간직해 후손들에게 알리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파주에 장준하 공원을 세우면서 그리로 옮기기로 하고 이장하게 된 것이다.”
37년 지나도, 그 모습 그대로
- 타살의 흔적은 이전에도 있던 것 아닌가?
“장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새벽 1시에 시신을 둘러메고 내려와 집에 와서 검시를 했다. 장준하 이름만 불러도 긴급조치로 잡혀가던 시절이기에 공식적으로 검시 할 수 없어 의사 3명이 문상객으로 가장해 검시했다. 당시 사망원인은 오른쪽 귀 뒤 함몰, 그 외 아무런 외상이 없었고 오른쪽 팔 안쪽, 허벅지 뒤쪽에 멍든 자국과 주사바늘자국 2개 정도만 있었다.”
“당시 머리카락 사이에 조금 찢어진 부분이 있어 그곳에 성냥을 넣어보니 성냥이 다 들어가더라. 그래서 우리는 거기에 구멍이 난 줄 알았다. 아마 징 같은 걸로 찍은 것 아닌가 추측했는데 이번에 유골을 보니 그 부위는 깨져서 함몰된 틈 사이더라. 37년 지나도 그 모습 그대로여서 깜짝 놀랐다.”
- 민주당 정권 당시 의문사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타살’ 결론이 나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 당시 1기 조사위가, 노무현 대통령 당시 2기 조사위가 있었다. 나는 당시 외국에 있었는데 한 번은 방송국에서 이와 같은 조사위 활동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대통령이 목숨 걸고 하지 않으면 피해 받은 모든 분들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답했다. 아직 이 사회는 박정희·전두환 당시의 기득 잔존세력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다. 통수권자도 어느 한계까지 올라가면 손을 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최근 말고 그 이전에 장준하 선생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를 방영하려 했을 때, 당시 3공 핵심인사가 방송국에 전화해 방송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상조사위원회 2기 활동이 끝나고 3기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국회에 관련 법안이 상정되었는데, 3공 당시 공안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그 서류를 발의 기간이 넘길 때 까지 숨겼다고 한다. 그게 현실이다.”
“그들은 여전히 많은 것을 갖고 있다. 특히 정보를 갖고 있다. 소위 야당, 적대관계 정치세력들의 개인적 약점까지 갖고 있으니까. 이번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출마 저지 논란도 그런 것과 흡사하다. 다들 정치생명 때문에 (과거사에 대해)어느 선 까지 가다가 중단한다. 장준하 선생 사인도 당시 1~2기 조사관들이 정말 열심히 했다. 찾아내려 했는데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씨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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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를 감추려는 이유
- 그들이 과거사가 밝혀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장준하 선생을 타살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솔선수범해서 과거의 문제를 밝히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안하려 하겠는가? 장준하 선생은 그 분이 가진 상징성 이전에 한 명의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이 살해를 당했다면 국가는 조사할 책무가 있다. 그럼에도 안 하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자꾸 박근혜씨와 연결을 시키지만, 젊었던 박근혜씨는 당시 유신정권에 참여할 위치가 아니었다. 딸로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지만 제대로 된 퍼스트레이디 역할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때문에 이런 문제들에 대해 박근혜 후보에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문제는 그 주변이다. 유신의 잔존세력들이 이제 와서 박정희의 딸을 내세워 대통령을 만들려 하고 있다. 만약 박 후보가 스탈린의 딸처럼 그들을 배재하고 자기 길을 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씨도 그들의 힘을 이용해 통수권자가 되려고 한다. 즉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쿠데타 세력의 집권전략이 박근혜를 통해 진행중이다.”
“이것이 의심에 불과하다면 박근혜씨는 자기의 역사 인식을 알려줄 의무가 있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겠다면, 역사관은 그 책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장 선생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전 국민이 들끓고 있으니 이에 대한 분명한 자기 의견을 내세워야 한다. 야당에서 대통령이 나온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물을 것이다. 장 선생 죽음에 국가기관이 개입되어 있기에 그 수장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다.”
- 3공·5공 잔존세력이 박근혜 후보를 계기로 정권을 재창출 한다는 건 너무 과거의 프레임 아닌가?
“내가 우려하는 모든 것은 그 상황에 대한 것이다. 박근혜씨가 예뻐서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다. 그들에 의해 잘 먹고 잘 살아온 기득세력이 있다. 많은 국민들이 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시스템 속에 관념화 되어 있다. ‘출세해라’, ‘돈 벌어라’ 이렇게 가니 이제 많은 순박한 국민들은 나에게 조금만 이익이 돌아와도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싫고 좋은 기준이 분명해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옳고 그름은 판단하지 않는다. 야권도 많이 잘못 했다. 실망을 줬다. 둘 다 싫은데 비교적 돈 있는 놈들이 모양이 좋은 것이다. 그 막연한 허상을 보고 유권자들은 움직여준다. 그러면서 왜 수탈당하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게 참 가슴이 아프다.”
