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촬영한 화성 남반구의 헬라스 분지. 과거 무언가에 부딪혀 만들어진 초거대 충돌지형 중 하나인 이 분지에는 바람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모래 크기의 물질이 쌓여 일정한 형태로 늘어서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
[토요판] 별
가깝고도 붉은 화성
▶ 화성은 낭만적 우주의 대명사입니다.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가설은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가 허황한 공상으로 전락했지만, 최근 들어 우주선들이 경쟁적으로 탐사에 나서면서 하나씩 증거를 구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화성에서 당장 지적 생명체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지만, 산과 강의 흔적을 추적하다 보면 우리는 화성에서 인식의 전환을 경험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태양과 달 다음으로 인류가 가장 가깝게 느끼는 천체는 어디일까? 초저녁에 유달리 반짝이는 금성이나 거대한 목성 같은 태양계 내의 행성들 혹은 시리우스나 베가처럼 밤하늘에 유달리 밝게 빛나는 별들을 떠올릴지 모른다. 수백만 광년이나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도 농담의 소재가 되면서 은근히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인 의미에서도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할 천체는 바로 화성이다. 한데 이때의 가까움은 반드시 친밀함의 의미는 아니다. 우리의 생활과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언제나 친절하고 호의적이지만은 않듯이, 이 붉은 행성은 때로는 불길함과 공포의 대상으로 때로는 과학적 호기심과 경이감의 대상으로 늘 우리 주변을 맴돌아왔기 때문이다.
라디오쇼 ‘우주전쟁’이 부른 혼란
화성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고대 이집트, 즉 문명의 여명기부터 시작됐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 특유의 붉은빛 때문일 것이다. 물론 밤하늘을 찾아보면 붉은 색조를 띠는 천체가 그리 적지 않다. 표면 온도가 섭씨 3300도 정도의 별이라면 붉은빛을 발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별이 죽어가는 과정인 적색 거성 또한 그 이름처럼 붉다. 하지만 화성의 붉은색은 이들과는 다르다. 온도가 아니라 지표의 철 성분 때문에 붉게 보이는 것인데, 바로 우리 몸속의 피가 빨간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화성의 붉음은 뜨겁고 거대한 별들의 그것에 비해 조금 더 현실적이고, 약간 더 섬뜩하게도 느껴진다.
화성이 고대인의 관심을 끈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밝아서다. 물론 실제로 밝은 게 아니라 지구에 가깝기 때문에 밝아 보이는 것이다. 사실 화성은 온 우주에서 달 다음으로 지구에 가까운 천체고, 그래서 지구 지름의 반밖에 되지 않는 크기인데도 참 잘 보인다. 이렇게 밝으면서 핏빛으로 붉기까지 하니 눈에 띄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화성은 이집트, 그리스, 로마를 아우르며 전쟁의 신, 죽음과 환란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그 이미지는 수천년 세월을 이어져 현대에는 지구를 다짜고짜 침공하는 화성인의 으스스한 모습으로까지 연결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화성에 인공적으로 만든 운하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화성인의 존재는 사실상 기정사실이 되었다. 미국의 부호이자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그 시절에 조선을 방문해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라는 사진집을 내기도 한 인물이다-은 자비를 들여 만든 천문대에서 24인치 굴절 망원경으로 화성을 들여다보며 자세한 운하의 그림을 그렸다. 로웰은 당연히 화성에 지적 생명체가 산다는 것을 확신했고 관측의 성과를 세 권의 책으로 나눠 펴내기에 이른다. 같은 시기에 발표된 최초의 현대적 에스에프(SF) 소설인 허버트 조지 웰스의 <우주전쟁>이 그의 연구에 영향을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15년이나 계속됐던 그의 관측에도 불구하고 막상 다른 천문학자들은 화성에서 운하를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수십 년 뒤 바이킹탐사선이 화성에 도달했을 때도 당연히 운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긴 세월 동안 보고 기록하고 그렸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시속 300㎞로 불어대는 화성의 모래바람을 착각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었던 걸까.
