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봉화 닭실마을

이윤진이카루스 2012. 8. 16.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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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esc

청량한 바람 스며드는 여름 끝자락의 고택

등록 : 2012.08.15 18:47 수정 : 2012.08.15 18:47

 

봉화 닭실(달실)마을 내성천의 석천계곡. 물길 건너편에 석천정사가 보인다

[매거진 esc] 500년 역사 정갈하게 남아 있는 봉화 닭실마을과 내성천 석천계곡

한과 이름난 닭실마을
보물 지정 고서적 가득한
충재박물관도 볼만

닭실마을은 우리 전통 과자인 한과로 이름난 곳. 경북 북부의 청정 고을 봉화 땅, 내성천변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다. 한과 주문이 줄을 잇는 설 명절을 앞두고 많이 소개되는 곳이다. 하지만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과 선비 정신의 한 자락을 보고 느낄 수 있어 사철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울진·영덕·태백·삼척 일대로 늦여름 휴가여행 오고 가는 길이라면 이곳에 들러 잠시 쉬어갈 만하다. 서늘한 선비 정신이 깃든 고택, 물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자, 그리고 소나무 우거진 계곡 숲길에 잠시 마음을 빼앗기다 간다면 쉬는 즐거움이 배가될 게 틀림없다.

닭실은 ‘달실’로 발음하고 한자로는 유곡(酉谷)이라 적는다. 지형이 ‘금계포란형’(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세)의 명당인 데서 나온 이름이다. <택리지>를 지은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유곡을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 풍산의 하회와 함께 삼남지역 4대 길지로 꼽았다고 한다.

이 마을 유래는 약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중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문신이자 유학자인 충재 권벌(1478~1548)이 입향하며 안동 권씨 마을을 이뤘다. 지금도 그 후손들이 마을과 고택을 지킨다. 충재 권벌 종택은, 솟을대문에 ㅁ자형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내삼문, 별채, 사당채 등을 두루 갖춘 경북 북부의 전형적인 양반 가옥이다.

종택 옆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정자 청암정에 오래 머물며 기웃거려볼 만하다. 거북 형상을 한 커다란 바위 위에 날아갈 듯한 누각을 짓고, 바위 둘레엔 물을 끌어들여 못을 만들었다. 충재 권벌이 정자를 짓고, ‘청암수석’ 현판 글씨는 미수 허목이, ‘청암정’ 현판은 매암 조식이 썼다고 한다. 정자엔 온돌방을 들이지 않았는데, 본디 방을 들여 불을 땠으나 불을 때면 바위가 울었다고 한다. 거북 형상의 바위가 뜨거워서 운다 하여 방을 철거하고 마루로 만들었다고 전해온다.

물길 위엔 한 사람이 간신히 건널 수 있는 석교가 놓여 있고, 물길 주위엔 버드나무·향나무·단풍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다리를 조심조심 건너가노라면, 별천지 섬나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다리 건너 계단을 오르자, 들창을 활짝 열어젖힌 널찍한 누마루가 ‘청암정’ 현판 밑을 향해 펼쳐진다. 누마루에 올라앉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아주 개운해진다. 사방에서 누마루를 향해 쳐들어오는 청량한 햇살은 눈이 시릴 정도다. 이 아름다운 정자를 완전 개방해 놓아, 누구든 드나들며 정취를 즐길 수 있게 했으니, 행동은 되레 조심스러워진다. 이곳에서 충재가 글을 읽었고, 그 후손들도 대를 이어 글 읽고 쓰고 배우고 노래하며 살아왔으리라.

청암정 버금가게 아름다운 건물이 정자 앞의 ‘충재’다. 낡은 툇마루와 기둥, 청암정을 향해 열어젖힌 들창, 소박하고 담담하게 걸려 있는 ‘충재’ 현판 들은 하나같이 마음을 가라앉혀주고 청소해주는 정화제들이다. 이 단아한 건물을 옆에서 바라보고, 정면에서 응시하고, 뒤쪽에서 지켜보노라면, 고택 돌담과 담벽의 쪽문과 청암정 누마루가, 그곳으로 드나드는 청량한 바람결에 씻겨 새로 보이는 느낌이다. 서당으로 쓰던 건물이다.

