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번 국도 - 2/ 한겨레 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4. 10. 23. 10:09

특화섹션

매거진esc

들판마다 옛 정취 물씬한 볼거리 빼곡

등록 : 2014.10.22 22:38 수정 : 2014.10.22 22:38

 

전북 완주 삼례읍 비비정마을 한 농가에 내걸린 감타래.

[매거진 esc] 1번국도
목포에서 파주까지 500km, 4박5일 일정으로 떠난 1번국도 종주 드라이브 여행

국도 1호선(1번 국도)은 사실 드라이브 여행을 즐기기엔 좋은 길이 아니라고 여겼다. 일부 구간을 빼고는, 직선화·확장 및 우회도로 공사로 ‘고속화도로’가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달리면서 이런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우선, 도심화된 수도권 일부를 제외하고 1번 국도는 향기로운 가을을 만끽하기에 충분한 드라이브 코스였다. 특히 중부·남부의 1번 국도는 벼 수확에 콩타작하고 들깨 터는 가을 들판이 펼쳐지는 매혹적인 길이다. 무엇보다 선인들 애환이 밴 옛길을 바탕으로 건설된 첫 국도라는 데에 무게가 실린다. 비록 넓혀지고 곧게 펴진 도로이긴 해도 주변엔 선인들 발자취와 보고 즐길 거리들이 깨알같이 널렸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황금빛 들판을 관통하며 마을에서 마을로,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1번 국도를 따라 도로변의 볼거리들을 찾았다. 목포에서 파주까지 500㎞, 4박5일 일정을 짜 이동하며 꼼꼼하게 뒤적이려 애썼다. 1번 국도변 5㎞ 안팎 거리까지의 볼거리들이다.

경기 수원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과 성곽.

첫날-1번국도 기점 전남 목포~나주

목포시 대의동2가 1번지. 신의주까지 달리던 국도 1호선과, 부산으로 이어지는 2호선 기점 기념비와 도로원표가 놓인 곳이다. 목포근대역사관 본관(일제강점기 목포영사관) 앞이다. 2001년 2호선 기점은 신안 장산도로 변경됐고, 1호선 기점은 2012년 목포대교 건너 신항만이 건설된 허사도(목포시 달동)로 옮겨졌다.

일제강점기 유물인 목포영사관과 동양척식회사(근대역사관 별관) 건물, 일본식 정원인 이훈동정원 등이 걸어서 3~4분 거리에 있다. 근대역사관에 전시된 자료와 사진들은 잔혹했던 일제 만행을 결코 잊을 수 없게 해준다.

1번 국도 표지판을 따라 시내를 빠져나와 무안으로 향했다. 초의선사 유적지와 방치돼 무너져가고 있는 유교리 고가(1912년 건립)를 보고 함평 땅으로 들어섰다. 길은 견고한 왕복 4차선 아스팔트지만, 주변으론 부드럽게 출렁이는 황금빛 논밭이 펼쳐진다.

학다리 지나 죽정리 거쳐 고막리로 든다. 여기 볼거리가 있다. 고막리 고막회관 옆 고막천에 ‘떡다리’(고막천 석교·보물)가 걸려 있다. 고려 말~조선 초에 축조된 아름다운 돌다리다. 이곳은 1910년대까지 쌀 100석을 실을 수 있는 배가 드나들었을 정도로 번성했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 흔적이 다리 옆 둑방에 선정비 몇개로 남아 있다.

나주시내 주변에선 금성관(객사)·동헌 등 옛 관아와 억새 출렁이는 영산강변을 둘러볼 만하다. 내륙 유일의 등대인 영산포 등대(1915년 건립)가 있는 영산포에선 황포돛배도 탈 수 있다. 다도면 풍산리의 전남산림환경연구소 500m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연인들의 산책길이다. 30~40년 된 160여그루가 일직선으로 도열해 있다. 전통한옥과 돌담길이 아름다운 도래마을(풍산홍씨 집성촌)이 여기서 차로 2분 거리.

전남 함평 함평천변에 우거진 억새 무리.

둘째 날-전남 나주~전북 정읍

광주 땅으로 들어선다. 고싸움놀이로 유명한 칠석동의 650년 된 은행나무가 아름답다. 거대한 나무 밑엔 노익장을 과시하듯 샛노란 은행들을 잔뜩 깔았다. 마을길을 따라가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 장군의 사당인 포충사와, 과거 급제하면 북을 걸고 치며 잔치를 벌였다는 550년 된 왕버들 ‘괘고정수’, 송시열이 쓴 현판이 걸린 정자 양과동정이 볼만하다.

