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추측과 논박 제 13장 몸-정신 문제에 관한 기록

이윤진이카루스 2010. 8. 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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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정신 문제에 관한 기록

 

나의 논문 ‘언어와 몸-정신 문제(Language and the Body-Mind Problem)’가 철학자들의 주목을 받도록 한 것에 대하여 윌프리드 셀라스(Wilfrid Sellars) 교수에게 나는 감사하고, 그리고 그 논문을 ‘도전적(challenging)’ 및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할지라도 중요한(telling, if uneven)’으로서 기술(記述)한 데서 그의 친절에 대하여 나는 훨씬 더 깊이 감사한다. 그 논문의 불균형에 관해서 나는 누구보다 더 인식하고 있다.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공주가 완두콩에 대하여 민감하게 느끼는 것보다 내가 더 그 논문의 불균형을 민감하게 느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빈약한 월계관 잎 중에서 그 논문의 영예를 세 잎으로 내가 계산하고 싶어도, 내가 원할지라도 나는 그 월계수 세 잎에 의지할 수가 없으리라. 그러나 나를 괴롭히면서 밤에 나를 잠을 못 자게 만드는 작은 딱딱한 완두콩들은 잘 숨겨져 있었듯 보이는데, 내가 믿기에 펼쳐놓기에 조금도 어렵지 않은 셀라스 교수가 지닌 두 개의 상당히 큰 솜 덩어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에 말이다.

 

I

첫 번째 덩어리에 관하여, 셀라스 교수는 나아가, 상당히 상세하게 나의 말을 올바르게 인용한 후에, 그가 표현하는 바와 같이, ‘“... 두 가지 언어들이 번역될 수 없다면, 그 언어들은 다른 부류의 사실들을 다룬다”라는 위에 인용된 서술에 [포퍼의 서술] 주목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셀라스 교수는 부언하여, ‘사실’은 ‘기술적 사실(記述的 事實: descriptive fact)’이거나 아니면 ‘우리가 우리의 과제를 성취해야 한다는 “사실”’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이 글은 윌프리드 셀라스 교수에 대한 답변으로서, 분석(Analysis), N. S., 15, 1955년에 처음 발표됨.

 

데, 나에게 후자(後者) “사실”을 ‘유사 사실(quasi fact)’로 부르는 것이 허용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의 논증들이, ‘문제의 두 가지 언어가 기술(記述)하는’, 즉 ‘기술적(記述的) 사실들’을 서술하는 ‘일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를 포함할 것이라면 유효하리라고 말한다.

이제 나는 이것의 모든 말에 동의하지만 나는 그것의 관련성을 알지 못한다: 셀라스 교수는 한 가지 서술에 주목하면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지만, 그 서술을 문맥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 까닭은 (a), 셀라스 교수에 따라서 나의 논증을 유효하게 만든 전제는, 셀라스 교수에 따라서 그러므로 그 자체가 유효한 내 자신의 논증 속에서

충분히 명백하게 적시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의 논증은 ‘두 가지 언어 이론’에 대하여 귀류법(歸謬法: reductio ad absurdum)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셀라스 교수에 의하여 올바르게 요구된 전제는 나의 전제가 아니라 저 이론의 한 부분이다. 정말로 그것은 나의 논증에서 ‘두 가지 언어 해결책’의 - ‘물리학과 심리학의 서술들은... 동일한 사실들에 관하여 말하는 두 가지 방법이라는... 견해’의 (그 견해는 셀라스 교수의 용어 사용법으로 이 ‘사실들’이 ‘기술적[記述的] 사실들’임을 명백하게 지적한다) - 한 부분으로서 언급된다. (b) 내 자신의 기여는, 두 가지 언어가 (물리학과 심리학의) 서로 번역될 수 없는 것으로 인정되자마자 그 언어들은 동일한 사실들에 관하여 이야기 한다고 더 이상 언급될 수 없어서 다른 사실들에 관하여 말하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 여기서 ‘사실’은 두 가지-언어 이론가들이 물리학과 심리학이 동일한 사실들에 관하여 말한다고 말할 때 그 이론가들이 의미했던 모든 것을 의미한다 - 지적했다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유사 사실들’의 문제는 나타나지 않을 따름이다.

