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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몸-정신 문제
상호작용에 대한 재서술
1. 서문
이것은 인간 언어에 대한 물리주의적 인과 이론의 불가능성에 관한 논문이다.
1.1 이것은 언어적 분석에 (단어-사용법들의 분석) 관한 논문이 아니다. 그 까닭은 철학적 난제들의 근원이 언어의 오용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어떤 언어 분석가들의 주장을 내가 철저히 거부하기 때문이다. 의심할 바 없이 어떤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하지만, 나는 (a) 철학적 헛소리를 탐지하는 논리적이거나 언어-분석적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방법은 논리학자들, 언어 분석가들, 그리고 의미론학자들의 계층에서 멈추지 않는다); (b) 그런 방법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 더욱 특히 철학적 헛소리가 러셀(Russell)이 아마도 ‘유형-오류들’로 불렀을 것과 오늘날 때때로 ‘범주-오류들’로 불리는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밝혀질 수 있다는 믿음 - 그 후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언어 철학의 결과라고 나는 주장한다.
1.2 ‘x는 x의 요소이다’와 같은 공식이 (본질적으로나 내재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은 러셀(Russell)이 지녔던 초기 믿음의 결과이다. 우리는 이제 이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정말로, 그 안에서 문제의 공식이 ‘잘-형성되지 않았거’나 ‘무의미한’ 형식체계 F1 (‘유형 이론’)을 구축할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또 다른 형식체계 (유형 없는 형식체계) F2를 구축할 수 있는데 그 속에서 공식은 ‘잘-형성되었거’나 ‘유의미’하다. 의심스러운 표현이, 주어진 F1의 유의미한 표현으로 번역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러므로,
이 글은 11차 국제 철학 회의 회보 7호에 1953년에 최초로 발표됨.
F2가 존재하지 않아서 문제의 의심스러운 공식이 F2의 유의미한 서술로 번역될 수 있음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의심스러운 경우에, 특정 공식이 어떤 화자(話者)에 의하여 사용되는 바와 같이 그 용어의 정확한 의미로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 까닭은 누군가가 형식체계를
발명하고 문제의 공식이 그 형식체계의 잘-형성된 공식에 의하여 제공되어 원래 화자(話者)를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말할 수 있는 최대치는 ‘그런 형식체계가 어떻게 구축될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이다.
1.3 몸-정신 문제에 관하여, 언어 분석가의 다음 두 가지 다른 주장을 나는 배척하기를 원한다. (1) 두 가지 언어인 물리적 및 심리적 언어가 있지만, 두 종류의 실재인 몸 및 정신은 없다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그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2) 그 문제는 정신에 관하여 말하는 잘못된 방식에 기인한다, 다시 말해서,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다양한 특징을 지닌 행동, 예를 들어 지적(知的) 및 비지적(非知的) 행동인 반면, 그 문제는 행동뿐만 아니라 정신적 상태들도 존재하는 양 말하는 것에 기인한다.
1.31 나는 (1) 두 가지-언어 해결책이 더 이상을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 해결책은, 물리학과 심리학이 어떤 중립적인 ‘주어진’ 재료로부터 이론들이나 언어들을 구축하는 두 가지 방법이라는, 그리고 물리학과 심리학의 서술들은 저 주어진 재료에 관한 (축약된) 서술들이어서 서로 번역될 수 있다는 견해인 ‘중립적 일원론(中立的 一元論: neutral monism)’으로부터 출현했다; 그 서술들은 동일한 사실들에 관하여 말하는 두 가지 방식이라는 견해. 그러나 상호 번역가능성이라는 개념은 오래 전에 포기되어야 했다. 그 개념과 함께, 두 가지-언어 해결책은 사라진다. 그 까닭은 두 가지 언어가 상호-번역가능하지 않으면, 그 언어들이 다른 종류의 사실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사실들 사이의 관계가 우리들의 문제를 구성하는데, 그 문제는 그러므로, 우리가 두 가지 종류의 사실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한 가지 언어를 구축함으로써 언명될 수 있을 따름이다.
1.32 (2)가 그렇게 모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역장(驛長)의 믿음-같은 행동에 덧붙여, 기차가 출발할 것인지의 역장(驛長)의 믿음이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그가 합당한 움직임을 하는 것에 덧붙여, 기차에 관한 사실을 신호수에게 알릴 그의 의도가 있는가? 자신의 이해-같은 행동에 덧붙여 그 전달내용을 신호수가 이해하는가? 신호수가 그 전달내용을 철저히 잘 이해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마치 자신이 그 전달내용을 잘못 이해한 듯이 행동했을 것은 가능할까?