비록 해프닝이긴 했지만 일상 속에 화성인이 등장한 적도 있다. 1938년 10월30일 미국의 배우 오슨 웰스는 소설 <우주전쟁>을 라디오쇼로 만들어 방송했는데, 내용이나 분위기가 너무 그럴듯해서 그만 대혼란을 야기하고 말았다. 임시뉴스의 형식으로 전국 방송인 시비에스(CBS)의 전파를 탄 이 프로그램을 듣고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화성인이 실제로 지구를 침공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피난 행렬로 도시 외곽의 고속도로가 마비되고 소방서와 경찰서에 신고 전화가 쏟아졌으며 화성인의 병기로 오인해 시계탑에 총격을 가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이 일로 오슨 웰스는 법정에 섰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다음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렇듯 붉은 별 화성의 기존 이미지에 더해 과학과 상상을 넘나드는 다양한 상황들이 발판이 되어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화성인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외계인은 곧 화성인을 뜻하는 말이었고, ‘마션’(Martian)이라는 영어 단어가 사전에 공식 등재되기도 했다. 물론 우리는 이제 그런 사악한 지적 생명체는 화성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화성은 지구와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지름은 지구의 절반이자 달의 두배로 딱 중간 크기고 부피로 따지면 지구의 15%밖에 되지 않는다. 명왕성이 퇴출된 지금은 태양계에서 수성 다음으로 작은 행성인 셈이다. 지구보다 태양에서 먼 궤도를 돌고 공전 속도도 느리기 때문에 1년이 지구 날짜 기준으로 687일이나 된다. 한편 하루는 24시간 40분으로 지구와 거의 같고 지축이 25도 기울어져서 지구처럼 사계절도 있다. 다만 연교차가 심해서 더울 때는 영상 58도, 추울 때는 영하 140도에 달하니 온화한 기후라고는 말할 수 없다. 또 대기의 밀도가 지구의 100분의 1인데다가 그중 이산화탄소가 96%이기 때문에 인간이 숨을 쉬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다. 중력은 지구의 3분의 1 정도라서 웬만한 운동신경이면 산소통을 메고도 덩크슛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와 가깝고 비슷한 생명체 존재조건 충족하는
화성은 빨간 ‘골디락스 행성’
인간은 과학과 상상 넘나들며
화성인과 조우를 꿈꿔왔다 화성 식민지 건설과 이주 가능성
수십년 전부터 심심찮게 제기돼
이주민 선정하는 프로젝트도
어느날 갑자기 지구 멸망하면
그나마 현실적 대안은 화성뿐 ‘갑작스러운 죽음’ 이론 그런데 이런 여러 특징들 중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다름 아닌 태양으로부터의 거리다. 화성은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보다 1.5배 정도 먼 궤도를 공전한다. 얼핏 꽤 떨어진 것 같지만, 실은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어 생명이 서식할 기본조건을 충족하는 ‘골디락스 존’에 속해 있다. 금성처럼 태양에 가까우면 물이 있어도 곧 증발해버리고 목성처럼 멀면 늘 얼어 있으니 그 사이 얼마 안 되는 영역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태양계 내에서 이 골디락스 존에 포함되는 행성은 지구와 화성뿐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화성에서도 어쩌면 생명이 생겨나고 진화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 화성의 상태는 그리 생명친화적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니다. 40여회에 달하는 무인탐사 결과, 인간은 화성에 한때 풍부한 수량을 뽐내던 강과 바다가 있었다는 증거들을 확보하고 있다. 물이 강과 바다를 이룰 정도로 늘 액체 상태를 유지했다는 것은 지표의 온도가 0도에서 100도 사이로 그리 변덕스럽지 않았으며 대기도 지금보다 훨씬 짙었다는 뜻이다. 이렇듯 그 시절의 화성은 지구와 꽤 비슷한 환경이었을 수도 있으니, 화성인에 대한 인류의 오랜 상상과 호기심이 단지 허황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많던 물과 대기는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과학자들은 화성에 자기장이 거의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초기에는 꽤 강한 자기장이 있었지만 지구와 달리 핵이 액체 상태의 철이 아니었거나 - 지구의 자기장은 액체 상태의 철이 대류하면서 만들어내는 유도 전류의 결과로 보고 있다 - 그 밖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자기장이 조금씩 사라져 버렸고, 그 결과 태양풍이 행성을 직접 때리면서 대기가 벗겨져 나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대기가 없어지는 바람에 온도가 불안정해지고 물도 증발하거나 극지방에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
지표의 철 성분 때문에 붉은빛을 띠는 화성의 표면.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