이 모든 것은, 셀라스 교수 자신이 논문 첫머리에 인용하는 나의 논문 구절을 더 세밀하게 읽음으로써 검증될 수 있다: 그 구절은 셀라스 교수가 그 구절의 한 부분에 주목하자마자 초점을 벗어나는 구절이다. (주목이 된 구절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틀린 인용이 - ‘종류[kind]’ 대신에 ‘집합[set]’ - 있다.)

그러므로 어떤 핵심도, 내가 알 수 있는 한 어떤 의견 차이도 셀라스 교수의 첫 번째 덩어리에는 없다 - 셀라스 교수와 내가 그의 비평의 관련성에 관하여 크게 의견을 달리하는 듯 보일지라도.

 

II

이제 두 번째 덩어리를 펼치자. ‘그의 논문 후반부에서 포퍼 교수는 관련됨(aboutness)이나 참고(reference)는 행동주의자의 용어로 정의(定義)될 수 없다는,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할지라도, 중요한 주장을 방어한다.’고 셀라스 교수는 쓴다. (셀라스 교수 자신은 나의 주장이라고 제시되는 이 주장의 진실성을 신뢰한다.) 나는 이것을 읽었을 때 놀랐음을 고백해야겠다. 나는 그런 종류의 것을 방어하려고 노력했던 일을 알지 못했다. 여기서 내가 했다고 언급되는 그런 종류의 주장은 - 이러이런 것들은 어떤 사람의 언어로 정의(定義)될 수 없다는 것 - 거의 항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오래된 신념들 중 하나이다. (상대방의 주장이 정의[定義]가능성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물론 중요하다. 어떤 환경에서는 정의[定義]가능성이 흥미로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용어가 정의[定義]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 용어가 합법적으로 사용될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그 용어가 정의[定義]되지 않은 용어로서 합법적으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셀라스 교수에 의하여 나의 것으로 주장되는 ‘주장’과 같은 것을 내가 주장하지 않았음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내가 나의 논문을 통독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두 번이나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나의 논문을 정말로 내가 통독하였고 정의(定義)가능성에 관한 그런 주장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셀라스 교수에 의하여 나의 것으로 언급되는 주장에 근거하여 내가 개진했던 어떤 이론도 나는 여기에서 공개적으로 철회한다: 그 주장이 거짓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그 주장이 참이라는 것에 셀라스 교수와 의견을 같이하고, 나의 논증들이 그 주장의 진실성을 뒷받침하는 데에 아마도 사용될 것임에 - 이것은 아마도 오해의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 나는 심지어 동의한다 ) 정의(定義)불가능성에 관한 논증들의 도움을 받아서 철학화한다(philosophizing)는 생각을 내가 틀림없이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

셀라스 교수는 ‘그리고 그[포퍼]는 [내가 방금 거부한 주장을 지님에서] 확실히 옳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그[포퍼]는 “‘Ex에 관한 것이다’라는 전제가 기술적(記述的) 주장임”을 암묵적으로 부언한다.’고 계속해서 말한다.

‘이 단계’가 셀라스 교수에 의하여 지적되지 않기 때문에 - 또는 내가 나의 논문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하는 나의 것이라는 저 주장에 대한 언급의 도움을 받아서 지적될 뿐인 - 내가 이 단계에서 이 전제를 암묵적으로 부언했는지 아닌지를 내가 조사한다는 것은 어렵다. (셀라스 교수 논문의 두 번째 부분에서 인용부호 안에 있는 구절들 중 일곱 구절이, 어떤 사람들이 아마도 생각할 바와 같이, 나의 논문에서 인용된 것이 아님을 나는 여기서 독자들에게 경고할 것이다. 두 가지 인용구인 ‘이름 관계’와 ‘인과적-물리주의적’이 나의 논문에서 정말로 나타나지만, 전자[前者]에는 하이픈이 있고 후자[後者]에는 하이픈이 없다.)

그러나 내가 어느 곳에서 셀라스 교수가 내가 부언했다고 말하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부언했다면 (나는 그 전제를 찾아서 추적할 수 없다) 나는, 다시, 철회하고 싶다. 그 까닭은 내가, 또 다른 서술 E가 어떤 것에 관한 것이라고 서술 A가 말한다면 A는, 셀라스 교수의 말을 사용하여 ‘“달은 둥글다”와 같은 종류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셀라스 교수의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기 때문이다. 달에 관한 서술과 동일한 의미에서 A는 ‘기술적(記述的)’일 필요도 없고, 보통 기술적(記述的)도 아니다 (‘당신의 마지막 강의는 무엇에 관한 것이었습니까?’ - ‘확률에 관한 강의였습니다’가 기술적[記述的] 용례라 할지라도).