1.321 (내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예’라면, 몸-정신 문제는 거의 데카르트적 형태로 출현한다. 답변이 ‘아니오’라면, 우리는 ‘물리주의(physicalism)’나 ‘행동주의(behaviourism)’로 불릴 철학적 이론에 직면한다. 질문들이 답변되지 않고 ‘무의미한’ 것으로서 배제된다면; 더욱 특히, 피터(Peter)가 자신의 치통-같은 행동에 덧붙여 치통을 겪고 있는지를 묻는다는 것이 그의 치통에 관하여 알려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그의 행동을 통해서 알려지기 때문에 무의미하다는 말을 우리가 듣는다면, 사실은 그 사실을 지지하는 증거의 총화라는 (혹은 그 총화로 환원가능하다는) 실증주의자의 잘못된 믿음에 - 다시 말해서 의미에 대한 검증가능성 독단에 - 우리는 직면한다. (아래, 4.3과 나의 저서 과학적 발견의 논리[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1959년, 참조.)
1.4 여기서 도출되는 것에 대한 중요한 상정(想定)은 물리학에 관한, 심지어 고전 물리학에 관한 결정주의적 해석은, 해석오류라는 것과, 결정론을 지지하는 ‘과학적’ 이유들이 없다는 것이다. (나의 논문 ‘양자 물리학과 고전 물리학에서의 비결정론[Indeterminism in Quantum Physics and in Classical Physics]’, 영국과학철학협회보, 7호, 1950년 참조.)
2. 언어의 네 가지 주요 기능
2. 칼 뷜러(Karl Bühler)는 1918년에 언어의 세 가지 기능이라는 교설을 제시한 최초의 사람이었던 듯이 보인다: (1) 표현적, 즉 징후적 기능(expressive or symptomatic function); (2) 자극적, 즉 신호적 기능(stimulative or signal function); (3) 기술적(記述的: descriptive) 기능. 이 기능들에 나는 (4) 논증적(argumentative) 기능을 추가했는데, 그 기능은 기능 (3)과 구별될 수 있다. 다른 기능들이 (규정적[prescriptive], 조언적[advisory], 기타 등등과 같은) 없다고 주장되지는 않지만, 언급된 이 네 가지 기능들이, 하등 기능들이 고등 기능들 없이도 존재할 것인 반면, 고등 기능들 각각은 저 모든 하등 기능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위계질서를 구성한다고 주장된다.
2.1 예를 들어 논증은 유기체의 어떤 내부적 상태의 (물리적인지 심리적인지는 여기서 무관하다) 외부적 증상인 한, 표현으로서 역할을 한다. 논증은 또한, 답변이나 동의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신호이다. 논증이 어떤 것에 관련되어, 어떤 상황이나 사태에 관한 견해를 지지하는 한, 논증은 기술적(記述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를 들어 대안적 견해의 난제들이나 심지어 모순들을 지적함으로써, 현재의 견해를 지닌 것에 대하여 논증이 이유들을 내놓는 것인 논증의 논증적 기능이 있다.
3. 한 무리의 논제들
3.1 과학과 철학의 첫 번째 관심은 그것들의 기술적(記述的: descriptive) 및 논증적(論證的: argumentative) 기능에 놓여있다; 행동주의(behavourism)와 물리주의(physicalism)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예를 들어, 그것들의 비판적 논증들이 지닌 설득력에 달려있다.
3.2 어떤 사람이 실제로 기술(記述)을 하거나 논증을 하는지, 그가 단지 표현을 하거나 신호를 하는지는, 그가 어떤 것에 관하여 의도적으로 말하는지 혹은 어떤 견해를 의도적으로 지지하는지에 (혹은 공격하는지) 달려있다.
3.3 두 사람의 (혹은 두 가지 다른 날짜의 동일한 사람의) 언어적 행동은 구분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표현만 (그리고 자극만) 할 것인 반면, 한 사람은 실제로 기술(記述)하거나 논증할 것이다.
3.4 언어적 행동에 관한 인과적인 물리주의적 이론은 언어의 두 가지 하등 기능에 관한 이론이 될 수 있을 따름이다.
