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금강마실길

이윤진이카루스 2014. 8. 2. 18:08

뒷섬마을 아이들이 금강변 벼랑길 따라 학교 가던 추억길, 금강마실길

대한민국 다시걷고싶은 길 ㈜위즈덤하우스 | 위즈덤하우스 | 입력 2014.07.29 14:09 | 수정 2014.07.29 14:10
뒷섬마을 아이들이 금강변 벼랑길 따라 학교 가던 추억길,

학교길은 이름 그대로 까까머리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부모들이 만든 길이다. 정 끝을 따라 만들어진 길에서 부모의 마음이 느껴진다. 학교길을 따라 소박한 산골 마을의 정취와 애잔한 이야기를 품고 금강이 흐른다.

금강

물줄기가 무주읍 내도리에서 크게 굽이쳐 흐르는 바람에 앞섬마을과 뒷섬마을은 물방울 지형에 갇힌 채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배를 타지 않으면 무주읍으로 갈 길이 막막했다. 그나마 앞섬마을은 배를 한 번만 타면 됐지만, 뒷섬마을은 배를 두 번이나 타야 했다. 비라도 내리면 강물이 불어나 뱃길도 수시로 끊겼다. 차라리 석벽이 우뚝 솟아 있는 벼랑길을 따라 향로봉(420m)의 낮은 목을 타고 넘어가는 편이 더 나았다. 이것이 뒷섬마을에서 무주 읍내까지 이어지는 '학교길'이 만들어진 사연이다.

무주읍 내도리 뒷섬마을에 놓인 후도교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학교길 예정지'라는 팻말이 보인다. 그 뒤로 금강 벼랑을 따라 고요한 강변길이 이어진다. 길섶에는 쑥부쟁이, 벌개미취, 구절초 같은 가을꽃들이 환하다. 30~40년 전 책가방을 메고 이 길을 걷던 까까머리 아이들은 어땠을까? 하릴없이 납작한 돌을 손에 쥐고 물수제비를 뜨고 강물에 들어가 피라미를 잡느라 학교 갈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억센 풀을 헤치며 걷다 보면 커다란 바위가 앞을 막는다. 질마바위다. 길은 구렁이 담 넘듯 바위 위를 타고 넘는다. 이 길은 자연스럽게 생겨난 길이 아니라 주민들이 손수 만들어낸 길이다. 툭하면 마을에 갇히는 자식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부모들이 강변에 솟아 있던 질마바위를 일일이 정으로 쪼아 그 사이로 길을 냈다. 가파른 길을 눕히고 무너지는 길에는 시멘트를 발랐다. 질마바위를 지나자마자 바닥에 발라놓은 시멘트에는 '1971년 5월 20일'이라는 날짜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강변을 따라가던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희미한 길 하나는 금강으로 이어지고, 다른 선명한 길 하나는 경사진 숲길로 들어선다. 여기서 숲길을 따라야 한다. 점점 가팔라지는 숲길의 끝에 올라서면 커다란 밭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곧 북고사에 닿는다. 북고사는 조선 개국 직후 무학대사가 무주의 지세를 보완하기 위해 세운 절이다.

북고사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도 두 갈래로 나뉜다. 대웅전 옆으로 등산로가 나 있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이어지는 산길도 있다. 길은 전자보다 후자가 완만하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700m이다. 등산로 안내판이 세워진 곳에서 산길을 따라 오른다. 주변은 온통 소나무들로 그득하다. 향로봉 일대는 주민들을 위한 등산로로 정비되어 길이 좋고 안내판도 잘 갖춰져 있다. 가파른 길이 점점 완만해지다가 정상에 있는 정자가 슬쩍 보인다.

향로봉 정자에 올라서면 절벽을 감아 도는 금강 물길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예천 회룡포 못지않은 절경이다. 이런 절경이 이곳에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멀리 후도교와 그 다리 끝에서 걸어온 금강변 학교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자에서 고개를 뒤로 돌리면 험상궂은 적상산이 우뚝하고 그 아래로 무주읍 전경이 펼쳐진다. 적상산 뒤로 거대한 산줄기가 둘러쳐져 있는데 바로 덕유산이다. 이 작은 봉우리에서 산국(山國) 무주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감상한다. 제2전망대 방향으로 능선을 따르다가 '약수터'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내려가면 도착지인 무주고등학교에 닿는다.(글.진우석)

출처: 대한민국 다시 걷고싶은 길 ㅣ 저자: 한국여행작가협회 ㅣ 출판사: 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