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번 국도 - 3/ 한겨레 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4. 10. 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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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esc

모닥불 앞 밤막걸리 한잔에 별이 진다네

등록 : 2014.10.22 22:31 수정 : 2014.10.23 00:22

[매거진 esc] 1번국도
낙엽 깔고 가을 캠핑의 맛 만끽할 수 있는 내장산·계룡산 국립공원, 세종시 고복저수지 노지 캠핑 체험기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그러니까 산을 더 좋아하는 사람과 바다를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 구분한다면. 산보다는 역시 바다라고 생각해온 사람이 여기 있다. 그래서 국도도 편애했다. 국토를 길게 종단하는 국도라고 하면 ‘7번 국도’만 떠올렸다. 강원도 고성부터 부산까지, 동해안을 따라 바다를 보며 달리는 길. 그 길을 차로 달리다가 어느 바닷가에서 캠핑을 하곤 했다.

국토의 동쪽을 7번 국도가 내달린다면 서쪽에는 1번 국도가 있다. 그렇다면 1번 국도 캠핑 여행은 어떨까? 지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안타깝다. 1번 국도는 대부분의 구간이 바다에서 얼마쯤 떨어져 있다. 바다를 사랑하는 이라면 실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 기사는 그렇게 지도만 보고 섣부른 실망을 했다가 큰 감동을 맛보고 돌아온 이의 반성문이다.

1번 국도에서 쌓은 캠핑의 추억. 내장산 국립공원 백양사 입구에 위치한 가인야영장.
경기 파주부터 전남 목포까지 국토의 서쪽을 훑는 이 길에도 산 따라 물 따라 아름다운 곳투성이다. 1번 국도를 따라가는 긴 여정에서 계룡산 국립공원, 모악산 도립공원, 내장산 국립공원 등 내로라하는 산자락을 지나게 되고 탑정호, 장성호, 만경강, 영산강 물줄기와도 만나게 된다. 그러니 어느 산자락, 어느 물줄기 근처에 짐을 풀어놓을 것인지만 정하면 그뿐이다.

가을빛이 깊어져가던 10월 중순. 어디로 갈까. 자동차에 텐트와 침낭, 난로를 챙기며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산, 붉게 노랗게 물들어가는 산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다주의자’에게도 어색한 일은 아니었다. 어느 조용한 물가에서 낚시도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정해진 목적지가 충남 공주 계룡산, 전남 장성 내장산, 그리고 세종특별자치시의 고복저수지다.

1번 국도에서 쌓은 캠핑의 추억. 날씨가 쌀쌀해지면 난로와 공기순환기는 필수.
1번 국도의 허리춤에 위치한 계룡산 국립공원 동학사야영장(충남 공주시 반포면 동학사2로 115-16, 042-825-3005)은 25동의 텐트만 칠 수 있는 소박한 크기의 오토 캠핑장이다. 1번 국도를 타고 공주 방향으로 오다가 박정자 삼거리에서 동학사 방면으로 들어서면 된다. 1번 국도에서 직선거리로 2㎞도 떨어져 있지 않으니 그야말로 1번 국도 야영장이라 부를 만하다.

오르막 따라 1~3개 사이트 조성된
계룡산 동학사 야영장
북적이는 텐트촌
지친 캠퍼들에게 신세계
백양사 야영장 앞 산책로
아침에 맡는 나무 냄새 황홀

통나무 두 개를 기대 만든 삼각형 입구가 인상적인 이곳엔 오르막길을 따라 3개, 4개, 급기야는 오직 1개의 캠핑 사이트가 조성되어 있다. 텐트끼리 다닥다닥 붙어 남의 남편 코 고는 소리까지 다 들어가며 스트레스를 받는 대형 캠핑장에 지쳤다면, 이곳은 신세계다. 단, 한적한 사이트일수록 높이 올라가야 하는데 그곳은 입구 쪽에만 있는 화장실에서 멀다. 감수해야 한다.

캠핑장에는 사이트마다 나무 식탁과 의자가 구비돼 있다. 편리하다. 캠핑용 철제 탁자보다 더 운치가 있다. 은밀함을 포기하고 화장실에서 가장 가까운 입구 쪽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가을빛, 어찌 바삐 짐부터 부릴까. 나무 탁자에 앉아 커피부터 한잔 마셔야지. 소형 버너와 1인용 코펠을 꺼내 물을 끓이고 수동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만들었다.

언제부턴가 ‘너무 힘든 캠핑은 여행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가을·겨울철 쌀쌀한 날씨에 하는 캠핑은 더욱 그러하다. 짐을 최소화하고, 경량형 캠핑 장비를 구입하고, 주변 맛집을 탐색하고 인근의 시설 좋은 목욕탕, 화장실 등을 활용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본격적인 캠핑 여행에 나선 참이 아니라, 주말이나 휴가에 잠시 캠핑을 하는 거라면 너무 캠핑장 시설에만 매달리지 말자는 것이 최근에 구축한 캠핑 철학이다.