3.5 그런 이론은 그러므로 고등 기능들과 하등 기능들 사이의 차이점을 무시하거나, 두 가지 고등 기능들이 두 가지 하등 기능들의 특별한 경우일 ‘따름’이라고 주장하게 되어 있다.
3.6 이것은, 더욱 특히, 부수 현상설(附隨現象說: epiphenomenalism)과 심리-육체적 병행론(psycho-physical parallelism)과 두 가지-언어 해결책과 물리주의와 유물론과 같이, 물리적 세상의 인과적 완벽함이나 자족성을 구제하려고 노력하는 철학에게, 그리고 행동주의와 같은 철학들에게 유효하다. (이 모든 것은, 그것들의 논증이 - 물론, 비의도적으로 - 논증의 비존재를 입증하는 한, 자기-파멸적이다.)
4. 기계 논증(THE MACHINE ARGUMENT)
4.1 벽-온도계는 온도계 내부의 상태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신호를 하고 심지어 기술(記述)도 한다고 일컬어질 것이다. (자동-기록식 온도계는 심지어 기록을 하면서 그렇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술(記述)에 대한 책임을 자동-기록식 온도계에게 돌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 책임을 자동-기록식 온도계 제작자에게 돌린다. 우리가 이 상황을 이해하지마자, 우리는 나의 펜이 기록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동-기록식 온도계도 기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나의 펜과 마찬가지로 자동-기록식 온도계는 기술(記述)을 위한 도구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 온도계는 자체의 상태를 표현한다; 그리고 그 온도계는 신호를 한다.
4.2 4.1에서 개괄된 상황은, 아무리 복잡하다 할지라도, 모든 물리적 기계들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4.21 사례 4.1은 너무나 간단하며, 기계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듦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기술적(記述的) 행동을 얻을 것이라고 이의가 제시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더 복잡한 기계들을 생각해보자. 나의 적(敵)들에 대한 양보로써, 나는 심지어 기계들이 어떤 행동주의적 설계(specification)에 따라서 구축될 수 있다고 상정(想定)하겠다.
4.22 (렌즈, 분석기, 그리고 말하는 장치가 부착된) 기계가 있어, 중간 규모의 물리적 물체가 그 기계 앞에 나타날 때마다, 이 물체의 이름을 (‘고양이’; ‘개’, 기타 등등) 발언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나는 모른다’고 말한다고 생각하라. 그 기계의 행동은 훨씬 더 인간-같이 만들어질 수 있는데 (1) 그 기계로 하여금 항상 이렇게 하도록 이 아니라, ‘너 이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말할 수 있겠니?’, 기타 등등의 자극 질문에 답변하여서만 이렇게 하도록 만듦으로써; (2) 그 기계로 하여금 경우에 따라서, ‘나는 피곤해, 잠시 혼자 있게 해줘’, 기타 등등으로 대답하도록 만듦으로써. 다른 대답들도 - 장착된 장치들에 따라서 - 도입되어 다양할 수 있다.
4.23 그런 기계의 행동이 인간의 행동과 매우 흡사하게 된다면, 그 기계가 기술(記述)하고 논증한다고 우리는 잘못 믿을지도 모른다; 라디오 수신기의 작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수신기가 기술(記述)하고 논증하다고 잘못 생각할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러나 라디오 수신기의 작동구조를 분석하면 우리는 그런 종류의 기술이나 논증이 일어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라디오는, 자체의 물리적 상태를 표현하여 신호를 보낼지라도, 논증을 하지는 않는다.
4.24 원칙적으로, 벽-온도계와, 논의된 ‘관찰하’고 ‘기술(記述)’하는 기계 사이에는 차이점이 없다. 심지어 ‘고양이’와 ‘개’라는 소리들로써 적당한 자극에 반응하도록 조건이 주어진 사람도, 기술(記述)하거니 명칭을 부를 의도 없이는, 비록 그가 표현을 하고 신호를 보낸다할지라도, 기술(記述)하지는 않는다.
