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폐쇄해야 하는 이유

‘후쿠시마의 우’를 범하지 말자 / 서균렬

이윤진이카루스 2015. 3. 1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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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후쿠시마의 우’를 범하지 말자 / 서균렬

등록 : 2015.03.09 18:55 수정 : 2015.03.09 18:55

‘정상사고’(正常事故)란 말이 있다. 항공·해운·화학·원전 등 설비가 매우 복잡한 분야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사고를 가리킨다. 하지만 훈련이 잘되어 있고 설비가 물샐틈없이 관리되면 정상사고는 부분적으로 예방할 수도 있다.

특히 항공기와 원전은 비슷한 게 많다. 사고의 결말은 항공기라면 기체파손과 인명손실, 원전은 노심손상에 따른 환경오염 등이다. 원전사고 빈도는 항공사고보다 낮다지만 일반적으로 느끼는 원전사고의 심각성은 항공사고보다 훨씬 더하다. 미국 스리마일, 소련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 사고 등이 1년 전 말레이시아항공기 실종보다 우리 뇌리에 더 깊이 새겨진 것이다.

이 중에서 체르노빌을 빼곤 방사능으로 인한 인명손실이 없었음에도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항공사고보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버섯구름과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먹구름 때문이리라. 특히 2011년 벌어진 후쿠시마의 연쇄 수소폭발은 실시간으로 지구촌에 중계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항공기 사고는 기체결함, 부실정비는 물론 조종기술에 따라 결말이 달라진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원전 운전원은 매년 모의훈련, 이론교육 등을 받는다. 두 산업계는 상이한 특성을 가졌지만 안전제일이라는 공동목표를 향해 온힘을 기울인다. 복잡한 설비를 잘 운영해 위험의 총량을 줄임으로써 국가안전과 국민안심을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월성 1호기엔 2~4호기에 달린 안전설비가 없다. 사고 때 최후의 보루인 격납건물에 주증기배관 격리밸브와 연료방출조 차단 수문이 달리지 않은 것이다. 비행기로 치면 문제가 있어 보이니 운항 전에 정비해야 한다는 데 대해 한국수력원자력은 반박하면서 “왜곡된 정보로 인해 국민들에게 막연한 불안감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과연 원전에 ‘정상사고’는 없을까. 만에 하나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불안을 부추기는 걸까. 이는 원전산업이 항공산업의 안전철학을 답습해 1975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에서 수행한 원전안전보고서의 기본정신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원전으로 인한 사회적 위해도를 분석한 이 보고서는 확률론적 안전성 분석의 근거로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다.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격납건물 관통부 등으로 방사성 물질이 새어나올 수 있다. 단계적으로 위해성을 따져 마지막에 공중(公衆) 위험도로 표현했는데, 원자로가 완전히 녹아내릴 확률은 2만년에 한번, 원전 1기 운영으로 인한 위험도는 다른 산업에 비해 1만배 낮다고 했지만 실제 일반인의 체감온도는 이보다 훨씬 높다는 데 문제가 있다.

고장이나 사고란 일단 나면 인위적 구분은 의미가 없어지고, 지침서나 절차서마저 무용지물로 전략할 수 있다. 후쿠시마는 엄밀히 따지면 지진만이었다면 견뎌냈을지도 모른다. 비상 디젤발전기가 모두 작동했을 것이다. 2012년 고리 1호기 정전사건 때와 대조되는 부분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이 차례로 무너진 건 지진 뒤에 밀려온 해일로 비상발전기가 물에 잠기고 외부 송전탑마저 쓰러져 전원이 모두 사라져버려서다. 미국과 자국 내 전문가 집단의 수차례에 걸친 안전설비 개선 권고를 무시한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의 과신과 독존이 불러온 참사의 결과는 자국민은 물론 지구촌에까지 떠넘겨졌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특히 이번에 불거진 월성 1호기의 주증기관 파단 사고는 실제상황에선 운전원이 제대로 진단하고 올바른 조처를 취하기도 전에 방사성 물질이 격납건물 밖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한수원은 부디 원안위의 승인에 덧붙여 월성 1호기 계속운전 전에 국민 수용성의 이름으로 격리밸브와 차폐수문을 달아야 할 것이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았던 후쿠시마의 우를 범하지 말자.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