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희랍어 자료

그리스신화/ 유재원/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5. 13. 08:15

문화

“동창 ‘김민기’ 덕분에 20년만에 그리스신화로 돌아왔다”

등록 :2015-05-12 19:05

 

유재원 한국외대 그리스학과 교수
유재원 한국외대 그리스학과 교수
[짬] ‘그리스 신화’ 시리즈 도전 유재원 교수
“이번 작업으로 그리스 신화에 관한 한 한국이 후진국 수준은 면하게 될 것이다.” 최근 <그리스 신화>(북촌 펴냄) 시리즈의 제1권을 출간한 유재원(65) 한국외대 그리스학과 교수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또 영웅들을 출신 지역별로 나눠 싣는 통상적인 그리스 신화 서적들과는 달리 이 책은 4세대까지 세대별로 재분류했다며 “이는 국내외를 통틀어 확실히 독창적인 시도”라고 자부했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의 그리스 신화 관련 책 대부분이 기원전 5세기 전후의 그리스 황금시대가 아니라 기원 2세기 이후 로마시대 관점에서 쓰인 것이라며 제목도 ‘그리스·로마 신화’가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향유를 발라 반듯하게 눕혀 놓은 죽은 신들과 영웅들 이야기”라고 평한 그는 이번 시리즈에서 로마와 중세와 기독교의 영향으로 변질된 그리스 신화의 펄펄 살아있는 원형을 되찾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을 시작으로 3대 비극 등 그리스 신화들이 로마 때부터 라틴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 사후 600년 무렵 그리스 신화들이 죄다 라틴 방식으로 분류되고 정리됐으며, 이후 서양의 그리스 신화 연구가 모조리 그 체제를 따라갔다.”

30년째 현지 방문·그리스정교 입문
외대 그리스학과 개설·학회장도 맡아
“신화 연구 안하냐”는 질책에 학전 강의

캠퍼스커플 부인과 사별뒤 암투병중
부부 공동번역 ‘그리스 민담’ 재출간
“평가제 없애고 자유줘야 인문학 융성”

최근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한 유 교수는 “머리가 다 셌다”며 모자를 눌러쓰며 “나 자신의 투병(대장암)도 그렇지만 3년 전 아내를 떠나보낸 상실감이 더 컸다”고 했다.

1970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하자마자 같은 대학 영어영문학과 신입생 마은영씨를 만난 그는 5년 뒤 결혼했고 40여년을 해로했다. 그리스 유학도 학문·저술 활동도 함께했다. 이번에 거의 동시에 출간된 <그리스 민담>(예담 펴냄)은 그리스 민속학의 기초를 쌓은 요르고스 메가스의 책을 85년 아내와 함께 번역·출간했던 것을 수정·보완했다. 10편 정도는 새로 번역해 넣었다. “가치있는 책이 절판된 게 부당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있었고 그 노고를 다시 살리고 싶었다. 아내에게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싶었다. 이 책이 그와의 마지막 공동작업이다.”

그는 <그리스 신화> 제2권을 6월 중에 내고, 내년 말까지 6~7권으로 완간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았다. 제1권이 올림포스 신들의 이야기고, 제2권은 신에 맞먹는 영웅들인 페르세우스·테세우스·시시포스 등 “신을 신으로 보지 않고 불경죄를 범하는 1세대 영웅들” 이야기를 담는다. 3권은 그들의 후예들, 4권은 헤라클레스의 12가지 모험을 중심으로 한 3세대 영웅, 5권은 “선조들의 죄업을 안고 태어난” 아킬레우스·아가멤논·오이디푸스 등 제3~4세대 “비극의 영웅들” 얘기다. 6권은 영웅들이 다 죽고 신화가 끝나는 트로야 전쟁과 그 뒷얘기다. 7권까지 모두 2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인데, 마지막 권은 그 시대의 풍물을 상세히 다루는 전문가용을 구상하고 있다.

유 교수는 83년 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평균 한달 정도는 그리스에 가서 살았다. 그리스정교 교인이기도 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글맞춤법 검색기, 표준 한국어 발음 대사전, 한국어 음성인식을 위한 음운규칙 연구 등 한글 분야에 힘을 쏟았고, 2004년부터는 외대에 그리스학과를 만들어 학과장을 지내고, 한국-그리스협회 회장까지 떠맡았다.

“그러다 보니 신화 연구가 뒤로 밀렸는데 친구 김민기가 ‘왜 신화에 손을 놓고 있느냐’며 질책하고 같이 걱정도 해줬다. 그의 기획으로 유홍준 교수의 뒤를 이어 학전에서 ‘그리스 신화’ 강의를 시작해 지금 한 학기 6강씩 모두 3년 30강 계획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번 학기 강의는 155석 자리가 꽉꽉 찰 정도로 인기다.”

‘아침이슬’의 그 김민기씨와 그는 경기중 1학년 때부터 친구다. 그는 친구 덕분에 “20년 만에 다시 그리스 신화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가 한글 연구에 그토록 관심을 쏟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경제발전이 한글 덕이라고들 하지만, 인문학이 키운 거다. 한글 연구를 하고 책을 내는 것도 한국 인문학 발전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인문학이 필요하다. 지금 미국이 저만큼 버티는 것도 영국이 이룩한 인문학 덕이다. 지금은 좀 약해졌지만 앵글로색슨족의 나라와 경쟁했던 프랑스도 인문학이 강했고, 독일이 거기에 도전했다. 스페인은 15세기 유대인 등을 추방하면서 인문학을 죽여버리는 바람에 방향도 비전도 없어졌다. 러시아가 쇠락한 것도 인문학이 약해서다. 일본의 인문학은 지금 세계 수준이다.”

인문학이 바로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면서 그는 일갈했다. “지금 대학평가제는 인문학을 죽이는 제도다. 이런 풍토에서 어떻게 좋은 한글 책이 나오겠나. 그리스 신화 책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이해하고 쓰려면 1000번 이상 읽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 인문학을 살리는 방법은 따로 없다. 교수 평가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15세기 번성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왜 16세기에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나? 그건 평가를 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의 융성이 16~17세기에 암스테르담이나 파리로 넘어가 만개한 것은 상대적으로 자유도시였거나 왕들이 인문학에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맘껏 자유를 누리게 내버려둬야 한다”며 그는 반문했다. “학문 자체가 비판인데, 비판의 대상인 체제가 학문을 평가하려 들면 그게 제대로 될 리가 있나?”

글·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