4.25 그러나 그 작동구조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행동이 매우 인간적인 물리적 기계를 우리가 발견한다고 상정(想定)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그 기계가 기계적으로 (인과적으로나 확률주의적으로) 행동한다기보다는 아마도 의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지, 다시 말해서 기계에게 정신이 조금이라도 없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기계에게 고통, 기타 등등을 끼치지 않으려고 우리가 매우 신중해서는 안 되는지. 그러나 그 기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기계가 어떻게 복제될 수 있는지, 누가 그 기계를 고안했는지, 기타 등등을 우리가 철저히 깨닫자마다, 아무리 복잡해도 그 기계는 종류에서 자동 조종장치나 시계, 혹은 벽-온도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4.3 이 견해와 견해 3.3에 대한 반론은, 주로 경험적으로 구별될 수 없는 대상들은 동일하다는 실증주의적 교설에 근거를 둔다. 두 개의 시계는, 하나가 자동적으로, 다른 하나는 전기적으로 작동한다할지라도, 똑같이 보일 것이지만 그 시계들의 차이점은 관찰에 의하여 발견될 수 있다고 그 논증은 말한다. 차이점이 그렇게 발견될 수 없다면, 차이점이 없을 따름이다. 답변: 물리적으로 구분될 수 없는 (심지어 번호에 대해서도) 두 장의 지폐를 우리가 발견한다면 적어도 그 지폐들 중 하나는 위조되었음을 믿을 충분한 이유가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조된 지폐는, 위조가 완벽하거나 위조행위의 모든 역사적 흔적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진짜가 되지 않는다.
4.4 우리가 기계의 인과적 행동을 이해하자마자, 우리는 기계의 행동이 순전히 표현적(expressive)이거나 징후적(symptomatic)임을 깨닫는다. 재미를 목적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그 기계에게 질문을 하지만, 우리는 기계와 진지하게 논증하지는 않는다 - 기계가,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도 양쪽 모두, 논증을 전달한다고 우리가 믿지 않는다면.
4.5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소위 ‘타인의 정신들(other minds)’이라는 문제를 해결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면, 특히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논증을 하면, 우리는 그들이 또한 논증을 한다고 (때때로 잘못) 상정(想定)한다: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진지하게 원하고 그렇게 원하고 있는 체 행동만 하지 않으면서 사물들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말한다고. 언어는 사회적 사건이고, 유아론(唯我論: solipsism) 및 타인의 생각들의 존재에 관한 의심들은 언어로 언명되면 자기-모순적이 됨이 흔히 보였다. 우리는 이것을 이제 보다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논증을 하면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운 한 가지 일), 예를 들어 타인의 생각들에 관하여,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의도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정신적 상태들을 의미한다. 우리는 온도계와 논증하지 않는다.
5. 명칭붙이기에 관한 인과 이론
5.1 그러나 더 강력한 이유들이 있다. 황갈색 고양이를 볼 때마다, ‘마이크(Mike)’라고 말하는 기계를 생각하라. 그것은 명칭 붙이기의, 혹은 명칭-관계(name-relation)의 인과적 모형(causal model)을 대표한다고 말하려는 유혹을 우리는 받을 것이다.
5.2 그러나 이 인과적 모형에는 결함이 있다. 그것은 명칭-관계의 인과적 실현(causal realization)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럴 리가 없다고) 말을 함으로써 우리는 이것을 표현할 것이다. 우리의 주장은 명칭-관계의 인과적 실현은 존재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5.21 마이크 (고양이)와 ‘마이크’ (고양이의 이름)를 결부시키는 사건들의 ‘인과적 연쇄(causal chain)’라고 우리가 느슨하게 부를 것을 실현하는 것으로서 그 기계가 기술(記述)될 임을 우리는 인정한다. 그러나 사물과 사물의 명칭 사이의 관계를 대표하거나 실현하는 것으로서 이 인과적 연쇄를 우리가 수용하지 못할 이유들은 있다.
5.3. 마이크의 출현으로 시작하여 ‘마이크’라고 발음함으로 끝나는 것으로서 이 사건들의 연쇄를 바라보는 것은 순진하다.
