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평 계곡

이윤진이카루스 2013. 8. 22. 08:48

수도권 숨겨진 맑은 계곡 늦여름 휴가지로 딱

등록 : 2013.08.21 20:48 수정 : 2013.08.21 20:48

1 가평 경반계곡의 수락폭포. 경반계곡은 울창한 숲과 깨끗한 물을 자랑하는 청정 골짜기다.

[esc] 커버스토리 가평일대 청정계곡

찌는 듯한 더위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끼어들면서 일 때문에 또는 북새통을 피해 미뤄뒀던 휴가를 쓸 만한 때가 왔다.
서울에서 차로 한두시간 거리, 붐비지 않으면서 물 깨끗하고 숲 우거진 가평 칼봉산 경반계곡은 당일 피서지로도 강추다.

무더위는 이어지고 피서철은 마무리돼 간다. 일에 쫓기고 치여 차일피일 휴가 미뤄오신 분들, 이제 늦휴가 한번 다녀오실 만하다. 인산인해 북새통이던 피서지 인파는 줄고, 교통체증도 좀 나아졌으니 그럭저럭 견디며 오고갈 만한 때다. 늦휴가를 계획중인 수도권 주민들이 찾는 곳은 아마도 이런 곳이 아닐까. 서울에서 한두시간 거리에 있고, 산 높고 골 깊으며 숲은 울창하고 물 또한 깨끗한데, 덜 알려져서 붐비지 않는 곳. 지난주 둘러본 산 높고 물길 많은 고장 경기도 가평의 여러 골짜기 중에서 칼봉 자락의 경반계곡이 딱 그런 곳(에 가까운 곳)이었다. 붐비지 않고, 깨끗한 물길 따라 숲은 우거져 쉴 만한 그늘이 많은 곳, 거울 경(鏡), 소반 반(盤) 자를 쓰는 골짜기다. 수도권 주민이라면 당일 피서지로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성싶다. 연인산(1068m) 남쪽 매봉(929m)·깃대봉(909m)·칼봉(900m) 기슭으로 파고든 바위 계곡이다.

칼봉산자연휴양림부터
수락폭포까지 물길 따라 걸으며
물소리와 숲내음을 맘껏 즐길 수 있다

“이 물 좋은 데를 두고 그 멀고 높은 산골짜기로들 왜 가는지.” 경반계곡에 남은 한곳뿐인 농가에서 3대째 살고 있다는 배인택(52)씨의 자부심 넘치는 경반계곡 자랑이다. 물론 웅장한 경치가 아닌, 깨끗한 물과 숲을 두고 하는 얘기다. 경반계곡은 가평 연인산도립공원 칼봉과 매봉 사이 회목고개 부근에서 발원해 내려오다 이웃한 용추계곡 물길과 만나 가평천으로 흘러드는 5㎞ 길이의 골짜기다. 피서철이면 골짜기가 온통 인파로 뒤덮이는 이웃 용추계곡에 비하면, 한적하다고 할 정도다. 웅장한 맛은 없으나 빽빽이 우거진 숲터널 사이로, 옥빛 소와 자그마한 폭포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바위골짜기다.

가평읍에서 계곡으로 들어가다 보면 초입엔 물길 따라 펜션·민박집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칼봉산자연휴양림 부근부터는 깨끗한 물줄기와 숲길만이 탐방객을 맞아준다. 칼봉산휴양림이 바로 경반계곡 탐방의 출발점이다. 회목고개 밑 바위절벽에 걸린 수락폭포까지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 걸으며 맑은 공기와 물소리, 숲의 내음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길은 임도처럼 널찍한 흙길·돌밭길이지만, 차량이 다니기엔 알맞지 않다. 4륜구동 차량도 버거운 돌밭길이다. 수시로 물길을 건너야 하므로, 비가 온 뒤엔 길이 끊기기도 한다.

소규모 사설 야영장으로 쓰이는 옛 가평초등학교 경반분교 지나 잠시 오르면 이 골짜기의 유일한 농가인, 굴참나무 껍질로 벽을 장식한 배인택씨 집이 나온다. 경반계곡엔 화전민 이주정책이 시행된 70년대 초까지 80가구가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배씨는 그때 나가지 않고 남은 유일한 원주민이다. “사람 안 살고, 찾는 이도 적으니 여태까지 깨끗한 골짜기가 유지돼 왔다”는 게 배씨 설명이다. 집터와 경작지 터엔 모두 잣나무와 낙엽송을 심었다고 한다. 칼봉산휴양림도 이때 심은 잣나무숲에 둘러싸여 있다.

2 수락폭포 물줄기에 몸을 맡기고 물안마를 받는 탐방객들.

배씨 집 앞에는 아주 오래됐다는 계수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다. “칠백만원에 팔라는 걸 거절해” 살아남은 나무다.