나는 또한, ‘포퍼 교수가 “이름 관계”라고 부르는 (5문단 이하) 것이 “인과적-물리주의적” 용어들로 정의(定義)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이원론의 진실성을 결론지을 수 없다’는 셀라스 교수의 결론적인 논평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말 그렇다. 이것이 내가 정의(定義)가능성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유이다. 정말로 이 전혀 무관한 사실보다 나의 이원론적 신념을 지지하여 나에게 더 강력한 논증들이 없다면 (그 까닭은 전혀 무관할지라도 나는 그것이 사실임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원론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을 - 아니, 이원론 포기를 매우 갈망할 - 텐데. 그러나 나의 논증들은 완전히 달랐다. 나의 논증들은 정의(定義)가능성에 관해서라기보다는 연역적 물리 이론들의 가능한 영역에 관해서였다; 그래서 나의 주장은 ‘언어의 기술적(記述的) 및 논증적(論證的) 기능들에 대한 인과적 물리 이론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셀라스 교수의 주장에 - ‘Ex에 관해서이다’와 같은 서술은 (보통, 혹은 흔히) ‘우리가 청취자에게 어떻게 언급된 표현이, 대등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사용되는지를 전달하는 장치’이라는 것 - 어떤 반대의견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철저히 분명히 하고 싶다. 또한 나는 셀라스 교수의 이 주장이 내 자신의 주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도 않는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나의 주장이 셀라스 교수가 나의 것으로 말하는 정의(定義)가능성에 관한 논증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주장이 만약 그렇다면, 나는 나의 주장을 분명히 철회할 것이다.

 

III

셀라스 교수의 논문에는 나에게 틀린 듯이 보이는 라일(Ryle) 교수에 관한 비평이 있다. 셀라스 교수는 이렇게 쓴다: ‘나는 또한 정신 대화와 행동 대화... 의 “상호 번역가능성의 개념”은, 라일 교수의 용감한 반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에 포기되어야 했다”는 것에 동의한다.’

이것에 대하여 라일 교수가 내가 ‘두 가지 언어 이론’이라고 부르는 것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한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문제가 한 가지 자연 언어 내부의 범주-오류들로부터 출현한다고 라일 교수가 믿을지라도, 어떻게 그가 그 이론을 지닐 수 있었을까? 내가 그 장소에서 언급하고 있던 것은 그가 아니었다.

동시에, 나의 논문의 또 다른 문단에서, ‘범주-오류들’의 이론이 또한 지지받을 수 없음을 간단하게 밝히려고 노력했던 때 내가 라일 교수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완전히 사실이다.

내가 여기서 나의 논증에 또 다른 논증을 덧붙인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우리 언어의 용법들에 의하여, 정신적 상태들을 명명하는 표현들이 놓이는 범주들과 다른 범주에 물리적 상태들을 명명하는 표현들이 놓인다고 상정(想定)하여, 나는 이 사실 속에서 이 표현의 두 가지 범주가 존재론적으로 다른 존재들을 명명한다는 - 또는 다시 말해서, 그 표현의 두 가지 범주가 다른 종류의 실재들이라는 - 지적이나 제안을 (확실히 이것 이상은 아니다) 보고 싶다. 그리하여 나는, 틀림없이 전제들이 결론을 형식적으로 도출하는 데에 불충분하다 할지라도, 라일 교수가 도출한 결론과 반대가 되는 결론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다 (이것 이상이 아니다).