그 사건들의 연쇄는, 기계가 말하자면 마이크의 출현에 반응할 준비가 된 상태인 마이크 출현 이전의 기계 상태로 ‘시작한다’ (시작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그 사건들의 연쇄는 단어의 발음으로 ‘끝나지’ (끝나기를 조금이라도 한다면) 않는데, 그 이유는 이것에 뒤따르는 상태가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인과적으로 고려된다면, 상응하는 인간 반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마이크와 ‘마이크’를 인과적 연쇄의 극단들로 (혹은 용어들) 만드는 것은 우리의 해석이지, ‘객관적’ 물리적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반응의 전체 과정을 명칭으로, 혹은 ‘마이크[Mike]’의 마지막 글자들, 가령, ‘Ike’만을 명칭으로 아마도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명칭-관계를 알거나 이해하는 사람들이 인과적 연쇄를 그 관계의 모형으로 해석하기로 결정할지라도, 명칭-관계가 인과적 관계가 아니어서, 인과적 모형에 의하여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추상적’ 관계들, 예를 들어 논리적 관계들에 관해서도, 심지어 가장 단순한 1대1 관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5.4 그러므로 명칭-관계는, 가령, 여하한 복잡성을 지닌 연상 모형(association model)이나 조건 반사 모형(conditioned reflex model)에 의하여 분명히 실현될 수 없다. 그 관계는 ‘마이크’가 (어떤 규약에 의하여) 고양이 마이크의 이름이라는 어떤 종류의 지식과, ‘마이크’를 명칭으로 쓰려는 어떤 종류의 의도를 포함한다.
5.5 명칭붙이기는 단어들의 기술적(記述的) 사용에 관하여 단연코 가장 단순한 경우이다. 명칭-관계의 인과적 실현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언어의 기술적(記述的) 및 논증적 기능에 관한 인과적인 물리적 이론이 가능하지 않다.
6. 상호작용
6.1 나의 환경 속에 마이크가 출현하는 것은 내가, ‘여기 마이크가 나타났다’고 말하는 물리적 ‘원인들’ 중의 하나일 것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그렇다는 것을 이해하였거나 깨달았기 때문에, 내가 ‘이것이 당신의 논증이라면, 그 논증은 모순적이다’라고 말하면 마이크와 유사한 물리적 ‘원인’은 없다; 특정 이론이 (누구의 이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순적임을 깨닫기 위하여 나는 당신의 말들을 듣거나 알 필요가 없다. 유추는 마이크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이크가 여기 나타났다는 나의 깨달음과 관련되어 있다. (나의 이 깨달음은, 순전히 물리적으로가 아니라, 인과적으로 마이크의 물리적 출현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6.2 일관성과 같은 논리적 관계들은 물리적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 관계들은 추상이다 (아마도 ‘생각의 산물들’). 그러나 모순에 대한 나의 깨달음으로 인하여 나는, 물리적 세상에서, 마이크의 출현을 내가 깨닫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행동할 것이다. 우리의 정신은, 물리적 출현에 의해서만큼 논리적 (혹은 수학적, 혹은, 가령, 음악적) 관계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일컬어질 것이다.
6.3 정신적 상태와 육체적 상태가 상호작용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없다 (잘못된 물리적 결정론을 제외하고). (매우 다른 사물들은 상호작용을 할 수 없다는 옛 논증은 오래전에 갈음된 인과관계 이론에 근거하고 있었다.)
6.4 우리가 추상적인 관계에 대한 이해력에 의하여 영향을 받아 행동한다면, 충분한 물리적인 인과적 전례들이 없는 물리적인 인과적 연쇄들을 우리는 창시한다. 그 경우에 우리는 물리적인 ‘인과적 연쇄’를 ‘처음 움직인 사람(first movers)’이거나 창시자이다.
7. 결론
몽매주의(abscurantism)에 대한 (혹은 몽매주의자로 판정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반(反)-몽매주의자들은 이런 것들과 같은 것들을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결국, 또 다른 종류의 몽매주의를 낳았을 따름이다.
-“추측과 논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 칼 포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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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AND THE BODY-MIND PROBLEM
A RESTATEMENT OF INTERACTION
1. INTRODUCTION
THIS IS a paper on the impossibility of a physicalistic causal theory of the human language.1
1.1 It is not a paper on linguistic analysis (the analysis of word-usages). For I completely reject the claim of certain language analysts that the source of philosophical difficulties is to be found in the misuse of language. No doubt some people talk nonsense, but I claim (a) that there does not exist a logical or language-analytical method of detecting philosophical nonsense (which, by the way, does not stop short of the ranks of logicians, language analysts and semanticists); (b) that the belief that such a method exists - the belief more especially that philosophical nonsense can be unmasked as due to what Russell might have called 'type-mistakes' and what nowadays are sometimes called 'category-mistakes' - is the aftermath of a philosophy of language which has since turned out to be baseless.