휴양림에서 수락폭포까지 1시간 거리지만, 열심히 걷기만 한다면 놓치는 게 많다. 길섶의 달맞이꽃도 물봉선화도, 산길 아래 어둑한 숲 사이에서 진하게 흘러나오는 영양분 많은 물 소리도, 배골·우묵골·점골·울음바위 등 옛 지명과 사람살이 흔적도 모두 지나치게 된다.

물길을 왼쪽 발아래 두고, 연인산산림관리초소 지나 한굽이 돌아 넘으면, 아담한 폭포 옆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암자 경반사에 이른다. 경반사는 허름한 민가 건물에 불상을 모신, 20년 전 지어진 개인 암자다. 법당에 딸린 방의 문을 들여다보며 인기척을 내니, 막 라면을 냄비에 넣고 있던 남자가 내다본다. 경반계곡 경반사 관리인 경반 법사(64)였다. 라면이 끓는 동안 그가 말했다. “에, 여기는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개방돼 있는, 말하자면 열린 법당입니다. 백팔배를 하든, 묵상을 하든, 물을 떠가든, 밥을 해 먹든, 잠을 자고 가든 원상대로만 해 놓고 가면 돼요.”

허름해도 구색은 대충 갖춘 암자다. ‘대웅전’ 현판을 내건 슬레이트지붕의 법당과 요사채, 나무판자로 엮은 허름한 해우소, 소나무 기둥을 일주문처럼 세우고 작은 종을 매단 ‘종각’까지 있다. ‘대웅전’ 앞을 지나 산길을 오르면 칼봉산으로 이어지고, 돌계단 밑에서 해우소 옆 물길 따라 오르면 회목고개와 수락폭포로 가는 임도다.

회목고개로 오르는 임도(시멘트길)에서 ‘수락폭포’ 안내판 옆 물길로 내려서서 물길 따라 바위들을 디뎌 잠시 오르면 우렁찬 물소리와 함께 자욱한 물안개를 거느린, 자못 구경할 만한 규모의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높이 30m쯤 되는 바위절벽을 물살이 비스듬히 퍼지며 타고 흘러내리는 형국인데, 비가 온 뒤엔 엄청난 폭포수가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주민들이 ‘물떨어지기’라 부르던 데서 유래한 수락폭포의 본디 이름은 경반폭포다. 계곡 이름과 마을 이름도 이 폭포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폭포 아래쪽에는 바위를 타고 작은 폭포들이 이어지며 아담한 물웅덩이들을 만들어낸다. 찬물에 발 담근 채 폭포를 감상하던 40대 남성(서울)은 “수도권에 이런 데가 있는지 몰랐다”며 “원시림처럼 숲이 우거진 깨끗한 계곡인데다, 폭포 규모도 생각보다 커서 볼만했다”고 말했다.

3 경반계곡 유일한 농가인 배인택씨 집 쉼터. “아주 오래됐다”는 계수나무 그늘 밑이다.
칼봉산·매봉이나 연인산 쪽으로 향하는 등산객을 제외한 대부분의 탐방객들은 수락폭포 앞에서 탁족을 즐긴 뒤 발길을 돌려 내려간다. 하지만 주민 배씨는 “남자라면 폭포 위쪽의 선녀탕에 발을 담가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력 없는 남자가 선녀탕에 발을 담그면 힘이 솟는다는 얘기가 있다”는 것이다. 선녀탕은 은은한 옥빛 물이 고인, 선녀가 몸을 담글 만한 아담한 소다. 발 담그고 손 담그자 과연,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찬 기운이 온몸에 전해져왔다. 땀을 식힌 뒤 일어서니, 도끼를 집어든 나무꾼처럼 몸에 힘이 불끈 솟는 듯하기도 했다. 선녀탕으로 가려면 산악자전거 코스이기도 한 임도를 따라 10분쯤 걸어올라야 한다. ‘강우량 자동측정 경보탑’ 지나면 왼쪽 ‘MTB코스’ 안내판 옆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선녀탕 아래쪽 물길은 바로 수락폭포의 상단이므로 다가가지 않는 게 좋다.

회목고개 위의 성황당을 둘러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회목고개는 칼봉과 매봉 등산로 갈림길로, 정상에 옛날 회목동 주민들이 신성시해온 물푸레나무 성황목이 있다. “수백년 된 거대한 물푸레나무와 고로쇠나무가 붙어 있어요.”(배인택씨) 해마다 추석 무렵 주민들이 추렴해, 햇곡식·햇과일·돼지머리로 제를 올렸다고 한다.

칼봉산휴양림에서 수락폭포까지 3.5㎞, 도보 1시간. 산림휴양관 건너편 임도를 따라 산림초소 앞까지 차량이 들어갈 수는 있으나 초소 부근에 주차공간이 적다. 휴양림 부근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걸어오르는 게 최상이다.

가평/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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