그러나 범주-오류들이라는 개념에 근거한 논증들에 대한 나의 반대의견과 (그리고 스마트[Smart] 교수의 반대의견과) 완전히 별도로, 나에게는 이 상정(想定)의 진실성을 인정한 용의가 없다. 내가 알기에 라일 교수의 많은 분석들이 매우 이해를 용이하게 하지만, 나는 평범한 영어가 매우 흔히 정신적 상태와 육체적 상태를 서로 평등하게 다룬다고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영어가 ‘정신 질환’에 관하여, ‘정신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에 관하여 혹은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잘 균형이 잡힌’ 사람에 관하여, 기타 등등에 관하여 말하는 곳에서 (이 경우들은 아마도 철학적 이원론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으로서 배척될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특히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곳에서도: ‘양(羊)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내가 잠드는 데에 도움이 된다’나 ‘스미스 씨의 소설들을 읽는 것은 항상 내가 잠이 드는 데에 도움을 준다’ (이것은 ‘스미스 씨의 소설을 보면서 나의 눈을 훈련시키면 항상 내가 잠드는 데에 도움이 된다’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진정제를 먹는 것은 내가 잠드는 데에 항상 도움이 된다’와 완전히 유사하다). 수많은 유사한 보기들이 있다. 그 보기들은 정신적 상태들과 육체적 상태들을 기술(記述)하는 평범한 영어 단어들이 동일한 ‘범주’에 속함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라일 교수는 그 보기들이 입증하지 않음을 밝히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내놓는 보기들은 단어들이 흔히 두드러지게 유사한 방식들로 사용됨을 입증한다. 언어-상황의 불확실성은 라일 교수가 제시하는 보기에 의하여 예시될 것이다. 일개 사단을 구성하는 모든 대대와 포대, 그리고 기갑부대의 열병식을 방금 지켜본 아이는, 그 아이가 그 후에 ‘그 다음에 언제 사단이 행진하지요?’라고 물을 때, 오류를 저지른다고 (단어들의 의미를 철저히 그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라일 교수는 올바르게 말한다 - ‘그 아이는 대대와 포대, 그리고 기갑부대가 행진하여 지나가는 것을 보는 데서 사단이 행진하여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자신의 실수를 알게 될 것이다. 행진해서 지나간 것은 대대들... 그리고 사단의 열병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단의... 대대들의 열병식이었다.’라고 라일 교수는 말한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옳다. 그러나 대대들이 사단들과 동일하게 취급되는, 완벽하게 훌륭한 영어 사용법에 관하여, 문맥들은 없는가? 가령 한 개의 사단3개 대대두 개의 기갑부대로 구성된 열병식은 있을 수 없을까? 이것이 아마도 군사적 용법에는 어긋나는 것이라고 나는 상상할 수 있다 (한 개의 사단이 한 개의 대대를 공격하는 전투는, 내 생각에, 완벽하게 훌륭한 군사적 용법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그것은 평범한 영어 사용법에도 어긋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그 아이가 확실히 저지른 오류는 범주오류가 될 수 있을까? 범주오류가 될 수 없다면, 그 아이의 오류가 범주오류라고 우리가 잘못 진단한다면 우리는 범주오류를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상정[想定]하여) 저지르지 않는가?

 

-“추측과 논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 칼 포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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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OTE on THE BODY-MIND

PROBLEM

 

 

I AM very grateful to Professor Wilfrid Sellars for bringing1 my paper 'Language and the Body-Mind Problem',2 to the attention of philosophers, and even more for his kindness in describing it as 'challenging', and as 'telling, if uneven'. Of its unevenness nobody can be more aware than I. I think I am more sensitive to it than Andersen's princess was to the pea. And although I am inclined to count its three leaves among my scanty laurels, I could not rest on them even if I wished to. But the small hard peas which bother me and keep me awake at night seem to have been well hidden, and in a spot far removed from Professor Sellars' two largish lumps of stuffing which I believe are not at all hard to smooth out.

I

As to the first lump, Professor Sellars, after quoting me correctly at some length, proceeds to 'focus attention', as he puts it, 'on the statement [Popper's statement] quoted above, that "... if the two languages are not translatable, they deal with different sets of facts".' And Professor Sellars then goes on to say that a 'fact' may be either a 'descriptive fact' or else something like 'the "fact" that we ought to fulfil our undertakings', which I may be permitted to call a 'quasi fact'. And he says that my argument would be valid if only it would contain 'the premise that both languages in question have the business of describing', i. e. of stating 'descriptive facts'.

Now I agree with every word of this but I completely fail to see its relevance: in focusing attention upon one statement, Professor Sellars, understandably enough, got its context out of focus.

1 By way of his 'A Note on Popper's argument for Dualism', Analyst, 15, pp. 23 f.

2 Not 'Mind-body problem' as Professor Sellars writes. My paper is included in this volume as ch. 12.

First published in Analysis, N. S., 15, 1955, as a reply to Professor Wilfrid Sellars.

