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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급인 ‘거대마젤란망원경’(GMT) 조감도. 2019년 칠레에 세워질 망원경의 주경은 지름 25.4m로 허블망원경보다 집광력은 100배, 분해능은 10배가 뛰어나 과학자들은 우주 탄생 때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과학과 내일] ‘거대 마젤란망원경’ 제작 프로젝트
대전 대덕연구단지 초입에 위치한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지난달 17일 작지만 의미 있는 모임이 있었다. 세계 최대급 망원경인 ‘거대마젤란망원경’(GMT)에 들어갈 부경(보조망원경)인 ‘고속조정반사경’(FSM)에 대한 최종시험 검토회의(FTR)가 열린 것이다. 오전 9시30분에는 천문연구원에서, 11시에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오후 2시30분에는 고등기술연구원에서 잇따라 ‘에프에스엠’ 시연회가 열렸다. 지름 1.1m짜리 반사경의 시험모델 개발에는 이들 기관 외에도 광주과학기술원(지스트)과 미국 국립광학천문대(NOAO)가 참여했다.
시연회가 세 기관에서 잇따라 열린 것은 각자 맡은 임무가 달라서다. 이날 시연회에서는 표준연이 책임을 맡은 거울 표면의 정밀도와 고등기술연구원이 만든 ‘팁-틸트’ 제어의 정밀도 등 크게 두가지가 측정 대상이었다. 거울 표면 정밀도는 14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다. 머리카락 두께의 1000분의 1 정밀도로 가공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제주도에서 한라산을 깎아 편평하게 하는데 높이 차를 1㎜ 이내로 만드는 셈이다. 달리 말하면 1000㎞×1000㎞ 면적 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 14㎜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지엠티의 구조상 부경은 공중에 매달린 형태다. 부경 1개 무게가 100㎏인데, 이것이 진공으로 지탱된다. 망원경이 바람에 흔들리면 이를 반작용으로 보상해줘야 한다. 또 우주에서 날아온 빛이 대기에 의해 굴절되는 정도를 계산해서 거울 뒷면에 달린 6000~7000개의 액추에이터를 작동시켜 거울 표면의 각도를 보정해줘야 한다. 이 일을 하는 것이 ‘팁-틸트’ 제어다. 여기에는 각도 0.03초의 정밀도가 요구된다. 직각(90도)의 1000만분의 1로, 비유하자면 항공모함을 머리카락 두께의 10분의 1 각도로 정밀하게 제어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지엠티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박병곤 천문연 광학천문센터장은 “반사경과 이를 지지하는 미러셀, 팁-틸트 제어 등 부분별 성능 실험 결과는 만족스럽다. 연말까지 조립실험을 거듭한 뒤 국제 공개경쟁 입찰에 제안서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블에 안잡히는 우주 초기 7억년
허블보다 10배 큰 망원경으로 찾자
한국 등 국제컨소시엄이 나섰다
천문연 등 보조거울 모델 개발해
연말께 경쟁 입찰 제안서 낸다
10% 지분에 기술 기여까지 하면
우리도 최대망원경 소유국 된다
2019년 칠레에 세워질 바로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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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리조나대학의 지엠티사업팀이 주경을 구성하는 7개의 8.4m짜리 반사경 가운데 하나를 제작하고 있다.(위 사진)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지난달 17일 고속조정반사경과 팁-틸트 제어 등 지엠티 부경을 구성하는 부품들의 성능을 실험하는 시연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
지엠티 사업이 경쟁입찰 방식을 취하는 것은 최고의 품질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국제컨소시엄으로 사업을 할 때 참여 국가나 단체는 현물 출자(인카인드) 방식을 취한다. 국제열핵융합실험로(ITER)가 대표적이다. 참여국은 일정 비용을 대지만 예산을 자신들이 맡은 부품을 제작하는 데 직접 쓰기에 품질까지 보장하지 못한다. 지엠티 사업 컨소시엄은 돈은 모으되, 그 돈을 쓸 부품제작 업체는 공개경쟁을 통해 뽑겠다는 것이다. 박 센터장은 “현재로서 경쟁률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 기술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은 있다”고 말했다.