1 This issue was first discussed by Karl Bühler in his Sprachtheorie, 1934, pp. 25-28.
First published in the Proceedings of the 11th International Congress of Philosophy, 7, 1953.
1.2 It is the result of Russell's early belief that a formula like 'x is an element of x' is (essentially or intrinsically) meaningless. We now know that this is not so. Although we can, indeed, construct a formalism F1 ('theory of types') in which the formula in question is 'not well-formed' or 'meaningless', we can construct another formalism (a type-free formalism) F2, in which the formula is 'well-formed' or 'meaningful'. The fact that a doubtful expression cannot be translated into a meaningful expression of a given F1 does not therefore establish that there exists no F2 such that the doubtful formula in question can be translated into a meaningful statement of F2. In other words, we are never able to say, in doubtful cases, that a certain formula, as used by some speaker, is 'meaningless' in any
precise sense of this term; for somebody may invent a formalism such that the formula in question can be rendered by a well-formed formula of that formalism, to the satisfaction of the original speaker. The most one can say is, 'I do not see how such a formalism can be constructed'.
1.3 As for the body-mind problem, I wish to reject the following two different theses of the language analyst. (1) The problem can be solved by pointing out that there are two languages, a physical and a psychological language, but not two kinds of entities, bodies and minds. (2) The problem is due to a faulty way of talking about minds, i. e. it is due to talking as if mental states exist in addition to behaviour, while all that exists is behaviour of varying character, for example, intelligent and unintelligent behaviour.
1.31 I assert that (1), the two-language solution, is no longer tenable. It arose out of 'neutral monism', the view that physics and psychology are two ways of constructing theories, or languages, out of some neutral 'given' material, and that the statements of physics and of psychology are (abbreviated) statements about that given material, and therefore translatable into one another; that they are two ways of talking about the same facts. But the idea of a mutual translatability had to be given up long ago. With it, the two-language solution disappears. For if the two languages are not inter-translatable, then they deal with different kinds of facts. The relation between these kinds of facts constitutes our problem, which can therefore only be formulated by constructing one language in which we can speak about both kinds of facts.
1.32 Since (2) is so vague, we must ask: Is there, or is there not, the station-master's belief that the train is leaving, in addition to his belief-like behaviour? Is there his intention to communicate a fact about the train to the signalman, in addition to his making the appropriate movements? Is there the signalman's understanding of the message in addition to his understanding-like behaviour? Is it possible that the signalman understood the message perfectly well but behaved (for some reason or other) as if he had misunderstood it?
1.321 If (as I think) the answer to these questions is 'yes', then the body-mind problem arises in an approximately Cartesian form. If the answer 'no' is upheld, we are faced with a philosophical theory that may be called 'physicalism' or 'behaviorism'. If the questions are not answered but dismissed as 'meaningless'; if, more especially, we are told that to ask whether Peter has a toothache in addition to his toothache-like behaviour is meaningless because all that can be known about his toothache is known through observing his behaviour, then we are faced with the positivist's mistaken belief that a fact is (or is reducible to) the sum total of the evidence in its favour - i. e. with the verifiability dogma of meaning. (Cf. 4.3, below, and my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1959.)
1.4 An important assumption of what follows here is that the deterministic interpretation of physics, even of classical physics, is a misinterpretation, and that there are no 'scientific' reasons in favour of determinism. (Cf. my paper 'Indeterminism in Quantum Physics and in Classical Physics', Brit. Journ. Philos. of Science, 7, 1950.)
2. FOUR MAJOR FUNCTIONS OF LANGUAGE
2. Karl Bühler appears to have been the first to propose, in 1918,2 the doctrine of the three functions of language: (1) the expressive or symptomatic function; (2) the stimulative or signal function; (3) the descriptive function. To these I have added (4) the argumentative function, which can be distinguished3 from function (3). It is not asserted that there are no other functions (such as prescriptive, advisory, etc.) but it is asserted that these four functions mentioned constitute a hierarchy, in the sense that each of the higher ones cannot be present without all those which are lower, while the lower ones may be present without the higher ones.
2.1 An argument, for example, serves as an expression in so far as it is an outward symptom of some internal state (whether physical or psychological is here irrelevant) of the organism. It is also a signal, since it may provoke a reply, or agreement. In so far as it is about something, and supports a view of some situation or state of affairs, it is descriptive. And lastly, there is its argumentative function, its giving reasons for holding this view, e.g. by pointing out difficulties or even inconsistencies in an alternative view.
