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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박근혜 시대' / 박찬수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4. 29. 08:42

사설.칼럼칼럼

[아침 햇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박근혜 시대’ / 박찬수

등록 :2015-04-28 18:35

 

지난 주말 서울 신촌의 영화관에서 아내와 함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봤다. 1980년대 대학 시절에 본 영화는 너무 많은 부분이 잘려나가 군데군데 이해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강렬한 인상이 남은 건, 갱스터 무비가 지닌 비장함이 당시의 암울한 사회 분위기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는 유실된 장면들을 복원한 4시간11분짜리다. 길지만, 지루하지 않다.

걸작이란 잘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시대의 단면을 정확히 포착해 보여준다. 뉴욕 빈민가 출신 갱스터들을 그린 이 영화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깊은 울림을 주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1920~60년대 미국의 조직폭력은 어떻게 합법화를 꾀하다 몰락했는지, 그 과정에서 정치권과 노조는 스스로를 얼마나 타락시켰는지를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영화가 보여주는 욕망과 배신의 드라마는 시대와 장소를 넘어선다. 1960년대 미국에서 2015년의 한국을 읽는 건,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 맥스(제임스 우즈)는 합법적인 사업가가 되기 위해 정치인들에게 로비하고, 스스로 정치권에 진출해 노동부 장관에까지 오른다. 그러나 그동안의 비리가 드러나 모든 것을 잃을 처지가 되자, 목숨을 끊는다. 여기저기 도움을 청했으나 실패한 맥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젠 모두 나를 버렸어. 친구들은 내가 조용히 사라지길 바라지.”

폭력조직을 건설회사로만 바꾸면, 맥스의 삶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떠올리게 한다. 지방에서 건설업으로 돈을 번 맥스는 로비로 사업을 키우다가 정치권에 줄을 대 국회의원이 된다. 자기 손으로 대통령을 만들어보겠다는 꿈까지 꾼다. 그러나 과거 비리로 검찰 수사의 칼끝에 선다. 정권 실세들에게 구명을 요청하지만 외면당하고, 끝내 이 세상을 떠난다. 2015년 한국의 맥스가 영화 속의 맥스와 다른 점 하나는 조용히 사라지지 않고 ‘리스트’를 남겨 사회를 뒤흔들어놓았다는 점이다.

1960년대 미국은 자유·민권운동과 베트남전이 맞물리면서 사회 전체가 요동치던 시기였다. 이런 때에 미 정부와 의회가 조직범죄에 강경대응한 건 의미심장했다. 그 이후 조직범죄는 이전과 같은 영향력과 인맥을 가질 수 없었다. 맥스가 파멸한 게 이 시기이고, <대부2>의 마이클 콜레오네가 상원 청문회에 소환된 것도 이 무렵이다. 60년대 초반 마피아의 숨통을 죈 이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이었다. 특히 로버트 케네디는 조직범죄 보스들을 직접 겨냥했다. 뉴올리언스의 마피아 대부 카를로스 마르첼로를 시내 거리에서 전격 체포해 그대로 비행기에 태워 과테말라로 보내버렸다. 케네디 형제의 암살에 마피아 개입설이 끊이지 않는 건 두 형제의 이런 행적 때문이다.

2015년 봄, 다시 한국을 돌아보자. 검찰은 건설사 대표가 집권당의 경선과 대선 자금을 불법으로 댔다는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기업이 불법 선거자금을 대는 건 우리 정치의 고질이다. 이 고리를 끊을 때가 됐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법무장관은 존 에프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가 아니다. 고리를 끊으려면 케네디 형제처럼 목숨을 걸거나 최소한 수족을 잘라낼 각오를 해야 하는데, 두 사람 모두 그걸 원하진 않는다.

박찬수 논설위원
박찬수 논설위원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주인공 누들스(로버트 드니로)가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과거의 모든 짐을 내려놓은 표정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성완종 수사’가 끝나도 아무도 웃지 못할 것이다. 끝난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