텐트를 치고 캠핑장 주변 탐문에 나섰다. 5분 걸으면 동학사 입구다. 단풍철을 맞아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동학사 입구 가게들의 위세가 대단하다. 분위기 좋은 카페부터 파전에 도토리묵 먹기 좋은 식당까지 즐비하다. 슈퍼, 약국, 기념품 가게 등 필요한 건 다 있다. 가게마다 계룡산의 정기를 받은 요리의 고수들이 파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부친다. 계룡산 밤막걸리 한잔에 달달한 밤이 지나갔다.

고수는 계룡산 온천에서도 만났다. 영상 9도까지 내려갔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자 나름대로 따뜻하게 잤는데도 몸이 뻐근했다. 동학사야영장에도 샤워 시설이 있긴 했으나 오직 찬물만 나온다. 주저 없이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그리하여 만났다. 계룡산 온천 때밀이 고수.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상피 세포는 파르르 떨며 때로 변했다.

1번국도_계룡산동학사캠핑장
동학사야영장에 텐트를 친 날은 일요일이었다. 1박 비용은 주차 5000원, 전기 사용권 4000원, 야영 사이트 대여료가 9000원으로 저렴하다. 이 캠핑장은 예약을 따로 받지 않기 때문에 금요일 오후부터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그 치열함도 잠시, 일요일 오후가 되면 대부분 떠난다. 일요일 밤의 한적함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인근 지역에 사는 듯한 옆 텐트 가족은 일요일 밤도 이곳에서 자고 출근과 등교를 했다.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일했던 이들이라면 가을 캠핑 여행을 욕심내보자.

계룡산을 마당 삼아 하루를 보내고 나니 이보다 더 좋을 곳이 있을까 싶어 떠나기가 싫다. 이 생각도 다음 캠핑장에서 무너졌다. 캠핑 전문가들이 추천하곤 하는 가인야영장(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108, 061-393-3088). 내장산 국립공원 안 백양사 근처에 위치한 곳이다. 널찍한 평지에 여유있게 47동의 텐트를 펼 수 있도록 조성해두었다. 멀찍이 바라보면 야영장 전체를 산, 울창하고 알록달록하고 멋스러운 내장산이 감싸안고 있는 모양새다.

1번 국도에서 쌓은 캠핑의 추억. 수동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고 가면 어디나 카페가 된다.
하늘은, 누가 10월이 아니라고 할까봐, 눈부시게 파랗고 높은데 그 아래 산이 있었다. 텐트 옆에는 그림처럼 나무 한그루씩이 서 있고 바닥에는 잔디가 푸르다. 캠핑 사이트마다 전기 코드를 꽂을 수 있는 곳도 가까이 있어 편리하다. 음수대와 화장실도 두곳씩 있다. 사이트가 널찍해 5~6인용 텐트를 치고, 돗자리와 의자를 펼치고 그 옆에 차를 세워도 자리가 남는다.

야영장에 진입하려면 백양사 입장료를 내야 한다. 차 한대에 5000원, 어른 한명에 3000원이다. 야영장 1박은 전기 사용료까지 더해 1만5000원이다. 텐트를 쳐놓고 백양사까지 5분 남짓 산책을 하다 보면 이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백양사에 올라가는 정식 길 아래쪽으로 야영장부터 시작하는 ‘비밀 산책로’가 있다. 아침 이슬을 발끝으로 툭툭 차며 산책로에서 나무 냄새를 맡는 기분이 상쾌하다.

1번국도_내장산가인야영장
가인야영장의 밤. 장작을 사다가 불을 지폈다. 국립공원에서 모닥불을 지필 때는 꼭 땅에서 얼마쯤 떨어질 수 있도록 화로대를 이용해야 한다. 불가에 앉아 있다가 몸에 힘을 풀고 하늘을 봤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각기 다른 빛을 내는 무수히 많은 별들. 아이가 가장 빛나는 별에 ‘엄마 별’이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사방이 조용했다.

텐트를 접는데 아쉬움이 남아 자꾸만 허리를 펴 주변을 돌아봤다. 내장산은 끝끝내 방문객의 발길을 잡았다. 백양사를 떠나 1번 국도를 타고 정읍으로 가는 길. 국도 최고의 비경이 펼쳐졌다. 왼쪽의 장성호와 오른쪽의 산자락을 보며, 이곳이야말로 7번 국도 ‘오션뷰’에 지지 않는 풍경이라 생각했다. 왕복 2차선이라 길이 좁다는 이유로, 일부러 운전을 천천히, 더 천천히 했다.

