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폐쇄해야 하는 이유

사용후핵연료 1만3500t ‘포화 직전’/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3. 10. 12:35

사회

환경

사용후핵연료 1만3500t ‘포화 직전’…“중간저장 논의부터 시작을”

등록 : 2015.03.09 20:04 수정 : 2015.03.09 20:04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사용 후핵연료,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2차 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싱크탱크 광장] ‘사용핵연료 관리방안과 쟁점’ 토론회

원자력 발전은 언제나 논쟁적이다. 값싼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지만, 여기에서 발생하는 쓰레기(핵폐기물) 처리에 대해선 누구도 답을 내지 못한다. 원전이 ‘화장실 없는 고급맨션’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핵폐기물의 99%를 차지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쓰레기’라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는 “누구도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김창섭 공론화위원) 난제 중의 난제가 되었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는 지난달 2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사용후핵연료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토론회를 열어 사용후핵연료의 관리 방안과 쟁점을 논의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가 중간의제로 발표한 ‘2055년 영구처분과 영구처분 전 저장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둘러싸고, 2055년이라는 시한의 적정성과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공론화위, 영구처분 시점 2055년 예상…근거 모호”
고리 2016년·한빛 2019년 포화
영구처분 시설 불가피성 공감하나
핵폐기물 안전 저장·관리 해법 중요

현재 가동 중인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 23기가 쏟아내는 사용후핵연료는 매년 700t에 이른다. 이미 쌓여 있는 양은 1만3200여t(2013년 말 현재)이다. 지금은 조밀저장(핵다발을 촘촘히 저장하는 방식)과 호기간 이동(원전 내 다른 시설로 이동하는 방식) 등 임시방편으로 해소하고 있지만, 2016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한빛(2019년), 한울(2021년) 원전 등이 단계적으로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저장능력을 최대한 확충하면 2024~2038년까지 시한 연장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지만, 추가저장 시설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2013년 11월 출범한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는, 지난해 11월 “2055년까지 영구처분장 건설과 운영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중간의제를 발표했다. 사용후핵연료를 언제까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국가가 명확한 이정표와 시한을 제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 시점이 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창섭 공론화위원(가천대 교수)은 “독성이 강한 폐기물을 최종처분에 대한 원칙이나 지적 없이 중간저장만 얘기하는 것은 무책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기술혁신에 의해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는 ‘기술적 낙관주의’에 기대어, 핵폐기물 처리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핀란드의 경우, 원자력 발전을 시작하는 단계부터 원전의 유용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고려해 최종처분까지 계획했다. 우리는 맛있다고 끝없이 먹기만 했을 뿐(전기 생산), 하수 처리(핵폐기물) 문제에는 눈을 감아왔다”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영구처분 시설의 불가피성에는 공감하면서도, 2055년이라는 시점에 대한 근거와 그 시기에 이르기까지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저장·관리하는 ‘중간저장’에 대한 해법이 더욱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발제자로 나선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영구처분과 영구처분 전 저장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고 필요한 내용인데, 가장 중요한 ‘어떻게’가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공론화위가 제시한 2055년은 현재 가동 중인 경주 월성원전 등의 임시저장 시설 수명을 연장한 것에 불과한데, 수명연장 여부도 결정되지 않은데다 그때까지 영구처분을 위한 기술연구가 완료될 것이라는 근거 또한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영구처분 시설의 안전성을 누가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며 “공론화위의 권고가 오히려 ‘공론화’의 대상이 되어버렸다”고 꼬집었다. 윤기돈 녹색연합 사무처장도 “공론화위에 영구처분과 영구처분 전 저장에 대해 국민 공론을 거치라고 요구했는데, 주어진 문제를 의제라고 내놓으니 답답하다”고 비판했다.

