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Machiavelli

행동하는 삶 ‘비타 악티바’ 꿈꾼 마키아벨리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5. 8. 08:21

문화

행동하는 삶 ‘비타 악티바’ 꿈꾼 마키아벨리

등록 :2015-05-07 21:11

 

이 그림은 피오렌티노 로소의 것으로 알려져왔지만 최
근 피렌체의 화가 체키노 살비아티의 작품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관복 차림을 한 마키아벨리의 표정
은 널리 알려진 산티 디 티토의 초상화(책 표지 그림)보
다 온화하며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길 제공
이 그림은 피오렌티노 로소의 것으로 알려져왔지만 최 근 피렌체의 화가 체키노 살비아티의 작품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관복 차림을 한 마키아벨리의 표정 은 널리 알려진 산티 디 티토의 초상화(책 표지 그림)보 다 온화하며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길 제공
최초의 이탈리아어 원문 대역판
10년 걸려 이탈리아 ‘국가판’ 번역
대충 번역하거나 의역하지 않고
특유의 문체 느낄 수 있도록
글투 살리려 시종일관 직역
마키아벨리는 민주주의자도
군주제 지지자도 아니었다
군주론(군주국에 대하여)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곽차섭 옮김·주해/길·3만3000원

“군주에 대한 글 때문에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 이단으로, 선량한 사람에게는 불의로, 악한 사람에게는 자신들만큼이나 사악하거나 혹은 그보다 더한 것으로 비쳤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그를 미워하였다.” (로베르토 리돌피, <마키아벨리 평전>, 곽차섭 옮김, 아카넷, 2000)

뛰어난 외교술로 ‘피렌체의 비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던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 그는 수백년 동안 전세계 정치인과 학자들의 ‘해석 투쟁’ 한가운데 있었다. 냉혹한 정치사상가, 기회주의자, 결과주의자,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 모사꾼, 탁월한 현실주의 정치가의 시조 등으로 그는 다양하게 묘사되었다.

이번에 나온 <군주론>은 원문의 구절과 문장을 맞대어 번역한 최초의 이탈리아어-한국어 원문 대역판으로, 왼쪽 페이지에 이탈리아어 원문을 싣고 오른쪽에 번역문을 실었다. 각 절의 앞머리에 각괄호([])로 번호를 달아 원문과 한국어를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도록 했고, 번역의 엄밀성도 높였다. 언변이 좋아 외교에 능했고 뛰어난 연설가였으며 멋들어진 소네트를 짓던 시인이기도 했다는 문장가 마키아벨리의 ‘진짜’에 가까운 이탈리아어를 우리말로 정교하게 복원해보려 한 것이다.

옮긴이 곽차섭 부산대 사학과 교수는 30년 넘게 마키아벨리와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지성사를 연구해온 이 분야 권위자로, <마키아벨리즘과 근대 국가의 이념>(1996)을 썼고 <마키아벨리 평전>(2000), <마키아벨리언 모멘트>(존 포칵, 2011)를 번역했다. 총 번역기간 10여년에 걸쳐 완성한 이번 책을 시작으로 마키아벨리의 주요 저작을 차례로 옮길 계획도 갖고 있다. 자필본이 없는 <군주론>은 1532년 이후 19개의 필사본이 남았고, 최근 서지학자들이 오류를 수정해 ‘비판본’을 만들었다. 곽 교수는 2001년부터 이탈리아 정부 후원으로 발간하는 ‘국가판’ 마키아벨리 저작집인 마리오 마르텔리의 비판본을 채택했다.

곽차섭 부산대 사학과 교수
곽차섭 부산대 사학과 교수

이 책의 의의는 독자의 생경함을 무릅쓰고 감행한 직역, 정확한 번역에 있다. 곽 교수는 전화 인터뷰에서 “대충 번역하거나 의역한 것이 아니라 마키아벨리의 글투를 살리려고 시종일관 직역을 했다”며 “두루뭉술하게 읽으면 특유의 문체를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번역을 보면, 놀랍게도 마키아벨리가 그때 이미 근대 이후 신문 칼럼과 비슷한 류의 표현을 자주 사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통상적으로…하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냐하면…때문이다” 등이다. 보통 사람 눈높이에 맞춰 현실을 파악하면서 논리적인 글 전개로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선명하게 밝히려 한 것이다. 이런 ‘직역’을 읽노라면 마키아벨리가 당시 군주에게 상당한 리더십을 요구하는 ‘확신범’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도자의 자질로서 자비보다 잔혹함, 사랑보다 두려움, 정의보다 배신을 권고한 것도 사실이다. 반면 검약을 강조하고 미움을 피해 존경을 받고 아첨꾼을 멀리하라고 권유했던 점도 새롭게 눈에 띈다.