세종시에 들어서니 1번 국도 중앙에 태양광 집열판이 쫙 늘어서 제법 미래 도시 분위기를 냈다. 하지만 고복저수지를 찾아 국도를 벗어나니 다시 시골길. 낚시와 오지 캠핑을 사랑하는 어느 선배에게 추천받아 찾아간 이곳은, 77만㎡에 이르는 드넓은 저수지다. 가물치·붕어·잉어·메기 등이 살아 낚시꾼들이 몰려든다. 상류 쪽에는 고복자연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잔디밭도 좋다.

야외 수영장이 있는 고복자연공원 잔디밭에 텐트를 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취사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물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간단히 요기를 하는 캠핑족에게 어울리는 장소다. 하지만 ‘캠핑장 주변을 활용하는 센스’를 발휘하면 이곳에서의 ‘배부른 캠핑’도 불가능하지 않다. 공원 잔디밭 바로 옆, 도가네 매운탕의 메기매운탕은 끈적하고 얼큰한 국물이 일품이다. 대전 지역에서 만든 ‘산소소주 오투린’을 마시니 몸이 뜨끈해졌다.

느릿느릿 1번 국도의 풍광을 즐기기에 캠핑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까.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장비를 챙겨보자. 산 따라 물 따라 보석 같은 잠자리가 1번 국도를 따라 쭉 펼쳐져 있으니.

1번 국도/글·사진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칠산 앞바다로 노을을 볼 수 있는 전남 무안 파도목장캠핑장. <대한민국 오토캠핑장 602> 제공
1번국도변 최고의 캠핑장 8

캠핑 전문가들은 1번 국도의 어느 지점을 가장 좋은 캠핑 장소로 꼽을까? <대한민국 오토캠핑장 602>를 쓴 정보영 작가가 서울·경기 지역에서, 김산환 도서출판 꿈의지도 대표가 나머지 지역에서 가볼 만한 캠핑장을 추천했다.

경기 파주 화석정캠핑장

화석정이나 자운서원 등 율곡 관련 유적지가 가깝다. 임진강 황포돛배를 타고 임진강 주변의 자연, 역사를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겨울에는 눈썰매장도 개장할 예정이다.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581-12, 문의 010-4087-1148.

경기 고양 서삼릉청소년야영장

한국스카우트연맹 야영장이지만 11월 셋째 주부터 2월까지는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다. 큰 나무가 많아 가을에는 낙엽을 깔고 자는 맛이 특별하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의 차 소리가 최대 단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107-62, 문의 (031)967-9163.

경기 과천 서울랜드자연캠프장

도심에서 가깝지만 산속 분위기를 풍기는 곳. 주차장에서 야영장까지 수레로 짐을 옮기는 수고를 해야 한다. 텐트가 설치되어 있으며 3~11월에만 운영한다. 서울대공원과 현대미술관을 둘러보기 좋다. 경기도 과천시 대공원광장로 102, 문의 (02)500-7870.

경기 평택 학농원가족캠핑장

봄가을에는 모종 심기, 고구마 수확 등 체험 학습을 할 수 있다. 나무도 많고 공간이 넓어 여유있는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캠핑장 운영자가 캠프파이어를 무료로 제공한다.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진위로 206, 문의 (031)668-4132, 010-5447-6380.

경기 안성 두리오토캠핑장

주말이면 메기 맨손잡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캠핑장에서 보이는 청룡저수지에서 모터보트도 탈 수 있다. 숲이 우거져 휴식하기에 좋다. 안성 남사당패의 흔적이 서린 청룡사도 가깝다.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길 90-64, 문의 010-9162-6538.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야영장

독립기념관과 이웃해 있어 각종 편의시설을 이용하기 좋다. 698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각종 단체의 수련장으로도 쓰인다. 12월부터 2월까지 동계 기간에는 폐쇄한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삼방로 95, 문의 (041)560-0355.

전북 김제 모악산 금산사 야영장

이용료도 주차요금도 받지 않는 호젓한 야영장. 하지만 산속이라 기온이 떨어지면 캠핑장 문을 닫는다. 대략 12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 이용이 어려우니 꼭 전화로 확인한 뒤 방문해야 한다.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112, 문의 (063)540-3539.

전남 무안 파도목장캠핑장

바다 옆 들판에서 젖소를 키우는 파도목장이 운영하는 곳. 드넓은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칠산 앞바다로 지는 노을을 볼 수 있다. 송아지도 보고 치즈 만들기, 낙농 체험 등도 가능하다. 전라남도 무안군 현경면 해운로 185, 문의 (061)453-6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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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