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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블로크의 애국과 조지 부시의 애국/서경식

이윤진이카루스 2015. 3. 6. 09:44

문화

마르크 블로크의 애국은 조지 부시의 애국과 정반대였다

등록 : 2015.03.05 19:22 수정 : 2015.03.05 19:22

그림 김병호 화백

내 서재 속 고전

기묘한 패배-1940년의 증언
마르크 블로크 지음, 히라노 지카코 옮김
이와나미서점(2007)

1944년 6월16일 프랑스 리옹 교외에서 28명의 사람들이 총구 앞에 줄지어 끌려나갔다. 그들 중에 점잖은 초로의 한 신사가 있었다.

“그 신사 옆에서 16살 소년이 떨고 있었다. ‘아플 거야.’ 마르크 블로크는 부드럽게 소년의 팔을 잡고 한마디 했다. ‘아니야. 조금도 아프지 않아.’ 그러고는 ‘프랑스 만세!’를 외치며 맨 먼저 쓰러졌다.” 살아남은 동지 조르주 아르트만(샤보)이 전한 마르크 블로크 최후의 순간이다.(<기묘한 패배> 서문)

샤보는 계속한다. “내 눈에는 지하투쟁의 젊은 동지 모리스가 20살 앳된 얼굴을 기쁨으로 붉게 물들이며 내게 ‘신규 가입자’를 소개하던 그 멋진 한때가 지금도 아른거린다. 그것은 50살의 훈장 받은 신사로, 단정한 얼굴에 반백의 머리칼, 안경 너머에는 날카로운 시선을 빛내며 왼손에는 서류봉투를 또 한 손엔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 숨막힐 듯 쫓기는 생활, 피할 수 없는 방랑생활 속에서 나는 ‘경애하는 선생님’이 가져다준 방법이나 질서에 대한 배려에 금방 탄복했다. (…) ‘경애하는 선생님’은 우선 열심히 비합법활동이나 봉기의 초보를 배웠다.

그러고는 곧 이 소르본의 교수는 도시의 지하 저항운동이라는 ‘들개’와 같은 소모적인 생활을 놀라울 정도의 냉정을 견지한 채 우리와 함께 견뎌냈다. (…) ‘만일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면 다시 강의를 시작하자.’ 그는 종종 우리에게 그런 말을 했다. (…) 그는 나아가 모든 걸 인간의 척도로, 그리고 정신의 가치로 되돌리려 했다. 경보, 추적, 황급한 출발, 지하생활의 검거 사이에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흔히 얘기하듯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진정한 영역, 즉 사상과 예술의 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항독 레지스탕스 참여했다 총살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를 위한 변명
그가 사랑한 프랑스는
인간해방을 위한 도구로서의 프랑스
지성과 교양을 옹호하는 것
그것이 인간을 옹호하는 유일한 길

마르크 블로크는 20세기의 프랑스 역사학을 대표하는 역사가다. 스트라스부르대학 동료로 프랑스 혁명사 연구의 1인자 뤼시앵 페브르와 함께 1929년에 <아날>(연보)을 창립해 역사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주요 저서로 <왕의 기적>(1924)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1931) 그리고 대표작이 된 대저 <봉건사회>(1939~40) 등이 있다. 그의 이름은 전쟁 전부터 역사학자들 사이에선 잘 알려져 있었으나, 전후 프랑스 사상사 연구자 가와노 겐지의 ‘어느 과학자의 레지스탕스’(1950), 일본사 연구자 이시모다 다다시의 ‘마르크 블로크의 죽음’(<역사와 민족의 발견> 1952) 등에 의해 더욱 잊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블로크의 생애에 특별한 빛을 비춰준 저서는 <기묘한 패배-1940년의 증언>(한글판 <이상한 패배-1940년의 증언> 김용자 옮김, 까치, 2002)이다. 일본어판은 1955년에 출간됐다.(2007년에 히라노 지카코의 새 번역본이 나왔다.)

나보다 조금 위 세대에게 마르크 블로크라는 이름이 얼마나 찬란하고 엄숙한 것이었는지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이미 많지 않다. 전후 일본에선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항독 레지스탕스 이야기가 널리 소개돼 지식층의 공감을 얻었다. 제국주의 국가이고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치즘이나 파시즘에 대한 저항자들 이야기에 자신들을 동일시한 것은 재일 조선인들 입장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기묘하고도 얄궂은 현상이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천황제 군국주의의 부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통절한 생각이 거기에는 담겨 있었던 만큼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옹호해줘야 할 경향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을 부르짖는 아베 정권에 의해 일본은 전쟁국가로 전락하고 있다. 반지성주의가 의기양양 거들먹거리고 이성과 교양은 공공연하게 냉소의 대상이 됐다. 이 황폐한 풍경을 보고 있자면 그때(약 60년 전)의 사상적·문화적 축적은 어찌 그토록 덧없이 사라져버렸는가 하는 공허감을 금할 수 없다.

젊었을 때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블로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이미 53살의 대학교수였으나 다시 자진해서 소집에 응해 보병대위로 전선에 부임했다. 1940년 5월 독일군이 네덜란드·벨기에를 돌아 프랑스를 침공하자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완전히 무너져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