마키아벨리는 이 책에서 군주국의 성질과 흥망성쇠, 군주국의 획득과 유지방법, 군대를 이용한 군주국의 공격과 방어, 신민과 친구에 대한 군주의 태도 등을 밝혔다. 책의 목표는 ‘권력’이 기본적으로 정상적이지 않으며,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태란 드물기 때문에 군주가 위기의 상황에서 국가를 지켜내기 위해 결단성있는 능력(비르투-덕)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하는 데 있다. 더욱이 당시 15~16세기 절대주의 시대, 이탈리아 반도는 60년 전쟁을 겪고 있었다. 1494년 프랑스 샤를 8세의 침공으로 피렌체 최고의 가문인 메디치가가 축출당하고, 새 공화정 아래서 제2서기장직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15년간 봉직했다. 메디치가의 복귀로 공직에서 쫓겨난 그는 설상가상 반 메디치 음모에 연루돼 투옥까지 당한다. 심한 고문을 겪고 겨우 풀려나 시골집에 은거해서 홀로 ‘고대’의 사상가들과 ‘접신’하듯 써낸 책이 <군주국에 대하여>다. 마키아벨리는 정계 복귀를 꿈꾸며 메디치가의 군주들에게 이 책을 바쳤지만 메디치가는 다시 실각했고, 급진 공화국 정부에서도 등용되지 못한 채 낙담 끝에 세상을 떠났다. 사후 나온 책의 제목이 바로 <군주론>이었다. 이 책이 군주의 자질이나 인품만을 강조한 것으로 잘못 여겨지게 된 출발이었다.

곽 교수는 마키아벨리가 각국에서 수용되는 방식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주장처럼 그를 민주주의자로 보거나, 세계적인 마키아벨리 전문가인 모리치오 비롤리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처럼 마키아벨리가 공화제를 군주제보다 낫다고 찬양했다는 시각, 영국 사회정치평론가 페리 앤더슨처럼 ‘국가를 군주의 재산으로 여겼다’고 비판하는 것에도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는 군주제나 공화제 어느 한쪽이 우수하다고 편들지도 않았을 뿐더러, 인민의 행복을 위해 군주에게 검약을 권고했다는 점에서 국가를 소유물로만 단순하게 판단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선하게만 살아도 되는 ‘사인’이 아니라 인민의 안위를 책임지는 ‘공인’이라고 보았다. 공인으로서 정치와 권력이라는 ‘게임의 룰’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또 모든 권력은 결국 부패한다고 보았고, 그럼에도 이를 유예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에게는 당파도, 이념도 관계 없었고 오로지 정치 무대에서 자신이 가진 이상을 펼치려 했던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옮긴이는 번역어를 고를 때 철학적 깊이를 고려했다. 핵심 개념인 ‘비르투’를 ‘덕’으로 번역한 점이 한 예다. 1958년 국내 <군주론> 첫 번역 이후 주요 역어는 ‘실력’을 비롯해 ‘힘, 능력, 역량’ 등이었다. 곽 교수는 고대 중국 사상에서 덕이 만물 생성의 근원을 담은 자연철학적 개념이었다가 나중에 도덕적 의미로 바뀌듯, 서양에서도 ‘비르투’는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고 보았다. 철학계가 오래전부터 ‘버츄(virtue)’를 ‘덕’으로 번역해온 것을 염두에 둘 때도, <군주론>이 자칫 군주의 ‘도덕’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읽힐까 두려워 ‘덕’이라고 번역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리비우스 논고>에서 마키아벨리는 도덕성을 내포하는 개념으로 시민공동체를 지키는 시민들의 덕을 설명하고 있다”고 곽 교수는 설명한다. ‘비르투’를 ‘덕’으로 표현할 때 어떨 때는 도덕적으로, 어떨 때는 탈도덕적으로 다양하게 쓴 ‘비르투’의 용례를 다기하게 맥락적으로 포섭할 수 있다는 것이다.

120쪽짜리 주해를 보면, 곽 교수는 마키아벨리 사상의 뿌리를 고대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에서 찾는다. 루크레티우스의 원자론에서 보듯, 자유 운동하는 원자의 ‘빗나감’에 빗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신의 세상’보다 ‘인간의 국가’, 도덕적 품성보다 현실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강조했다. 곽 교수는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기회가 왔을 때 군주가 자유의지를 발휘하면서 ‘운’(포르투나)을 붙잡아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라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타 악티바(vita activa), 곧 행동적 삶을 열렬하게 염원한 사상가”였다는 것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