For (a), the premise which, according to Professor Sellars, makes my argument valid, was clearly enough indicated in my own argument

which therefore is itself valid, according to Professor Sellars. Moreover, my argument has the form of a reductio ad absurdum of the 'two language theory', and the premise correctly demanded by Professor Sellars is not mine but part of that theory. It is, indeed, referred to in my argument as part of the 'two language solution' - of 'the view that... the statements of physics and of psychology are... two ways of talking about the same facts' (which clearly indicates that these 'facts' are 'descriptive facts' in Professor Sellars' terminology). (b) My own contribution consisted, simply, in pointing out that, once the two languages (of physics and of psychology) are admitted not to be translatable into each other, they cannot any longer be said to talk about the same facts, and must be admitted to talk about different facts - where 'fact' means whatever the two-language theorists meant when they said that physics and psychology talked about the same facts.

Thus the problem of 'quasi facts' simply does not arise.

All this can be verified by reading more closely the passage from my paper which Professor Sellars himself quotes at the beginning of his paper: it is the passage which gets out of focus once he focuses attention on part of it. (There is a not very important misquotation - 'set' instead of 'kind' - in the focused passage.)

So no hard core, no difference of opinion as far as I can see, underlies Professor Sellars' first lump - although we seem to differ greatly about the relevance of his comments.

II

Now to smooth out the second lump. 'In the later section of his paper', Professor Sellars writes, 'Professor Popper makes a telling, if uneven, defence of the thesis that aboutness or reference cannot be defined in Behaviourese.' (Professor Sellars himself believes in the truth of this alleged thesis of mine.) I must confess that I was surprised when I read this. I was not aware of having ever tried to defend anything of the kind. It happens to be one of my oldest convictions that a thesis of the kind here attributed to me - that such and such cannot be defined in somebody's language - is nearly always irrelevant. (It is not irrelevant, of course, if the opponent's thesis was one about definability. Definability may be interesting in certain contexts, but to say a term is not definable never implies that it cannot be legitimately used; for it may be legitimately used as an undefined term.) There was no need for me to read through my paper in order to be sure that I never maintained anything like the 'thesis' attributed to me by Professor Sellars. But to make doubly sure I did read through my paper and I found no trace of such a thesis on definability. And to make trebly sure, I herewith publicly recant any theory I may ever have advanced based upon the thesis attributed to me by Professor Sellars: not because the thesis is false (I agree with Professor Sellars that it is true, and I even agree that my arguments might be used to support its truth - which may perhaps explain the misunderstanding) but because I should hate the idea of philosophizing with the help of arguments about non-definability.

Professor Sellars goes on to say 'And he [Popper] is surely right [in holding the thesis I have just repudiated]. However, at this stage he [Popper] tacitly adds the premise "'E is about x' is a descriptive assertion".'

It is hard for me to check whether or not I have added this premise tacitly at this stage, since 'this stage' is not indicated by Professor Sellars - or only indicated with the help of a reference to that alleged thesis of mine which I fail to find anywhere in my paper. (I may here warn readers that seven of the passages in quotation marks in this second part of Professor Sellars' paper are not quotations from my paper, as some might think. Two others, 'Name relation' and 'Causal-physicalistic', did occur in my paper, but the former hyphened, the latter unhyphened.)

If, however, I have somewhere 'tacitly' and unconsciously added the premise which Professor Sellars says I have added (I cannot detect any trace of it) then I wish, again, to recant. For I am in complete agreement with Professor Sellars' thesis that if a statement A says that another statement E is about something, then A usually does not, to use Professor Sellars' words play 'the same sort of a role as "The Moon is round"'. A need not be, and usually is not, 'descriptive' in the same sense as the statement about the moon (although it may be: 'What was your last lecture about?' - 'It was a lecture about probability', is an instance of descriptive usage).

I also agree entirely with Professor Sellars' concluding remark that 'from the fact, and it is a fact, that what Professor Popper calls the "name relation" (paragraph 5 ff.) is not definable in "causal-physicalistic" terms, we cannot conclude to the truth of Dualism'. Exactly. This is why I never said anything about definability. Indeed, had I no stronger arguments in favour of my dualistic faith than this completely irrelevant fact (for I agree that it is a fact, though completely irrelevant), then I should be ready - nay, most anxious - to give up dualism. As it happens, my arguments were quite different. They were about3 the possible scope of deductive physical theories rather than about definability; and my thesis was that 'no causal physical theory of the descriptive and argumentative functions of language is possible'.