3. A GROUP OF THESES
3.1 The primary interest of science and philosophy lies in their descriptive and argumentative functions; our interest in behavourism or physicalism, for example, depends on the cogency of their critical arguments.
3.2 Whether a person does in fact describe or argue, or whether he merely expresses or signals, depends on whether he speaks intentionally about something, or intentionally supports (or attacks) some view.
3.3 The linguistic behaviour of two persons (or of the same
2 Referred to in his Sprachtheorie, loc. cit. 3 Cf. ch. 4, above, esp. p 135.
person at two different dates) may be indistinguishable; yet the one may, in fact, describe or argue, while the other may only express (and stimulate).
3.4 Any causal physicalistic theory of linguistic behaviour can only be a theory of the two lower functions of language.
3.5 Any such theory is therefore bound either to ignore the difference between the higher and lower functions, or to assert that the two higher functions are 'nothing but' special cases of the two lower functions.
3.6 This holds, more especially, for such philosophies as behavourism, and the philosophy which try to rescue the causal completeness or self-sufficiency of the physical world, such as epiphenomenalism, psycho-physical parallelism, the two-language solutions, physicalism, and materialism. (All these are self-defeating in so far as their arguments establish - unintentionally, of course - the non-existence of arguments.)
4. THE MACHINE ARGUMENT
4.1 A wall-thermometer may be said not only to express its internal state, but also to signal, and even to describe. (A self-registering one does so even in writing.) Yet we do not attribute the responsibility for the description to it; we attribute it to its maker. once we understand this situation, we see that it does not describe, any more than my pen does: like my pen it is only an instrument for describing. But it expresses its own state; and it signals.
4.2 The situation outlined in 4.1 is fundamentally the same for all physical machines, however complicated.
4.21 It may be objected that example 4.1 is too simple, and that by complicating the machine and the situation we may obtain true descriptive behaviour. Let us therefore consider more complex machines. By way of concession to my opponents, I shall even assume that machines can be constructed to any behavouristic specification.
4.22 Consider a machine (invested with a lens, an analyser, and a speaking apparatus) which pronounces, whenever a physical body of medium size appears before its lens, the name of this body ('cat'; 'dog', etc.) or says, in some cases, 'I don't know'. Its behaviour can be made even more human-like (1) by making it do this not always, but only in response to a stimulus question, 'Can you tell me what this thing is?', etc.; (2) by making it in a percentage of cases reply, 'I am getting tired, let me alone for a while', etc. Other responses can be introduced, and varied - perhaps according to inbuilt probabilities.
4.23 If the behaviour of such a machine becomes very much like that of a man, then we may mistakenly believe that the machine describes and argues; just as a man who does not know the working of a radio receiver may mistakenly think that the receiver describes and argues. Yet an analysis of its mechanism teaches us that nothing of this kind happens. The radio does not argue, although it expresses its physical state, and signals.
4.24 There is, in principle, no difference between a wall-thermometer and the 'observing' and 'describing' machine discussed. Even a man who is conditioned to react to appropriate stimuli with the sounds 'cat' and 'dog', without intention to describe or to name, does not describe, although he expresses and signals.
4.25 But let us assume that we find a physical machine whose mechanism we do not understand and whose behaviour is very human. We may then wonder whether it does not, perhaps, act intentionally, rather than mechanically (causally, or probabilistically), i. e. whether it does not have a mind after all; whether we should not be very careful to avoid causing it pain, etc. But once we realize completely how it is constructed, how it can be copied, who is responsible for its design, etc., no degree of complexity will make it different in kind from an automatic pilot, or a watch, or a wall-thermometer.
4.3 Objections to this view, and to the view 3.3, are usually based on the positivistic doctrine of the identity of empirically indistinguishable objects. Two clocks, the argument goes, may look alike, although the one works mechanically and the other electrically, but their difference can be discovered by observation. If no difference can be so discovered, then there simply is none. Reply: if we find two pound notes which are physically indistinguishable (even as to the number) we may have good reason to believe that one of them at least is forged; and a forged note does not become genuine because the forgery is perfect or because all historical traces of the act of forgery have disappeared.