청암정 옆 돌담의 쪽문을 나서면, 이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충재박물관이 있다. 안동 권씨 충정공파 집안의 유물들을 전시한 곳이다. 마을 단위에 박물관이 들어선 것도 놀랍지만, 이 아담한 박물관에 소장한 내용물을 보면 더 놀라워진다. <충재일기>(보물), <근사록>(보물)을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집안의 고서적, 고문서들이 즐비하다. 청암정 안에 걸려 있던 퇴계 이황이 지은 ‘청암정제영시’ 편액과 석천정에 있던 권동보가 지은 제석천정사’ 편액 등 두 정자의 편액들과 현판도 이곳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박물관 앞엔 자전거를 대여해 주는 곳이 있어, 자전거로 마을 전체를 둘러볼 수도 있다. 30분에 2천원.

석천계곡 바위에 새겨진 ‘청하동천’ 석각(왼쪽 위), 청암정 앞 부속건물인 ‘충재’(아래), 청암정으로 건너가는 석교(오른쪽)
도깨비 뛰어놀던
석천계곡
늦여름 더위 식히기 딱

마을길 논길 지나 내성천 물길 건너며 15분쯤 걸으면, 경치 좋은 석천계곡 물길과 물길을 담벽 삼은 듯 세워진 또 하나의 정자가 나타난다. 충재의 큰아들 권동보가 세운 석천정이다. 권동보의 호가 청암이다. 석천정 정자에서 바라보는 물길도 아름답고, 물길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정자도 아름답다. 물길 건너편으론 나무다리를 통해 건너갈 수 있으나, 수량이 불어나면 건널 수 없다. 건너편 물길 옆으로 이어진 소나무숲길이 매우 운치있다.

소나무숲을 그늘 삼아 물가 바위에 앉아 도시락을 꺼내 둘러앉는 이들이 많다. 김밥 하나 입에 넣고 정자 바라보고, 단무지 하나 넣고 물소리·바람소리 들으며 늦여름 한때를 즐기는 이들이다. 물이 아주 깨끗한 편은 아니지만, 잠시 발을 담그고 쉴 만한 곳이다.

바람소리에 휩싸여 잠시 거닐면 오른쪽 바위절벽에 새겨진 커다란 ‘청하동천’ 글씨를 볼 수 있다. 충재의 5대손 권두옹이 쓴 글씨라고 한다. 옛날 이 골짜기에 도깨비들이 많이 찾아와 놀았는데, 이 때문에 석천정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의 고통이 심했다고 한다. 권두옹이 바위에 이 글씨를 새기고 주사칠을 해놓아 도깨비들을 쫓았다고 전해온다. 지금도 글씨에 붉은 주사칠 흔적이 남아 있다. 좀더 하류로 가면 다소 소란스런 삼계유원지가 나타나 발길을 돌리게 한다. 석천계곡 일대와 닭실마을은 사적 및 명승으로 지정돼 있다.

돌아나와 내성천 다리 부근에서 다시 바라보자, 마을 전경이 한층 아늑하게 다가왔다. 평탄한 논도 비탈진 산자락도, 그 사이에 첩첩이 들어선 기와지붕들도 수백년을 모두 제자리에 편안히 자리잡아왔다는 것, 그것이 바로 전통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풍경이다.

봉화=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travel tip

고택에서 주무세요

가는 길 수도권에선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 타고 안동 쪽으로 내려가다 영주나들목에서 나가 28번 국도 타고 영주로 간 뒤 36번 국도 따라가다 봉화읍 지나 한굽이 돌면 왼쪽에 닭실마을이 있다.

묵을 곳 닭실마을엔 일반 민박집이 몇 집 있을 뿐 가족단위 고택 숙박체험 장소는 없다. 춘양면 소재지에 있는 옛 한옥 만산고택(054-672-3206)과 권진사댁(054-673-5800)에서 묵을 만하다. 1박 4만원부터. 식사 별도 5000원. 봉화읍과 춘양면 소재지에 모텔이 몇 곳 있다.

여행문의 닭실마을(달실마을) (054)674-0963, 봉화군청 (054)679-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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