I wish to make it perfectly clear that I have no objection whatever to Professor Sellars' thesis - that a statement such as 'E is about x' is (ordinarily, or frequently) 'a device whereby we convey to the hearer how a mentioned expression is used, by using an equivalent expression'. Nor do I deny that this thesis of Professor Sellars' is relevant to my own thesis. All I wish to say here is that my thesis in not based on the argument about definability which Professor Sellars ascribes to me. If it were, I should retract it.

3 This is another instance of an about-statement A which describes an argument E.

III

There is a remark on Professor Ryle's views in Professor Sellars's paper which seems wrong to me. Professor Sellars writes: 'I also agree that "the idea of a mutual translatability" of... mind talk and behaviour talk "had to be given up long since", in spite of Ryle's valiant efforts to the contrary.'

To this I should like to say that I am not aware of the fact that Professor Ryle has ever held what I call 'the two languages theory'. How could he, believing as he does that the problem arises out of category-mistakes within the one natural language? It is not to him I was alluding in that place.

At the same time, it is perfectly true that I had Professor Ryle in mind when, in another paragraph of my paper, I tried to show briefly that the theory of 'category-mistakes' is also untenable.

If I might here add to my arguments another, then I should say this. Assuming that, by the usages of our language, expressions naming physical states are put in a category different from that in which expressions naming mental states are put, I should be inclined to see in this fact an indication, or a suggestion (not more than this, to be sure), that these two categories of expression name entities which are ontologically different - or in other words, that they are different kinds of entities. Thus I should be inclined (not more than this) to entertain the opposite conclusion to the one drawn by Professor Ryle although, admittedly, the premises would be insufficient for a formal derivation of the conclusion.

However, I am not prepared to grant the truth of this assumption, quite apart from my (and from Professor Smart's4) objections to arguments based upon the idea of category-mistakes. I find very many of Professor Ryle's analyses most illuminating, but I can only say that ordinary English very often treats mental states and physical

4 See his excellent brief 'A Note on Categories' in the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4, 1953, pp. 227 f.

states on a par with each other; not only where it speaks of a 'mental disease', of a 'hospital for the mentally sick' or of a man who is 'both physically and mentally well balanced', etc. (these cases might be dismissed as deriving from a philosophical dualism) but especially where we say: 'Thinking of sheep always helps me to fall asleep' or 'Reading Mr Smith's novels always helps me to fall asleep' (which does not mean 'training my eyes on one of Mr Smith's novels always helps me to fall asleep' and yet is completely analogous to 'taking bromide always helps me to fall asleep'). There are countless similar examples. They certainly do not establish that ordinary English words describing mental states and physical states always belong to the same 'category' (Professor Ryle has succeeded in showing that they don't). But my examples establish, I think, that the words are often used in ways which are strikingly alike. The uncertainty of the language-situation may be illustrated by an example of Professor Ryle's.5 He says, rightly, that a child who has just watched the parade of all the battalions, batteries, and squadrons, which constitute a division, makes a mistake (in the sense that he has not quite got the meaning of the words) when he then asks 'And when will the division come?' - 'He would', Professor Ryle says, 'be shown his mistake by being told that in watching the battalions, batteries and squadrons marching past he had been watching the division marching past. The march-past was not a parade of battalions... and a division; it was a parade of the battalions... of a division.' This is absolutely true. But are there no contexts, of perfectly good English usage, in which battalions are treated on a par with divisions? Could there not be a parade of, say, one division and three battalions and two batteries? I can imagine that this might be

5 The Concept of Mind, pp. 16 f. The example of the Colleges and the University is precisely analogous: the foreigner who wants to see the University asks, of course, for a University building (perhaps one like the Senate House in London); and this building would be of the same category as the college buildings. Is it not therefore a category mistake to suggest that he has made a category mistake?

an outrage to military usage (although a battle in which a division attacks a battalion is, I suppose, perfectly good military usage). But is it an outrage to ordinary English usage? And if not, can the mistake which the child undoubtedly committed be a category mistake? And if not, do we not commit a category mistake (assuming such a thing exists) if we wrongly diagnose that the child's mistake was a category mistake?

-"Conjectures and Refutations, The Growth of Scientific Knowledge", Karl R. P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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