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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납세 의지'를 높이려면/ 한성안/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4. 27. 08:27

경제경제일반

한국인의 ‘납세 의지’를 높이려면

등록 :2015-04-26 19:36수정 :2015-04-26 19:37

한성안의 경제산책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는 것 외에 종종 잊고 있는 주류경제학의 중요한 인문학이 하나 더 있다. 경제학에서 ‘선호(選好)관계’로 불리고 있는 것, 곧 ‘인간은 무엇을 더 좋아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주류경제학은 인간의 선호관계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본다. 예컨대, 인간은 본래 노동보다 여가를 더 좋아한다. 이뿐만 아니라 인간은 공익보다 사익을 좋아하며, 정의보다 이익을 선호한다. 이런 ‘순서’는 어떤 경우에도 안 바뀐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인간의 선호관계가 ‘외생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표현한다.

주류경제학의 조세정책은 바로 이런 선호관계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따라서 인간은 타인의 삶과 사회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러니 공익과 공공선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 곧 세금을 회피하고자 할 것이다. 인간의 납세의지는 본질적으로 매우 낮다. 따라서 적은 세금이 인간 본성에 걸맞다.’

진화적 제도경제학자들은 반대로 생각한다. 인간의 본성은 실로 존재한다. 하지만 진화 과정에서 한가지 본성만 선택되지 않았다. 이타적, 도덕적 본성도 함께 선택되었다. 나아가 그런 본성들은 직접 발현되지 않는다. 다양한 본성들 중 어떤 것이 드러날지는 그 시대와 지역의 정치, 문화 등 ‘제도적 조건’에 달려 있다. 선호관계는 외생적으로 결정되어 있어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에 의해 ‘내생적으로’ 결정되며 ‘변화’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납세의지도 그와 똑같다. 곧 인간은 납세를 항상 기피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세금을 회피할 것인가, 기꺼이 낼 것인가는 그 나라의 제도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민의 납세의지는 자연에 의해 외생적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고 제도에 따라 내생적으로 변한다.

스페인 시민들의 납세의지에 관한 통계적 실증연구는 매우 흥미롭다. 1970년대 말까지 스페인은 프랑코 독재정권 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재정 시스템은 부자들의 탈세 기회를 보장해주었다. 부패를 척결할 어떤 정치적 의지도 없었다. 그 결과 40%가 탈세일 정도로 스페인 시민들의 납세의지는 약했다. 하지만 1982년에 들어선 스페인 사회노동당 정부는 세제를 정의롭게 개혁하고 민주적 정치 체제를 도입하였다. 재정 스캔들과 공무원 부패가 척결되어 국민적 자부심과 의회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납세 결과는 사회복지로 되돌아왔다. 그 결과 1981년과 1995년 사이 납세의지는 크게 개선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다시 정부 고위관리의 부패가 심해졌다. 1996년 인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자 우파 정책이 강화되었다. 실업은 늘어나고 복지는 훼손되었다. 조세정책도 부자에게 유리해졌다. 1995년과 2000년 사이 납세의지는 다시 소폭 감소하였다. 주류경제학의 생각과 달리 시민들의 납세의지는 제도적 조건에 따라 변한 것이다!

한성안 영산대 교수
나라가 제대로 되자면 세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도무지 증세하지 않으려 한다. 주류경제학의 외생적 선호관계론에 포박되어 제도를 바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정치를 도입하고 부패를 척결해보라. 4대강으로 세금이 낭비되고 방위산업 비리로 착복되며, 뇌물 받아 사기업 금고 채워주고 입만 열만 거짓말하는데 누가 납세의지를 가질까? 납세의지를 높이자면 부패한 독재정권을 몰아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