길은 호수(장성호) 아름답고 볼거리 많은 장성 땅으로 든다. 조선 중기의 학자 김인후의 사당인 필암서원도 좋지만, 청백리 박수량 묘에 세워진 백비가 감동적이다. 박수량. 한성부판윤 등 고위직에 올랐으면서도 소박·검소한 삶을 살아, 황희·맹사성과 함께 조선 3대 청백리로 꼽히는 분이다.

그는 무덤에 빗돌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명종이 빗돌을 하사하면서 고인 뜻에 누가 되지 않도록 공적을 기록하지 말라고 지시해 흰 빗돌만 세웠다. 하지만 후대에 이런 과정을 적은 거대한 빗돌을 옆에 세워 고인의 뜻은 존중되지 않은 모습이다. 좀더 우스운 건 주차장 옆의 작은 백비 관련 자료전시관 외벽에 빼곡하게 적어 방문 흔적을 남긴, 시·군청, 의회, 교육청, 기업체 등 ‘백비를 찾은 기관·단체들’ 명단이다. 아무 공적도 기록하지 않아 감동을 주는 ‘백비’의 사연이 무색해진다.

백양사 들머리인 장성호에서 정읍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갈재가 드라이브하는 맛을 안겨준다. 가로수도 노랗고 붉게 물들기 시작해 깊어가는 가을을 실감케 한다.

정읍 땅 옛 고을 태인의 ‘호남 제1정자’로 꼽히는 피향정(보물)을 감상하고 옛 연못 가운데에 들어선 함벽루에 오르니, 두 어린이가 빗자루를 들고 흩어진 담배꽁초와 술병들을 치우고 있다. “놀려고 왔는데, 더러워서 놀 수가 없어요.” 태인향교·신잠비와 피향정의 선정비 무리, 하마석도 볼거리다.

장성에서 정읍 넘어가는 갈재
깊어가는 가을 정취 느끼며
드라이브하는 맛 최고
김제에서 논산까지
유적, 호수, 공원 없는 게 없네

전남 나주 산림환경연구소 수목원의 메타세쿼이아 숲길.
셋째 날-전북 정읍~충남 논산

김제 모악산 자락의 아름다운 두 절 금산사·귀신사, 그리고 익산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는 1번 국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들이다. 금산사는 규모에서, 귀신사는 소박한 정취에서 감동을 준다. 금산사 미륵전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유폐됐던 곳, 귀신사는 양귀자의 소설 <숨은 꽃>의 배경이 된 고즈넉한 절이다. 금산사에선 해설사들의 진지한 문화유산 해설을, 귀신사에선 친절하고 해맑은 비구니 스님들의 절집 자랑을 들을 수 있다. 왕궁리·미륵사지 유적은 웅장하고도 정교한 백제 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충남 논산까지 국도변으로 무수한 볼거리들이 들판과 산자락에 빼곡하다. 여산 동헌, 연무읍 견훤왕릉,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을 거쳐 제방 아랫길에서 아담한 탑정리 석탑을 본 뒤 탑정호반을 따라 차를 달리면 산책하기 좋은 생태공원에 이른다. 억새숲에서 바라보는 백로·왜가리 노니는 탑정호 풍경이 아름답다. 계백장군 묘와 백제군사박물관이 가까이 있다.

왕건이 후백제의 패륜아 신검을 무찌르고 삼국통일을 한 기념으로 세웠다는 개태사지에 들러볼 만하다. 스님들이 국 끓여 먹던 지름 3m의 대형 철확(가마솥)이 눈에 확 띈다.

계룡시부터 세종시와 천안시 거쳐 경기도로 드는 1번 국도는 대부분 확장·직선화 공사로 다듬어지거나 새로 낸 자동차전용도로 구간이다. 드라이브 맛도 떨어지고 볼거리도 많지 않지만 세종시 정부청사로 향하는 1번 국도의 중앙분리대에 설치된 태양열 집광판 행렬이 이채롭다.

연기 공단 부근까지 건조한 도로가 이어지는데, 조치원읍 봉산리의 ‘연기 봉산동 향나무’(천연기념물)가 볼거리로 다가온다. 옆으로만 퍼져 자라 받침목 30여개에 의지하고 있는, 500년 된 향나무다.

넷째 날-충남 천안~경기 수원

천안 삼거리. 조선시대 옛길 삼남대로의 길목(서울·대전·아산 갈림길)이다. 길손들이 모여들어 주막에서 잔을 기울이며 객수를 풀던 곳이다. 민요 ‘천안삼거리 흥타령’으로 이름난 옛 천안삼거리는 사라졌지만, 능수버들 늘어진 천안삼거리공원과 우리 술 문화 자료들을 전시해놓은 천안흥타령관, 천안 일대의 유물을 모아놓은 천안박물관, 재현해 놓은 주막거리 등에서 옛 정취의 한자락을 만날 수 있다. 1번 국도변에 다 있다.