사용후핵연료를 ‘폐기물’로 처리할 것인지, 재처리해 ‘자원’으로 활용할 것인지 결정되지 않은 점도 사용후핵연료 처리 논의를 복잡하게 하는 요인이다. 1973년 체결된 한-미 원자력협정은 재처리를 포함한 사용후핵연료 연구개발을 하려면 미국의 사전동의가 필요하다고 정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청중으로 참석한 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사용후핵연료의 성격이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2055년 영구처분을 못박은 것은 적절치 않고, 이 시한 역시 연기되면서 결국 중간저장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사용후핵연료의 독성을 최대한 줄이는 연구개발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간저장 시설 어디에? 현재는 개별 원전 부지안에 임시 저장·관리
전문가 “수송 위험” 소내 저장 힘실어
임시저장 지역민들 반발·갈등 예고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 시설 문제는 결국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로 모아진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길이 열린다 해도, 고준위 핵폐기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강정민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교수는 “사용후핵연료를 직접 처분하든 재활용하든 단기·중기적으로 중간저장은 필수적”이라며 “또한 재처리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재처리를 할 수 있는) 고속로 상용화까지는 수십년이 걸리기 때문에 재처리 여부가 당장의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가장 중요한 쟁점은 사용후핵연료를 ‘제3의 부지’로 모아 중앙집중식으로 운영할 것(소외 저장)인지, 현재 원전 부지 안에 추가로 건설할 것(소내 저장)인지 여부다. 제3의 부지 선정은 극심한 갈등과 반발이 필연적이다. 소내 저장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는 각 원전에서 ‘임시저장’이라는 이름 아래 수십년째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고 있지만, 사실 현행법에는 임시저장이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중간저장과 동일한데도, ‘임시저장’이라는 이름 아래 개별 원전 부지 안에 저장·관리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부지 확보의 어려움과 수송 과정의 위험을 들어 소내 저장 쪽에 힘을 싣고 있다. 강정민 교수는 “현재 각 원전 부지에 저장되어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밖으로 갖고 나와 중앙집중식으로 관리하는 것은 효율적일지는 모르나 그에 따른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며 소내 저장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 사용후핵연료가 ‘임시저장’되는 지역에서는 정부가 주민들을 속이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극심한 갈등이 예고된다. 특히 경북 경주의 경우 2005년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을 유치하는 대신 고준위 핵폐기물 관련 시설은 지역 안에 두지 않겠다는 것을 방폐장 특별법에 명문화한 바 있다. 하지만 경주 월성원전에는 1992년부터 2010년까지 발생한 사용후핵연료가 저장되어 있고, 2010년부터는 조밀저장(핵다발을 촘촘히 저장하는 방식) 시설인 ‘맥스터’가 새로 가동되고 있다. 즉 1992년 4월부터 현재까지 23년간 사용후핵연료가 ‘임시’로 저장되고 있는 것이다. 경주에서는 공론화위가 중간저장 시설에 대한 구체적 내용 없이 ‘2055년 영구처분장 건설’을 권고한 것에 대해, 사용후핵연료를 현재의 원전 소재 지역에 계속 두겠다는 ‘꼼수’라며 비판하고 있다. 이재근 경주와이엠시에이(YMCA) 원자력아카데미 원장은 “임시저장에 대한 법적 용어가 없는 상태에서 수십년째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 안에 두는 것은 경주시민에 대한 우롱”이라며 “정부가 임시저장 형태를 지속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과 피로감이 매우 높아진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 원장은 2005년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를 선정할 당시, 정부가 지질안정성과 안전보다는 경제 논리를 앞세워 지역을 ‘현혹’한 점과, 그나마 약속한 3대 국책사업과 3000억원 현금 지원 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원장은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저준위 원전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하는데 현재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창섭 공론화위원은 “특별법이 제정되던 때는 임시저장에 급급해 최종처분은 생각도 하지 않았던 시기여서 (특별법에) 법리적인 문제가 있다”며 “지역주민과의 공감대를 얻어야겠지만, 현행법을 존중하면서 문제를 풀기는 어려운 만큼 여러 가능성을 두고 심도있게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론화위 올 6월 임기 끝나…“공론화위, 공론화 대원칙부터 세워야”
시설부지 선택 발상의 전환 필요
“원전 인근 주민 영향도 고려해야”

영광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탈핵지역대책위원회,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등 반핵단체 회원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충무로1가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앞에서 위원회 해체와 핵폐기물 처리의 합리적 방안 도출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6월 말로 임기 끝나는 공론화위원회 활동에 대한 쓴소리와 조언이 쏟아졌다. 공론화위의 활동 시한은 애초 지난해 말까지였으나 세월호 사건과 지방자치단체 선거 등으로 공론화위 활동이 ‘차질’을 빚으면서, 시한이 6개월 연장된 바 있다. 참가자들은 공론화위 활동 종료와 함께 발표될 최종권고안에 대한 주문을 쏟아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김정욱 전 서울대 교수는 중간저장과 최종처분에 대해 말하기 전에 재처리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원전을 얼마나 더 가동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저장해야 할 사용후핵연료 양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지금은 중요성과 안정성만을 역설할 때는 지났다”며 공론화 의제를 좀더 구체화할 것과 최소한의 전제를 분명히 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큰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면 기존의 모든 전제를 뒤흔들기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예컨대 사용후핵연료를 현재의 원전 부지에 둬야 한다는 발상을 뛰어넘어, 전기를 많이 쓰는 서울에도 시설을 둘 수 있다는 수준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기돈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인문사회적·철학적 접근을 요구하고 나섰다. 윤 사무처장은 “핵은 절대악이 아니라, 필요하거나 불가피할 경우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그 선택의 과정은 단순히 과학기술이 아니라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 핵발전소 인근 주민에게 미치는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론화위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자문기구에 불과한 만큼, 권고의 강제성이 없고 정부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어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홍두승 공론화위원장은 “지난 16개월 동안 한번도 정부의 간섭을 받은 적이 없다”며 “일반 국민과 지역주민과의 간극을 좁히는 등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혜정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idun@hani.co.kr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사용된 작업복이나 장갑, 부품, 걸레 등 방사능 함유량이 높지 않은 폐기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사용하고 남은 핵연료 또는 핵연료의 재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방사선의 세기가 강한 폐기물

재처리
사용후핵연료를 녹인 뒤 우라늄 또는 플루토늄을 뽑아내 다시 핵연료로 사용하는 방법

영구처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등)을 지하 수백미터에 묻는 등 인간의 생활권으로부터 영구히 격리하는 것

임시저장
원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에 자체적으로 저장하는 것을 의미

중간저장
사용후핵연료를 제3의 기관(원자력환경공단)이 인수해 처리하거나 영구처분 전까지 일정 기간 저장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