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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몰린 제1야당, 4.29재보궐선거 / 한겨레신문 사설

이윤진이카루스 2015. 4. 30. 08:15

사설.칼럼사설

[사설] 벼랑 끝에 몰린 제1야당

등록 :2015-04-30 00:02

 

4·29 재보궐선거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참패로 끝났다. 최대 승부처로 꼽혀온 서울 관악을에서 새누리당에 의석을 내준 것은 물론 안방인 광주 서을에서도 무소속 천정배 후보에게 무릎을 꿇는 등 0 대 4로 전패했다. 특히 ‘성완종 리스트’라는 대형 호재에도 불구하고 이런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뼈아픈 결과다.

새정치연합은 이번 선거도 역시 ‘정권심판론’에만 기대 선거를 치렀다. 특히 선거전 중반에 불거진 성완종 스캔들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데 선거의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민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의 특별사면 문제에 대한 여당의 물타기 공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수세에 몰리는 상황까지 연출했다.

더욱 문제는 야당이 ‘정권심판론’을 최대의 무기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정권 심판에 적합한 선거구도’를 짜는 데는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번 재보선 지역은 인천 서구강화을 한 곳만 빼고는 모두 지난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통합진보당 후보들이 여권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지역들이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이번에는 야권연대는 고사하고 당 내부 단속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의 부당성 심판이라는 대의는 처음부터 실종됐고, 선거판 전체가 정권심판론, 야당심판론, 정치 철새 심판론 등이 뒤섞인 이전투구 양상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에 이득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광주 서을에서의 새정치연합의 패배는 제1야당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잘 보여준다. ‘호남 여당’인 새정치연합의 오만과 무기력에 대한 불만감, 새정치연합 주류 세력들에 대한 이 지역 유권자의 거부감과 소외의식, 야권 재편에 대한 기대감 등이 반영되면서 새정치연합의 완패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결국 이번 선거 결과는 ‘야당, 이대로는 안 된다’는 빨간 신호를 ‘문재인호 야당’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번 재보선은 새정치연합의 패배만이 아니라 야권의 공동패배라고 해야 옳다. 서울 안의 야당 텃밭인 관악을에서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겨준 것은 대표적인 예다. 이는 야권의 각개약진을 제어할 만큼의 확고한 통합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새정치연합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크지만, 자신들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된 야권 인사들의 자기중심적 사고 탓도 크다. 특히 숱한 논란 속에 출마를 강행했으나 결국 3등에 그친 정동영 후보는 ‘여당에 어부지리만 안겨주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정 후보는 이번 선거 결과로 신당 추진의 동력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물론 개인적으로 정치를 계속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게 됐다. 결국 이번 선거 결과를 인물 측면에서 보면 ‘문재인과 정동영의 패배’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싶다.

이번 재보선이 야당의 패배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새누리당의 온전한 승리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명목상 수도권 세 곳을 석권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야권 후보들의 난립을 틈탄 어부지리 성격도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권은 이번 재보선 결과를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비롯해 세월호 참사 책임, 국정운영의 각종 난맥상에 대한 면죄부로 여겨서는 결코 안 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재보선 결과를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받아들이는 착각에 빠지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