4.4 once we understand the causal behaviour of the machine, we realize that its behaviour is purely expressive or symptomatic. For amusement we may continue to ask the machine questions, but we shall not seriously argue with it - unless we believe that it transmits the arguments, both from a person and back to a person.
4.5 This, I think, solves the so-called problem of 'other minds'. If we talk to other people, and especially if we argue with them, then we assume (sometimes mistakenly) that they also argue: that they speak intentionally about things, seriously wishing to solve a problem, and not merely behaving as if they were doing so. It has often been seen that language is a social affair and that solipsism, and doubts about the existence of other minds, become self-contradictory if formulated in a language. We can put this now more clearly. In arguing with other people (a thing which we have learnt from other people), for example about other minds, we cannot but attribute to them intentions, and this means, mental states. We do not argue with a thermometer.
5. THE CAUSAL THEORY OF NAMING
5.1 But there are stronger reasons. Consider a machine which, every time it sees a ginger cat, says 'Mike'. It represents, we may be tempted to say, a causal model of naming, or of the name-relation.
5.2 But this causal model is deficient. We shall express this by saying that it is not (and cannot be) a causal realization of the name-relation. Our thesis is that a causal realization of the name-relation cannot exist.
5.21 We admit that the machine may be described as realizing what we may loosely call a 'causal chain'4 of events joining Mike (the cat) with 'Mike' (its name). But there are reasons why we cannot accept this causal chain as a representation or realization of the relation between a thing and its name.
5.3 It is naïve to look at this chain of events as beginning with the appearance of Mike and ending with the enunciation 'Mike'.
It 'begins' (if at all) with a state of the machine prior to the appearance of Mike, a state in which the machine is, as it were, ready to respond to the appearance of Mike. It 'ends' (if at all) not with the enunciation of a word, since there is a state following this. (All this is true of the corresponding human response, if causally considered.) It is our interpretation which makes Mike and 'Mike' the
extremes (or terms) of the causal chain, and not the 'objective' physical situation. (Moreover, we might consider the whole process of reaction as name, or only the last letters of 'Mike', say, 'Ike'.) Thus, although those who know or understand the name-relation may choose to interpret a causal chain as model of it, it is clear that the name-relation is not a causal relation, and cannot be realized by any causal model. (The same holds for all 'abstract', e.g. logical relations, even for the simplest one-one relation.)
5.4 The name-relation is therefore clearly not to be realized by, say, an association model, or a conditioned reflex model, of whatever complexity. It involves some kind of knowledge that 'Mike' is (by some convention) the name of the cat Mike, and some kind of intention to use it as a name.
5.5 Naming is by far the simplest case of a descriptive use of words. Since no causal realization of the name-relation is possible,
4 It does not matter for our present purposes whether or not the expression 'causal chain' is adequate for a more thorough analysis of causal relations.
no causal physical theory of the descriptive and argumentative
functions of language is possible.
6. INTERACTION
6.1 It is true that the presence of Mike in my environment may be one of the physical 'causes' of my saying, 'Here is Mike'. But if I say, 'Should this be your argument, then it is contradictory', because I have grasped or realized that it is so, then there was no physical 'cause' analogous to Mike; I do not need to hear or see your words in order to realize that a certain theory (it does not matter whose) is contradictory. The analogy is not to Mike, but rather to my realization that Mike is here. (This realization of mine may be casually, but not purely physically, connected with the physical presence of Mike.)
6.2 Logical relationships, such as consistency, do not belong to the physical world. They are abstractions (perhaps 'products of the mind'). But my realization of an inconsistency may lead me to act, in the physical world, precisely as may my realization of the presence of Mike. Our mind may be said to be as capable of being swayed by logical (or mathematical, or, say, musical) relationships as by a physical presence.
6.3 There is no reason (except a mistaken physical determinism) why mental states and physical states should not interact. (The old argument that things so different could not interact was based on a theory of causation which has long been superseded.)
6.4 If we act through being influenced by the grasp of an abstract relationship, we initiate physical causal chains which have no sufficient physical causal antecedents. We are then 'first movers', or creators of a physical 'causal chain'.
7. CONCLUSION
The fear of abscurantism (or of being judged an obstcurantist) has prevented most anti-obscurantists from saying such things as these. But this fear has produced, in the end, only obscurantism of another kind.
-"Conjectures and Refutations, The Growth of Scientific Knowledge", Karl. R. Popp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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