지엠티 사업은 2003년 시작됐다. 지엠티에는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참여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2009년부터 국가연구개발사업의 하나로 참가하고 있다. 목표는 2019년까지 지름 25.4m의 세계 최대급 망원경을 칠레 아타카마사막의 해발 2550m에 있는 라스캄파나스에 건설한다는 것이다. 높이 35m에 무게가 1100t에 이르는 망원경을 너비 55m, 높이 50m의 원통형 돔이 둘러싸게 될 지엠티는 20층짜리 건물과 맞먹는 거대한 장비다. 구조는 지름 8.4m짜리 주경 7개와 지름 1.1m짜리 부경 7개로 이뤄져 있다. 주경 6개는 구멍이 뚫린 나머지 주경 1개를 둘러싼 꽃잎 모양으로 배치된다. 빛을 들어온 방향으로 반사하는 ‘정축’이 아니라 위쪽의 부경 쪽으로 꺾어 반사하도록 ‘비축’으로 돼 있다. 주경에서 반사된 빛은 부경에서 다시 비축으로 반사돼 가운데 주경의 중앙에 뚫린 구멍으로 모아진다. 이 빛을 분석해 우주를 탐사하는 것이 지엠티의 목적이다.
지엠티 말고도 미국·캐나다·일본이 주축이 돼 1.5m짜리 작은 거울 500개로 지름 30m짜리 망원경을 만들려는 ‘30미터망원경’(TMT) 프로젝트와 1.5m짜리 작은 거울 800~900개를 붙여 지름 42m짜리 망원경을 만들려는 ‘유럽초대형망원경’(EELT) 사업이 진행중이다.
과학자들이 거대망원경들을 만들려는 이유는 좀더 높은 ‘시력’으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어두운 천체를 보거나, 보아온 우주를 좀더 자세히 보기 원해서다. 고대 로마시대 군인 선발 시험에서 별자리를 구분하는 능력으로 시력을 검사했듯이, 시력은 천체를 관측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다. 시력은 일정한 간격의 두 점을 구분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시력이 좋다는 것은 더 좁은 간격의 점이라도 구분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간격을 ‘분해능’이라 한다. 사람 눈의 분해능은 동공의 지름에 반비례한다. 천체 관측에서 우리의 눈을 대신하는 망원경도 거울의 지름이 클수록 분해능은 작아진다. 곧 망원경 시력은 좋아진다. 사람 눈과 달리 망원경의 성능을 구분하는 요소로 얼마나 많은 빛을 모을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집광력’이 하나 더 있다. 집광력은 거울 면적에 비례한다.
지금까지 우주의 팽창, 초신성 등 숱한 우주의 비밀을 알려준 허블망원경의 지름이 2.4m로, 지름 25m인 지엠티의 집광력은 허블의 100배(10×10), 분해능은 10배다. 지엠티가 허블에 비해 ‘시력’이 1000배 높은 것이다. 지엠티를 허블처럼 우주에 설치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기 때문이다. 허블에는 지금까지 약 60억달러(6조6000억원)가 들었다. 지엠티 예산은 7억4000만달러(8100억원)에 불과하다.
지엠티사업단은 현재 1개의 주경을 완성하고 두번째 주경을 제작하고 있다. 부경과 달리 8m급 주경인 비축 반사경을 제작할 수 있는 곳은 미국 애리조나대학밖에 없다. 첫번째 주경 제작에는 설계 단계부터 7년이 걸렸지만 그 과정에 제작공정의 표준화가 이뤄져 두번째 주경은 2년 안에 완성할 전망이다. 지엠티사업단은 2019년께면 적어도 4개 이상의 주경으로 지엠티를 조립해 실험에 돌입한 뒤 2022년께면 7개의 주경과 부경이 모두 조립된 세계 최대 망원경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지엠티사업의 과학연구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황나래 천문연구원 광학천문센터 연구원은 “허블망원경이 지금까지 찍은 영상 중 가장 오래된 우주는 탄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30억년 전 것이다. 지엠티는 이 ‘허블 울트라 디프 필드’ 이전, 곧 빅뱅 뒤 7억년 사이의 우주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최초의 별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또 지엠티가 우주를 가속팽창시키는 ‘암흑에너지’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게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엠티 참여 지분은 7400만달러다. 전체 예산의 10%를 부담하는 만큼 지엠티가 완성된 뒤 10%에 해당하는 약 한달 동안은 우리 연구진이 망원경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권한을 가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광학망원경은 보현산천문대의 1.8m짜리 망원경이다. 최병곤 센터장은 “망원경 측면에서만 보면 우리나라는 60년 이상 뒤처져 있었다고 불 수 있다. 지엠티가 완성되면 우리도 세계 최대 망원경의 보유국이 된다. 지금까지 해답을 찾지 못했던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어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덕연구단지/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