성환읍 도로변에 볼만한 게 있다. 고려 현종 때(1021년) 봉선홍경사란 절을 짓고 이를 기념해 세운 ‘봉선홍경사갈기비’(국보)다. 호남~한양을 잇는 길목이었으나 인가가 없는데다 갈대숲이 우거지고 도적이 들끓어 왕래가 어렵자, 현종이 이곳에 절과 숙소(광연통화원)를 짓게 했다고 한다. 이 빗돌을 받친 거북(어룡)은 정면을 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 1번 국도 쪽을 바라보고 있다.

평택 들어서면서 1번 국도는 오산·수원·안양을 거쳐 서울에 이르기까지 상가·주택이 촘촘하게 이어지는 도심 거리의 모습이다. 오산대역 옆의 물향기수목원은 메마른 도심 국도 여행길에 한숨 돌리고 갈 수 있는 샘터 같은 곳이다. 단풍나무원·습지생태원 등에 단풍빛이 한창이다.

길은 수원시내로 들어서서 조선 정조의 효심이 서린 아름다운 행궁이자, 세계문화유산인 화성 곁을 지난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정약용에게 책임을 맡겨 34개월 만에 완성한 새도시다. 1번 국도에서 유턴하면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 관광안내소 주차장으로 갈 수 있다. 성곽을 따라 돌거나 성안의 행궁을 둘러볼 만하다. 수원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1번 국도는 본디 정조가 행차하던 시흥대로를 따라 건설됐었다. 지금은 직선화된 경수산업도로가 1번 국도다.

전북 김제 모악산 자락의 소박한 절 귀신사의 감나무밑 장독대.

다섯째 날-경기 수원~파주

경수산업도로를 따라 가다 안양시 도심 지나 석수동 안양예술공원 쪽으로 들어가면 건축가 김중업을 기리는 김중업박물관이 있다. 옛 유유산업이 있던 곳으로, 공장 건물을 활용해 조각공원으로 꾸몄다. 한편 이곳은 통일신라 때 창건돼 조선 후기 폐사된 중초사 터이기도 하다. 명문이 새겨진 당간지주와 삼층석탑이 온전하게 남아 있고, 절터의 주춧돌 등 석물들이 공원의 조각 작품들처럼 흩어져 있다.

전남 함평의 고막천 석교(보물).
안양 거쳐 서부간선도로를 따라 서울 성산대로로 이어지는 길은 극심한 교통 정체 구간이다. 응암동·구파발 지나며 차량은 다시 뜸해지고 고양시·파주시로 이어지는 왕복 2차선길이 펼쳐진다. 통일로다. 즐비한 추모공원 표지판 사이로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이어진다. 차량 통행은 많아도 길에선 옛날 국도다운 정취가 배어나오는 길이다. 볼거리도 적지 않다. 고려 말 충신 최영 장군 묘에 이르는 짤막한 산길이 거닐 만하고,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의 한곳인 파주 삼릉(공순영릉) 숲길도 아름답다.

문산읍 지나 77번 도로(자유로) 갈림길과 만나 직진하면 ‘통일의 관문’, ‘검문’ 팻말이 막아선다. 임진강 통일대교 건너 북녘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1번 국도의 남녘 끝이다. 청백리 황희 정승이 여생을 보냈던 정자 반구정을 둘러보며 반쪽짜리 1번 국도 여행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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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국도/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1번국도 여행 정보

드라이브 여행 팁

■ 갈색 표지판에 주목한다. 도로변의 문화재·명소는 소소한 것이라도 갈색 표지판으로 따로 설치돼 있다.

■ 옛 국도를 찾아 따라가본다. 1번 국도 표지는 새로 난 자동차전용도로와 옛 국도에 모두 설치된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땐 옛 국도를 따라가는 게 더 좋다. 도로가 길지는 않아도 한적하고 볼거리도 눈에 많이 띈다.

■ 마을길을 갈 땐 주민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여행의 참맛은 대화·소통에서 나온다. 알려지지 않은 전혀 새로운 것들을 만날 수도 있다.

■ 경운기나 걷는 주민들, 자전거에 유의하고 양보한다. 수확철 일부 국도·지방도는 주민들의 일터나 다름없다.

■ 정체 심한 대도시 도심의 1번 국도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특히 주말이라면, 목적지를 정해 우회하는 게 좋다.

추천 일정

■ 2박3일 일정/서울 출발(서해안고속도로)~목포 도로원표와 근대역사관·유달산(목포 1박)~나주 관아·수목원·도래마을~장성 백양사·필암서원·박수량백비(장성 2박)~김제 금산사·귀신사~익산 왕궁리·미륵사지~서울(호남·경부고속도로)

■ 3박4일 일정/2박3일 일정에, 논산 관촉사·탑정호 또는 강경 젓갈거리와 골목 여행(논산 3박)~오산 물향기수목원(또는 수원 화성)~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