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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기본 가치 공유하는 이웃' 표현 뺐다/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3. 5. 08:35

국제

일본

일본 외무성 누리집도 ‘한국은 기본 가치 공유하는 이웃’ 표현 뺐다

등록 : 2015.03.04 20:23 수정 : 2015.03.04 21:43

 1998년 이후 한·일관계 설명 ‘관용구’

두달전 한일의원연맹 의원 방일때
아베 “중요한 이웃” 언급만
지난달 시정연설도 “가장 중요한 이웃”
같은날 기시다 외무상도 같은 표현

‘한국 인식’ 급격한 변화 시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일 도쿄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최근 누리집의 한국을 소개하는 기술에서 ‘우리나라(일본)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기존의 표현을 빼고, ‘우리나라에게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는 표현으로 바꿨다. 도쿄/AFP 연합뉴스
지난 1월15일,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등 한일의원연맹 의원들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방문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아베 총리는 총리관저에서 서 위원 일행을 맞으며 한일관계에 대해 “일한 양국은 전략적인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이라고 언급했다. 당시 한국 특파원단에선 아베 총리가 일본이 한·일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하던 관용구인 “자유·민주주의 등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데 대해 “양국은 이제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말이냐”며 의아함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아베 총리의 당시 언급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의도적인 발언이었을까. 그렇게 해석할 수 밖에 없는 의미있는 변화가 잇따르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4일 “외무성이 누리집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기술을 ‘우리나라(일본)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표현에서 ‘우리나라에게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는 표현으로 변경한 사실이 2일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에 대해 “한국의 사법과 한국 사회에 대한 불신이 있다”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소개하며,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 아베 정권의 한국에 대한 인식에 적지 않는 변화가 있음을 암시했다. 앞서 아베 총리는 지난달 12일 시정연설에서 한일 양국관계를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고만 표현했고,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도 같은 날 외교연설에서 한국에 대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의 확보라는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는 표현에 머무른 바 있다.

한·일 양국이 서로가 공유하는 민주주의 등의 기본적 가치를 관계 발전의 토대로 삼자는 인식을 밝힌 것은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한일 파트너십 선언’으로 거슬러 오른다. 당시 일본은 한국에 대해 “국민들의 꾸준한 노력에 의해 비약적인 발전과 민주화를 달성하고, 번영되고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후 아베 총리는 1차 내각 때인 2006년부터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요국인 한국·인도·오스트레일리아 등이 협력해야 한다는 ‘가치관 외교’를 추진하기도 했다. 일본의 이같은 기조는 2012년 12월 아베 2차 내각이 들어선 이후에도 한동안 이어졌지만,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올 들어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일본에선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한국 사법기구의 명예훼손 혐의 수사·재판 등 최근 한국 내의 여러 변화에 대한 아베 정권의 인식을 보여준 것이란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은 한-일 관계가 악화된 지난 1~2년 동안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 등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다는 기사를 잇따라 쏟아낸 바 있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이에 대해 “아베 총리가 시정연설에서 보인 한국에 대한 언급 변화 등에서도 확인되듯 일본 외무성 누리집 내용의 변경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니라 총리관저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일본이 한국의 움직임에 대한 불쾌감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가 일본 정부가 사용한 표현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김외현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