“해방 후 이승만이 분단을 고착화하며 일본의 앞잡이를 고용했다. 이승만이 정통성 있는 나라를 만들어놓았다면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박정희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기보다 마지막 총독이었다. 한일협정 하겠다고 김종필을 보낸 것은 나는 일본정부와 일왕에게 통치자금 받아온 것이라고 본다. 한일관계의 정리할 것은 하나도 못하고.”
“지금 이런 사람들이 다시 박근혜를 내세운다고 하니, 박근혜 후보가 제대로 한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던 기득권, 재물과 조직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 역사는 후퇴한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이 시점에서 일본과의 외교관계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 마디라도 했는가?”
“박근혜가 위안부 문제 말 한적 있나?”
- 기득권 층의 헤게모니 재장악은 이명박 정부 때 이뤄진 것 아닌가? 이명박 정부의 성격은 무엇인가?
“솔직히 말해 탄생하지 말았어야 할 정부다. 이명박 정부는 친일파가 살아날 다리를 만들어준 정도다. 이명박 정부는 친일을 넘은 애일이다. 독도도 가고, 위안부도 얘기했지만 그것은 임기 말 처음 꺼낸 얘기다. 일본에 빌미를 줬고 정작 대책은 없다. 이번에 장준하 선생과 관련해 청와대에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답변은 (진상조사를 할지 말지 여부를 결정하는데)걸리는 시간이 150일이라는 것이다. 그 때는 대선 후다.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 그런 주장을 사실로 치면, 과거 세력의 부활을 막는 방법은 무엇인가?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간단하다. 그들의 대표주자인 박근혜와 상대할 수 있는 대표주자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와 비슷한 사람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정당정치 시스템에 대해 국민들이 호감을 갖지 않는다. 그 와중에 국민들은 다른 방향을 선호하고 있고 예를 들어 안철수 현상이 있다.”
“그 사람은 깨끗하고 박근혜와 대칭된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모자란 점이 있어도 채워주면 된다. 그렇다면 그를 내세워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 것이다. 만약 안철수 원장이 대통령이 되면 정치적 경험이 없어도 기존 민주 정당세력이 (도움을)주면 될 것 아닌가? 전반적인 기대를 몰아줘 반민족에 대한 싸움을 해야 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열린 후기 학위수여식 자리에서 취재진과 만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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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방이 온전한 세력을 갖고 있는 반면, 안철수 원장은 그렇지 않다. 세력 대 세력의 대결이 안 되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 쪽은 나름의 세력이 있다. 무소속 대통령에 대한 우려도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
“정당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안철수 원장은 대통령만 하면 된다. 국민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달라는 것이다. 행정은 전문가들을 쓰면 되고 정치는 정치인이 하면 된다. 삼권분립을 제대로 만들어 놓는 것이 우선이다. 안철수는 단임으로 끝내야 하는 사람이다. 역사의 흐름에서 그는 구원투수다. 그리고 차차기는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국민의 의식이다. 문화가 있고 정체성을 만들어놓으면 차차기도 딴 짓을 못할 것이다.”
안철수를 지지한 이유
- 그 계기를 장준하 선생으로 만들겠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장준하 규명회의 역할을 무엇으로 규정해야 하나?
“장 선생은 37년 만에 묘가 무너졌다. 그게 엄청난 이슈가 된 것이다. 장 선생이 유신철폐 100만인 서명운동을 했는데, 그것을 흉내 내 (장 선생 진상규명을 위한)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였고, 1주일이 안돼서 엄청난 호응이 있었다. 나는 박근혜 주변 세력이 하려고 하는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막기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그것을 혼자 할 수 없으니 뜻이 같은 시민단체를 끌어 모으려 한다.”
“장준하 규명회는 7일 준비위원회를 발족해서 인선작업에 들어갔다. 많은 분들이 하겠다고 했다. 아마 19~20일 사이에 발표할 예정이다. 여기서는 장준하 선생 의문사의 진상을 규명한다. 장 선생님 시신을 부검하는 방법과 국내외 법의학자들이 공유해 진상을 규명하는 등의 역할이 있다. 이는 장 선생 하나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신 때 의문사 당한 많은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 장호권 선생은 사실상 안철수 원장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건데, 장준하 규명회에 들어가나?
“설립 후 유족인 나는 빠질 것이다. 나는 박근혜 후보 주변의 세력을 저지하는 일에 전념을 다할 것이다. 인선과 관련해서는 동교동(김대중)과 상도동(김영삼)을 찾아 관여를 했다. 아마 장준하 규명회의 대표를 뽑고 50여명의 집행부가 있을 것으로 보이며 고문과 천여명의 발기인 정도가 포함될 것이다.”
- 장준하 규명회는 박근혜 후보와도 민감하게 얽힌 사안인데, 김영삼 전 대통령도 돕겠다고 했다.
“사실 상도동보다는 동교동과 조금 더 왕래가 있었다. 장 선생님 살아계실 때도 김대중 선생이 우리 집에 찾아왔고, 김대중 선생은 장 선생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다만 김영삼 선생을 먼저 찾아간 것은 김대중 선생이 고인이 되었으니까. 내가 상도동에 간 날은 우연인지 박근혜 후보가 다녀간 다음날이었다. 찾아가서 뵈니 건강이 좋아 보이시진 않더라. 건강은 괜찮다고 하시는데, 어제일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라고 물었더니 대답은 안하셨다.”
“김영삼 선생에게 내가 온 이유를 설명하니 ‘알고 있다, 얘기 들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가 대통령 때 장 선생 일에 대해 관심 있게 못 봐서 미안하다’고 하시더라. ‘이제라도 과거의 잘못을 고치고 진상을 밝혀야겠다, 그러니 열심히 하겠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하겠다’고 하셨다. 다만 마지막 얘기가 마음에 걸렸다. 김영삼 선생은 ‘열심히 하세요, 그런데 용기를 갖고 하세요’라고 말했다. 일상적 언어일 수도 있겠지만 힘든 일이 봉착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씨 이치열 기자 truth7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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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 미칠 수도”
- 어쩌면 장준하 규명회가 반 박근혜 연합전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스펙트럼이 어디까지 넓어질지도 관심사인데, 인선은 얼마만큼 구성되었는가?
“이미 많은 부분이 정해졌다. 이후 발표 하겠지만 박근혜 후보 측에서 의외라고 할 수 있는 분들도 들어올 수 있다. 규명회는 법조 학계 종교계 등이 적극 가담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내가 CSKorea(안철수 원장 지지단체)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이는 장준하와 같은 뜻을 지닌 올바른 지도자를 뽑자는 의미로 구성된 단체다. 나는 정치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 주변 인물들이 다시 정권을 잡는 것을 보기 힘들다.”
“장 선생도 지금에 와서 도저히 못 참겠다며 일어나신 것 아닌가 싶다. 박정희가 산업역군으로 평가받고 그 이유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재건국민운동본부, 새마을사업 등을 꼽지만 사실 이것의 기초는 장면 정부가 닦았다. 당시 장 선생이 국토사업본부장을 했고 그때 대한민국 공채 1기 공무원들을 뽑았다. 2천여명이 되었는데 장 선생이 이들을 교육했다. 이들이 서울에 와서 임명장을 받던 그 날이 바로 5.16이다.”
“장면정권이 계속했다면 우리가 지금 자동차 안타고 다녔겠나? 좀 늦었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자전거만 타고 다닐 것이다? 그렇지 않다. 마치 자기들이 다한 것처럼 해놓고 밑에 깔린 국민들의 피와 희생은 무시했다. 나는 유신이란 단어자체가 너무 싫다. 메이지유신, 일본이 쓰던 걸…. 뼛속깊이 그런(친일) 것이고, 박정희는 청와대 안가에서 엔카와 일본군가를 부르며 향수를 느꼈다고 한다. 이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장준하 선생은 희망가, 독립군가 이런 것을 불렀는데, 이 나라 수장이란 자는 일본 정종을 마시며 엔카를 듣고 그걸로 향수를 느낀다니, 향수는 고향을 그리는 것이다. 고향이 일본이란 얘기지.”
“나는 한때 만약 박근혜 후보와 과거세력이 이 나라의 권력을 잡으면 나라를 떠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바꿨다.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라도 싸우겠다. 그건 장준하 선생이 관을 열고 본인의 유골을 내게 보여주실 때 바뀐 감정이다. 지금은 내 자신이 없는 것 같다. 장 선생의 혼이 자기 아들의 몸을 빌린 것 아닌가 생각도 든다. 8월 초 개묘하고 1달 이상 하루에 2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내 나이가 지금 몇인데 밥도 잘 안 먹고, 피곤한 상태에서도 머리가 맑은 편이다. 가만히 장 선생이 뭐 하시려나 생각을 해본다. 그 분은 정말 나라걱정을 많이 하신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